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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경제론은 난센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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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민족경제론은 난센스다"

[발언] '사회적 대타협론'을 위한 변 ②

☞ '사회적 대타협론'을 위한 변 ① : 왜 진보는 사회-재벌 타협론을 수용하지 못하는가

1. 경제성장에 대한 긍정

'사회-재벌 타협론'은 경제성장을 적극적으로 긍정했다. 그래서 박정희 시대를 억압과 착취, 헤어 나올 수 없는 민중의 빈곤, 반민족적 종속 체제 등으로 서술했던 진보적 경제담론에 선뜻 동의할 수 없었다.

직관적으로 봐도 기초적 생필품과 서비스(의료 등)가 희귀 상품이었던 1960~1970년대와 오늘날을 비교해보면, 경제성장의 중요성을 새삼 강조하는 것 자체가 웃기는 일이다.

그러나 진보적 지식인들은 많이 다르게 생각한다. "사회는 부유해졌지만 영혼은 빈곤해졌다"는 종교적 견해와 "사람은 밥만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는 예수님 말씀, "박정희 시대에경제가 발전했다는 사실은 인정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인간이 돼지냐"는 지식인들이 있다.

심지어 "빈곤하지만 민족 자주성을 지키고 정치 지도자와 인민이 일체된 삶을 살고 있는 이북"(주체사상파들은 이런 상태를 정치적 '영생'이라고 부른다)을 동경하는 분들도 있다.

그러나 필자는 단언할 수 있다. 이런 분들 가운데 절대적 대다수는 책이나 담론이 아니라 실제 상황에서 기초적 생필품과 서비스가 자신이나 가족들에게 공급되기 어려운 경우가 닥친다면 차라리 빈곤한 영혼으로 살거나 돼지가 되거나 '영생'을 포기할 것이다. 아무리 점잔을 떠는 인간이라도 그가 실제로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은 '밥'이다.

그래서 흥미로운 것은, 한편으로는 일자리 부족의 문제를 탓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성장 지상주의'를 비판하는 진보언론들이다.

경제성장이란 특정한 경제 단위에서 생산되고 교환되는 물적 재화와 서비스가 많아지는 현상을 가리킨다. 그래야 고용 규모도 커진다.

아무튼 현재의 한국사회에서 가장 신기한 현상 중 하나는 기자들에게 변변한 임금도 제공하지 못하는 진보언론들이 오히려 앞 다퉈 이른바 '성장 지상주의'를 욕하는 현상이라고 필자는 감히 생각한다.

식민지반봉건사회론

그렇다면 한국의 진보진영은 당초부터 경제성장에 적대적인 집단이었을까. 결코 아니었다. 그렇다면 진보진영은 어쩌다가 반(反)성장 담론에 물든 것일까. 이 같은 현상엔 사회주의 혁명이론과 민족주의 등이 얽힌 복잡한 사연이 있다. 그리고 이를 설명하려면 거의 한 세기 전의 모스크바로 거슬러 올라가는 것이 좋다.

1928년 8월 소련의 모스크바. 제6차 코민테른 대회(레닌이 창설한 국제공산당동맹, 제3인터내셔널)가 각국의 저명한 공산주의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성황리에 진행되고 있다. 당시 국제공산당의 열망 중 하나는 제국주의에 맞서 식민지 피압박 민족들을 국제적으로 조직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코민테른이 이 대회에서 제출한 이론이 바로 식민지반봉건사회론이다. 이 '혁명 이론'의 정세 판단은 이러했다.

"식민지에서 제국주의의 역할은 봉건세력과 결탁해서 그 나라의 생산력이 발전하지 못하도록, 즉 자본주의 체제가 성립할 수 없도록 차단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국제공산당은 "무엇을 할 것인가?" 공산당답게 프롤레타리아트 혁명을 제안했을까. 아니었다. 그 대안은 오히려 제국주의에 맞서는 '부르주아 민주주의 혁명', 간단하게 말하면 부르주아, 즉 민족자본가 주도로 자본주의를 건설하기 위한 혁명을 일으키는 것이었다.

식민지의 산업화와 생산력 발전, 즉 자본주의화를 저해하는 주범이 제국주의라면, 제국주의에 대항하는 최선의 투쟁은 자본주의 건설 아니겠는가. 그래서 식민지의 부르주아 혁명은 민족해방투쟁이기도 했다.

여기서 유의할 것은 코민테른의 인식이다. 피식민 국가에서는 제대로 된 산업화와 생산력 발전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식민지의 민중이 제대로 된 경제를 건설하기 위해서 해야 할 일은 민족 자주성의 확립, 즉 정치적 독립이다. 민족주의의 확립, 즉 정치적 독립은 경제발전의 필요조건으로 인식되었다.

이 같은 인식은 식민지 해방의 시기였던 1940년대를 관통하고, 1960년대 이후까지 이어진다.

국제공산당이 1940년대 우후죽순 격으로 해방을 맞은 신생독립국들에게 부여한(?) '혁명적' 과제는 제국주의국가들로부터의 경제적 독립, 혹은 자립경제 건설로 축약된다. 또한 그 실천 가능한 지향점은 사회주의가 아니라 자본주의였다.

(물론 식민지, 혹은 종속국에서도 자본주의 발전이 가능하다는 주장도 있었다. 그러나 이런 '종속 자본주의론' 역시 제국주의 혹은 핵심 자본주의 국가의 착취 때문에 식민지나 종속국의 실질적인 경제성장은 불가능한 것으로 간주했다. 즉, 종속 자본주의론은 식민지반봉건사회론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이런 내용을 가진 식민지반봉건사회론은 비록(?) 공산당들이 '창시'했지만 신생 독립국들의 근대적 자립경제를 향한 '시대정신'을 반영한 것이었다. 이 시대정신, 즉 자립경제와 경제성장에 대한 갈망은 박정희의 '잘 살아보세'는 물론 김일성의 '이밥에 고기를 먹는 나라'까지 관통하고 있다.

인민들이 밥과 고기 등 물적 재화를 풍성하게 누릴 수 있도록 경제를 발전(성장!)시키는 것은 사회주의자들의 숙원이기도 했던 것이다. 사회주의자들은 또한 경제발전을 위한 필요조건이 종속의 극복이라는 공식을 식민지반봉건사회류의 이론을 통해 숙지하고 있었다.

박현채의 민족경제론

박정희와 그에 대항했던 당대의 좌파지식인들, 즉 박현채 선생과 안병직 교수 등은 기실 '자립경제 노선'을 공유하는 '동지'들이었다. 다만 자립경제의 이미지와 건설 방법에서 의견을 달리 했을 뿐이다.

당시 혁명이론(식민지반봉건사회론)을 수입하고 소개한 안병직 교수가 지금 뉴라이트의 대표적 인물이 돼있는는 현상을보라. 안병직 교수는 진보에서 보수로 변절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가 식민지반봉건사회론으로 소망했던 것, 즉 자립경제 건설이 1980년대 이후 부정할 수 없는 현실로 다가오는 것을 목도하면서 솔직해졌을 뿐이다. 물론 필자는 그가 과거엔 물론이거니와 지금도 몹시 '오버'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안 교수는 1970년대엔 자립경제를 추진하던 박정희에게 자립경제론으로 대항했다. 그리고 2000년대엔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 노선을 추진하고 있는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자유주의에대항해서 자유주의(뉴라이트!)의 기치를 치켜세웠다. 이것은 비극인가, 희극인가.
▲ 수출화물 선적작업이 한창 진행 중인 부산항 감만부두. ⓒ연합뉴스

그렇다면 이제 남한의 진보주의자들이 왜 그토록 성장을 싫어하게 되었는지 논의할 순서가 되었다.

이 이야기는 박현채 선생의 민족경제론을 '비판적으로' 경유해야 한다. 민족경제론은 식민지반봉건사회론의 종속과 경제발전의 문제의식(종속된 경제엔 성장이 없다!)을 거의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 그리고 1980~1990년대에 제출된 각종 한국사회구성체론들은 민족경제론의 문제의식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

예컨대 이른바 자주파 진영에서는 당시의 한국사회를 식민지반자본주의로, 민중민주주의 진영에서는 신식민지국가독점자본주의라고 규정했다. 명칭은 다르지만 내용은 거의 비슷하다. 한국은 일정한 단계에 오른 자본주의지만, (신)식민지라는 종속 상태 때문에 '정상적'인 자본주의로 발전하지는 못했다는 것이다.

필자는 박현채 선생의 민족경제론을 '종속에 대한 이론'으로 요약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한마디로 말해서 한국경제는 재생산과 시장에서 제국주의 국가에 종속되어 있기 때문에 "국내적 분업 관련은 보잘 것 없는 것으로 되면서 경제는 비자립적이고 대외의존적인 것으로 되었다"는 것이다. 물론 노동자와 민중의 빈곤도 결국 종속으로 인한 경제잉여 유출, 분업연관의 파괴 내지 미형성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

그렇다면 '재생산과 시장의 종속'이란 무엇인가. 우선 '재생산의 종속'부터 보면, 노동력을 재생산하는 식량, 원자재 및 중간재 등을 국내가 아니라 해외에서 수입해온다는 것이다. '시장의 종속'은 국내에서 생산된 상품을 국내에서 팔 수 없기 때문에 해외에 수출해야 하는 상황을 의미한다.

그래서 "1962년 이래의 경제개발 계획은 (…) 외견상 자립경제의 요구를 내걸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외자의존형이며 외국자본을 주축으로 한 수출입국형의 대외의존적 경제구조를 실현하는 것이었다"고 박현채는 평가한다.

그에게 한국경제의 무역 활성화, 기술 및 외자 도입 등은 종속의 한 현상이었다. 그래서 한국경제는 "양적 성장과 외부적 화려함의 뒷전에서 (…) 멍들어가고 텅 빈 강정으로 되어간다"고 인식되었다.

민족경제 개념은 이상과 현실 간 모순의 '정신적 해결'

솔직히 현재의 관점에서 회고해본다면 박현채 선생의 민족경제론은 난센스에 불과하다. (필자가 감히 이런 이야기를 떠들 수 있게 된 것 자체가 박현채 선생과 그 제자들의 논의들을 읽어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죄책감을 느끼지만 이렇게 평가할 수밖에 없다.)

직관적으로 봐도, 한국인들이 현재 누리고 있는 생활 수준 정도나마 포기할 생각이 없다면 원자재 및 중간재의 수입이나 수출 그 자체를 부정적으로 볼 수는 없기 때문이다. 이 부분은 상세히 설명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외자의존의 문제도 마찬가지다. 개발기의 외자는 주로 부채 형태로 도입되었기 때문에 그것을 잘 활용해서 원금과 이자를 상환할 수 있다면 '민족 구성원'들의 고용을 늘리고 소비 수준을 높이는 데 순기능적이었다. 이는 IMF 사태 이후처럼 외자가 투자 형태로 들어와 국내 기간산업의 소유권을 획득하는 것과 상반된 외자도입 방식이었다.

예컨대 외국자본을 빌려 포항제철을 설립하고 이에서 생산된 철강의 수출로 대부금을 갚는 선순환이 이뤄졌던 것이다.

박현채 선생의 바람처럼 국내 자본이 빈약했던 당시 상황에서 "민족자본", 즉 "민족경제에 자기재생산의 기반을 갖는 자본" 혹은 "민족계 자본"만을 '밑천'으로 삼았다면 지금 한국엔 포항제철도 현대자동차도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1960~1970대의 한국(과 개발도상국들)은 기초 생산 설비도 갖추고 있지 못했다. 해외에서 생산재를 구입해야 했다. 해외에서 생산재를 사오려면 당연히 외화가 필요하다. 그러나 그 생산재는 무척 비싼 것이었기 때문에 국내에서 생산 가능한 농산품 등을 판매한 돈으로는 구입이 불가능했다. 그래서 외자를 빌려왔던 것이다.

이처럼 개발도상국의 경제발전에서 외자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였다. 외자를 얼마나 유리한 조건에 빌려올 수 있는지가 문제였을 뿐이다.

그러나 "상대적 자급자족체계의 실현"을 꿈꿨던 박현채 선생에게 '외자에 의존한' (물론 현재의 상황에서 이를 '의존'이라고 말할 수 있는지는 정말 의문이다) 당시의 경제개발은 몹시 부정적인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970년대의 한국경제는 매년 10% 내외의 사상유래 없는 경제성장을 이루고 있었다.

일본군 출신의 반민족적인 대통령의 독재적 지도하에서, 외자를 인적 연고에 따라 배당받는 '매판자본'을 주체로 이루어지고 있는 '눈부신' 경제성장을 그는 긍정할 수 없었을 것이다. 또한 이런 경제성장에도 불구하고 노동자와 농민들은 저임금, 저곡가에 시달리고 정치 테러가 횡행하고 있었다.

이 같은 이상과 현실의 분리를 박현채는 어떻게 해결했을까.

필자는 이런 모순을 '정신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박현채가 발명한 것이 바로 '민족경제'라는, 매우 모호한 개념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국민경제와 민족경제를 개념적으로 분리하고, 당대의 현실에서는 이 두 개념이 합치하지 않는다고 선언했다.

박현채에게 국민경제가 외형적 성장이 이뤄지고 있는 지역적 개념에 불과하다면, 민족경제야말로 '식민지 피억압민족' 구성원의 경제적 이해에 관련되는 영역이다. 그에게 전자의 경제성장은 허구일 뿐이었으며, 후자야말로 진정한 현실이었다.

그렇다면 진보적 경제학자의 과제는 경제성장의 허구성을 폭로하고 진정한 민족경제를 건설하기 위해 변혁이론을 생산하는 것이었으리라. 박현채와 그의 자장 안에 있는 진보적 경제담론들이 가진 경제성장 허무주의는 어쩌면 당연한 것이었다.

그러나 한국경제가 정작 저투자-저성장과 고용창출력이 미약한 '텅 빈 강정'이 되어간 것은 박현채 선생의 영향권 내에 있던 분들이 정치권력에 참여하기 시작한 이후부터였다. 정말 아이러니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계 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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