이번에 폭로된 문건에는 2004년부터 2009년까지의 민간인 사망, 수감자 학대, 이란의 이라크 반군 지원 등에 대한 내용이 담겨있는데, 이 가운데 이라크 군경이 자국민 수감자들을 학대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총리가 비난의 대상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라크 야당 연맹체 이라키야는 23일(현지시간) "군대 통수권자를 맡고 있는 단 한 사람에게 모든 국가 안보 권력이 집중됨으로써 이라크 감옥 내 학대와 고문 관행이 일어났다"며 누리 알 말리키 총리의 '책임론'을 들고 나왔다.
그러자 이라크 총리실은 문건이 폭로된 시점에 의문을 제기하면서 어떤 세력이 이 문건을 이용해 새 정부를 만들고자 하는 총리의 노력을 의도적으로 방해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 누리 알 말리키 이라크 총리 ⓒEPA=연합뉴스 |
3월 총선 당시 이라키야에 패했던 집권당 법치국가연합이 최근 다른 시아파 정파들을 규합해 가면서, 알 말리키 총리의 연임 가능성은 높아지는 중이었다. 그러나 이번에 밝혀진 수감자 학대 사실은 알 말리키의 재임 기간 중 발생한 것이어서 그의 연임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분석된다.
문건의 폭로는 미국에도 파장을 몰고 왔다. 이라크 주둔 미군들이 수감시설에서 일어난 학대 행위에 대해 상관에 제대로 보고하지 않았거나 쉬쉬해왔음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국제앰네스티 등 인권단체들은 미국에 철저한 진상 조사를 촉구했다.
그러나 미 당국은 기밀문건 폭로가 미군과 동맹국 군인, 이라크인들을 위험에 빠트린다며 부정적인 논평을 내놓고 있다. 힐러리 클린턴 미 국무장관은 기밀 폭로가 "미국과 동맹국의 국가 안보를 위협한다"고 비난했으며 마이크 물렌 미 연합군 합참의장도 위키리크스가 무책임했다고 지적했다.
이라크전 민간인 희생자 '6만 6081명'
앞서 위키리크스로부터 미군의 기밀문서 내용을 전달받은 <알자지라>, <가디언>, <뉴욕타임스>는 23일을 전후로 이 내용을 검토해 보도했다. 39만 1832건의 기밀문서에는 이라크 민간인 희생자 규모와 이라크인 수감자들에게 자행된 학대, 이란이 이라크 반군 세력을 지원한 사실 등이 담겨 있다.
문건에 따르면 이라크전의 전체 사망자는 10만 9000여 명이며 이 가운데 6만 6081명이 민간인이었다. 이라크 시민단체 이라크 보디 카운트(IBC)는 민간인 사망자 가운데 과거 전혀 공개된 적 없는 사망자가 1만 5000여 명에 달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라크 정국을 혼란에 빠트린 수감시설 내 학대 행위도 충격적이다. 구타와 불고문, 채찍질, 성폭행 등의 잔학 행위가 수백 건 이상 보고됐다. 이 가운데는 이라크군 장교가 수감자의 손가락을 자른 뒤 그에게 산성용액을 부은 사례도 있었다.
한편 문건은 이란이 이라크 내 무장 세력에게 로켓과 자석 폭탄, 지대공 미사일 등의 무기를 제공하면서 그들을 도와 왔다는 사실도 밝혔다. 이라크 무장 세력은 직접 이란에 가서 저격 훈련을 받기도 한 것으로 드러났다.
<알자지라>는 미군이 검문소에서 민간인에 대해 제대로 검문을 거치지 않은 채 총격을 가해 700명에 달하는 이들이 희생된 사실을 톱 기사로 전했다. 미군이 단순히 검문을 두려워하거나 수신호를 알아보지 못해 차량통행을 멈추지 못한 이들을 향해서도 총격을 가했다는 것이다. 희생자들 가운데는 정신질환을 앓는 사람이나 임산부도 있었다.
<가디언>은 2005년 3월 당시 영국군이 알 카에다의 리더이자 이라크 점령군의 가장 큰 표적이었던 아부 무사브 알 자르카위를 놓친 사실을 부각시켜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영국군은 자르카위를 거의 붙잡을 뻔한 상황에서 그를 쫓던 정찰기의 연료가 바닥나 다시 기지로 돌아오는 어처구니 없는 실수를 저질러 그의 생명을 15개월이나 연장시켰다.
아프간전 관련 문건도 추가 공개
위키리크스의 창립자인 줄리언 어샌지는 23일 영국 런던에서의 기자회견을 통해 "공개된 문건들은 이라크 전쟁의 진실에 관한 것"이라며 "이라크 전쟁 이전과 전쟁 기간, 전쟁이 공식적으로 종료된 이후까지 이어지고 있는 진실에 대한 왜곡을 바로잡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이 자리에서 위키리크스 측은 조만간 1만 5000건 이상의 아프가니스탄 전쟁 관련 문서를 추가로 공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공개를 앞둔 문서는 그동안 내용의 민감성이 크다는 이유로 공개가 보류되어 온 것들이어서 또 다른 파장을 예고한다. 위키리크스는 지난 7월 아프간전과 관련한 기밀문서 9만여 건을 공개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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