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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가 표절의 왕국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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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여기가 표절의 왕국이냐?

[나도원의 '대중음악을 보다'] '이효리 사건'은 가요계의 퇴행성관절염

가장 손쉽게 촌스럽고 진부해지는 방법은? 최신 트렌드 잡화점 꾸리기. [H-Logic]은 트렌드의 선도가 아니라 추종과 수집의 결과이다.

이효리의 [H-Logic]이 출시된 직후이자 표절논란이 일기 전인 4월 16일에 어딘가에 쓴 평을 그대로 옮긴 것이다. 아이돌 그룹 전성시대에 여성 솔로가수가 취할 수 있는 콘셉트는 제한적이다. 이효리는 선택가능한 길을 택했으며 만듦새와 구성에 공을 들였다. 그러나 표절이나 도용 여부와 무관하게 음악적으로 좋은 평을 할 수 없었던 [H-Logic]이 무단도용으로 귀결되었을 때 조금도 놀랍지 않았다. 애초부터 트렌드 추종과 수집은 그런 위험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표절과 도용을 달리 봐야 한다는 견해가 있지만, 음악을 차별할 생각이 없다. 얼짱각도의 포토샵 사진과 도용한 타인의 사진은 가짜라는 점에선 매한가지다.

한국 톱 가수의 앨범 절반이 엉터리란 점은 세상 어디에 내놓아도 부끄러운 일이다. 연례행사를 넘어 분기별 이슈처럼 되어버린 표절과 도용, 샘플링을 빙자한 번안곡들에 대해 수년 동안 같은 이야기를 반복하기엔 이미 충분히 지쳐 있다. 표절에 관한 기사와 칼럼이 표절이 아닌가 싶을 정도가 되어버린 지 오래다. 물론 '이효리-바누스 사건'이 한 작곡가가 벌인 희대의 사기극이란 건 사실이다. 하지만 하나의 사실이 진실을 모두 말해주진 않는다.

성장통이 퇴행성관절염으로

표절의 역사는 유구하다. 확정사례 말고도 표절로 드러난 것이나 다름없는 국민가요가 적지 않다. 방송사의 심의 관련 게시판과 자료실을 뒤적이기만 해도 흘러간 인기가요들 중 수백곡이 표절곡으로 분류되어 방송불가 상태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표절인지 아닌지는 판정을 받아봐야겠지만 신뢰할 수 있는지 없는지는 이미 확인된 셈이다. 의혹곡들이 너무 많은 덕분에 일일이 적지 않아도 되니 글 쓰는 이로서 고맙긴 하다. 가요만의 문제가 아니다. 10년 후 한국사회의 참고서나 마찬가지였던 일본의 방송을 베꼈던 TV 연예프로그램부터 만화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현상이었다. 누군가는 표절행위에서 은근히 창조적인 영감의 흔적과 같은 세기의 발견을 기대할 수도 있다. 그러나 아직까지 성공한 사람은 없다.

중국과 동남아의 도용을 한심하다는 투로 비웃게 된 한류의 중심에서, 가요계 최상위권에서 시비가 끊이지 않는다. 거듭된 경험과 시행착오의 축적에도 후진성을 벗지 못한다. 단순히 일시적인 혼란의 결과라면 다행이다. 영구적인 혼란은 없다. 그러나 구조적인 문제, 즉 왜곡된 시장과 관련 있다면 심각해진다. 머리 작은 채로 커진 몸집과 껍질이 두꺼워진 만큼 작아진 알맹이를 해결할 생각이 없다면 아예 다시 시작하는 편이 낫다. '표절의 추억'은 현재형이고, 동서와 고금을 막론하고 대중문화가 겪는 성장통은 퇴행성관절염이 되었으며, 올해에도 오래 회자될만한 이벤트가 추가되었다. "여기가 표절의 왕국이냐?"

표절논란이 잦아진 사정이 있긴 하다. 작곡방식이 변했다. 기술의 발달로 컴퓨터 작업과 샘플링이 일반화되고, 음악의 추세가 멜로디보다 편곡과 스타일, 분위기 중심으로 변화하면서 오해를 사거나, 숨어들 여지가 많아졌다. 여기에 인터넷과 기술에 능란해진 대중이 개입한다. 2010년 월드컵에서 유난히 자주 보인 오심이 심판들의 자질이 떨어져서라기보다는 방송중계기술의 발달과 관련이 있는 것과 비슷하다. 이것을 음악매개의 왜곡으로 생산자와 소비자 사이에 놓인 불신의 장벽을 부정적인 방향으로 더욱 부추긴다.

그럼에도 표절논란이 논란에 그치는 이유들이 있다. 법정공방에 투입되는 비용과 시간에 비해 피해자에게 돌아가는 물적·심적 배상이 작다는 절차의 문제가 있다. 그래서 막후에서 공동작곡과 같은 사후계약과 합의 등의 편법으로 조용히 해결하고 넘어가는 경우가 많다. 논란을 잠재우는 다른 방법도 있다. 소니ATV퍼블리싱이 이례적으로 우려를 표명할 정도로 사안이 컸던 YG엔터테인먼트와 G-드래곤은 원작자로 지목받은 음악인을 새 음악작업에 참여시키는, 일종의 '인증샷'을 선보이기도 했다.

▲이효리의 '논리'는 결국 표절로 귀결됐다. 한국 대중음악계 현실에선 놀라운 일도 아니다. ⓒ뉴시스

기획사는 설계사, 가수는 부속품, 작곡가는 고시생

보다 근본적인 원인은 표절과 모방을 유도하고, 동시에 무마하는 구조에 있다. 대형 연예기획사의 등장과 중소 기획사의 난립으로 경쟁이 심화되면서 양질의 음악이 추출되기도 했지만, 동시에 안전추구 경향이 강화되었다. 아예 익숙함을 이용하고자 같은 멜로디에 가사만 바꿔 부르기까지 하는 판국이다. 1980년대에 대학가에서 흥했던 '노가바(노래가사바꾸기)'와 다를 바 없는 후속편 노래들을 양산하며 세상의 소금이 돼라는 예수의 가르침을 절약으로 실천한다. 이러한 안전추구와 차별화를 동시에 해결하는 방법이 바로 트렌드 추종이다.

히트곡 메이커에게 곡을 받아 댄스 팝부터 모던 록을 비롯하여 발라드에 이르기까지 유행의 진열대 같은 음반을 제작하는 것은 기획사 시스템의 전형이다. 신형 휴대폰 모델을 평가하는 기준에서라면 후한 점수를 받을 자격이 충분하지만, 가수(주인공)는 트렌디 사운드 속으로 녹아 사라져버린다. 더구나 안전을 위한 트렌드 추종은 '동시에 두는 장기'처럼 위험도 역시 높다. 그래서 "비슷하게 날 따라해 허락도 없이/ 난 달라 항상 앞서나가니까/ 아무리 날 따라해 봐도 나는 매년 나는 매번 앞서가는 걸"이란 이효리의 당찬 일성이 허망해졌다.

이러한 관성과 관행의 허브가 한국형 연예기획사 시스템이다. 페이퍼컴퍼니가 양산되어 무수히 생겨나고 사라지는 와중에 비대화된 일부 기획사들은 방송과 시상식을 보이콧할 정도로 전과 다른 위상을 구축했다. 스타의 파워가 아니라 회사의 영향력이 커진 결과라는 점에서 선진국형 스타시스템과 분명히 다르다. 가수에 맞는 음악을 찾아주는 대신 콘셉트를 정해놓고 가수를 맞춰놓으며 작곡가에게 '누구와 비슷한 분위기'를 요구하는 핸들링을 일반화시켰다. 음악의 주문생산식 공정화가 상식처럼 된 것이다.

반면 한 때 존경받고 스타를 키워내기도 했던 작곡가는 납품업자로 전락했다. 유명 가수들이 새 앨범을 낼 때마다 수백 개의 후보 곡들 중에서 엄선했다는 너스레가 유행하는데, 결코 자랑거리가 아니며 상식적이지도 않다. 몇몇을 제외하면 무수한 곡들 중에서 간택되어야 노동의 대가를 받을 수 있다. 작곡가들은 꿈을 먹고 사는 어린이들이라도 된단 말인가? 고시생이나 다름없는 그들은 부정행위, 다른 말로 표절과 모방의 유혹을 받을 수밖에 없다. 그래놓고 소속가수가 해외로 진출할 때엔 믿을만한 외국 작곡가에게 곡을 받으니 한국의 가요음악인들은 소모품 신세이다. 사정이 이러하니 표절논란이 없다면 그것이 오히려 이상하다.

누가 '꼬리 자르기'를 용인해주는가

그런데 매번 표절시비는 '작곡가 나쁜 놈'선에서 끝나버린다. 각각의 사례가 가진 특수성을 들어 다른 주역들은 옹호까지 받는다. 이례적으로 법정에서 표절확정판결을 받은 노래를 부른 MC몽은 승승장구했고, 표절논란에 연거푸 휘말렸던 이승기는 국민남동생으로 변함없는 사랑을 받고, 표절로 송사 중인 노래로 스타가 된 '씨앤블루'의 활동엔 거침이 없으며, 공개사과 직후 예능프로에 출연한 이효리는 특유의 털털하고 솔직한 말 한 마디로 연예뉴스 코너를 도배한다. 논란 차원까지 모두 언급하면 한국 톱스타 명단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부상자명단으로 빠지지 않는 그들의 활동전선, 이상 없다.

가수와 음악이 분리되어 소비되는 시대에 노래는 주연배우의 이름이 앞에 들어가는 영화나 마찬가지다. 진짜 좋아했던 직업을 가진 이들은 현장을 떠나려 하지 않지만, 스타가 되기 위한 사다리 정도로 생각하고 음악동네를 경유하는 뜨내기들이 많다. 아마 서커스가 여전히 인기였다면 연습생들은 저글링까지 배웠을 것이다. 가수와 노래만이 아니라 기획사와 가수도 작곡가와 분리되어 피해자라는 동정론과 옹호론의 호위를 받기에 이르렀다. 어떤 이들은 스타가 예능에서 자리를 잡고 작곡은 남에게 맡기면 책임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는 안정망까지 제공한다. 그런데 반대의 경우에 그들은 모든 영광을 누구에게 돌렸을까?

책임분산이 아니라 무한연대책임이 강조되어야 한다. 예전엔 최소한의 면목과 도리가 있었다. 은퇴하거나 장기간 활동을 중단했던 그들 역시 지금 논리에 의하면 피해자였다. 그러나 산업의 (선진화가 아닌) 고도화로 인하여 책임이 분산되고 예능시대가 도래하자 도마뱀 꼬리 자르기가 비일비재해졌다. 물론 외국이라고 표절논란에서 완전히 자유롭진 않으나 결말은 상이하다. 비틀스(The Beatles)의 멤버였던 조지 해리슨이 '전혀 의도하지' 않은 표절 때문에 거액을 배상하고, 오아시스(Oasis)가 코카콜라 광고음악과 '일부' 일치하는 곡을 썼다가 천문학적인 배상금을 지불한 일은 유명하다. 강한 징벌과 높은 도덕성을 요구한다.

저작권 관련 사법절차가 신속하게 진행되어야 하며, 수익 전액귀속처럼 강력한 제재의 선례가 만들어져야 한다. 또한 감시와 조정기구가 활성화되어야 한다. 표절위원회가 얼마 전에 출범했는데, 10인의 위원들 중 단 2명의 음악교수가 참여하고 있으며 연구·제안이 주기능인 이 조직이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지는 의문이다. 그렇다고 심의강화 운운은 양치질을 너무 열심히 하다가 방금 먹은 걸 토하는 격이니 사양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수용자와 팬이 표절에 대해서만큼은 가혹해져야 한다. 표절은 얼굴 모르는 누군가를 죽이는 범죄다.

표절은 사라지지 않는다. 다만 줄어들 뿐

중학교 실기시험 때 제출한 그림 때문에 미술선생님에게 의심받은 적이 있다. 물감흘림 기법의 특이한 그림이었는데, 다른 반 학생도 비슷한 발상을 했던 모양이다. 20년하고도 여러 해가 지났음에도 기억나는 걸 보니 꽤나 억울했던 모양이다. 그러나 중학교 미술시험이 아닌 프로의 세계는 다르다. 관행에 가까웠다는 셰익스피어 시대는 물론이고 대중음악이 고도화되기 이전인 20세기 중반까지 표절에 가까운 응용이 드물지 않았으나 지금은 다르다. 창작의 세계에서 표절이 완전히 사라지기는 힘들지만, 줄어들게 할 수는 있다. 표절과 도용은 듣는 이들을 전적으로 무시할 때 가능하며, 기형적인 시장에서 만연한다.

증상치료에 그치지 않고 원인치료가 되기 위한 전제조건과 최종의 지향은 같다. 종 다양성의 회복이다. 자기세계를 가진 음악인, 그리고 좁지 않은 취향·안목에 의한 판별력을 지녀서 이해와 포용까지 가능한 팬덤이 서로를 두려워하고 신뢰하는 관계가 확산될 때에 불신의 장벽이 제거된다. 마니아를 대상으로, 음악성을 목적으로 하는 장르에서 상대적으로 표절이 적은 이유가 이것이다. 시계의 분침을 돌려놓는다고 시간이 되돌려지진 않는다. 하지만 너무 성급하게 돌아버린 분침을 돌려놓으면 시간을 번 듯한 기분이 든다. 그렇게라도 하듯이 빨리 내달리기와 슬쩍 눈감아주기가 아니라 지나온 길과 주변을 찬찬히 돌아볼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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