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장에 내몰린 스웨덴 어린이들
스웨덴 수도인 스톡홀름 남쪽 해안가에 노르쾨핑이라는 도시가 있다. 115년 전, 이 도시는 번창하는 산업의 활기로 흥청댔다. 섬유산업이 특히 번창했는데, 당시 4000여 명이 이 도시의 섬유공장에서 일했다. 기술의 발전과 대량생산체제의 도입이 막대한 부(富)를 낳았지만, 공장을 실제로 움직이는 노동자들과는 별 상관이 없었다. 1894년 당시 모직공장에서 노동자 한 명이 생산한 가치는 2696크라운(당시 스웨덴 화폐단위. 현재 단위는 크로나)이었지만, 방직기 앞에서 일하는 여성 노동자의 연 평균 임금은 500크라운이 채 안 됐다.
당시 이곳 노동자들의 생활을 다룬 자료를 보면, 공장 작업 감독이 돼야만 방 하나에 부엌이 딸린 집에서 살 수 있었다. 노동자의 3분의 1 가량은 '아이언 스토브 룸(Iron-stove room)', 즉 별도의 부엌이 없는 단칸 아파트에서 가족이 함께 살았다.
귀리로 쑨 죽, 콩, 감자, 청어 등이 이 도시 주민들의 주식이었는데, 많은 이들이 영양실조에 시달렸다. 늘 산업재해를 걱정해야 하는 섬유공장 노동자들의 평균 수명은 40세를 간신히 넘겼다. 아이들은 초등학교만 마치면 일자리를 구해야 했다. 섬유공장에서 일하는 12살 노동자는 1년에 약 150~200크라운을 벌어 집에 가져왔다.
투표권은 소수에게만 주어졌다. 선거에 참여할 수 있는 권리는 연소득이 800크라운이 넘는 사람들로 제한됐다. 노동조합에 가입하려는 자는 곧장 해고되는 위험을 감수해야 했다. 가족이 병에 걸리면 가계 재정은 바닥이 났고, 노동자에게 경기 침체는 해고와 같은 뜻으로 통했다.
'약육강식' 사회를 '복지'사회로 바꾼 사민주의자들
▲ <사회민주주의란 무엇인가>(안네마리에 린드그랜·잉바르 카를손 지음, 윤도현 옮김, 논형 펴냄). ⓒ프레시안 |
사회민주주의 정당 활동가들은 스웨덴 곳곳에 '인민의 집'을 세웠다. 이곳에 모여 책을 읽고 토론한 노동자들은 사람은 누구나 평등하며 국가는 약자를 보살필 의무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이렇게 번져간 깨달음이 스웨덴 사회를 바꿨다. 무상교육과 무상의료, 직업과 학력에 따른 차별 해소, 실업과 노후에 대한 보장제도, 권위와 서열보다 개성과 자율을 숭상하는 문화 등이 그 결과다. 이런 성과 앞에서 스웨덴 사민주의 활동가들이 느끼는 자부심을 이해하는 게 어렵지 않다.
115년 전 스웨덴과 '지금 이곳'
어떤 이들은 여전히 '맨발에서 벤츠까지'라는 성공담에 더 솔깃해 하겠지만, '불평등에서 평등으로'라는 스웨덴 사민주의의 성공담에 쏠리는 관심도 의외로 만만치 않다. 115년 전 스웨덴 공장도시 풍경이 남의 일 같지 않다는 이들이 많기 때문이다.
식민통치와 전쟁의 상처 위에서 거대산업을 일으키는 데는 성공했지만, 한국 사회에서 불평등은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권위와 서열에 지나치게 매달리는 문화 역시 여전하다. 대륙 반대편 국가가 백년에 걸쳐 일궈낸 성공담이 '지금 이곳'에서 관심을 끄는 것도 그래서다.
1990년대 세계화 흐름…같은 도전, 다른 선택
<사회민주주의란 무엇인가>는 학술 서적이 아니다. 스웨덴에서 이 책이 출간된 시점은 1996년 8월. '세계화', '정보화'가 거스를 수 없는 대세로 통하던 때다. 대륙 반대편에 있는 한국이 '세계화' 흐름에 동참한다는 명분으로 OECD에 가입한 해이기도 하다.
'세계화', '정보화'라는 흐름은 박정희 식 개발독재에 익숙하던 한국 정부에만 새로운 도전이었던 게 아니다. 백년이 넘는 역사를 지닌 스웨덴 사민당에게도 낯선 도전이었다. '자본과 지식이 자유롭게 이동하는 세상에서도 높은 세금에 의존하는 사민주의 복지체제가 작동할 수 있을까.'
같은 도전 앞에서 한국은 OECD 가입을 택했다. '세계화' 흐름을 밀어붙이는 신자유주의에 더 깊이 발을 담그는 쪽으로 방향을 잡은 것이다. 스웨덴 사민주의자들은 어떤 선택을 해야 했을까. 이 책은 이런 고민이 낳은 결과물이다. 저자 가운데 한명인 잉바르 칼손(Ingvar Karlsson)은 이 책이 세상에 나오기 직전까지 스웨덴 수상과 사민당 당수를 지냈다. 나머지 한명인 안네마리 린드그렌(Anne-Marie Christnia Lindgren)은 사민당 당 강령 위원회 위원으로 오래 활동했으며, 사민주의 운동 진영 내부 논쟁을 다루는 잡지 <티덴(Tiden)>의 편집장을 지냈다.
노쇠한 사민주의…전직 수상의 고민
▲ 잉바르 칼손 전 스웨덴 수상. 의문의 암살을 당한 올로프 팔메 전 수상과 더불어 그는 스웨덴 사민주의 정통파 노선을 대표하는 인물로 꼽힌다. ⓒStorlek på förhandsvisningen |
저자인 잉바르 칼손의 전임자였던 올로프 팔메는 스웨덴 사민주의의 황금기를 상징하는 인물로 통한다. 금융자본가 아버지와 독일 귀족 출신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좌파가 됐고, 미국 여행을 한 뒤 미국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을 갖게 됐으며, 교육부 장관 시절에는 횃불을 들고 미국의 북베트남 폭격에 항의하는 대학생 시위 행렬에 동참했고, 수상 재직 중 수행원 없이 가족과 함께 영화를 보다 의문의 암살을 당한 팔메 전 수상의 삶은 온갖 역설로 점철된 거대한 드라마다.
반면, 절정의 인기를 누리던 수상이 갑작스레 암살당하면서 자리를 물려받은 잉바르 칼손의 삶은 상대적으로 밋밋하다. 그는 사민당 청년동맹 지도자와 장관, 국회의원 등을 거치며 큰 굴곡 없는 삶을 살았다.
하지만, 1990년대 중반 잉바르 칼손에게 던져진 숙제는 만만치 않았다. 19세기 말과 20세기 초의 거대한 파업투쟁 속에서 잉태된 사민주의 정당은 백년 역사를 거치는 동안 스며든 관료주의로 활기를 잃어갔고, 강력한 복지체제를 유지하기 위한 비용은 부담스러워졌다. 사민당과 재벌의 공존이라는 독특한 모델은 균형을 잃어갔고, 거대기업의 힘은 점점 통제하기 힘들어졌다.
이런 상황에서 자본이 국경을 자유롭게 넘나들게 된다면? 기업은 싼 인건비와 낮은 세금을 찾아 해외로 빠져나가고, 일자리가 줄어드는 결과가 생길 수 있다. 이렇게 되면, 세금이 줄어서 복지체제를 유지하기 힘들어지고 스웨덴 식 사민주의 체제는 근본적인 위기에 부딪힌다.
"좌우로 비틀거려도 앞으로 나간다"…자유, 평등, 연대, 민주주의
이 책의 저자들을 포함한 사민당 지도자와 이론가들은 이런 숙제를 어떻게 해결했을까? 해결 못했다. 역사가 던지는 질문은 정답이 있다고 믿는 게 오히려 이상한 일이다. 세계화, 정보화가 던지는 거대한 질문 앞에서 왼쪽으로, 오른쪽으로 휘청거렸던 게 사민주의 정당들의 최근 역사다.
답이 없는 질문 앞에서 이리저리 흔들리는 정치인과 지식인을 탓하는 것은 무리다. 다만 이런 비틀거림이 제자리걸음이나 후퇴로 이어지지 않기 위한 조건을 확인할 필요는 있다. 비틀거리면서도 놓치지 말아야 할 원칙이 있다는 이야기다.
올로프 팔메로부터 정통 사민주의 노선을 이어받은 저자들이 이 책을 쓴 것은 그래서다. 이들은 좌편향과 우편향 사이에서 흔들리는 사민주의 정당이 움켜쥐고 있어야 할 핵심 가치로 네 가지를 제시했다. 자유, 평등, 연대, 민주주의가 그것이다.
사민주의자에게 자유란?
유럽식 사민주의자를 '머리에 뿔 달린 빨갱이'의 아류쯤으로 이해하는 이들은 여기에 자유가 포함된 이유를 알지 못한다. 이런 이들은 "사민주의자=좌파=획일적인 평등만 강조하며 개인의 자유는 억누르는 자들"이라는 등식을 고집한다. 하지만, 사민당 정치인과 이론가가 쓴 <사회민주주의란 무엇인가>는 이런 등식이 명백한 오해라는 점을 잘 보여준다.
또, 자유라는 낱말 앞에서 모든 영역에 시장 질서만을 폭력적으로 강요하는 신자유주의만을 떠올리는 일부 좌파 역시 다른 이유로 비슷한 반응을 보일 수 있다.
개인이 모여 사회를 이루고 있는 이상 '자유'를 포기할 수 없다는 점은 명백하다. 집단의 횡포와 부당한 권위에 맞서기 위한 자유가 없다면, 인권도 없다. 물론, 여기에도 조건이 있다. 저자들은 이렇게 정리했다.
집단주의가 낳은 통제 엘리트, 자기 잇속만 챙긴다
"개인과 집단 간에는 항상 긴장이 있을 수밖에 없다. 이러한 긴장은 모든 사람들이 개인이면서 동시에 사회적 존재라는 사실에서 불가피하게 나오는 것이다. 만약에 사람들이 개인의 행동의 자유만을 일방적으로 주장한다면, 이 경우 강자가 약자를 억압하는 체제로 가버릴 것이다.
반대로 만약에 사람들이 집단 공동체의 요구만을 일방적으로 강조한다면, 집단의 요구라는 이름하에 개인들의 요구는 무조건 무시될 위험이 있다.
첫 번째의 위험에 대해 경각심을 가져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들은 사회민주주의자로서 두 번째의 위험에 대해서도 똑같이 경계를 해야만 한다. 우리는 통상적으로 개인들의 자유를 제한하면서 정당화하는 것에 대해서 경계를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왜냐하면 이것은 보통 상식으로는 마치 타인들의 자유를 증대시키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집단'이 다수의 요구에 대한 배려를 제대로 하지도 못하면서 얼마나 사람들의 생활양식과 견해를 획일화 시킬 수 있는가에 대해서는 많은 사례들이 있다. 집단은 집단에 대한 충성을 강조하면서 자유로운 토론을 누르고, 집단의 이름으로 결정된 사항들에 대해 비판적으로 검토하는 것을 금지시킨다. 집단은 통제 엘리트를 낳는데, 이들은 실제로는 사회 전체의 공공선에 도움이 되는 결정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엘리트 자신들의 지위를 강화하는 데에만 관심을 가지면서 집단을 착취한다.
물론 이런 종류의 위험은 정치적 색깔을 불문하고 모든 형태의 집단에 존재하는 것이다. 그리고 많은 사회학 연구들은 여론이 가장 획일적으로 나타나는 집단은 사기업체라는 것을 보여준다.
우리는 사회민주주의자로서 개인의 자유는 그가 속한 사회를 통해서 실현되어야 한다는 기본적 입장을 견지해야 하지만, 동시에 집단주의의 여러 위험한 형태에 대해 경계를 늦춰서는 안 된다."
"시장 근본주의는 자유의 적"
"…(생략)…모두가 상호 의존적으로 되어 있는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일정한 공동의 규칙을 준수해야 된다는 통찰이 반영된 집단주의일 경우, 자유는 위협받지 않는다.
그러나 이와는 달리 모든 형태의 근본주의하에서, 즉 그것이 종교적, 정치적 또는 경제적 형태든 간에 자유는 위협받는다. 근본주의는 '신', '역사' 또는 '시장'에 의해 부여된, 우월하고 어떤 이미 정해져 있는 사명에 의해 개인보다 집단이 무조건 옳다고 간주하는 시각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렇게 만약에 어떤 하나의 입장이 근본적으로 옳다도 가정한다면, 다른 견해를 가진 사람들의 입장은 고려할 필요가 전혀 없게 된다. 하지만 정반대로 생각하는 게 옳다. 자신과 타인의 행복을 위해서는, 자신들만이 자신들의 '그릇된' 이념을 무조건 실천에 옮기는 소명을 타고 났다고 생각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자유를 내세우지만, 실제로는 '시장 근본주의' 입장에 서서 자유를 위협하고 있는 이들이 경계로 삼을만한 내용이다. 자신들만이 이념을 무조건 실천에 옮기는 소명을 타고 났다고 믿는 종교적, 이념적 교조주의자들에게도 유익한 반성을 하게 하는 내용이다.
'모든 사람을 위한 복지'에 대한 위협
평등과 연대, 민주주의 등 사회민주주의자들이 움켜쥐고 있던 다른 가치들 역시 마찬가지다. 저자들은 이런 가치들이 변화하는 현실 속에서도 의미를 잃지 않는 이유를 자세히 설명한다. 그런데 스웨덴 사민주의 체제에서 이런 가치들이 잘 녹아있는 제도로 흔히 꼽히는 게 모든 사람에게 적용되는 '보편적 복지제도'다.
열심히 일하려는 의지가 없는 이들에게도 복지 혜택을 준다는 점에서 이 제도는 시장주의자들로부터 집중적인 비판을 받았다. 다른 사람들의 노동에 기생하는 계층을 양산한다는 비판이다. 또, 복지 제도를 운영하는 기구가 너무 방대해져서 관료주의적인 낭비가 심해졌다는 비판도 나왔다.
외부 환경 변화도 이런 비판에 힘을 실었다. 정보화, 세계화가 진행되면서 지식 노동자에 대한 수요가 크게 늘었다. 이에 따라 대학 진학률도 높아졌다. 무상교육을 유지하기 위한 비용이 과거보다 늘어날 수밖에 없다. 여기에 인구 노령화로 인해 늘어난 복지수요도 중요한 변수다. '보편적 복지제도'를 유지하기 위한 부담이 과거보다 커졌다는 뜻이다.
하지만, 이런 비판이 평등과 연대라는 사민주의의 핵심 가치와 깊이 맞물려 있는 '보편적 복지제도'를 폐기할 이유가 되기는 어렵다. '보편적 복지제도'에 대한 저자들의 생각은 어떤 걸까.
'자유 · 평등 · 연대'와 복지정치
"사회보장은 1930년대 이래 사회민주주의 정치의 핵심이었다. 고전적 사회민주주의식으로 표현한다면, 그것은 생산된 과일을 어떻게 분배할 것인가라는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즉 조세라는 방법을 통해 돈이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로 들어가고, 이 돈이 직접적인 경제적 보조의 형태 또는 사회서비스의 형태로 각 가정에 재분배된다.
…(생략)…자신의 고유한 생활경로를 선택할 수 있는 자유가 존재하려면 일정수준의 경제적 안정 그리고 의료, 교육 같은 필수적인 서비스에 대한 이용이 필요하다. 그리고 평등은 자유의 이러한 전제 조건들이 모든 시민들에게 충족되어야만 가능하다. 그런데 이러한 평등 그리고 또한 자유를 보장하기 위해서는, 우리 모두가 시민으로서 이러한 전제조건들을 연대적 방식으로, 다시 말해 우리의 세금을 통해 이를 위한 재정을 마련하는 방식으로 보장하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다."
"50년대 해법이 90년대에도 통할 수는 없다"
"…(생략)…하지만 복지정치에 대한 전반적인 지지가 있다 해서 복지 사회에 대한 논의가 더 이상 불필요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우리는 1990년대부터 정부 재정에 부담을 가지고 있는데, 이러한 부담은 어떤 정책을 우선시할 것인가 하는 문제에 있어서 우리의 선택을 어렵게 만들고 있다. 그리고 우리는 노인 부양은 물론 교육 부문에서도 점점 더 많은 자원의 사용을 필요로 하고 있기 때문에 이러한 재정 문제는 향후 몇 십 년간은 지속될 것이라는 사실을 고려해야만 한다.
…(생략)…1950년대에 좋은 해결책으로 간주되었던 것이 1990년대에도 여전히 좋은 해결책은 아니다. 이런 의미에서 복지시스템은 결코 '완벽'할 수 없다. 따라서 우리는 어느 특정 시대에 추진했던 개혁을 마치 미래의 모든 시대에도 타당하고 또 바꾸어서는 안 되는 것으로 생각하지 않도록 조심해야만 한다."
"혜택에 예외 없어야 부담에도 예외 없다"
"사회민주주의적 복지정책에서 하나의 중요한 원칙은 복지정책은 전반적으로 보편적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즉 '자산조사'를 해서 가장 어려운 사람들만을 대상으로 급여를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국민에게 평등하게 혜택을 제공하는 것이다. 아동수당은 아이가 있는 모든 가정에 지급된다. 노령연금은 65세 이상의 모든 노인들에게 해당되고, 교육비는 모든 아이들에게 무료이다.
…(생략)…보편적 복지정책의 근본이념은 간단하다. 복지개혁을 통해 모든 사람이 혜택을 본다면, 모든 사람은 자신들을 위한 재정 확보에 동참하는 것에 관심을 가지게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모든 사람이 기꺼이 돈을 지불한다면, 우리는 훌륭한 사회보험체계와 사회서비스를 유지할 수 있는 자원을 가질 수 있게 된다. 이것은 경제적으로 더 약자인 사람들에게 많은 혜택이 돌아가는 것이다.
그런데-특히 자원이 한정되어 있을 경우-저소득자와 실업자에게만 급여를 지급하는 것이 더 낫다는 견해가 종종 사회민주당 내에서도 제기되었다. 이런 방법으로 하면 어려운 사람들을 집중적으로 지원할 수 있고 그들이 원하는 것들을 실제로 보장해 줄 수 있다는 것이다.
…(생략)…만약에 가장 어려운 사람들만이 아동수당, 무상의료 또는 무상교육의 혜택을 받는다면, 나머지 사회집단들은 그러한 혜택이 가능한 한 값싸게 지급되는 데 관심을 가질 것이다. 그들은 온갖 이유를 들면서 급여의 비용을 줄이려 할 것이다. 왜냐하면 이 급여는 자신들은 받지 못하는 것이고, 또 여기서 제공되는 서비스의 질이 나쁘다고 해도 자기들에게 직접적인 영향이 미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반대로 우리 모두가 조세 기반적인 복지급여를 받을 수 있다면, 우리 모두는 의료, 교육 같은 것들이 잘 제공되는지, 질병보험과 연금 시스템이 적절한 경제적 보호를 해주는지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될 것이다."
"복지 혜택이 '남의 일' 되는 순간, 사회복지는 망가진다"
모든 사람이 복지 수혜자가 돼야, 모든 사람이 복지 개선을 위해 애쓰게 된다는 논리다. 사회, 경제적 약자만을 위한 복지라면, 다른 계층 사람들은 자기 문제로 받아들이지 않게 된다. 그래서 복지에 쓰이는 예산을 아까워하게 되고, 복지 예산은 점점 줄어든다. 결국 사회안전망 자체가 허물어지는 결과로 이어진다. 사민주의의 핵심 가치인 '연대'와 '보편적 복지제도'를 떼놓을 수 없는 이유다.
'보편적 복지제도'에 대한 이런 통찰은 지금 한국에서 진행되는 논의에도 좋은 힌트가 된다. 영리병원 도입을 추진하는 기획재정부는 국민건강보험 체계에서 벗어나는 의료기관이 생겨나도 사회경제적 약자를 위한 공공의료가 훼손되지 않으리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는 명백한 억지다. 국민건강보험을 '남의 일'로 여기는 이들이 생겨나면, 공공의료가 무너지는 것 역시 순식간이다. 이들에게는 공공의료를 위한 예산이 자신들과 아무런 상관없는 곳에 쓰이는 돈이다. 따라서 이들은 이런 예산을 줄이는 쪽으로 압력을 가하게 된다. 언론을 장악하여 사회 여론을 주도하는 쪽 역시 이들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더욱 확연해지는 전망이다. 사립학교가 발달한 미국에서 공립학교의 교육환경이 계속 취약한 상태로 방치되고 있다는 사실 역시 이런 전망에 힘을 싣는다.
'지는 해'가 된 신자유주의, 한국이 택한 길의 끝에는?
사민당 거물 정치인과 이론가가 이 책을 쓸 당시, '떠오르는 해'였던 신자유주의 세계화 흐름은 지난해 금융위기를 계기로 '지는 해'가 됐다.
저자들이 '떠오르는 해'에 맞서 사회민주주의적 가치가 반영된 '보편적 복지제도'를 지키기 위해 이 책을 쓸 무렵, 김영삼 정부는 신자유주의적 개혁의 시동을 걸었다. 이듬해 불거진 IMF 경제위기는 한국에서 신자유주의적 개혁의 실패로 받아들여지기보다 오히려 신자유주의적 정책을 본격적으로 밀어붙이는 계기로 작동했다. '떠오르는 해' 앞에서 서로 다른 길을 택했던 저자들과 한국 정부는 이제 다시 선택의 갈림길에 섰다. 중천에 떴던 해가 노을을 그리고 있는 지금, 한국 정부가 택한 길은 어디로 향하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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