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외아들 이재용 씨(현 삼성전자 사장)가 이 학교에 입학한 게 한 이유였다. 당시 경복고를 다녔던 이들은 이재용 씨 덕분에 좋은 환경에서 수업을 받을 수 있었다.
이재용 동창의 행운과 보편적 복지
그렇다면, 이 회장의 손자·손녀가 중고등학교에 입학할 때도 이런 일이 생길까. 이들과 같은 학교에 다니는 이들은 이재용 씨의 경복고 동기들이 누렸던 행운을 누릴 수 있을까.
가능성은 낮다. 이재용 씨가 고등학교에 입학하던 1984년은 서울에서 고교 평준화 정책이 강력하게 작동하던 때다. 특목고, 자사고 등 평준화 정책의 예외가 사실상 없던 때다. 이보다 한 해 전에 문을 연 경기과학고가 유일한 예외였다. 당시 경기과학고는 입학 정원이 60명에 불과한, 명실상부한 특수교육기관이었다. 입시 명문고로 전락한 지금의 특목고와는 다르다.
그러나 특목고, 자사고 등이 대폭 늘어난 지금대로라면 이건희 회장의 손자·손녀는 고교 평준화 정책의 영향을 받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평준화 정책을 비켜가는 게 불가능해서, 남들과 똑같이 '추첨'으로 경복고에 입학했던 이재용 씨와는 사정이 다르다는 이야기다. 이 회장의 손자·손녀가 입학할 학교는, 굳이 따로 수리를 하지 않아도 시설이 좋은 곳일 게다. 그리고 가난한 집 자녀와는 말을 섞을 기회 자체가 없는 곳일 게다. 이재용 씨의 경복고 동기들이 누렸던 행운은, 고교 평준화 정책이 강력히 유지되던 시절의 일일 뿐이다.
1984년 봄, 경복고에서 일어난 일은 최근 쟁점이 되고 있는 '보편적 복지'와 관련해서 중요한 시사점을 던진다.
부자를 위한 병원과 가난한 이들을 위한 병원이 따로 있다면
모든 사람을 복지 수혜자로 삼는, 그래서 이건희 회장조차 빈민과 마찬가지로 혜택을 입도록 하는 게 '보편적 복지'다. 이걸 비판하는 이들은 "부자에게 복지 혜택을 주는 것은 낭비"라고 말한다. 부자에게 혜택을 줄 돈으로, 가난한 이들을 돕는 게 더 현명한 선택이라는 게다. 실제로 이명박 대통령, 정운찬 전 총리 등이 "이건희 회장의 손자·손녀까지 ('보편적 복지'의 일부인) 무상급식을 받아야 하느냐"고 말했다.
하지만 이는 핵심을 비켜간 비판이다. 이건희 회장을 굳이 복지 수혜자로 끌어들이는 데는 이유가 있다. 북유럽 국가의 정치 지도자들이 괜히 전국민 무상의료 등 '보편적 복지'를 택했던 게 아니라는 이야기다.
부자가 가는 병원과 가난한 이들이 가는 병원이 다르다면, 부자들은 공공의료 확충에 관심을 둘 이유가 사라진다. 따라서 세금을 많이 낼 이유도 없다. 부자들의 눈으로 본다면, 자신들이 낸 세금이 가난한 이들을 위한 병원을 개선하는 데 쓰이는 것은 그저 시혜일 뿐이다. 자선사업과 다를 게 없다.
인간은 이기적이므로 보편적 복지가 필요하다
사람은 이기적인 동물이므로 자선, 그것도 생색이 나지 않는 자선을 위해 돈을 많이 쓸 사람은 많지 않다. 정운찬 전 총리의 <경제원론>이 가르치는 대로다.
부자도 가난한 사람과 같은 병원에 가야만 할 때, 부자는 기꺼이 세금을 낸다. 이건희 회장의 아들이 가난한 집 자식과 같은 학교에 가야만 했으므로, 이 회장이 학생 전체가 이용하는 시설에 돈을 썼던 것과 같은 이치다.
이런 예는 얼마든지 있다. 부자를 보호하는 경찰과 가난한 이를 보호하는 경찰이 따로 있다면, 부자는 치안을 위한 세금을 많이 내려 할까? 부잣집에 불이 났을 때 달려오는 소방차와 가난한 집에 오는 소방차가 다르다면, 부자는 세금을 많이 내려 할까? 부자들이 그나마 세금을 내는 이유는, 주요 공공 서비스가 '보편성'을 띠고 있기 때문이다. 공공 서비스의 전체적인 질이 떨어졌을 때 자신들도 피해를 입기 때문이다.
'보편적 복지'라는 개념 자체가 충분히 스며들지 않은 한국에선 이런 논리 자체가 낯설다. 그러나 한국보다 먼저 복지국가를 만들었던 나라에선 상식으로 통하는 논리다.
약자에게만 복지가 제공되면, 나머지 국민은 세금 내기가 싫어진다
▲ <사회민주주의란 무엇인가>(안네마리에 린드그렌·잉바르 카를손 지음, 윤도현 옮김, 논형 펴냄). ⓒ프레시안 |
"보편적 복지정책의 근본이념은 간단하다. 복지개혁을 통해 모든 사람이 혜택을 본다면, 모든 사람은 자신들을 위한 재정 확보에 동참하는 것에 관심을 가지게 된다는 것이다.
…(생략)…그런데-특히 자원이 한정되어 있을 경우-저소득자와 실업자에게만 급여를 지급하는 것이 더 낫다는 견해가 종종 사회민주당 내에서도 제기되었다. 이런 방법으로 하면 어려운 사람들을 집중적으로 지원할 수 있고 그들이 원하는 것들을 실제로 보장해 줄 수 있다는 것이다.
…(생략)…만약에 가장 어려운 사람들만이 아동수당, 무상의료 또는 무상교육의 혜택을 받는다면, 나머지 사회집단들은 그러한 혜택이 가능한 한 값싸게 지급되는 데 관심을 가질 것이다.
그들은 온갖 이유를 들면서 급여의 비용을 줄이려 할 것이다. 왜냐하면 이 급여는 자신들은 받지 못하는 것이고, 또 여기서 제공되는 서비스의 질이 나쁘다고 해도 자기들에게 직접적인 영향이 미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반대로 우리 모두가 조세 기반적인 복지급여를 받을 수 있다면, 우리 모두는 의료, 교육 같은 것들이 잘 제공되는지, 질병보험과 연금 시스템이 적절한 경제적 보호를 해주는지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될 것이다."
보편적 복지, 연민 때문에만 필요한 게 아니다
한마디로, 인간은 이기적 동물이므로 보편적 복지가 필요하다는 이야기다. 여기에 예외를 두는 순간, 복지 서비스의 질을 떨어뜨리는 방향으로 인센티브가 생겨나기 때문이다.
이렇게 보면, '보편적 복지'의 일부인 무상급식을 옹호하는 논리로 '가난한 집 아이들에게 찍히는 낙인 효과'만을 제시하는 입장이 조금 옹색해진다. '보편적 복지'가 필요한 이유는, 연민 때문만이 아니다.
스웨덴 사민당의 거물 정치인과 논객이 복지국가를 설명하는 팸플릿을 냈던 때는 1996년이다.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흐름 속에서 전통적인 사회민주주의가 위기를 맞았을 때다. 당시 사민당의 정치가와 이론가들은 '인민의 집(Foljhemmet)'이라는 사민주의 정치의 목표를 현대적으로 재구성하는 일에 골몰했었다. 북유럽의 혹독한 추위 속에서 누구나 들어와 따뜻하게 쉬고 배를 채울 수 있는 '인민의 집'. 적어도 이 목표만은 접을 수 없었던 게다.
'G20의장국'에서 굶어죽은 시나리오 작가
▲ 故 최고은 작가. |
뛰어난 실력과 열정을 지닌 시나리오 작가였던 그가 죽기 직전에 남긴 글은, "창피하지만, 며칠째 아무것도 못 먹어서 남는 밥이랑 김치가 있으면 저희 집 문 좀 두들겨주세요"였다. 그는 지병이 있었지만 치료할 엄두조차 못 냈다. 세계 최고의 전자업체, 세계를 주름잡는 자동차·조선·철강업체가 즐비한 2011년 한국, 지난해 G20 의장국이었던 바로 그곳에서 벌어진 일이다.
통상적인 분류대로라면,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영화과를 나온 고(故) 최고은 씨는 문화계 엘리트에 속한다. 나이는 고작 32살. 가능성이 무궁무진한 작가였다.
이런 그가 겪은 비극은, 젊은 사람이나 고학력자도 막다른 골목에 내몰리면 아무런 안전망 없이 방치된다는 점을 보여준다. 나이 든 사람, 또는 저학력자만을 대상으로 삼는 복지는 한계가 있다는 것. 모든 사람을 대상으로 삼는 '보편적 복지'가 절실한 이유다.
'인민의 집'을 향한 발걸음. 우리도 더 미룰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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