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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석희쇼'의 빈 자리, 누가 메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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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석희쇼'의 빈 자리, 누가 메울까"

[우석훈 칼럼] "중립적 공론장이 아쉽다"

모든 사회에는 급진과 보수가 있고, 어느 조직에나 매파와 비둘기파가 있다. 그리고 파벌이라는 것은 생기게 마련이다. 자본주의가 등장한 이후로 자본의 이해를 중심으로 좌우를 나누는 것이 보편적인 호명법이기는 하지만, 한국에서는 불행했던 한국전과 냉전 시대의 여파로 좌파는 스스로 좌파라고 부르지 못했다. 초대 농림부 장관을 했던 진보당의 조봉암이 1959년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이후, 아주 오랫동안 한국에서 좌파라고 얘기하는 것은 목숨을 내거는 일이 되었다. '진보'라는 어정쩡한 이름은 그런 속에서 그것도 하나의 전통이 된 셈이다.

지난 수십 년 동안의 여론조사들을 모아보면, 절대로 한나라당에 투표하지 않을 왼쪽의 30% 정도가 있고, 반대로 절대로 진보계열에는 투표하지 않을 오른쪽의 30%가 존재하는 것 같다. 그리고 특정 정당을 지지하지 않는 40% 정도가 일종의 '무당파'로 존재한다고 할 수 있다. 이 40%는 중도라는 이름으로 불리기도 하고, 정치불신자로 불리기도 하는 듯 싶다. 어쨌든 특정 정당의 정당원이 될 리가 절대로 없고, 또한 평소에 특정 정당을 지지하지도 않는 중간의 40%의 마음이 한국 정치를 결정하는 절대적인 캐스팅 보트 역할을 하는 것 같다. 이들이 무슨 선택을 할 것인가, 그게 대체적으로 특정 지역 출신들이 절대수가 아닌, 모든 지역 출신들의 아말감과도 같은 수도권의 민심 향배라는 것 아니겠는가?

어쨌든 간간히 하는 여론조사들에서 "당신은 진보입니까?"라고 질문하면 국민들의 30% 정도가 그렇다고 하는 것 같고, "당신은 좌파입니까?"라고 질문하면 이번에는 3%에서 5% 정도의 국민들이 그렇다고 답하는 것 같다. 분당 이전의 민주노동당이 한참 높을 때 이 수치가 10% 정도 된 적이 있었지만, '좌파'라는 단어가 사회적으로 혹은 정치적으로 유의미한 수치를 기록한 적은 없는 것 같다.

그냥 한국 국민들을 크게 3덩어리로 나누면, "반드시 투표해서 집권하겠다"는 30%, 30%의 두 집단이 있는 셈이고, "봐서 투표하거나 아니면 투표할 마음 없다"는 40%의 또 한 무더기가 있는 셈이다. 이 구조가 바로 '선거 바람'이라는 게 등장할 구조적이고 물질적인 근원인 것 같다. 앞으로도 계속해서 이 구조가 이어질지는 모르겠지만, 현재까지는 대체적으로 이렇게 생긴 셈이다.

노무현 집권 3년째를 지나면서 "이게 다 노무현 때문이다"라는 농담이 이 나라를 강타했고, 사실 지난 대선은 민주당 입장으로서는 하나마나한 선거였던 셈이다. 무당파 혹은 중도 아니면 중립을 자처하는 사람들이 선거 수 년 전부터 "노무현네들에게는 투표하지 않겠다"고 마음을 먹었던 것이 지난 대선의 이명박 대통령의 성공 비결이 아니었나 싶다.

자, 다시 이명박 3년 째를 지나는데, 아직 노무현 시절만큼 확고하게 굳어진 경향성은 아니지만 이번에는 반대편의 "이게 다 MB 때문이다"라는 정서가 생겨난 것 같다. 최근의 여론조사에서 "정권을 바꾸자"라는 의견이 50대 이상에서도 절반을 넘어가게 되었다. 이유야 어떻든, 세대별, 지역별 투표 성향이라는 통계적 특징이 확실하게 드러나는 한국 투표에서 50대 이상에서도 여당이 절반의 지지가 나오지 않는다는 것은, 사실 집권당으로 본다면 등줄기에 땀이 흐르는 상황 아니겠는가?

지역별 지표로 보면, 김두관 경남도지사의 당선으로 경남의 경우도 후보가 누구냐 혹은 어떤 분위기에서 선거가 치루어질 것인가라는 구체적인 상황에 따라서 집권당이 확실하게 이긴다는 보장이 없어 보인다. 그렇다면 여당 최후의 보루로 남은 것은 대구경북 지역? 알 수 없다.

어쨌든 이렇게 묘하게 바닥민심이 흐르는 상황에서 과연 한나라당이 어떻게 떠나가는 무당파 중에서 최소한 절반의 마음이라도 살 것인가, 이게 초미의 관심사가 되는 상황이다. 정두언에서 안상수로 흐르는 지난주의 해프닝은, 이런 상황을 반영하는 것 같다. 청와대의 강만수가 긴급 진화에 나섰지만, 객관적으로 두 가지 상황이 앞으로 펼쳐질 것 같다.

강만수, 그가 대체 뭔데?

이게 아마 첫 번째 반응이 아닐까 싶다.

두 번째는, 자신들의 방향 선회를 어떻게 개별 정책으로 구현을 할 것인가?

물론 집권이 1차 목표라면 4대강 사업은 재검토를 시작하고, 한미 FTA는 조심스럽게 검토하겠다고 말하면 된다. 그러면 아마 확실히 한나라당이 다음 집권에는 성공할 것 같다.

그러나 그게 어디 말처럼 쉽겠는가? 대통령 집권 이후, 정당으로서의 존재감을 한나라당은 완전히 상실한 상황이고, 말로는 '여의도 정치에 대한 불신'이라고 했지만, 거대여당 한나라당 이야말로 내부적으로는 완전히 1인 통치 시스템인 상황으로 수 년 간 운영된 것 아닌가?

자, 이 상황에서 우파들이 완전히 한나라당에 '싱크로율 100%'를 보이며, "저건 바로 나의 당이다"라고 하기도 좀 어정쩡한 상황이 온 것 같다. 그렇다고 좌파들이 민주당에 싱크로율 100%를 보이기도 어렵다. 진보신당은 지지부진 하고, 민주노동당은 어정쩡하고, 민주당은 "믿을 수 있을까?", 이렇게 누구도 선뜻 누구에게 마음을 주지 못하고 "좀 봅시다"라고 하는 게 집권 4년차를 목전에 둔 현 상황인 것 같다.

민주파라는 이름으로 부른다면, 여당과 야당, 그렇게 1:1 격돌을 만든다면 누가 나오든 확실히 승리할 수 있다고 보는 것 같다. 그게 지난 지방선거 이후 '반MB'라는 전선이라고 할 수 있다. 1:1 구도에서는 한나라당이 50%를 넘기지는 않을 것 같으니, 무당파들이 반대의 선택을 할 것이라는 가설이 반MB 전선의 가설인 셈이다.

반면, 박근혜의 경우는 3각 구도를 생각하는 것 같다. 친이 계열에서도 누군가 나온다면 3명이 격돌을 하니, 두 개의 축으로 결집하는 효과가 덜 할 것이고, 그렇다면 이미 천근추처럼 바닥표 30%를 다진 박근혜의 필승 구도, 이런 게 반대편의 가설이 아닐까? 제일 속이 타는 것은 아마도 한나라당의 친이계열일 것이다. 원래 돌아서면 적보다 친구가 더 무섭다고 하지 않은가?

하여간 이런 정중동의 묘한 구조가 정치지형상의 일시적 진공상태를 만든 것이 지난 수 주간의 모습인 것 같다. 도대체 특정 정당을 지지하지 않는 무당파 40%의 마음을 어떻게 살 수 있을 것인가, 혹은 어떻게 그들에게 신뢰감을 줄 수 있는가, 이건 현대 한국 정치의 당분간은 영원한 미스테리일 것 같다.

어쨌든 오랫동안 우리 모두가 선거는 인물중심, 지역중심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하면서 지향했던 대안이 바로 '정책 선거'라는 것이었다. 정책이라는 눈으로 본다면, 지난 10년간의 많은 선거들도 인물 과잉, 이념 과잉이기는 했다.

그리고 우리가 한 가지 이해한 것은, 선거를 목전에 두고 수많은 마타도어와 네거티브 그리고 줄서기가 찬란하게 꽃을 피기 때문에 정책에 대한 논의가 설 공간이 도무지 없다는 것이다.

2012년 대선에서 누가 최후의 승리가 될지, 그리고 대한민국이라는 이 특별한 국민경제가 더 왼쪽으로 갈지, 더 오른쪽으로 갈지, 그도 아니면 여성이나 청년 혹은 대기업, 어느 쪽으로 방점을 찍고 갈지, 그런 것은 아직 알 수가 없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지금과 같은 정치적 진공기가 우리가 선택해야 할 정책에 대해서 비교적 부담감 없고 소탈하게, 원칙이나 방향에 대해서 논의하기가 좋은 시점이라는 사실이다.

아주 오래된 질문이 하나 있다. "노아가 방주를 비가 오기 전에 만들었을까, 비가 온 다음에 만들었을까?" 답변은 너무 뻔하게, 노아는 비가 오기 전에 방주를 만들었을 것이다. 정치와 정책에서, 어쨌든 정책에 대한 논의가 구체적이고 격동적인 정치의 계절이 열리기 전에 논의되어야 할 것 같다.

이 시점에서 '공론장' 혹은 '중립지'라는 개념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다. 전통적인 공론장은 정당 내부의 논의나 신문 같은 곳이겠지만, 지금은 게시판, 블로그의 시대를 거쳐 트위터로까지 확장되었다. 그리고 <슈퍼스타 K2>의 성공 이후 케이블 TV 역시 공중파 틈바구니에서 새롭게 공론장으로서의 자기 설 자리를 비비고 들어서는 중이다. 그러나 역시 한국에서는 인쇄된 종이신문과 공중파 TV가 공론장으로서는 으뜸의 자리에 있는 것만은 사실일 것 같다. 어떤 의미로 생각하든, 많은 사람들이 공론의 영역으로 생각하는 것의 맨 위에는 공중파 TV 그리고 신문들이 서 있다.

▲ <슈퍼스타K2> 우승자 허각. 이 프로그램의 성공 이후 케이블 TV 역시 공중파 틈바구니에서 새롭게 공론장으로서의 자기 설 자리를 비비고 들어서는 중이다. 그러나 역시 한국에서는 인쇄된 종이신문과 공중파 TV가 공론장으로서는 으뜸의 자리에 있는 것만은 사실이다. ⓒ연합뉴스

좌우라는 개념과 '중립지'라는 개념을 생각해보면, 한국 국민들이 실제로 그렇게 좌우로 줄을 서 있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공론장에서 중립지라는 것은 여전히 좀 어색해 보인다. 많은 국민들은 <한겨레>를 절대로 읽지 않지만, 또 그만큼의 많은 국민들은 <조선일보>를 절독하는 것을 민주시민의 증표로 생각한다.

연전에 경주시청에 방문할 일이 있었는데, 경주시청 민원실의 컴퓨터에는 <프레시안>에 대한 접근이 차단되어 있었다. 정부에서 운영하는 민원실에서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나, 좀 충격이었지만 어쨌든 그게 경주의 현실이었다. 이런 공론장에는 지역별 성향과 함께 계급적 성향도 종종 보여진다. 압구정 현대 아파트 주민들 중 <한겨레>나 <경향 신문>을 보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상상하는 것보다 더 작은 숫자이다.

좌파와 우파들이 같이 보는 신문이 과연 한국에 존재하는가? 이 간단한 질문이 <시사인>이라는 주간지 형식의 독립언론이 등장할 때 내가 편집국에 던졌던 질문이다. 사실 한국의 신문들은 '정보의 전달'이라는 임무에는 나름대로 충실한 것 같지만, 사회적 논의를 이끌어가는 '공론장'이라는 또 다른 임무에는 그렇게 충실한 것 같지는 않다. 반드시 좌우의 날선 논쟁만이 사태를 정책에 대한 담론 부재의 사태를 해결할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어쨌든 좌파와 우파가 같이 보고 있는 그런 공론장이 지금처럼 전혀 없는 것은 장기적으로 좀 문제라고 생각되지 않는가?

▲ <100분 토론> 진행자였던 손석희 성신여대 교수. ⓒ프레시안
'손석희쇼'라고 가끔 부르기도 했던 손석희 교수가 진행하던 시절의 <100분 토론>이 이런 중립지 기능을 좀 했었던 것 같다. 그 시절에는 좌파든 우파든, 그 방송은 보려고 했던 것 같다. 그가 물러난 이후에, 이제는 아무도 안 보는 방송이 된 것 같다. 생각해보자. 공중파 내에서 강호동쇼 등 버라이어티쇼나 드라마 같은 오락방송 외에 좌우가 같이 보는, 혹은 진보든 보수든 "이 방송은 꼭 봐야 하는" 그런 방송이 한 개라도 있는가? 공론장이면서도 동시에 정쟁을 잠시 내려놓고 기술적 논의들을 할 수 있는 중립지인 곳이 있는가?

물론 중립지적 공론장이 등장한다는 것만으로는 문제가 풀리지 않는다는 것은 명확하다. 그렇지만 지금처럼 하나도 없는 상황, 이건 좀 이상하지 않은가? 우파 시절, 우파 인사로 모든 것을 싹 채우면, 좌파 시절이 오면 다시 좌파 인사로 싹 채우는, 그런 '시소 현상'이 생겨난다. 그게 세상을 움직이는 현실적 이치 아닌가?

소통 실패의 시대라고 하는 지금의 현실은 각 분야에서 다양하게 등장하지만, 공론장의 작동 양상이야말로 진짜 불통의 현장이다. 만약 한국에 중립지적 공론장이 등장한다면, 그것은 우리 모두에게 도움이 되는 방식의 새로운 진화를 만들어낼 것이다. 어쨌든 간만에 정치지형상, 약간은 객관적이고 관조적으로 우리가 선택해야 할 정책 방향이나 함의에 대해서 논의할 수 있는 진공의 공간이 열렸다. 상대방이 어떤 세상을 만들고 싶고, 어떤 경제를 구현하고 싶은지, 그런 중립지적 공간에서 같이 대화할 수 있는 상황, 그걸 진짜로 한 번 해볼 수 있는 순간이 지금부터 몇 달 간일 것이다. 중립지적 공론장, 한국 언론에는 없던 질문인 것 같지만, 그 역할을 해주는 언론이 소통의 공간을 열고, 국민의 신뢰를 얻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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