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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 보수화? "진보"가 보수화!

[밥&돈·25] 보수는 보수적이지 않다 <下>

☞보수는 보수적이지 않다 <上> : '혁신가'로서의 이명박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가 구성하는 국정 인수위원회의 면모가 드러나고 있다. 또, 새 정부의 조직개편과 통폐합에 대한 소문들도 심심치 않게 들려오고 있다. 물론 시간을 두고 좀 더 봐야겠지만, 현재까지의 소식을 종합하면 '이것이 정권교체 시에 있는 단순한 정부 개편 논의와는 다른 성격의 것이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든다.

개략적인 정부 개편 방향을 보면, 정부와 기업(즉 '민간')이 '이니셔티브'를 공유하면서 나라 전체의 정치경제 체제를 포괄적으로 개조하는 방향이 될 것 같다.

기존에는 관료 조직의 통일성과 합리성의 배경이 되는, 넓은 의미에서의 전통적인 국가 이성(raison d'etat)의 논리가 정부 조직개편 논의의 큰 틀을 규정해 왔다고 한다면, 현재 인수위가 구상하고 있는 것으로 이야기되는 것들은 기업의 구조조정, 즉 예전에 기업집단의 기획조정실에서 논의되는 식의 기업 구조재편을 떠올리게 한다. 다시 말해, "CEO 대통령"인 이명박 당선자가 여러 사업을 계획하고 펼쳐나가는 데 기능적으로 잘 결합될 수 있는 것을 목표로 삼는 정부 개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우리나라처럼 거의 성숙한(mature) 경제로서는 대단히 부담스러울 6% 혹은 7%의 경제성장률이 가능하다고 주장하는 배경에는 바로 이렇게 포괄적으로 정치경제 체제를 개조하려는 계획이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렇게 2~3줄의 문장으로 요약해보면 간단하게 보일지 모르지만 실제 이것을 실행해나가는 데에는 엄청나게 많은 세부사항과 세부계획이 필요하다.

2007~2008년, 한국의 '혁신적' 보수
▲ 정치평론가 고성국 씨는 "반면 한나라당에서 퍼져 나오는 쇄신론은 훨씬 힘차고 미래지향적"이라고 단언한다. ⓒ국회사진기자단


정부가 이런 형태로 바뀌어 간다면, 정치경제 체제 작동에 있어서 그간 중앙정부가 맡아왔던 많은 기능과 행정이, 지방정부와 민간기업 부문과의 관계에서, 체계적·포괄적으로 재조정되는 것은 필연적이다.

이명박 정부를 준비하는 이들의 면면과 말들을 보면, 새 정부의 움직임이 단순히 정부 조직개편의 차원을 넘어 나라 전체를 "선진화" 모토에 맞춰 포괄적으로 개혁·개조하는 계획을 가지고 있을 가능성을 점치게 한다.

먼저 인적구성의 면면을 보아도, "굶었던 10년 세월"에 한 맺힌 퇴물관료나 정치인 같은 '
'지대 추구자(rent-seeker)'들을 찾기 힘들다. 대부분 지난 10년 동안, 관록에 있어서나 아이디어에 있어서나 실행력에 있어서나, 상당한 실력과 '포텐샬(potential)'을 보였던 인물들이다.

여기에 노무현 정부 때부터 추진되어온 금융허브 계획이나 경부운하 계획 등 실로 국가적 차원에서의 개조 플랜으로 불러도 손색이 없는 큰 프로젝트들이 어엿하게 제시되고 있다.

요컨대, 아직 확정적으로 말하기는 이르지만, 이명박 당선자가 5년간 이끌어갈 정권은 5공화국, 멀리는 유신 때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케케묵은 '지대추구 세력'들이 중심이 되기보다는, 상당히 공격적이고 혁신적인 국가·사회 개조 계획을 힘차게 밀고 나가는 '혁신 기업가' 형 정권이 될 전망이 더 크지 않은가 한다.

2007~2008년, 한국의 '보수적' 진보

"보수" 세력이 이렇게 '혁신적'인 모습으로 바뀌어가는 동안 한국의 "진보" 그리고 "개혁" 세력은 어떤 모습을 보여주었는가.

변화된 상황 그리고 그 속에서 우리 보통사람들의 삶에 새롭게 나타나는 위협과 고통을 받아 안고 바람직한 변화의 방향을 제시하는, 그야말로 '진보적인' 모습을 보였던가. 아니면 2002년, 1997년, 아니 멀리 1987년이나 심지어 1960, 1970년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케케묵은 상황 인식과 '레퍼토리'들을 다시 꺼내들고, "그래도 51대 49로 결판나는 싸움이야" 혹은 "그래도 7~8%의 고정표는 있게 마련이야" 등 기존의 정치구도에 안일하게 편승하려는 '지대 추구자'의 모습을 보였는가.

"진보"가 어느덧 지독한 '지대 추구자'가 되었다는 것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예로 "코리아 연방 공화국"을 들고 나왔던 민주노동당, 특히 그 내부의 친북세력('자주파'니 'NL'이니 하는 완곡어법은 이제 그만 둘 때가 됐다)이 보여준 대선 이후의 행태만한 것이 없을 것이다.

"연방제" 통일 방안이란 자그마치 1960년대부터 북한이 주장해온 것으로, 1973년에 "고려 연방제"라는 이름으로 등장했던 정책이다. 남한에서도 자그마치 1972년에 김대중 당시 대통령 후보가 비슷한 정책을 내걸었던 바 있다. 이것을 'K' 대신 'C'를 붙인 'Corea'로 바꿔 "코리아 연방 공화국"이라는 이름으로 2008년을 열어보겠다고 나왔으니, 사람들 사이에 "코방국"이라는 줄임말이 유행하게 된 것은 정해진 수순이다. 한때 중앙당에서는 "코리아 연방 공화국으로 비정규직 문제 해결하자"는 선전물까지 나온 적이 있다고 한다. 그러니 "코방국으로 지구 온난화 해결하자" 혹은 "코방국으로 체첸 독립 이룩하자" 등 각종 패러디가 난무하게 되었던 것도 정해진 수순이다.

우리는 아직도 한반도 분단과 긴장이라는 상황에서 자유롭지 못하며, 통일과 평화가 현재 대한민국이 풀어야 할 핵심사안 중 하나라는 것은 아무도 부인하지 않는다. 그런데 2008년 현재의 한반도와 동아시아, 나아가 지구적 차원의 지정학적 상황은 1960년대나 1970년대로부터 거의 상전벽해의 변화를 겪은 바 있다.

이러한 변화를 몸으로 머리로 부딪혀 새로운 것을 내오는 대신 그 옛날에 만들어진 구호 하나로 2007년 대선판에서 무언가 재미를 보겠다고 노리는 이들은, 아무런 혁신 없이 사실상 분단 체제라는 한국의 특수성에 기대어 정치적 권력을 누리겠다고 하는 '지대 추구자'들일 뿐이다.
▲ 민주노동당이 회생할 '마지막 비상구'로 여겨졌던 '심상정 비대위' 구성이 자주파의 '기득권 고수'와 평등파의 '종북주의 척결' 주장이 대립한 결과 무산된 후, 당 안팎으로 분당론이 확산되고 있다. ⓒ뉴시스

민노당이 처참한 패배를 당한 후 이 친북 세력들이 보여주는 행태는 또한 '지대 추구자'로서의 면모를 유감없이 보여주고 있다.

물론 당내에서 친북 세력들을 비판해온 소위 "좌파" 세력들도 별다른 내용이나 혁신 없이 오로지 그 "NL 비판" 하나만을 '레퍼토리' 삼아 기존의 정파구도에 기대 십 몇 년 간 명맥을 유지해온 또 하나의 '지대 추구자'라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현재의 상황이 당 전체, 나아가 진보세력 전체의 정치적 위기임을 직감한 이들은 최소한 이번 총선에서 비례대표 불출마 등 일체의 기득권 포기를 조건으로 대선 평가와 대대적인 당 개혁을 요구하는 "진보" 세력다운 진실성의 일말을 보여준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이들이 자기희생을 전제로 내놓은, '당 전체를 개혁할 수 있는 큰 권한을 지닌 비상 대책위원회를 구성하자'는 해법을 당내 친북 세력은 간단히 거부해버렸다. 무엇보다도 '비상 대책위원회'가 비례대표를 포함한 이번 총선에서의 공천을 주도하겠다는 요구가 "초헌법적" 발상이라는 것이 그들의 반응이었다.

국토 한가운데에 운하가 생기려 한다. 통일부, 교육부, 노동부 등의 정부 부처가 사라질 수도 있다. 그런데도 "진보" 세력은 "코리아 연방 공화국"을 내걸었으며, 그에 대한 아무런 책임감도 느끼지 않은 채 오로지 다가오는 총선에서 몇 개의 비례대표 자리를 얻을 수 있는가의 표 계산에 바쁜 듯하다.

한국도 20세기 세계사의 큰 흐름에 합류하고 있음이 이번 대선에서 밝혀진 셈이다.

"진보"는 점점 '지대 추구자'로 되어가고 있다. 반면 "보수"는 자신들의 신념과 세계관에 따라 나라 전체를 바꾸어나갈 포괄적 계획을 제출하고 집행하려는 '혁신 기업가'의 면모로 거듭나고 있다.

보수화된 것은 국민이 아니라 "진보" 세력

이번 대선 결과를 놓고 "국민들이 보수화되었다"는 한탄 섞인 소리가 사방에서 들린다. 실로 어이없는 일이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10년간 신자유주의적 구조 변화에 휩쓸려 하루하루 생활의 궁핍과 불안정에 시달려온 국민들이 지금 원하는 것은 보수도 진보도 아니라 '변화'일 뿐이다.
▲ 2008년 대한민국은 '지대 추구자'에 대한 정의부터 되새김질 해야 할 것 같다. ⓒRent Seeker Watch

어느새 '진보적'이라는 말이 "진보"를 표방하고 나온 정치세력들에 대한 지지 여부로 정의되는 언어의 전도(顚倒)가 벌어진 것인가.

하긴 노무현 정권 기간 소위 "개혁" 세력이라는 이들 중 일부는 개혁의 의제를 내걸고, 그것을 어떻게 이루겠다는 계획을 제시하는 대신, 자신들이 권력을 갖게 되는 것이야말로 '개혁'이라는 희한한 논리를 내걸었던 적도 있었다.

어느새 "진보" 세력도 똑같은 아전인수의 말장난에 넘어간 것은 아닐까. 그래서 물새는 물새라서 물새알을 낳듯, 산새가 산새라서 산새알을 낳듯, 자신들의 말과 행동에서 나오는 모든 것들은 '진보적'이며 따라서 '혁신적 변화'라는 언어의 미궁에 빠진 것이 아닐까.

보수화된 것은 국민이 아니다. 시대가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 어떤 이름의 고통과 어떤 모습의 삶의 위협이 새로 나타나고 있는지를 도외시한 채, 5년 전, 10년 전, 20년 전과 별반 다를 바 없는 이야기들을 풀어놓고 있는 "진보" 세력이야말로 정말로 보수화된 주체가 아닌가 싶다.

역사는 '계속 달려가는 기차'이며 '한시도 쉬지 않고 매정하게 바뀌어가는 계절의 흐름'이다. 베짱이의 바이올린은 춥고 배고픈 겨울에 아무런 쓸모도 없다. 베짱이의 한 살이는 겨울에 끝난다고 초등학교 때 배운 것 같다. "진보" 세력이 '지대 추구자'로 머무는 한 이번 총선을 계기로 똑같은 운명이 닥쳐올 지도 모른다.

각종 생활난에 휩싸인 대한민국 사람들의 삶은 지금 '겨울'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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