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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자의 저주'를 말할 자격?

[김상조 칼럼] "기업 구조조정 및 매각의 원칙 세워야"

지난 4일, 법원이 현대그룹의 MOU 해지 금지 가처분신청을 기각했다. 물론 현대그룹은 즉각 항고하겠다는 뜻을 밝혔고, 따라서 현대건설 매각은 상당기간 지연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지만, 어쨌든 현대그룹이 승자가 될 확률은 현저히 낮아졌다.

그런데 많은 논란거리를 제공한 이 사건을 바라보는 시각이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바뀐 듯하다. 애초 현대그룹이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될 당시에는 엄청난 입찰금액 및 특히 인수자금의 성격과 관련하여 현대그룹에 대한 비판적 시각이 우세했다. 이른바 '승자의 저주'(the winner's curse) 우려가 이를 대변한다.

그러나 갈팡질팡하는 채권단, 복지부동하는 감독당국, 몰아치는 현대차그룹 등의 모습이 어우러지면서 분위기는 달라졌다. 승자의 저주는 현대그룹이 걱정할 일이지, 다른 사람이 왈가왈부할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채권단은 비싼 값 받고 팔면 그만이고, 금융회사가 아닌 일반기업의 M&A에 금융감독당국이 나설 이유는 없다는 이야기다. 나아가 채권단, 특히 정책금융공사와 그 뒤에 숨은 감독당국이 승자의 저주를 이유로 애초의 의사결정을 번복하게 만든 것 자체가 자유시장경제 원칙에 위배된다고 성토하는 분들도 있다. 급기야 현대그룹의 가처분 신청을 기각한 재판부도 "승자의 저주 방지를 명분으로 혼란을 가중시킨 채권단"의 행태를 준엄하게 꾸짖는 '재판부의 소회'를 담은 보도자료를 배포하는 이례적인 모습을 보였다.

승자의 저주 운운은 자유시장 원칙에 위배?

복잡한 논점이 산재해 있고 다양한 관점이 병존할 수 있는 사건이지만, 여기서는 승자의 저주 문제에 집중하기로 한다. 국민의 혈세가 투입된 워크아웃 기업의 매각에서 승자의 저주를 말할 자격이 있는 사람은 누구인가? 그리고 승자의 저주를 이야기하는 것이 과연 경제적 효율성과 사회적 정의에 어긋나는 일인가? 그냥 필자의 개똥철학을 늘어놓으면 설득력이 떨어질 테니, 작년 공전의 베스트셀러로 많은 분들이 읽어보셨을 마이클 샌델(Michael J. Sandel)의 <정의란 무엇인가>의 논지에 따라 살펴보기로 한다.

선택의 자유와 그에 따른 자기책임의 원칙에 입각한 '자유지상주의자'(libertarian)의 입장에서는 채권단과 감독당국이 승자의 저주를 이야기하는 것 자체가 어처구니없는 일임에 틀림없다. 남의 권리를 침해하지 않는 한, 개인의 선택의 자유를 제한하는 것은 효율적이지 않으며 정의롭지도 못한 일이기 때문이다. 대학에서 경제학 교육을 받은 사람이라면 너무나 익숙한 이러한 논리는 쉽게 반박할 수 없는 것이지만, 마음 한 구석은 항상 불편하다.

마이클 샌델에 따르면, 두 가지 문제가 있다. 하나는 '과연 자유로운 거래인가?'라는 존 롤스(John Rawls)로 대변되는 '평등을 옹호하는 자유주의자'의 의문이고, 다른 하나는 '과연 자유가 유일한 기준인가?'라는 마이클 샌델 류의 '공동체주의자'의 의문이다. 하나씩 살펴보자.

자유롭지 못한 거래

▲ 현대건설 사옥. ⓒ뉴시스
무엇보다 먼저, 현대건설 매각 건은 단순한 사인(私人)들 간의 거래가 아니라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사고파는 주체도 기업이고, 그 대상도 기업이다. 기업은 단일한 의사결정 주체가 아니라, 주주⋅경영자⋅노동자⋅채권자⋅협력업체⋅소비자⋅지역주민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의 권리와 의무가 복잡하게 얽혀 있는 계약의 연결망(nexus of contracts)이다.

따라서 진정 자유로운 거래임을 주장하기 위해서는 이들 수많은 이해관계자들에게도 사전적으로 자유로운 선택의 기회가 주어졌는지를 따져보아야 한다. 물론 기업경영의 현실상 모든 문제를 이해관계자들에게 (또는 최소한 주주들에게) 미리 물어보고 결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들 이해관계자들의 권익이 부당하게 침해되었을 때, 이를 효과적으로 회복할 수 있는 사후적 피해구제 수단이 주어졌는지를 따져보아야 한다. 결국 기업지배구조의 문제다.

모 회계법인이 책정한 현대건설의 적정 인수가격은 4.3조 원이었다고 한다. 이는 당시 시가에 비해서는 40% 이상의 경영권 프리미엄을 포함한 가격이다. 그런데 현대차그룹은 5.1조 원을 썼고, 현대그룹은 무려 5.5조 원을 불렀다. 더구나 현대그룹은 주채무계열에 대한 재무구조 평가에서 불합격하여 재무개선약정 체결대상으로 분류된 바 있다.

이런 상황에서 엄청난 경영권 프리미엄을 포함한 입찰가격을 제시한 현대그룹 및 현대차그룹의 결정(아니 보다 솔직히 현정은 회장과 정몽구 회장의 결정이라고 하자)에 대해 이해관계자들은 동의했는가? 그 입찰가격이 현대건설의 적정가치라는 차원을 넘어, 현대상선을 비롯한 현대그룹의 경영권 유지를 위한 현정은 회장의 사적 이익, 현대엠코와 현대건설의 합병을 통해 3세 승계를 모도하려는 정몽구 회장의 사적 이익, 또는 정주영 회장의 적통을 이어받았다는 명분이 주는 사적 이익을 반영한 것이라면, 이해관계자들은 동의했겠는가?

물론 동의하지 않으면, 떠나면 될 거 아니냐고 할 수 있다. 주주가 마음에 들지 않는 기업의 주식을 팔고 떠날 때의 주가하락 손해는 차지하더라도, 노동자⋅채권자⋅협력업체처럼 떠나고 싶어도 떠날 수 없는 이해관계자들도 있다.

승자의 저주가 현실이 되었을 때, 이들의 손해는 '운이 없어서 그런 걸 어쩌겠느냐. 인생이 원래 복불복 아니냐?'는 말로는 위로가 안 된다. 실패가 불운의 결과라면, 성공 역시 행운의 결과일 뿐이고, 그렇다면 (마이클 샌델이 역설하듯이) 능력에 따른 분배가 정의라는 자유지상주의자의 주장은 공허해진다.

한편, 떠날 수 없다면, 부당한 권익침해에 대해 주주대표소송 등의 손해배상을 청구하면 될 거 아니냐고 할 수도 있다.

그럼 소송 한번 해보시라. 한국 사회에서 대기업을 상대로 소송을 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경제개혁연대만큼 잘 아는 사람도 없을 것이다. 어렵게 소송을 제기했더라도, 이중잣대로 가득 찬 판결문을 받아들었을 때의 참담함을 경제개혁연대만큼 잘 아는 사람도 없을 것이다. (마이클 샌델이 역설하듯이) 자율과 호혜의 조건이 충족되지 않는 상황에서 자유로운 거래를 상상하는 자유지상주의자의 주장은 기만이다.

결론적으로, 우리나라의 천박한 기업지배구조 현실을 전제로 할 때, '승자의 저주 운운하는 것은 효율적이지 않고 정의롭지도 않다'는 주장에 필자는 동의하기 어렵다.

그럼 누가 승자의 저주를 말할 자격이 있는가? 물론 원칙적으로는 모든 이해관계자다. 그 중에서도 가장 현실적인 대안은 채권자다. 일례로, 금호아시아나그룹이 대우건설 인수로 인해 승자의 저주에 걸렸을 때, 결국 산업은행이 시가보다 무려 70%나 더 비싼 가격으로 재무적 투자자가 보유한 대우건설 주식을 재매입하는 형태로 소위 '독박'을 썼다. 차입자의 무리한 경영으로 원리금 상환에 문제가 생길 소지가 있으면, 당연히 채권자는 문제를 제기할 권리가 있다. '중대한 사정 변경에 따른 기한의 이익 상실'을 주장할 수 있다.

현대그룹의 최다채권자 역시 산업은행이다. 더구나 현대그룹은 재무구조 평가에서 불합격하여 재무개선약정 체결대상이 된 상태다. 그런데 성격도 제대로 확인할 수 없는 천문학적 액수의 자금을 동원하여 현대건설을 인수하고자 한다면, 현대그룹의 최다채권자인 따라서 현대그룹이 승자의 저주에 걸린다면 또다시 독박을 쓰게 될 산업은행이 문제를 제기했었어야만 했다. 산업은행이 가만히 있으면, 금융감독당국이 산업은행에 대한 감독권을 행사했었어야만 했다. 그런데 현대그룹의 채권자인 산업은행은 침묵했고, 대신 현대건설의 주주인 정책금융공사가 (오락가락하다가) 승자의 저주 문제를 제기했다.

따라서 정책금융공사 또는 그 뒤에 숨은 감독당국이 승자의 저주를 언급한 것은 자유시장경제 원칙에 어긋난다는 주장은 절반의 진실일 뿐이다. 일관성을 유지하려면, 침묵한 산업은행에 대해서도 비판해야 한다.

정의롭지 못한 거래

현대건설 매각 건은 앞서 살펴본 기업지배구조 문제보다 훨씬 복잡한 문제를 안고 있다. 마이클 샌델이 주장한 도덕적 자격 또는 정의의 문제다.

우선, 우리나라 시공능력 1위 건설업체인 현대건설을 워크아웃 상태에 빠뜨린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가? 현대그룹의 현정은 회장이든 현대차그룹의 정몽구 회장이든, 과거의 책임으로부터 자유롭다고 주장할 수 있는가? 만약 그 주장을 받아들인다면, (마이클 샌델의 반어적 질문을 흉내 낸다면) 우리는 과거의 종군 위안부 문제에 대해 현재의 일본 정부가 배상할 책임이 없다는 주장도 받아들여야 한다. 그럴 수 있겠는가?

좀더 경제적인 문제로 넘어가 보자. 우리나라의 부실기업 구조조정 절차의 현실을 정확히 알아야 한다. 대우건설도 현대건설도 파산법에 의해 처리되지 않았다. 외환위기 직후에는 '기업구조조정 촉진을 위한 금융기관 협약'이라는 채권단 자율협약에 의해, 그리고 2001년부터는 '기업구조조정촉진법'에 의해 대규모 부실기업에 대한 워크아웃을 진행하고 있다. 이들 약식절차는 채권자 보호 및 채권자 동등대우라는 파산법의 기본원칙을 상당부분 훼손했다. 그리고 실제 워크아웃 과정에서는 감자의 형태로 소액주주가 보유한 주식은 휴지조각이 되었고, 특히 워크아웃 개시의 전제조건으로 언제나 구조조정에 대한 노동조합의 동의서가 요구되었다. 채권은행의 손실은 공적자금 투입을 통해 궁극적으로 납세자에게 전가되었다.

그렇다면, 이들 채권자⋅소액주주⋅노동자⋅납세자 등의 부담을 통해 부실기업이 성공적으로 워크아웃을 졸업하게 되었을 때, 오직 채권단의 매각수익 극대화라는 원칙만으로 인수자를 정하는 것이 정의로운가? 더구나 그 인수자가 승자의 저주에 걸려 또다시 부실해질 위험성을 안고 있는데도, 인수자의 과거 책임과 미래의 재무능력을 따지는 것이 부당한 일인가? 다른 이해관계자들은 이 문제를 제기할 자격이 없는가?

경제학자가 정의를 이야기하는 것이 껄끄럽게 들릴지 모르겠다. 그러나 승자의 저주를 이야기하는 것이 자유시장경제 원칙에 어긋난다고 주장하려면, 대규모 부실기업을 워크아웃이라는 편법에 따라 처리하는 것도 원칙에 어긋나므로 기업구조조정촉진법은 폐지되어야 한다고 주장해야 한다. 그리고 대우건설 문제에 책임을 지고 물러난 박삼구 회장이 1년 3개월만에 다시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으로 복귀한 것도 원칙에 어긋난다고 주장해야 한다. 하지만 필자는 이런 일관된 주장을 하는 사람을 거의 보지 못했다.

승자의 저주를 반복하지 않으려면

승자의 저주 논란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대우건설, 현대건설만이 아니라, 하이닉스, 대우조선해양, 대우인터내셔날 등 매각을 앞둔 워크아웃기업은 수두룩하다. 대안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먼저, '과연 자유로운 거래인가?'라는 의문에 대한 해결책이 마련되어야 한다. 원래 승자의 저주는 인수자가 과도한 비용을 지불하면서 M&A를 시도할 때 발생하는 문제이다. 따라서 지배주주와 경영진의 무모한 의사결정을 견제할 수 있는 건전한 기업지배구조를 구축하고, 또한 부실기업에 대해서는 파산법을 엄격하게 적용하는 것이 문제 해결의 기본이다. 하지만, 앞서 본 바와 같이, 우리의 현실은 그러한 전제조건으로부터 너무 거리가 멀고 가까운 시일 내에 개선될 가능성도 높지 않다. 보다 직접적인 대안이 필요하다.

그 중의 하나가, 대규모 주식인수 거래에 대해서는 주주총회의 승인, 즉 주주의 동의를 얻도록 하는 것이다. 현행 상법에는 영업양수도는 주총 특별결의(참석 주식 수의 2/3 이상의 찬성 요)를 거치도록 되어 있는데, 주식인수는 이사회 결의만으로 가능하도록 되어 있다. M&A의 실질은 동일한데, 절차를 달리 해야 할 이유가 없다.

실제 영국은 상장규정을 통해 대규모 주식인수 거래의 주총 승인을 의무화했다. 영국이 우리나라보다 더 시장규제적인 입장을 갖고 있기 때문에 이런 규제를 도입했다고 주장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시장의 자유를 주장하기 위해서는 진정한 선택의 기회를 주어야 한다. 이와 관련하여 경제개혁연대는 상법개정안을 입법청원했고, 민주당 박영선 의원 등이 이미 입법 발의했다. 국회의 조속한 심의와 통과를 요구한다.

한편, '과연 자유가 유일한 기준인가?'라는 의문에 대해서도 고민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부실기업 처리 절차 및 구조조정기업 매각 절차를 개선해야 한다.

우리나라는 파산법원 및 시장기구에 대한 신뢰가 형성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대부분의 부실기업을 채권단 주도의 구조조정 절차, 즉 워크아웃 방식으로 처리한다. 그런데 신용공여액 500억 원 이상의 대규모 부실기업에 대한 워크아웃 절차에만 기업구조조정촉진법이라는 법률적 근거가 존재할 뿐이고(그나마 위헌 소지가 다분하다), 그 외 주채무계열, 중소기업, 건설업, 조선업, 해운업 등에 적용하는 워크아웃 절차는 아무런 법률적 근거도 없이 그저 채권단 자율협약에만 의존한다.

이래서는 안 된다. 이래서는 정의도 효율도 달성할 수 없다. 우리의 현실상 채권단 주도의 구조조정 절차를 존치하는 것이 당분간 불가피하다면, 최소한의 투명성과 책임성을 보장할 수 있도록 구조조정 관련 정보를 공개하고, 구조조정 계획에 대한 만장일치가 이루어지지 않을 때에는 독립적 제3자(특히 법원)에 의한 심사를 거치도록 하는 등의 법제도 개선이 시급하다.

또한, 워크아웃 졸업 기업을 매각할 때 채권단이 매각수익 극대화 원칙을 보다 유연하게 판단할 수 있도록 제도화해야 한다. 구조조정 비용을 사회화했다면, 구조조정의 성과도 사회화하는 것이 정의로울 뿐만 아니라 효율적일 수도 있다. 필자는 소유분산 하의 전문경영인 체제가 최선이라고 주장할 생각은 없다. 경영권 행사에 필요한 30% 정도의 지분만 경영권 프리미엄을 받고 대주주에게 매각하고, 다수의 기관투자가에게는 5% 안팎의 지분을 시가로 블록세일함으로써 경영감시 주체를 세우고, 그리고 나머지 지분은 할인된 가격으로 우리사주 또는 국민주 형태로 매각하는 방법을 제안한다.

기업구조조정촉진법은 지난 연말이 일몰 시한이었으나, 예산안 날치기 통과로 국회가 파행하는 바람에 기한연장되지 못했다. 즉 현재 우리나라에는 워크아웃과 관련한 어떠한 법률적 근거도 존재하지 않으며, 재입법되어야 할 상황에 있다. 차제에 구법을 단순히 되살리는 수준에 머물지 말고, 구조조정 및 매각의 원칙과 절차를 개선하는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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