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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맙소사, 이회창이 변했다"

[밥&돈·18] 昌의 "따뜻한 자본주의", 왜 나왔나?

이인제, 권영길에 이어 이회창이 '순신불사(舜臣不死)'를 외치며 돌아왔다.

2007년 대선이 시작된 6개월 전, '대선 6개월은 조선왕조 500년에 해당한다'는 말이 유행했다. 그렇다면, 대선 당일이 36일 남은 지금은 조선왕조 500년 가운데 임진왜란이 일어났던 때를 지나고 있는 것일까?

충청도가 고향이고, 전라좌수영에서 신화를 만들었던 충무공 이순신은 어쩌면 이회창에게는 안성맞춤형 영웅일지도 모른다. 박정희에게도 노무현에게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하여간 한국을 들었다 놓았다 하는 사람들은 꼭 한 번쯤 충무공과의 '동일시'를 시도했다. 사실 기회만 있다면 다른 대선 후보들도 모두 자신이 이순신이라고 말하고 싶은 심정일 것이다.

사실상 단기필마(匹馬單騎)로 다시 대선에 나선 이회창은 어떤 식으로든 적을 속이지 않으면 안 된다. 이순신이 자신보다 우월한 물리력을 확보한 일본군을 속이기 위해, 더 많은 것은 더 적게 보이도록 하고 더 적은 것은 더 많게 보이도록 해야 했던 것처럼. 오죽하면 '강강술래' 같은 종합무용이 다 등장했겠는가.

이회창 입에서 "따뜻한 자본주의"가!
▲ 대권 3수에 나선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 ⓒ연합뉴스

점퍼를 입고 책상 위에 올라가 "두 발로 뛰자!"를 연호하는 이회창은 확실히 변했다.

그가 이순신의 전투사를 얼마나 자세히 공부했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지금의 이회창은 5년 전 지나친 화장으로 양 볼이 벌그스름해진 채로 TV 토론에 나갔다가 '중국 인형'이라는 별명까지 얻었던 그 이회창은 더 이상 아닌 것 같다.

크게 보면, 그의 출마선언 내용 중 절반은 '확실한 우파'에 관한 것이었다. 놀랍지는 않은 일이다. 이렇게 해서 우리나라의 우파들은 정상적인 분화를 시작하는가?

나머지 절반은, 세상에 맙소사, "천민자본주의"라는 단어에 집중돼 있다. 출마선언 당일 이회창의 입에서 이런 소리가 나올 것이라고 상상한 사람은 아마도 없었을 것이다. "돈이면 다냐?"는 그 거침없는 비판이라니. 거기에다 "따뜻한 시장경제", "따뜻한 자본주의"와 같은 표현까지 등장하는 것을 보면서, 그가 이순신과 얼마나 비슷해졌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과거의 이회창은 아니라는 점은 인정하지 않을 도리가 없어졌다.

물론 좌파들은 이런 표현들을 즐겨 사용한다. 하지만, 우파, 그것도 본진에서 이런 표현이 등장하다니, 정말 사건은 사건이다.

주로 대외경제정책에서 사용되는 '따뜻한 자본주의'는 로자 룩셈부르크가 사용했다는 '차가운 자본주의(cold capitalism)'의 반대말이다. 냉전 시기에는 한 국가가 자본주의를 선택해야 비로소 국민경제의 '도약(take-off)'과 발전이 시작된다는 국제외교적 의미로 사용되기도 했다. (국민경제 내부의 소외자 문제에 강조점을 둘 경우에는, '따뜻한 자본주의' 대신 일본에서 주로 사용했다는 '인간의 얼굴을 한 자본주의'라는 표현이 사용되기도 한다.)

하이퍼 토건국가, 결국 '자본일반 위기국면'으로

물론 이회창이 이런 용어들을 사용하는 맥락이 있을 것이다. 이회창 측 캠프에서 종종 흘러나오는 "(이명박은) 토목업자 수준"이라든가 "지나친 건설자본"이라는 표현은 이회창의 천민자본주의와 따뜻한 자본주의가 지금 어떤 맥락에서 나온 것인지를 읽을 수 있게 해 준다.

원래 토목공학은 'civil', 즉 시민 혹은 공민들을 위한 엔지니어링이라는 의미를 지닌다. 한국에서도 폐기물공학을 비롯해 환경공학 분야의 전문가들이 토목공학으로부터 배출됐었다. 그러나 한국에서 토목공학은 정부 주도의 국책 건설사업 위주로 구성돼 있고, 따라서 '시민'보다는 '국가'라는 맥락을 더욱 많이 가지고 있다. 특히, 최근 많이 사용되는 민자유치나 프로젝트파이낸싱(PF)에서는 사실상 정부가 지급보증의 역할을 맡는 경우가 많아, 토목에서 시민은 없고 국가만이 존재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선진국에서는 토목과 건설의 국내지출은 GDP의 7~13%를 차지한다. 일본의 경우, 높다고 할 때도 18%를 넘지는 않았었다. 한국은 1996년 26%까지 올라갔다가, IMF 경제위기와 함께 조정이 돼서 20% 이하로 내려왔다. 이어, 김대중 대통령이 노무현 대통령에게 국민경제를 넘겨주던 시점에는 18% 수준이었다.

시장 분석 상으로는 이 수치가 15% 아래로 내려가야 '연착륙(soft landing)'이었다. 불행히도 노무현 대통령은 조정의 기회를 잡아 연착륙을 하는 대신 '한국형 뉴딜'을 시도했고, 이 수치를 20% 위로 끌어올렸다. (이명박은 GDP 20% 이상을 차지하는 토건자본의 대변자이고, 그 적자이며, 토목 중의 토목 '한반도 대운하'의 설계자이다.)

정치학에서는 종종 일본을 '토건국가'라고 부른다. 수치상으로만 비교한다면, 한국은 '하이퍼(hyper) 토건국가'에 해당한다. 우리 모두 기억하듯 지난 5년 동안 대한민국은 도시와 농촌을 가리지 않고 전국이 '공사 중'이었다.

여기서 잠깐, 지난 5년 동안 노동시장의 붕괴를 불러온 노무현 정부의 경제정책을 복기(復棋)해보자. 노 정부는 "인위적 경기부양은 없다"면서도 '골프장 200개'로 대변되는 한국형 뉴딜을 추진했다. 그리고 건축업자들의 자금 조달에 문제가 생기면 안 된다며 집권 초기 3년 동안 강력한 저금리 정책을 추진했다. 그 결과, 지금 한국의 부동산은 부풀 대로 부풀어 올라 터지기 직전이다.

이처럼 노무현 대통령이 죽어라고 건설을 일구었음에도 불구하고 노동의 질은 저하됐다. 많은 정규직이 단기 비정규직으로 전환됐다. 건설고용은 원래부터 비정규직과 계절고용의 양상을 띠는 데다, 건설고용 중 외국인 노동자의 비율이 거의 40%로 올라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건설산업의 인위적 부양으로 인한 또 다른 부작용이었다.
▲ 이명박과 이회창. ⓒ뉴시스

물론 건설자본에게는 이 상태가 최적의 상황일지 모른다. 하지만 국민경제를 구성하는 '자본일반'의 관점에서 보면, 이 상태는 '케인즈식 선순환'은 고사하고 '박정희식 압축성장의 미덕', 심지어는 '전두환식 산업 구조조정'마저 없었던 최악의 상황일지 모른다.

중소기업에, 기초소재산업에, 환경산업 혹은 대체에너지 산업에, 문화산업에 들어갔어야 할 돈을 자연스럽게 건설자본이 챙겨갔던 지난 5년. 이런 흐름은 자본일반에도 위기국면, 즉 '조절이 필요한 국면'을 형성하게 됐던 것이다.

순신불사 이회창의 '천민자본주의'와 '따뜻한 자본주의'. 아직은 구체적인 정책으로 뒷받침되지는 않은, 그러나 이회창의 정책기조를 알려주는 이 두 개의 표현은 '이제는 한국 자본주의 내에서 자본일반의 힘으로 어쩔 수 없이 건설자본에 대한 최소한의 조절이 필요한 시점이 왔다'는 것을 의미한다.

昌의 '따뜻한 자본주의', 어떻게 구현될까?

이런 면에서 현재 이명박의 국민경제 기조에 정면으로 맞서 '한국 건설자본의 연착륙'을 위한 조절을 본격적으로 외친 사람은 이회창이라고 보아도 무방하다. 문국현이나 권영길이 아니다. 놀라운 일이다.

정책적 관점에서만 보자면 사실 누가 대통령이 되어도 최소한 노무현 대통령보다는 나을 것이라는 게 내 솔직한 분석이다. 단, 이인제는 빼고. 그는 노무현보다 몇 배는 박정희틱, 유신경제틱하다.

그러나 한국 자본주의의 핵심을 형성하는 지배세력 내에서 "건설자본이 지나치지 않냐"는 질문이 나왔고, "돈이면 다냐"는 주장이 나왔다. 정동영의 '가족주의', 권영길의 '코리아연방', 문국현의 '사람경제', 각 대선후보의 경제기조에 드디어 이회창의 '따뜻한 자본주의'라는 메뉴가 하나 더 등장한 것이다.

순신불사 이회창이 '조절'을 외친다면, 과연 이 후의 흐름은 어떻게 전개될까? 이회창의 '따뜻한 자본주의'가 어느 정도 수준의 한국 자본주의 재편을 의미할지, 구체적으로 어떻게 정책으로 구현될지는 더 지켜보아야 할 것 같다.

격동의 한국 대선, 이회창은 자신을 이순신으로, 이명박을 원균으로 생각하는 것 같다. 그렇다면 노무현 정권은? 물론 왜군 아니겠는가? "조선 수군을 전멸시킨 원균(이명박)이 더 싫어, 아니면 좌파라는 붉은 딱지를 붙은 왜군이 더 싫어?" 참으로 철학적인 질문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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