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년. 그 사이 현대차 울산공장에만 1만 명이 넘던 사내하청 노동자 수가 8000명 밑으로 떨어졌다. 단순비교만으로도 2000명이 쫓겨났다는 얘기인데, 그 사이 들고 나는 비정규직의 규모를 감안하면 수천 명이 잘려나갔다. 그 못지않게 중요한 이들이 있다. 바로 2004년부터 현대차의 불법파견을 시정하라며 싸웠던 비정규직노조 조합원들이다.
2004~2006년 사이에 현대차 울산·아산·전주공장 비정규직노조 조합원들이 현대차의 '불법'을 시정하고 정규직화를 실시하라며 투쟁한 대가로 150여 명에 달하는 조합원들이 해고되었고 20명 가까이 구속되었다. 2005년 9월 4일 현대자동차 울산 2공장에서 비정규직노조 조합원으로 활동하다가 업체 관리자들의 횡포와 '왕따'에 시달리던 류기혁 조합원이 비정규직노조 사무실 옥상에서 목을 매 자결한 일도 있었다.
6년. 현대자동차의 전세계 자동차 판매량은 2004년 212만 대에서 올해 340만 대(목표치)로 무려 60퍼센트 이상 상승했다. 현대자동차 당기순이익은 2004년 1조7000억 원에서 지난해 2조9000억 원으로 70퍼센트 이상 상승했고, 현대자동차 현금성 자산은 2004년 6조3000억 원에서 지난해 31조8000억 원으로 5배 이상 껑충 뛰었다. 그동안 현대차그룹 정몽구 회장은 주식배당금으로만 2003년 227억, 2004년 291억, 2005년 329억, 2006년 276억, 2007년 308억, 2008년 288억, 2009년 328억 원으로 도합 2047억 원을 벌어들였다.
▲ 현대자동차 울산2공장의 작업장 ⓒ연합뉴스 |
'현대차 불법파견' vs '사내하청 직접고용'
이번 대법원 판결에 대해 수많은 언론들이 일제히 기사를 내보냈다. 주요 방송사와 일간지들이 기사의 제목으로 선택한 목록을 한번 살펴보자.
대법 "하청 파견도 정규직 간주"‥파장 예상 <MBC>
"사내하청 2년 정규직 간주" 완성차 업계 비상 <SBS>
자동차업계, 불법파견 관행 제동 <내일신문>
불법파견' 비정규직 노동자 '법적 울타리' 길 열렸다 <경향신문>
"완성차 컨베이어라인 사내하청은 불법파견" <한겨레>
사내하청 통한 파견은 이제 그만 <국민일보>
"사내하청근로자 위해 특별교섭 요구하겠다" <조선일보>
놀랍게도 '현대차'라는 단어가 기사 제목에 나온 경우가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나마 <한겨레>와 <경향신문>, <내일신문>은 '불법파견'이라는 용어를 사용했지만, 다른 언론사는 '불법파견'이라는 단어조차 사용하지 않고 있다. 그 이유가 무엇일지는 독자들의 상상과 판단에 맡기도록 하겠다.
'현대차 불법파견'이라는 단어 대신 '사내하청 직접고용'이라는 단어를 사용한 이유가 무엇인지는 덮어두더라도, 이번 판결의 영향이 현대차라는 한 개의 사업장을 넘어 자동차산업을 비롯한 제조업 전반에 미친다는 점은 분명하다.
이를테면 이번 울산공장 관련한 대법원 판결이 어떻게 나올 것인지에 따라 대기하고 있는 각종 소송에 대한 판결도 나오게 될 것이다. 현대차 아산공장 비정규직 노동자들 일부가 제기한 '종업원지위확인소송'의 경우에도, 지방법원에서는 이번 대법원 판결과 동일한 취지의 판결이 나왔으나 현대차 사측이 항소하여 고등법원 계류 중인데, 아마도 이번 대법원 판결의 영향을 직접적으로 받을 것임에 틀림없다. 마찬가지로 GM대우차 창원공장 불법파견에 대해 검찰이 GM대우를 벌금 700만 원으로 기소한 사건 역시 현재 고등법원에 계류 중인데 이에 대한 판결도 동일한 영향을 받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문제는 다시 한번 현대차에서 불법파견 문제가 어떻게 풀리는가에 달려 있다. 판결이야 동일하게 나올 것임에 틀림없지만, 실제 현실에서 어떻게 풀리는가에 따라 다른 업체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지난 6년간 현대차가 '불법파견'으로 1만여 명에 달하는 값싼 비정규직을 사용하고, 필요없으면 쓰다 버리는 방식을 통해 엄청난 당기순이익, 자동차 판매량, 치솟은 주식가격 등으로 돈방석에 앉았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러는 동안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엄청난 고통을 받아왔고, 특히 노조를 결성하여 현대차의 불법에 맞서 싸워온 노동자가 치른 대가는 측정하기 불가능한 수준이다.
이제 현대자동차가 대가를 치러야 할 때다
째깍째깍 시계가 돌아가는 지금 이 순간에도 현대차 울산·아산·전주공장에서는 '불법파견'이 행해지고 있다. 그것도 주야맞교대로 24시간 내내, 심지어 특근이 시행되는 주말과 휴일에도 말이다. 현대자동차는 지금 당장 불법파견의 시계를 멈춰야 한다. 그렇게 하기 위한 가장 손쉬운 방법은 사내하청 노동자 전원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것이다. 그래야만 즉각 불법파견을 중단시킬 수 있다.
2년 이상 일한 노동자들만의 일이라고? 그렇지 않다. 대법원 판결에 따르자면 근속 2년 미만이라 할지라도 여전히 제조업 직접생산공정에는 파견업무가 금지되어 있기 때문에 '불법파견' 문제는 피해갈 수가 없다. 직접고용 여부와 무관하게 2년 이상이건 2년 이하이건 모두 '불법파견'임이 분명하다는 것이다.
컨베이어벨트 작업에서 공정 몇 개만 '펑크'가 나도 라인이 서게 되기 때문에 2년 이하 노동자들 수천 명을 일거에 해고할 수도 없다. 그렇다면 '불법파견'을 시정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2년 이상이건 2년 이하이건 모든 사내하청 노동자들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길 뿐이다.
아울러 불법파견에 맞서 정당한 투쟁을 전개하다 피해를 입은 모든 노동자들에게 보상과 원상회복이 이뤄져야 한다. '불법을 시정하라'고 요구하며 현대차라는 대기업 권력에 맞서 정의로운 싸움을 전개한 이들이 없었다면 오늘의 대법원 판결도 나오지 못했을 것이다.
해고된 노동자들을 전원 정규직으로 복직시키고 해고기간 임금을 포함하여 피해에 대한 보상이 이뤄져야 한다. 각종 고소고발과 가처분 및 손해배상소송 등 민형사상 조치도 취하되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이 싸움의 과정에서 죽어간 故 류기혁 열사에 대한 명예회복과 보상이 마땅히 이뤄져야 할 것이다.
또한 노동부가 2004년 12월 현대자동차 울산‧아산‧전주공장 사내하청 1만 명 전원 불법파견을 판정한 뒤 현대차를 파견법 위반 혐의로 고발한 사건에 대해 검찰 공안부는 무려 2년이 지난 2007년 1월 3일에야, 그것도 현대차에 면죄부를 주는 '혐의없음' 결정을 내린 바 있다. 그러나 대법원이 이제 현대차 '불법파견'을 최종 확인한 이상 검찰은 지금 당장 정몽구 회장을 비롯한 현대차 임원에 대한 수사에 착수해야 한다. 지금까지 불법을 시정하라며 싸운 비정규직 노동자들만 20명 가까이 구속되었다면, 이제 수년간 불법파견이라는 범죄행위를 저질러온 현대차 사측을 구속해야 할 때이다.
불법파견의 또다른 공범인 사내하청업체들 역시 이제 노동력을 사고팔아 돈 벌어먹는 짓을 중단해야 한다. 대법원은 이번 판결문에서 "사내협력업체의 고유 기술이나 자본 등이 업무에 투입된 바는 없었다"고 적시한 바 있다. 이들이 오로지 중간착취로만 돈을 벌었다는 사실을 인정한 것이다. 지난 6년간은 현대차의 불법을 시정하라며 싸우다 해고된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출입금지가처분'을 당했다면, 이제 중간착취 '불법파견'으로 막대한 이익을 챙겨온 하청업체 '바지사장'들에게 출입금지를 명해야 한다.
정부 또한 불법을 방치한 책임을 져야 한다
정부 또한 현대차의 불법파견 범죄행위가 대법원에서 분명히 확인된 이상, 불법을 바로잡기 위해 필요한 응분의 조치를 취해야 한다. 이미 파견법은 제19조에서 불법파견으로 드러난 사업을 폐쇄하기 위해 강력한 조치를 취할 수 있는 권한을 고용노동부 장관에게 부여하고 있다. 자, 입만 열면 '법과 원칙'을 강조해온 이명박 정부여! 수년간 불법을 자행해온 현대차 자본에게 '법과 원칙'의 잣대를 적용하라!
파견근로자보호등에관한법률 제19조(폐쇄조치등) ① 고용노동부장관은 허가를 받지 아니하고 근로자파견사업을 하거나 허가의 취소 또는 영업의 정지처분을 받은 후 계속하여 사업을 하는 자에 대하여는 관계공무원으로 하여금 당해 사업을 폐쇄하기 위하여 다음 각호의 조치를 하게 할 수 있다. 1. 당해 사무소 또는 사무실의 간판 기타 영업표지물의 제거·삭제 2. 당해 사업이 위법한 것임을 알리는 게시물의 부착 3. 당해 사업의 운영을 위하여 필수불가결한 기구 또는 시설물을 사용할 수 없게 하는 봉인 |
2005년부터 근로감독관 집무규정이 개정되어 불법파견을 비롯한 파견법 위반 사건에 대해 근로감독관들에게도 사법경찰관의 권한이 주어진 바 있다. 따라서 현대차 불법파견에 대해서는 경찰과 고용노동부 모두가 검찰의 지휘를 받는 사법경찰의 역할을 할 수 있다.
타임오프제의 경우 법이 시행되기도 훨씬 전에 고용노동부는 매뉴얼을 작성하고 전국의 주요 사업장에 근로감독관들이 거의 상주하다시피 하며 노조활동 탄압에 나선 바 있다. 그러한 순발력과 기민성을 보였던 고용노동부가, 대법원이 불법으로 판정한 현대차 불법파견 문제에 대해 어떤 '사법경찰권'을 행사할 것인지 귀추가 주목된다. 게다가 지금 이 순간에도 생산현장에는 불법파견이 지속되고 있는 상황이므로, 매일매일 현대차 현장에서는 '현행범'들이 활동하고 있으니 말이다.
아울러 일간지와 방송사들이 고맙게도(?) 이번 대법원 판결 관련 기사에 '현대차 불법파견'이라는 단어를 쓰기보다 '사내하청 2년 넘으면 직접 고용'이라고 써준 것처럼, 이번 판결은 단순히 현대차만이 아니라 전국의 제조업 사내하청 전반에 적용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타임오프 당시에 전국 주요사업장에 근로감독관을 파견했듯이, 전국의 제조업 대공장에도 불법파견 혐의를 수사하기 위해 근로감독관을 파견해야 하는 것 아닌가!
마지막으로 정부는 최근 파견허용업종을 확대하려는 등 파견법을 또다시 개악하려는 움직임을 중단해야 한다. 불법파견 하나 제대로 때려잡지 못하면서 파견법을 손질하여 기업주들에게 더 많은 자유를 준다는 것이 가당키나 한 일인가! 이명박 정부는 '수요가 많은 업종부터 파견 허용을 늘리겠다'고 밝힌 바 있는데, 이는 "'히로뽕'을 합법화하면 마약사범이 줄어들 것"이라는 논리에 다름 아니다.
스스로의 권리를 찾기 위해 용기를 내자
대법원 판결이 모든 것을 저절로 해결해주는 것은 아니다. 벌써부터 자본 측은 현장에 "고등법원으로 파기환송된 것이니 확정판결이 아니다"라는 소문을 내며 불법파견 해결책을 제시하지 않고 질질 끌고 있다. 그러나 대법원 판결의 요지 중 하나는, 2년이 넘을 경우 '현대차가 직접고용한 것으로 본다'는 것이다. 즉, 현대차가 인정하건 그렇지 않건, 본인이 원하건 그렇지 않건, 법적으로는 이미 현대차가 고용한 노동자로 간주된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사내하청 노동자들은 이미 현대차에 직접고용된 것으로서, 정당하게 현대차 노동자로서의 권리를 행사할 수 있다. 또다시 현대차는 하청업체들을 동원하여 올해 정규직 임금인상분보다 미달한 임금인상, 정규직 성과급보다 미달한 성과급을 지급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대법원 판결은 사내하청이 이미 현대차에 직접고용된 것으로 본다는 것으로, 동일한 임금인상률과 성과급 지급을 요구하는 것은 지극히 정당하다.
또한 컨베이어 벨트 속도를 결정하는 노사협상, 인원을 얼마 추가하고 줄일 것인지를 결정하는 현장 교섭에서도 정규직 노동자들과 동등한 권리를 갖고 참여할 것을 주장할 수 있다. 1분에 자동차 한 대씩 만들어지는 컨베이어 벨트 속도에서, 정규직이 1분에 작업하는 분량이 48초라면 비정규직도 48초까지만 일하도록 노동강도가 완화되어야 한다고 말해야 한다. 심지어 <조선일보>조차 "사내하청 비정규직 차별문제는 반드시 풀어야 할 숙제"라는 사설을 내보내고 있지 않은가!
현대차 울산 2공장에서는 구형 투싼의 단종으로 인해 비정규직 노동자 66명이 해고 앞에 직면해 있다. 그러나 66명 상당수가 근속 6~7년 이상의 노동자들로서 대법원 판결에 의하면 이미 현대차가 직접고용한 것으로 간주되는 노동자들이다. 그렇다면 입사와 동시에 조합원이 되도록 하고 있는 현대차 단체협약을 적용해야 한다. 계약해지는 부당하며 현대자동차가 직접 절차를 밟지 않은 정리해고 역시 부당해고에 해당한다.
그동안 차별받아온 고통, 그리고 신기술이나 신차 도입이 될 때마다 공정이 줄어들어 고용불안에 떨어왔던 설움을 받아온 불법파견 사내하청 노동자들이여, 우리가 자본의 불법행위, 불법파견에 협조해줄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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