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예산안 '와리깡', 다음 정권은 어쩌라고?"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예산안 '와리깡', 다음 정권은 어쩌라고?"

[우석훈 칼럼] "예산, '조기집행'이 아니라 '지연집행'이 필요하다"

이번 한나라당의 예산 날치기는 두 박자 빨랐다. 여러 가지 이유로 어차피 날치기 할 거라고 많은 사람들이 생각했던 것 같지만, 예전과의 차이점은 그래도 논의를 하고 양보를 하는 것 같은 최소한의 '모양내기'도 생략되었다는 점이다.

연말까지 예산이 확정되지 않으면 국가에 엄청나게 큰 문제가 일어날까? 조금 귀찮기는 하지만, 예비비를 사용해야 하거나 아니면 차입을 해서 운용을 하게 되므로, 사실 그 자체로 엄청난 일이 벌어지지 않는다.

그리고 지난 2년 간, 실제로 정부는 후년도 예산을 미리 당겨쓰는 차입 운영을 하고 있었다. 마치 그런 일이 전혀 벌어지지 않는데 국회가 예산을 확정해주지 않았기 때문에 국가 운영에 엄청난 차질이 난다고 하는 한나라당의 설명은, 그거야 날치기를 위한 주장일 뿐이다.

하여간 두 박자 빠른 예산 날치기로 수 년 간 끌어왔고, 아직도 학내에서는 의사결정이 내려지지 않은 서울대 법인화 같이 복잡한 사안들도 동시에 날치기를 했다. 그 과정에서 자기들에게 꼭 필요한 불교계 예산까지 제대로 처리가 안되었으니, 자기들도 머리가 아픈 모양이다.

예산의 속사정만을 놓고 본다면, '차입 예산'과 '조기 집행'이라는, 어느덧 수년째 만연한 예산 편법 운용이 '조기 날치기'라는 것을 할 수밖에 없던 속사정이 아닐까 싶다.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가 오면서 새로운 정부는 멋지게 말하면 재정정책, 정확히 말하면 4대강과 같은 토건사업으로 경기 부양을 시도하였다. 사람들이 어느덧 망각한 것 같지만, 한반도 대운하를 4대강 사업으로 포장을 바꿀 때 포장지로 썼던 것이 '글로벌 금융 위기에 대한 대책'이라는 것이었다. 경기가 너무 안 좋기 때문에 재정정책을 늘려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선제적 금리정책으로, 금리도 확 낮추었다.

정부가 4대강 사업까지 동원하면서 토건경제로 한국 경제를 끌고 갔고, 개인들에게는 제발 아파트 좀 사라고 기준금리를 낮춘 것, 이게 이명박 정부의 실제 경제정책의 핵심 중추 두 가지이다. 대선 때는 747이니, MB노믹스니 그런 얘기들을 했지만, 실제로는 토건과 저금리 기조, 이 두 가지 외에는 새로운 정부가 한 건 거의 없다. 만약 있다면 외환은행 건처럼, 몇 개의 기업을 투명하지 않은 방식으로 석연치 않은 대상에게 팔아먹는 거 정도? 정권 출범하면서 한전 민영화니, 산업은행 민영화니, 그런 걸 하겠다고 거대한 포부를 밝혔지만, 어차피 현 정부의 능력으로는 감당되지 않는 일이다.

바깥으로는 이렇게 토건형 경제로 한국 경제를 끌고 오면서 행정조직의 예산 운용을 부속장치로 사용했다. 조기 집행 등의 복잡한 이름을 붙였지만 내용은 간단하다. 하반기에 집행할 예산을 상반기에 당겨쓰는 것이 2009년부터 한국 행정부가 했던 일이고, 이건 내년에도 하겠다고 이미 얘기했다. 정부 예산이라는 게 항목간 전용도 엄격하게 막고 있는 일인데, 4대강 같은 경우에는 정부 개발기구들을 통한 채권 발행으로 사실상의 전용을 밥 먹듯이 하는 집단이니, 계획된 예산 집행 시기를 조정하는 것이 문제라는 생각도 거의 못하는 것 같다.

상반기에 하반기 예산을 미리 당겨 썼으니, 당연히 하반기가 되면 돈이 없게 된다. 꼭 필요한 돈이라면 어쩔 수 없이 다음 해 예산을 차입하는 운용을 하게 된다. '와리깡'이라는 표현을 쓴다면, 2009년 상반기에 한 번 '와리깡'한 돈을 지금까지 계속 메우면서 예산 운용을 한 셈이다. 특히 지방정부에서는 이 부작용이 심하게 되었다. 예산을 가지고 있다가 제 때 지급하면 예산 보유과정에서 발생했을 이자소득이 사라지게 되어서 실질적으로 총예산이 줄어드는 효과가 생기게 된다. 게다가 차입을 하는 경우에는 당연히 이자를 물게 되니까, 빠듯하게 적자예산 수준에서 운용하는 지자체 등에서는 이 효과가 벌써 상당한 경제적 부담이 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정부에서는 그렇게 하면 연말에 '불용 예산'이 발생하는 것을 예방하는 효과가 있다고 하지만, 국민 입장에서는 불용이 난다는 것은 그 돈이 필요하지 않았다는 것이니, 그냥 국고로 환수하는 게 당연하다. 필요 없는 돈을 왜 써? 이게 근본적 질문 아닌가? 이명박 정부는 출범하면서 '준법'이라는 것을 중요한 국정 운용의 기조로 내세웠지만, 사실 자신들은 정부 운용하면서 온갖 불법, 편법을 밥 먹듯이 한 셈이다. 만약 지역에서 시민단체에서 행정소송을 통한 예산 부당집행에 대한 가처분신청이라도 했다면, 벌써 여러 건 법정 소송으로 갔음직한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 ⓒ뉴시스

한나라당이 이번 날치기를 하면서 명분으로 내세운 것 중의 하나가 1월달부터 바로 조기집행이라는 것을 하기 위해서는 법정 기간 내에 반드시 예산안이 통과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말을 뒤집으면, 차입분에 대해서 빨리 처리를 해주지 않으면 행정기관에서 큰 일 난다는 말이기도 하다. 사정과 정황은 이해가 간다. 민간사찰도 하는 '대포폰' 정권에서 자기들 주머니의 돈처럼 '와리깡'도 하는 게 전혀 이상해보이지는 않을 것이다. 이런 과정을 통해서 각 정부기관과 지자체 그리고 공기업의 예산담당자들이 불법과 편법이라는 위험한 선을 타면서 지난 2년간 버텨온 셈이다.

자, 이렇게 생각해보자. 현 상황에서는 객관적으로는 별로 그렇지는 않아 보이지만, 야당이 다음 대선에서 집권을 했다고 가정해보자. 만약 조기집행분이 다시 차입금으로 다음 해로 전환되었다면, 그만큼의 부채를 이번 정부가 다음 정부에게 넘기는 셈이 된다.

집권을 했는데, 당장 정부에서 집행할 예산이 없는 상황, 그건 좀 문제처럼 보인다. 기업에서나 하던 차입경영을 정부 차원에서 앞장서서 하는 게 바로 조기집행과 차입 예산인 셈이다. 도덕적으로도 정당하지 않고, 예산 시각에서도 옳지 않다. 정부라는 것은, 국민이 낸 세금을 한 푼이라도 더 쓰기 위해서 존재하는 기관이 아니라, 한 푼이라도 덜 쓰고 다시 국민들에게 다양한 종류의 복지로 되돌려주기 위해서 노력하는 기관이 되어야 한다. 그게 옳은 것 아닌가?

지난 정부에서 북한과의 경제적 관계를 한나라당은 '퍼주기'라고 부른다. 그 퍼주기의 경제적 효과에 대한 분석과는 별도로, 그걸 '북한 퍼주기'라고 부른다면 현 정부의 예산 날치기와 차입 예산을 통해서 한나라당이 한 것은 '건설회사 퍼주기'가 되는 셈이다.

과연 그 과정에서 글로벌 금융위기 때 정부와 한나라당이 주장했던 것만큼의 경기 진작 효과가 실질적으로 있었는가, 그리고 그 때 집행되어서 부풀려진 토건 예산들이 경기 회복과 함께 정상으로 돌아왔는가, 이런 것에 대한 면밀한 검토가 필요할 것이다. 민주당에게 아쉬워던 것은 연말 예산 정국에서 약간은 중장기적인 시각에서의 예산 흐름에 대한 검토가 전혀 없었다는 점이다. 게다가 고용효과는? 부풀려서 과장되었던 고용효과에도 불구하고 실제 고용효과는 거의 없었을 것이다. 게다가 군 부대를 투입한 공사에서 도대체 무슨 고용효과가 나온다는 말인가?

2011년 새로운 한 해가 다가온다. 우리는 예산 날치기와 함께 새로운 조기 집행을 하겠다는 '건설사 퍼주기'와 함께 새로운 예산 회계연도를 맞는다. 길게 보면 2012년에 줄줄이 잡혀있는 총선과 대선, 그 정치적 격동기를 맞아 다시 한 번 건설사에게 국민 예산을 퍼주면서 인위적 경기부양으로 성장률을 높여보겠다는 게 이번 날치기의 정신인 것 같다.

상반기에 조기 집행을 하고 나면 당연히 모자라는 만큼을 다시 연말에 차입을 하게 될 것이고, 그렇게 우리는 토건에 모든 것을 퍼줄 준비를 하면서 새로운 정치적 경기부양의 한 해를 맞는 셈이다.

2011년이 지난 정부 이래로 부풀릴 대로 부풀릴 버블이 새로운 경기부양과 함께 폭발이라는 '디버블링'의 한 해가 될 것인가, 아니면 정부의 사려 깊고 지혜로우면서도 조심스러운 예산 운용을 통해서 구조적 위기를 결국은 버텨나갈 것인가, 그 경제적 분기점에 놓이는 한 해를 맞게 되었다.

그 모습이 어떻게 될 것인지, 우리는 지난 몇 달 동안 LH 공사의 디폴트 위기와 함께 똑똑히 지켜본 적이 있다. 내년에는 더 이상 추가 지급 여력을 확보하기 어려워진 지자체와 SH공사 등 지역 개발공사들로 이 위기가 번져가는 한 해이다.

만약 내가 지금 경제당국의 의사결정자라면 나는 이 위기를 넘기기 위해서 '조기 집행'이 아니라 '지연 집행'을 할 것이다. 일단은 유동성과 지급 능력을 확보하는 게 기업이든 정부든, 위기 관리 매뉴얼 1번이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는 선거를 앞둔 정치적 이유로 '조기 집행'이라는 도박성 정책 기조를 선택했다.

한 가지 이 과정에서 슬픈 것은, 정권은 짧고 국민은 영원하다는 사실이다. 자기들이야, 그렇게 물러나면 그만이지만 그 위기와 부채는 우리들 어깨 위에 그대로 얹히는 것 아닌가? YS 정권 때 그런 경험도 이미 한 적이 있는 우리들이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