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 공장 등에서 사내하청 소속으로 일한지 2년이 지난 노동자는 정규직으로 봐야 한다는 대법원의 판결이 나와 주목된다. 사내하청은 도급을 받아 독립적으로 움직인다는 사측의 입장을 부정한 것으로 현재 제조업에 광범위하게 퍼져있는 비정규직 차별 문제를 해소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인지 기대가 모이고 있다.
금속노조에 따르면, 대법원3부는 지난 22일 노동조합 활동을 이유로 해고된 현대자동차 울산비정규지회 조합원인 최병승 씨가 제기한 부당해고 및 부당노동행위 구제재심에 대해 지난 2008년 내려진 서울고등법원 판결을 파기하고 돌려보내도록 결정했다.
최 씨는 2002년 3월 현대차 울산공장의 사내하청 노동자로 입사해 일하다 2005년 노동조합 활동을 이유로 해고됐다. 2007년부터 개정 시행된 새로운 파견법은 사용자가 파견 노동자를 2년 이상 근무시키려면 직접 고용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개정 이전의 파견법에서 파견 노동자가 2년 이상 근무할 경우 사용자가 직접 고용한 것으로 간주한다고 못 박았던 것에서 완화된 방향이었다.
최 씨의 경우 고용 시점을 고려할 때 개정 이전의 파견법을 적용해야 했다. 하지만 최 씨가 주장한 현대차의 부당해고 및 부당노동행위를 입증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 난관이 있었다. 먼저 현대차는 최 씨가 도급관계에 있는 하청업체 소속 노동자이기 때문에 근로관계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원청업체로부터 일부 공정을 도급받아 하청업체의 관리 하에 제품을 생산하기 때문에 직접적인 노무 관리를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하지만 대법원은 현대차 측의 이러한 주장을 기각했다. 자동차 공장과 같이 컨베이어 벨트를 이용한 자동흐름 방식의 사업장에서 하청업체 소속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정규직 노동자와 섞여서 같은 업무를 하고 있고, 현대차 측이 작업지시서를 배포해 업무를 수행하게 한 점 등을 볼 때 "직접 노무 지휘를 받는 근로자 파견 관계에 있다"고 해석한 것이다.
문제는 제조업에서 파견은 불법이기 때문에 대법원의 판단에 따를 경우 최 씨는 불법 파견자가 된다는 점이다. 하급심에서는 파견법이 '적법한 근로자 파견'에만 적용되기 때문에 불법 파견은 옛 파견법이 적용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대법원은 "(옛 파견법의) 직접고용간주 규정은 근로자 파견이 2년을 초과해 계속되는 시점에서 사업주와 파견 근로자 사이에 직접근로자관계가 성립한다는 의미를 가진다"며 "위 규정이 이른바 '적법한 근로자 파견'의 경우에만 적용된다고 축소 해석하는 것은 그 문언이나 입법 취지에 비추어 봤을 때 아무런 근거가 없다"고 판단했다. 파견의 불법 여부에 상관없이 2년 이상 근무할 경우 직접 고용으로 간주한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대법원의 사용자성 인정, 다른 제조업 사업장까지 확대 가능성
최 씨에 대한 대법원의 판결은 그 파장이 만만치 않을 전망이다. 그 동안 현대차를 비롯한 제조사들은 도급계약을 앞세워 비정규직 노동자에 대한 사용자성이 없다고 주장해왔다. 각 사업장의 비정규직 노동조합이 요구하는 단체협상에도 아무런 응답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 판결로 이러한 제조사들의 논리는 설득력을 잃을 것으로 보인다. 또한 최 씨의 경우처럼 사내하청 노동자로 2년 이상 일하다 해고된 노동자들의 구제 신청 역시 이어질 전망이다. 직접 고용 간주 시점부터 정규직 노동자와의 동일한 대우를 해야 한다는 주장도 일 수 있다.
노동부 기준 2008년 현재 현대차의 사내하청 노동자만 1만 명이 넘는 것에 비추어 볼 때 이러한 비정규직 노동자의 움직임이 가시화되면 사측에 적지 않은 압박이 될 것으로 보인다. 비단 현대차뿐 아니라 컨베이어 벨트를 이용한 자동흐름 방식을 사용하는 완성차 업체와 기타 제조업 사업장의 비정규직 문제로 확산될 가능성도 있다.
전국금속노동조합는 23일 서울 중구 금속노조 회의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대법원 판결에 따라 현대자동차를 비롯해 사내 하청 노동자를 고용하는 사용자에게 특별교섭을 요구할 것"이라며 "교섭을 거부하면 해고자·퇴직자를 포함한 집단 소송을 진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금속노조 산하 사업장을 포함해 삼성·LG 등 대기업 사업장의 사내하청 노동자들까지 포섭할 뜻도 밝혔다.
금속노조는 "이명박 정부는 사내하청 노동자를 정규직으로 전환시켜 양질의 일자리를 창출하도록 감독해야 한다"며 "비정규직을 대량으로 양산하려는 '파견업종 확대' 계획 역시 철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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