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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병원 몸싸움 "청소노동자도 좀 쉽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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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병원 몸싸움 "청소노동자도 좀 쉽시다"

[현장] 병원 직원 "휴게공간 폐쇄" 발언, 불안한 청소노동자

4일 오전 11시경, 서울시 종로구에 있는 서울대병원 로비가 소란스러워졌다. 서울대병원 청소 노동자들의 휴게 공간 확보를 위한 기자회견과 사진전, 서명운동을 진행하려던 공공노조 의료연대 및 민들레분회를 병원 직원들이 가로막고 나선 탓이다. 지난달 28일에 이어 이번이 두 번째다.

"기자회견은 밖에 나가서 하라"는 직원들과 "정당한 노동조합 활동을 왜 가로막느냐"는 조합원들의 언쟁은 곧 몸싸움으로 번졌다. 집회 물품을 뺏으려는 직원들과 이를 막는 조합원 사이에서 고성과 욕설이 오갔다. 로비를 지나치다 걸음을 멈추고 이들을 지켜보는 환자와 환자 가족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한 조합원이 마이크를 켜고 발언을 시작하자 직원들이 앰프 스피커를 가져가려 했다. 여성 조합원 3명이 앰프를 감싸고 주저앉아 이를 막았다. 공공노조가 나눠준 유인물을 읽고 환자와 가족 몇 명이 서명을 하자 이번에는 직원들이 그곳으로 모여들었다. 서명대로 쓰인 접이식 탁자를 뺏기지 않으려 승강이를 벌이다 다시 몸싸움으로 번졌고, 결국 경찰까지 출동했다.

▲ 4일 서울 종로 서울대병원 로비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서울대병원 직원들이 장비를 빼앗으려 하자 조합원들이 몸으로 둘러싸 지키고 있다. ⓒ프레시안(김봉규)
▲ 서울대병원 직원들이 서명대를 때앗으려 하자 조합원들이 이를 제지하고 있다.ⓒ프레시안(김봉규)

11시로 예정된 기자회견은 결국 10여 분 가까이 지난 후에야 가까스로 시작됐다. 몇몇 직원이 남아 "환자들을 위한 로비에서 이런 식의 행동은 청소부들을 도와주는 것이 아니다"라며 회견을 막으려 했지만 조합원들은 "지금 환자들을 불편하게 하는 건 우리들이 아니라 우릴 막으려 몰려나온 당신들"이라고 맞받아쳤다. 어느새 이들 주변에는 유인물을 받아든 수십 명의 환자와 가족들이 모여 있었다. 병원 측의 의도는 아니었지만 평소보다 많은 이목을 끈 셈이다.

서울대병원, 휴게공간 요구에 "직원식당 이용하라"

서울대병원 측이 처음부터 이들의 활동을 막아왔던 건 아니다. 청소 노동자들의 권리 찾기 싸움에 나선 '따뜻한 밥 한 끼의 권리 캠페인단'은 이미 병원 로비에서 2차례 사전전과 서명운동을 별 충돌 없이 벌인 바 있다.

하지만 지난달 21일 캠페인단이 서울대병원 청소 노동자들의 열악한 노동 환경을 공개해 큰 반향을 일으키면서 분위기가 바뀌었다. 209명의 청소 노동자가 전부 합쳐 33㎡(10평)도 되지 않는 자투리 공간에서 식사와 휴식 등을 해결한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비난 여론이 일기 시작했다.

캠페인단에 따르면, 서울대병원 측은 다음날 청소 노동자들이 소속된 하청업체를 통해 "앞으로 직원 식당에서 식사를 해결하라"고 통보하면서 캠페인단 활동에서 휴게공간 요구를 빼달라고 요청했다.

하지만 서울대병원 직원식당은 약 323㎡(98평)에 불과한 직원 식당의 250개 좌석을 3500여 명의 의료진과 직원들이 이용하고 있다. 209명에 달하는 청소 노동자들이 저임금 때문에 집에서 싸온 도시락을 주어진 점심시간(12시부터 1시) 안에 식당을 이용해 해결하기엔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이 노조의 주장이다.

이후 27일 정희원 서울대병원장이 청소 노동자들의 요구 사항에 대한 개선책을 마련해보라고 지시했지만 정작 하루 뒤 열린 사진전을 물리력으로 막은 데 이어 이날도 방해에 나섰다. 진정성이 의심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실제로 이날 계단 옆에 있는 좁은 휴게공간에서 쉬고 있던 한 청소 노동자는 촬영을 거부했다. 실태조사결과 발표 당시 이곳 사진이 공개되면서 이후 병원 직원이 찾아와 이곳을 폐쇄하겠다고 했다는 것. '권리 찾기'에 나선 청소 노동자들이 성과는커녕 기껏 확보해놓은 휴게공간마저 없어질 수 있다는 불안에 휩싸인 것이다.

▲ 이날 기자회견에는 이영분 공공노조 의료연대 민들레 분회장이 좁은 휴게공간을 상징하는 퍼포먼스를 보였다. 실제 휴게공간은 상자로 표현한 공간보다 더 좁았다. ⓒ프레시안(김봉규)

서울대병원, 노동부-검찰 특별감사서도 휴게공간 지적받아

서울대병원 홍보팀 관계자는 "휴게공간을 개선한다는 건 노조의 요구를 받아들여서가 아니라 인권 차원에서 해결책을 모색한다는 것"이라며 "하청업체 노조가 요구해서 병원이 받아드리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사진전은 처음부터 로비에서 하지 말라고 말려왔지만 노조가 계속 강행해왔던 것"이라며 "도중에 입장이 바뀐 것이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문제는 다시 원점으로 돌아간다. 병원이 직접 고용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청소 노동자와의 대화를 거부하면 노조로서는 방법이 없다. 지난달 29일 고려대병원 청소노동자들이 휴게공간을 확보하고 아침 식사를 제공받는다는 노사 합의를 하청업체와 맺을 수 있었던 이유는 고려대병원을 상대로 직접 목소리를 냈기 때문이다. 원청인 고려대병원이 암묵적으로 이를 수용한다는 뜻을 보이지 않으면 단순한 인력 파견만을 담당하는 파견업체가 마음대로 노사 합의를 맺을 수 없는 노릇이다.

서울대병원은 3일에도 노동부·검찰이 실시한 산업안전보건법상 의무사항 이행여부 특별조사에서도 휴게공간 부족 등을 지적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통보대상은 하청업체이지만 사실상 서울대병원이 직접 나서지 않으면 해결할 수 없는 문제다. 공공노조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단체교섭에서 노동조건 개선을 요구하면 하청업체는 서울대병원과의 계약관계 때문에 못한다고 한다"며 "청소노동자들의 노동조건을 실질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곳은 서울대 병원"이라고 주장했다.

이날 노조와 병원 측의 마찰과 기자회견을 지켜본 이들의 반응은 제각각이었다. 한 50대 여성은 "피켓 들고 시위한다고 뭐가 바뀌나"며 못마땅한 표정을 지은 반면, 옆에서는 "노동자들은 일한 만큼 정당한 대가를 받아야 한다"며 서명운동에 참여한 이들도 있었다. 한 60대 노인은 "병원 쪽이 너무 하는 것 같다"라고 말했다가 "이들은 하청업체에 소속된 노동자들"이라는 설명을 듣자 "복잡해서 잘 모르겠다"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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