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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TA 찬성하며 '내 집 마련'? 넌 사기꾼!"

'한미 FTA 시대', 기어이 오는가 <4> FTA와 부동산

부동산, 과연 한미 FTA와 상관없는 문제인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은 한국의 부동산 정책과 관련해 '간접수용에 대한 보상'이라는 우리가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제도의 강제 도입을 통해 세제, 금융, 도시 계획, 분양 제도 등 여러 측면에서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이런 우려와 정반대 인식으로 팽배해 있다.

'부동산 가격 안정화 정책'을 예외로 하는 등 각종 안전 장치를 둬 문제가 없다는 정부 주장에서부터 차라리 이 기회에 외부 충격을 통해 부동산 규제 정책을 근본적으로 손질해야 한다는 찬성론까지 다양한 주장이 나오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정작 국민 모두가 큰 관심을 가지는 부동산 정책은 쟁점이 되지 못 하고 있다.

각종 개발 공약과 '내 집 마련' 공약, 세금 감면 공약 등 선심성 공약이 남발되고 있지만 이런 공약이 한미 FTA에도 불구하고 가능한지 여부는 대선 주자 거의 모두가 함구하고 있다. 또 상대적으로 인기가 없는 세금, 금융, 분양가 상한제 등 투기 억제 정책에 유력 후보는 아예 적극적 입장 표명을 하지 않고 있다.

부동산 정책은 아무 문제가 없다고?

그러나 정말 대선 후보의 공약이 한미 FTA 협정이 체결돼도 아무 문제없이 시행될 수 있을까? 우선 협정문 제11장을 살펴보자. 협정문 11장은 '투자' 챕터이다. 이 챕터의 6조, '수용 및 보상'은 공공목적 등을 위해 투자자의 재산을 직접 또는 간접 수용할 수 있다는 규정이며, 제23장의 3조는 정부의 과세조치도 11장 6조의 직접 또는 간접 수용에 해당한다고 명시했다.

이러한 직접 또는 간접 수용에 대해 공정한 시장 가격으로 보상해야 하는데, 만일 정당한 보상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저 악명 높은 투자자 국가 제소권이 기다리고 있다. 정부는 이것이 이른바 '글로벌 스탠더드'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보상법제에서는 직접 수용에 대해서만 보상을 하고 있다. 즉 공공이 공익 사업을 위해 직접 토지의 소유권을 수용하는 경우에만 정부의 보상 의무가 있는 것이다. 이것은 우리 헌법이 국토의 공공적 이용에 관해 규정한 것과 맥을 같이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제 한미 FTA 하에서는 간접 수용에 대해서 보상을 해야 하고, 이를 어길 경우 투자자가 직접 국가를 상대로 손해 배상 청구를 할 수 있게 됐다. 당연히 토지의 이용과 관리에 많은 규제를 하고 있는 우리 정부의 부동산 정책에 큰 영향이 미칠 것은 명약관화하다.

지난 여름 투자자 국가 제소권에 대한 우려가 높아지자 대통령의 지시로 팀이 만들어졌고 건설교통부, 법무부, 재정경제부는 이 제도에 반대했다. 뒤늦은 각성이었지만 우리 정부도 국내 부동산 정책에 미치는 영향을 우려해 한미 FTA 협상 과정에서 정부의 국토 이용과 계획 등 전반적인 국토 정책이 '간접 수용'의 예외가 될 수 있도록 많은 노력(?)을 했다.

결국 정부는 가까스로 '부동산 가격 안정화 정책'을 '간접 수용'의 예외에 포함시켰다. 그러므로 적어도 부동산 정책에는 한미 FTA가 거의 아무런 영향도 끼칠 수 없다는 게 정부의 주장이다. 과연 그럴까?

'간접 수용'은 '직접 수용'과 어떻게 다른가?

미국 판례는 우리 보상 법제와 달리 직접 수용(taking) 외에 '규제적 수용(regulatory taking)'을 인정한다. 예를 들어, 문화재 발굴 지역으로 지정돼 건축 제한을 받게 된 경우를 생각해 보자.

주택 건축 허가 조건으로 일반 대중이 해변으로 출입할 수 있는 산책로로 토지의 일부를 사용할 수 있도록 한 경우, 홍수 방지와 교통 체증 방지를 위해 개인의 토지 일부를 인도와 자전거 도로로 기부 채납하도록 한 경우, 섬 연안을 연안 관리 지구로 지정해 건축 행위를 제한한 경우 등을 미국에서는 '규제적 수용'이라고 한다.

우리 주위에서 이런 사례는 숱하게 많으며 공공의 이익을 위한 정당한 행위로 간주된다. 물론 우리 법제에서 이러한 '규제적 수용'에 대한 보상은 없다. 단지, 기부 채납 등의 조건을 포함한 전체 행정 처분에 대한 취소 소송만이 가능할 뿐인데 대부분의 개발 사업자는 빨리 인‧허가를 받아 개발 사업을 진행하려 하기 때문에 행정 소송을 제기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이제 상황은 변했다. 한미 FTA 협정에 따르면 미국 투자자는 관할 행정 관청이 아닌 우리 정부를 상대로 기부 채납 등에 따른 기대 이익 상실 부분에 대해 손해 배상청 구를 할 수 있게 되었다. 물론 국내 개발업자들도 이러한 기회를 이용할 수 있다. 한국 회사라도 미국 투자자가 끼어 있다면 투자자의 이름으로 투자자 국가 제소권을 사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정부의 주장으론 이것도 대표적인 '제도 개선'이다. 행정의 재량권을 남용하는 전근대적 행정을, FTA 협정이라는 외부 충격에 의해 일거에 개선할 수 있다는 것이다. 문제는 우리가 너무나 많은 '간접 수용'을 자연스럽게, 현재의 헌법 정신에 따라 이미 시행하고 있다는 데 있다.

우리의 경우 도시 개발 지구, 주거 환경 정 비지구 등 많은 도시 관리 계획 지구나 개발 제한 지구로 지정되면 건축 행위, 벌목, 토사 채취, 토지 분할 등 각종 토지의 개발 행위가 제한되지만 이에 대해 보상을 하지는 않고 있다. 또, 아파트와 같은 공동 주택을 건설할 때, 진입 도로, 학교, 심지어 고속도로 인터체인지까지 각종 기부 채납을 요구하고 있다.

우리가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이런 행위가 모두 '규제적 수용'이 된다면 우리는 얼마나 많은 보상을 해야 하는 걸까? 우리에게도 유사한 사례가 있었다.

헌법재판소가 장기 미집행 도시 계획 시설 부지(도시 계획에 집어넣고 실제로는 집행하지 않은 토지)에 대하여 토지 소유자가 정부에 대하여 매수 청구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결정을 한 사건이다. 이 때 정부는 이 판례에 따라 필요한 토지 매수 비용이 124조 원 정도로 추정했다. '간접 수용'의 도입은 물론 그 이상이다. 한미 FTA 하에서 현재처럼 국토를 이용한다면 이 정도의 천문학적 예산이 뒤따라야 하는 것이다.

한미 FTA는 한발 더 나아가, '규제적 수용' 정도가 아니라 '간접수용'까지 인정하고 있다. '규제적 수용'은 정부 정책이 개인의 재산권에 대한 규제와 제한을 의도한 것이지만, '간접 수용'은 정부 정책이 이러한 재산권에 규제와 제한을 의도한 것이 아니더라도 정부 정책의 결과(법률 용어로 반사적 작용이라고 한다)로 재산권에 대한 규제와 제한이 생기는 경우까지 포괄한다.

한미 FTA는 투자의 개념을 '수입 또는 이윤의 기대', '면허‧인가‧허가 및 국내법에 의해 부여된 유사한 권리'와 같이 권리의 범위를 넘어 반사적 이익에까지 확대하고 있다. 투자의 범위가 넓으니 당연히 그 권리의 침해에 대해 보상해야 하는 범위도 넓다. 이런 광범위한 '투자'에 대해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간접 수용'까지 인정하고 있는 것이다.

도대체 얼마나 보상해야 할까? 물론 아무런 규제나 제한도 하지 않는다면 보상을 걱정할 필요가 없다. 이것이 바로 우리의 부동산 정책이 갈 곳이다.

'부동산 가격 안정화 정책'이 간접 수용의 예외이니 문제없다고?

정부도 '간접 수용'이라는 법리가 국내법과 달라 분쟁의 소지가 크다고 보고 처음에는 간접 수용과 관련된 분쟁은 아예 국내 사법 절차에 의해 해결하자고 요구했다. 물론 미국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번에는 부동산 정책 등을 간접 수용의 예외로 만들기 위한 제안을 수차례 했다.

2차 협정에서 계획(planning)을 간접 수용의 예외로 인정해 줄 것을 요구했으나 거절당했고 3, 4차 협정에서는 토지의 이용 및 관리(using)를 간접 수용의 예외로 인정해 줄 것을 애걸하다가 역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결국 5차 협정 이후부터는 부동산 가격 안정 정책만이라도 간접 수용의 예외로 인정해 줄 것을 간청했다. 타결 직후 열린 토론회에서 김종훈 대표는 이를 대표적인 성과 중 하나라고 주장했다.

과연 '부동산 가격 안정 정책'은 무엇을 의미할 것인가? 분양가 상한제, 투기 과열 지구의 지정 및 이에 따른 전매 제한, 금융 거래의 제한, 토지 거래 허가 지구의 지정 및 이에 따른 토지 거래의 제한 등이 대표적인 부동산 가격 안정화 정책이라고 할 수 있다. 즉 이런 정책은 이 규정에 따라 적어도 '예외' 주장을 할 수 있게 되었음에 틀림없다.

그러나 저간의 협상 경과를 보면 국토의 계획과 이용은 '예외'에 해당하지 않는 것으로 판단될 소지가 다분하다. 즉 국토 계획 및 이용에 관한 법률, 도시개발법, 택지 개발 촉진법, 관광진흥법, 산업 입지 및 개발에 관한 법률 등은 '간접 수용'의 시비에서 벗어날 수 없다. 미국인 투자자가 이러한 도시 계획 지구의 지정‧변경 또는 도시 계획 내용의 변경에 의해, '합리적으로 기대한 수익'을 얻지 못한다면 이것은 간접 수용에 해당한다. 그리고 곧 그것은 투자자 국가 제소권의 대상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우리 행정법학계에서도 다수설은 이를 '수용유사침해(收用類似侵害)'라는 개념으로 개념 규정하고 법률에 보상 규정이 없더라도 헌법을 유추 적용하여 보상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우리 법원 판례는 이런 간접 수용의 법리를 인정하고 있지 않다. 결국, 한미 FTA는 국내법이나 판례에서는 인정하고 있지 않은 간접 수용이라는 법리를 미국인 투자자에 한해 인정한 것이며 이것은 우리 헌법 내지 법률의 부정이다.

우리 헌법 제23조 제3항은 공공필용에 의한 수용 및 그에 대한 보상은 법률에 의해 하고 있고, 이에 따라 '공익 사업을 위한 토지 등의 취득 및 보상에 관한 법률'에 제정되어 보상이 되는 경우를 정하고 있으나 협정문에 의하면 현재의 법률에서 보상 대상으로 정하지 않은 투자 규제(수용)에 대하여도 보상을 해야 하는 것이다.

물론, 한미 FTA 협정문이 국내법의 효력을 갖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고 주장할 수는 있다. 그러나 미국의 법제에서 FTA는 단지 행정 협정에 불과하여 미국 국내법에 저촉되는 부분은 무효이다. 그런데 한국에서만 국내법인 '공익 사업을 위한 토지 등의 취득 및 보상에 관한 법률'에 반하여 효력을 갖게 되는 것은 명백하게 불평등하다. 나라 간의 불평 등만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라 이제 내국인과 미국인 투자자가 차별을 받게 되는 것은 헌법상 평등의 원칙을 위반하는 것이다.

개발 사업에 관한 인‧허가 처분의 지연도 간접수용에 해당

정부 해설서에서 중재 판정부에 의해 간접 수용으로 판정된 사례로 들고 있는 멕시코의 메탈클래드 사건은 중앙 정부의 투자 보장과 달리 지방 정부가 투자 사업에 관한 허가를 내 주지 않아 투자자가 국가를 상대로 제소하여 승소한 사례이다. 우리의 경우에도 각종 개발사업의 인‧허가권은 지방자치단체에 있다. 최근 충전소와 같은 위험 시설, 쓰레기 매립장과 같은 환경 위해 시설, 장례식장 등 많은 시설의 설치에 관하여 민원이 제기돼 지방자치단체의 인‧허가 처분이 지연되고 있는 경우는 요즘 너무나 흔하다.

그런데 그 투자자가 미국인이라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멕시코의 메탈클래드 사건의 경우처럼 지방 정부의 인허가 처분 거부나 지연 때문에 국가가 제소를 당할 가능성은 언제나 열려 있다. 이제 국내 개발 사업 주체에게는 쉽게 개발 사업에 관한 인허가 처분을 해 주지 않으면서 미국 투자자의 개발 사업에 관하여는 투자자 국가 제소권 때문에 손쉽게 인‧허가를 내 줄 가능성이 크다.

환경영향평가, 교통영향평가, 주민의 의견 수렴을 위한 공청회 등 민주적인 행정 절차는 요식 행위가 되거나 졸속으로 처리될 것이다. 이렇게 규제 당국이 스스로의 의무나 민주적 절차를 포기하는 것을 '위축 효과'(chilling effect)라고 부르는데, 투자자 국가 제소권의 존재는 부동산 뿐 아니라 광범위한 공공정책을 공무원 스스로 위축시키는 결과를 낳게 될 것이다.

위와 같은 우려에 대하여 한미 FTA 협정에 찬성하는 사람들은 역으로 한미 FTA 협정을 우리의 잘못된 부동산 정책과 행정관행을 창조적으로 개혁할 수 있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창조적 개혁이 환경 파괴와 난개발이고 그 결과가 집 없는 서민의 좌절과 투기의 만연이라면 그것은 창조가 아니라 그야말로 파괴일 뿐이다. 그래도, 여러 안정장치를 만들었으니 한번 해 보자가 아니라 신중에 신중을 기해 점검해 보아야 할 것이고, 원점으로 돌아가 다른 길도 찾아 볼 수 있어야 할 것이다.

현 정부 5년이 웅변하듯이 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초미의 관심사이다. 우리의 현실에서 부동산은 일반 국민의 가장 중요한 자산이기 때문이다. 재산 증식을 떠나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집 걱정을 떨쳐 버릴 수 없는 사회라면 결코 바람직하다고 말하기 어려울 것이다. 문제는 한미 FTA가 최소한의 규제도 무력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더구나 수도권 규제와 같은 마지막 보루마저 무너진다면 그 이후는 절망만 남을 것이다. 왜냐하면 한미 FTA는 언제나 되돌아갈 길마저 끊어 버리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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