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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당신도 '하우스푸어'? 그럼 할 일은…"

[부동산 거품, 해법 찾기·④] "선분양제와 후분양제, 답은 명확하다"

- 무너지는 토건 경제

○ 부동산 거품, 해법 찾기
☞<1>"'빚의 저주'…언제까지 모르핀 주사인가"
☞<2>"용산 개발 좌초, LH 부실…나라 거덜내는 '막개발'"
☞<3>"우후죽순 '좀비 건설사', 가계 삼키며 무럭무럭"
○ 송도, 무너진 '두바이' 신화
☞<1>김연아가 30억 투자한 명품거리 '커넬워크'도 '황량한 사막'
☞<2>"연세대 송도 캠퍼스 특혜 논란, '최후에 웃는 자' 누구냐?"

최근 '버블 세븐' 지역을 중심으로 수도권의 부동산 거품이 붕괴하는 가운데 주택 선분양제의 문제점과 폐해가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세계에서 유례가 드문 제도인 선분양제는 건설 및 부동산 경기의 진폭을 키운다. 투기적 분양과 미분양 물량 증가로 인한 건설업계의 극단적인 부침, 분양자의 금융부담 증가 등의 문제를 낳기 때문이다.

선분양제는 부동산 붐이 일 때는 차익을 노린 주택 투기를 조장하는 반면 부동산 거품이 꺼지면 자산 가치 폭락에 의한 가계의 경제적 피해를 키우고 입주 지연과 역전세난을 초래하는 주원인이 되고 있다. 또한 이 같은 문제들이 금융권의 문제로까지 이어져 부동산 거품 붕괴에 따른 경제적 충격을 한층 더 높이고 있다. 이처럼 큰 문제점과 폐해를 낳는 선분양 제도의 도입 배경과 존속과정을 먼저 간략히 살펴보기로 하자.

주택 선분양 제도는 1977년 아파트 분양가규제가 도입됨에 따라 주택건설업체들의 채산성이 악화될 것으로 판단한 정책당국이 주택건설업체들의 금융비용을 줄여준다는 명목으로 도입한 제도다. 주택건설업체들이 제도권 금융에 이자를 물지 않고 주택 수요자로부터 주택건설자금을 무이자로 직접 조달해 주택사업을 진행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이 같은 선분양제는 당시 민간 주택건설업체들이 모두 영세하고 자금력이 부족한 상태에서 급속한 도시화와 수도권 인구유입 가속화에 따른 주택공급 부족을 비교적 단기간에 해소하기 위해 긍정적으로 작용한 측면도 있었다.

하지만 이 같은 선분양제는 시장가격 이하로 책정된 분양가와 실제 시장거래가격 간의 차익을 노리는 투기적 수요를 유발시켰으며 공급자 우위 시장을 고착화 시켰다는 점에서 부정적 측면 또한 적지 않았다. 반복적인 부동산 투기 파동과 경기 침체기에 미분양 증가에 따른 주택 구입자 피해가 두드러지자 그 부정적 측면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커졌다.

이 때문에 이미 1995년 선분양 제도의 문제점을 지적한 감사원의 권고에 따라 정부가 1997년부터 시장원리에 맞게 후분양제를 도입하겠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하지만 주택건설업계는 시장원리에 입각해 후분양제를 시행하려면 먼저 시장원리에 어긋나는 분양가 규제도 함께 자율화하라고 요구했다.

하지만 이후 사태는 엉뚱하게 치달았다. 건설업계의 분양가 자율화 요구는 즉각 받아들이면서도 외환위기 직후 고사 위기에 처한 건설업계를 살린다는 명목으로 선분양제 도입은 뒤로 미뤄졌다. 공급자에게 유리한 선분양제 하에서 분양가마저 자율화돼 오히려 공급자인 건설업체들의 힘만 일방적으로 잔뜩 키워준 결과를 낳은 것이다.

2003년초 노무현 정권 인수위 시절 후분양제 도입 방침이 결정됐으나, 당시 건설교통부 등의 미온적 태도로 후분양제 도입은 지지부진해지고 선분양제가 여전히 대세를 이뤘다. 한국 주택시장은 선분양제 아래 분양가 자율화라는 공급자를 위해서는 최선이지만 소비자를 위해서는 최악의 제도가 자리잡게 된 것이다. 그로 인해 2000년대 부동산 거품이 빠른 속도로 커지게 된 주요 원인 중 하나가 됐다고도 할 수 있다.

구체적으로 선분양제 하에서 주택사업의 진행과정이 어떻게 이뤄지는지를 아래 <도표1>을 참고로 살펴보자.

시행사는 금융기관에서 돈을 빌려 택지를 분양 받거나 매입한 뒤 해당 택지에서 사업할 시공사와 공사도급 계약을 맺고 주택건설사업을 총괄 진행한다. 시행사가 개발업자인 경우에는 개인 전주(錢主)들로부터 돈을 빌려 택지를 매입하기도 한다. 또 주택 건설업체들 가운데는 직접 시행사 역할까지 맡는 경우가 있으나 일반적으로는 시행사와 시공사가 나뉘어져 있는 경우가 보통이다. 재개발 재건축 사업의 경우에는 해당 사업지의 조합이 시행사 역할을 한다고 볼 수 있다.

보통은 시행사보다 규모가 큰 시공사가 신용보증을 서서 금융기관이 시행사에 택지 매입비 등 초기 사업자금을 대주게 하는 한편 시공사 자신도 직접 자금을 대출받아 사업을 진행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시행사와 시공사에 대출해준 금융기관은 분양이 이뤄진 뒤 해당 주택사업의 분양계약자들이 내는 중도금 및 잔금을 대출해주고 수익을 올린다. 분양계약자 입장에서는 분양 계약금을 낸 뒤 자신의 돈이나 금융기관에서 빌린 돈으로 중도금과 잔금을 치르고 아파트가 완공되면 입주하는 것이다. 이상이 선분양제 하의 주택건설 사업의 일반적인 모습이다.

<도표1> 선분양제 하의 주택사업 진행 흐름도


이제 선분양제가 일으키는 문제점을 최근 상황을 중심으로 살펴보자. 선분양제 하에서 주택 수요자들은 완성된 주택을 사는 것이 아니라 일정한 기한까지 입주할 수 있는 분양권을 청약해 사게 된다. 그런데 완공 전에 부동산 경기 침체 등으로 주택업체가 부도를 낼 경우 피해의 상당 부분을 분양자가 떠안아야 한다. 물론 대한주택보증을 통해 분양을 보증하도록 하고 있지만, 입주 지연으로 인한 분양자의 금전적, 정신적 피해 등은 상당 부분 불가피하다. 실제로 주택업체의 부도나 자금난 등으로 인한 주택 보증사고는 최근 급증하고 있다.

또 선분양제 하에서는 주택 소비자들이 갑작스러운 집값 하락으로 피해를 볼 가능성이 후분양제에 비해 높다. 선분양제에서 주택 소비자는 상대적으로 소액인 계약금만 있으면 되므로 예산제약 범위를 벗어나 무리한 주택청약을 하는 경우가 많다. 특히 부동산 투기 붐이 극심할 때는 분양만 받으면 몇 억원을 벌 수 있다는 생각으로 너나 할 것 없이 주택 청약에 나섰다. 소득이 뒷받침되지 않는 분양자들이 수억 원의 빚을 지는 경우도 다반사였다.

만일 극심한 청약열풍이 불었던 판교신도시나 인천 송도/청라, 파주신도시 주택을 지금쯤 후분양제로 공급했다면 2~3년 전과 같은 엄청난 고분양가에 청약할 가계가 얼마나 있었을까? 결국 주택업체들은 고분양가로 상당한 폭리를 취한 뒤 분양자들만 자산가치 급락과 엄청난 부채 부담으로 피해를 보고 있는 것이다.

수도권 곳곳의 신규 아파트 단지에서 대규모 입주 지연이 벌어지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무리하게 아파트를 청약한 계약자는 집값은 떨어지고 은행 빚은 감당하기 어려워 손해를 보더라도 입주 예정 아파트나 기존 주택을 팔아 대출을 상환하려 할 것이다. 그런데 지금처럼 거래가 마비되면 기존 주택이든 신규 분양 아파트든 전세로 돌려 최대한 금전적 손실을 줄이려 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런 처지의 계약자들이 한둘이 아니므로 입주 지연과 역전세난이 함께 빚어지는 것이다. 만약 후분양제였다면 이처럼 극심한 입주지연과 역전세난은 발생하기 어려울 것이다.

▲ 미분양 아파트가 사회적 갈등을 낳는 방식은 다양하다. ⓒ뉴시스
선분양제가 주택 공급자에게 유리하고 주택 소비자에게 불리한 제도라고 해서 주택 공급자인 건설업체들에는 아무런 피해가 없을까? 그렇지 않다. 앞에서도 보았지만 선분양제는 부동산 경기 호황기에 주택건설업체가 무리한 주택사업을 하는 유인으로 작용한다.

주택건설업체들은 '떴다방'이든 뭐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부동산 투기 붐을 일으켜 주택 청약자들을 희생양 삼아 분양에만 성공하면 엄청난 수익을 올릴 수 있기 때문에 3년 후 입주 시점의 주택경기에 대한 판단은 거의 하지 않고 사업을 진행한다. 이런 과욕과 무리한 사업판단으로 택지를 매입해 분양을 시도하다가 부동산 경기가 죽자 미분양 물량이 급증하게 된 것이다. 실제로 미국이나 일본 등 후분양제를 시행하는 대다수 국가에서 주택건설 경기가 위축된다고 해서 한국처럼 막대한 미분양 물량이 쌓이는 경우는 없다.

건설사들의 유동성 위기도 미분양 물량이 급증하면서 돈이 묶인 탓이 크다. 또한 2006년 이후 과도한 PF사업 확대로 건설사뿐만 아니라 제 2금융권을 중심으로 금융권 전반의 부실화 우려를 높이고 있는 것도 바로 급증한 미분양 물량 탓이 크다. 나아가 한국 경제의 화약고라고 할 수 있는 가계의 부동산담보 대출과 PF사업 대출, 건설/부동산업 대출을 증폭시키는데도 일조했다고 할 수 있다.

이야기를 마무리하기로 하자. 한국 부동산시장의 구조적 문제점이 전적으로 선분양제 때문에 비롯됐다고 보기는 어렵다. 하지만 위에서 살펴본 것처럼 선분양제가 부동산시장의 위기를 증폭시키는 요인이 되고 있는 점은 분명하다. 선분양제의 경제적 폐해가 너무나 크다는 것은 이제 이론의 여지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건설업계의 반대와 이를 비호하는 정부와 정치권, 관변학자들의 엉터리 논리에 의해 후분양제 도입은 계속 지연됐다. 분양가 자율화와 함께 오래 전에 바뀌었어야 할 제도가 그대로 온존함으로써 한국경제의 위기를 증폭시키고 있는 것이다.

필요한 제도개혁을 제때 하지 않을 때 경제 전체로 얼마나 막대한 사회적 비용을 치르게 되는지를 지금의 상황이 너무나 잘 보여주고 있다. 그런데도 현 정부는 도리어 2008년 경제위기 당시 '후분양제 보완'이라는 식의 편법으로 민간 주택건설업체가 자율적으로 후분양제와 선분양제 가운데 선택할 수 있도록 해 사실상 후분양제를 무력화시켰다.

이명박 정부는 여전히 건설업계와의 유착에 빠져 DTI 규제 해제 등 임기응변적 처방과 특혜 주기에 골몰하고 있는 것이다. 임기응변적 처방과 건설업계 특혜 주기에 골몰하는 정부가 현 경제 위기를 해결할 것으로 기대하기는 어렵다.

오히려 이런 때일수록 정부 당국은 이런 하우스푸어들을 양산하게 되는 DTI규제 해제 조치에 더 이상 미련을 버려야 한다.

그리고 부동산 버블 위기를 증폭시키고, 가계를 제물로 삼아 건설업체와 금융권을 배불려온 시대착오적 선분양제 등을 정비할 때다. 미국 등 선진국은 금융위기 이후 상업은행과 투자은행 업무를 다시 엄격히 구분하는 등 금융 재규제(Re-regulation) 조치들을 취하고 있다. 위기를 겪고 나서 거기에서 교훈을 얻어 제도 정비를 해야 한다.

그런데 한국 정부는 이미 숱한 위기를 겪고서도 공급자에게 유리한 선분양제에 집착하는 등 제도적 개선은커녕 문제를 일으킨 건설업체와 금융권 등에 대한 선심성 부양책에 몰두하고 있다. 이렇게 해서는 계속 증폭되는 위기 속에서 일반가계들만 고생하고, 건전한 경제구조의 토대가 허물어질 뿐 경제가 제대로 된 발전을 하기 어렵다. 지금이라도 늦었지만, '마지막 기회'라는 심정으로 정부당국이 환골탈태하기를 기대한다. 그렇게 하기 위한 가장 기본과제 가운데 선분양제를 후분양제로 전환하는 문제를 절대 빼놓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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