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원 교수는 한국경제가 이정우 교수가 제3의 길로 제시한 사회민주주의 경제로 전환하는 것을 가로막는 애로사항이 무엇인지를 노·사·정·관 각 주체 별로 분석했다. 이런 "정치경제적" 분석을 통해 현실을 제대로 파악하고 이에 대한 대안을 내놓아야 제3의 길로 가는 동력이 확보된다는 것. 김 교수는 특히 사회적 대화 모델을 시행하는 데 있어 정부와 재계의 자세 결여와 노조의 분열 및 전략전술 부재가 큰 장애가 됐다고 지적했다. 또한 장하준 교수가 제시한 사회적 대타협론은 재벌의 황제경영을 보장해 주는 결과만 낳을 것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전창환 교수는 이날 이정우 교수가 박정희 시대의 관치경제와 IMF 외환위기 이후 급속히 유입된 영미형 자유시장경제를 분석하는 데 있어서 '금융' 또는 '금융세계화'라는 핵심요소를 빠트렸다는 점, 그로 인해 제3의 길에 대한 논의에서도 이런 고려가 빠졌다는 점을 비판했다. 이날 이정우 교수가 한국경제의 모델로 제시한 사민주의 국가들도 영미형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금융화 노선을 걷고 있다는 것. 따라서 이런 고려 없이 무턱대고 사민주의 경제를 추구하는 것은 진정한 의미의 제3의 길이 될 수 없다는 것이 전 교수의 판단이다.
청중석에서는 '누가' 제3의 길로 가는 주체로서 큰 역할을 담당할지에 대한 논의가 활발히 진행됐다. 정건화 한신대 교수(경제학)는 기업 쪽으로 치우치고 있는 시민사회의 역할을 회복·확대하는 것을 강조했고, 김양희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 연구위원과 임종인 의원(무소속)은 정권을 잡기 전에 진용과 정책을 모두 갖춘 '준비된' 정당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편집자>
☞ 이정우 강연 '한국경제, 제3의 길은 가능한가' 전문 보기
정 태 인 (성공회대 겸임교수, 민주노동당 한미 FTA 저지 사업본부장): 감사합니다. 세상에 경제학자가 대단히 많지만, 이정우 선생님은 글을 가장 평이하게 또 평이하게 쓰고, 말도 그렇게 하시는 분이라고 생각합니다. 현재 우리 경제의 문제점을 저투자-저성장과 양극화라고 진단하고, 과거에 우리가 걸어왔던 2개의 길, 즉 박정희 모델이나 시장 만능주의로는 이런 문제점을 해결하지 못한다는 인식 하에 북구 사민주의를 제3의 길로 제시하셨습니다.
여러 가지 질문이 있을 수 있겠습니다. 가령, '북구형 사민주의를 목표로 삼고 그 길을 택해야 한다는 것이 과연 옳은 것인가', 이것은 아마 좌파의 질문일 수 있겠습니다. 두 번째로는 '갈 수나 있는 것인가, 너무나 달라서 가지 못하는 모델은 아닌가, 비현실적이다' 라는 건 우파의 비판일 수 있겠습니다. 물론 오늘 이 선생님은 평이하게 강연을 하셨지만, 이 안에는 경제 정책에 관한 수많은 논쟁이 들어 있습니다. 이어서 김기원 교수님, 전창환 교수님의 토론을 듣겠습니다.
김 기 원 (방송대 경제학과 교수): 안녕하십니까. 이정우 선생님이 발표하신 내용에 대해 저는 기본적으로 동의하는 입장입니다. 특히, 박정희 시대를 비판한 부분이라든가 제3의 길, 즉 북유럽 경제로 가기 위한 구체적인 방안까지 제시해서 기존의 논의를 한 단계 진전시킨 것이라든지, 취업자 구조를 어떻게 변화시켜야 한다든가, 임금교섭 구조를 어떻게 변화시켜야 한다든가 하는 것도 상당히 경청할 부분이라도 생각이 듭니다.
요새 우리 사회와 경제가 어디로 가야 하느냐를 둘러싸고 작명놀이, 하여튼 생태 무슨무슨 경제 등 작명을 많이 합니다. 그냥 간단하게 '북유럽 사민주의', 이러면 우리가 딱 떠오르는 게 있으니까, 이런 식으로 이야기하는 게 대중한테 훨씬 설득력도 있고 불필요한 지적 노력도 줄이지 않을까 하는 점에서 적극적으로 동의하는 편입니다.
그런데 이 교수님은 단순한 진보개혁 성향의 교수가 아니라 정권의 핵심부에서 2년 반 가까이 부대껴온 분이라는 점에서 대단히 귀중한 존재입니다. 제 생각엔 그런 경험을 진보개혁 세력이 공유하고 발전시켜야 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그래서 오늘 강연에 대한 토론도 가급적이면 그런 관점을 살려가면서 이끌어가고자 합니다. 제대로 될지는 모르겠지만, 일종의 정치경제학적인 토론을 한 번 해 볼까 합니다.
우선 현 정권의 경제정책과 이 교수님의 관계에 대해 제 나름대로 생각한 것을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우선 이 교수님은 제가 존경하는 몇 분 안 되는 선배 중 한 분입니다. 한편으로는 진보개혁적 지향성을 가지고 있고, 다른 한편에서는 인품이 훌륭합니다. 이 두 개 다 가진 분이 잘 없거든요. (청중 웃음) 보수 관료들의 평도 들어보면, 이 교수님을 한 마디로 압축해 표현한 것이 바로 '선비'입니다. 이 교수님의 진보개혁적인 지향을 자기네들이 볼 때는 '세상 물정을 잘 모른다'고 -선비가 세상 물정을 잘 모르니까- 해석해서 '선비'라고 부르기도 하고요, 또 하나는 인품이 훌륭하니까 -인품은 선비의 또 다른 덕목입니다- '선비'라고 부릅니다. 그건 저와 같은 해석입니다. 아무튼 보는 시각은 다른 거죠. 그런데 이런 이정우 선생님과 오늘 사회자로 나온 정태인 선생님 같은 진보적 인사가 청와대에 들어가 있었던 상황에서, 과연 오늘 이 교수님이 제창하신 제3의 길로 향한 진전이 제대로 이뤄졌는가? 그렇지 않은 게 아닌가 하는 생각입니다. 자, 그러면 왜 그런가? 왜 그렇게 되지 않았는가? 그러면, 앞으로 어떻게 해야 되겠는가? 이런 것에 답을 해주시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답을 두루뭉술하게 하시지 않도록, 보다 생산적이고 적극적인 토론이 이뤄질 수 있도록, 제가 먼저 제 나름의 해석을 제시해 보겠습니다.
"수구언론, 보수관료, 재계, 미국만 비판하면 되는 게 아닙니다"
제3의 길로의 전진이 왜 안 되는가 하고 생각해보니, 정치경제학적으로 몇 가지 요인이 있습니다.
첫째가 청와대에서 진보개혁 세력이 소수파에 불과했다는 것이죠. 왜 소수파에 불과했느냐? 그건 대통령의 개혁의지에 문제가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관료나 다른 보수 세력을 제대로 상대할 능력을 갖춘 진보개혁 인사가 우리 사회에 부족하기 때문이기도 하죠. 뽑으려고 해도 사람이 없다는 겁니다. 물론 숨은 인재를 발굴하려는 정권 측의 자세가 적절하지 못했던 면도 있었겠습니다만.
두 번째로 보수 세력이 상당히 공고하다는 거죠. 조선일보를 중심으로 하는 수구언론들, 삼성을 중심으로 한 재계, 보수 관료, 그리고 미국…. 정권 측은 이런 제약조건을 과대평가합니다. 자기들이 잘못한 것은 전부 이것 때문에 잘못했다고 합니다. 반대로 진보세력들은 이런 제약조건을 과소평가한다는 느낌이에요. 진보 세력들은 이 정권 내에서 주로 노무현만 비판하면 다 되는 것처럼 했습니다. 그게 아니라는 거죠. 어쩌면 노무현보다 훨씬 더 강력한 기득권 집단이 있는데, 거기에 대해서는 큰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있는 진보세력의 자세에도 대단히 큰 문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세 번째로 정권 측의 문제를 보면, 잘 아시다시피, 준비가 부족했고, 개혁의지가 부족했고, 또 경제에 겁먹은 상태에 있었던 게 아니냐는 생각이 듭니다. 예컨대 정권의 실세 중의 한 사람이었던 사람이 '사회정책은 진보로 하되 경제정책은 보수로 하자' 등과 같은 이야기를 했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저는 노무현 정부가 정치에서 가장 잘못했다고 생각합니다. 정치에서 가장 잘못했기 때문에 개혁적인 경제정책들을 실행할 동력을 확보하지 못한 것이 큰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정치에서 가장 잘못했던 것은 자기 지지 세력은 분열시키고 반대세력은 결속시킨 것이죠. 이건 대통령의 언어 구사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인데요.
"왜 서민의 정부가 서민을 괴롭힙니까?"
그 다음에 노무현 정부가 잘못한 것은 서민을 위한 획기적인 정책을 실시하는 대신에 -그걸 전혀 안 한 건 아니지만- 서민을 괴롭히는 정책들을 실시했다는 겁니다. 의도는 그렇지 않았는지 몰라도. 예컨대 신불자(신용불량자)를 처리하는 문제 같으면, 보다 더 획기적이고 적극적인 정책을 실시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고, 정권 막판에 가서 시행한 이자제한법 같은 것을 정권 초반에 실시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의견이 다른 분도 있지만 -제가 <한겨레신문>에도 몇 번 썼는데- 성매매처벌법과 같은 것은 기본적으로 전체주의 국가에서 하는 정책이고, 대부분의 선진국에서는 (성매매가) 다 합법입니다. 어쨌든 성매매처벌법이라든지 최근의 '노래방 도우미 처벌법'이라든지 효과도 없으면서 서민들을 괴롭히는 정책들을 시행했으니, 노무현 정권이 인기를 얻을 수가 없고, 다른 개혁적인 정책도 실시할 수 없었다고 생각합니다.
다시 말해, 노무현 정권에는 시장 만능주의적인 정책의 문제도 있지만은, 그것보다 어쩌면 더 중요한 것은 이 정권이 서민의 삶에 둔감한 그런 정권이 아닌가, 서민 출신이라고는 하지만 정작 서민의 삶에 대해서는 대단히 둔감한 정권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진보개혁 세력의 문제는 무엇인가요? 노무현 정권과 마찬가지로 준비가 부족하고, 전략전술이 부재하고, 과거의 관성에 따라 움직입니다. 일부 노조라든가 시민단체에서는 부패나 조직이기주의와 같은 것들이 드러났고요. 대안 없는 비판으로 신뢰를 실추시키기도 했다고 생각합니다. 이는 정치세력적인 관점입니다.
"재벌 경영권과 사회복지 맞바꾸자…황제경영 보장해 주자는 겁니다"
그 다음으로, 북유럽형 경제로 가는 제3의 길을 가로막는 애로사항은 무엇인가에 대해 이 교수님이 말씀하신 것을 조금 더 진전시켜서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사회적 대화 모델'이 잘 안 되는 이유가 뭘까요? 앞으로 분석을 조금 더 하셔야 할 것이고, 우리 모두가 해야 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생각하기에는 정부, 재계의 자세 결여와 더불어 자본 내부의 분열, 노동자 내부의 분열도 이 대화모델의 커다란 장애가 아닌가 합니다. 아울러서 민주노총의 비생산적인 정파대립이라든가 전략전술의 부재라든가 이런 것도 큰 애로사항이고요.
사회적 대화를 해서 타협하는 방안에 대해서도 뭔가 잘못돼 있습니다. 저번에 여기서 발표를 하셨던 장하준 교수라든가 좋은정책포럼 대표로 있는 김형기 교수라든가 이런 분들이 한 이야기가 뭐냐 하면, 사회적 타협을 해야 하는데 총수의 경영권을 보장하는 것과 -황제경영을 보장하자 이 말이죠- 복지를 확충하는 것, 이렇게 빅딜을 하자는 것입니다. 이건 제 생각에는 가능하지도 않고 바람직하지도 않습니다. 우선 재계가 이런 빅딜에 전혀 관심이 없습니다. 또 이런 주장을 하면 어떤 정치적 효과가 나타나느냐 하면 복지를 확충하자는 팩트는 빠지고 황제경영을 보장해야 되는 것처럼 보이게 하는 정책 효과가 발생합니다.
이보다 더 큰 문제는 IMF 사태에서 봤듯이 황제경영이 사실은 기업을 망치는 길이라는 겁니다. 나아가서 사실은 총수도 망치는 길입니다. 총수가 (황제경영으로 인해) 망가져서 감옥에 들어가고 있는 거예요. 그런데 이걸 일부 지식인들이 사회적 타협안이라고 내놓고, 또 이게 일정 정도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이런 구조가 문제라는 거죠. 아까 이정우 교수님이 스웨덴도 재벌경영이라고 하셨는데, 스웨덴에는 거대기업이 있고 총수가 있긴 해도 황제경영은 없습니다. 그런데 그런 차이를 대충 무시해버리고 일부 진보적 -진짜로 진보인지 아닌지 모르겠는데- 인사들의 이야기가 사회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 잘못돼 있습니다.
그러면 어떤 바람직한 사회적 대타협이 필요한지가 중요합니다. 대안을 내야 하니까요. 제가 생각할 때, 더 많은 부분을 생각해 봐야 되겠습니다만, 한편으로는 노동의 유연성을 확보해주고 -임금체계의 개선 등을 포함해- 그것과 비정규직 축소 및 차별 철폐와 빅딜을 하는 겁니다. 또, 기업 복지는 축소시키되 사회 복지를 확대시키는 겁니다. 사회 복지의 확대를 위해 사회적 임금을 확대시켜 가면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차별,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차별 완화도 같이 맞물려져 들어가는 것이죠. 이런 식의 사회적 타협이 필요한 것이지, 엉뚱하게 '황제경영을 보장해주고 복지를 확충하자'는 이런 식의 이야기가 횡행하고 있는 현실이 사실 큰 문제라는 겁니다.
두 번째로 북유럽은 '고부담 고복지 사회'인데, 한국 사회에서 어떻게 힘을 모아야 그렇게 갈 수 있을까가 사실 큰 문제입니다. 이 교수님도 거기까지 말씀을 안 하셨습니다. 사실은 오늘 강연에서 그런 질문을 던지신 거죠. 우리가 어떻게 해야 그게 가능할 것인가? 저도 답이 잘 안 떠오릅니다. 그런데 한 가지 방법은 우리가 덴마크 식으로 노동의 유연성을 확보하고 대기업 복지를 축소하는 대신에 세금을 많이 거두는 방안이 있습니다.
또 다른 하나는 -막연하게 생각해보니까- 북한 체제가 붕괴하면 그 땐 어쩔 수 없이 세금을 많이 걷어야 하니까 그때 확 걷어가지고 그걸 구조적으로 고착시켜서 고부담 고복지로 가는 방안, 제가 하도 답답해서 그런 것까지 생각해 보았습니다. (청중 웃음)
"영미 모델이라고 해서 다 악마는 아닙니다"
그 다음에, 이 교수님 발표 중에 북유럽 모델을 별로 변화하지 않는 모델로 발표하신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주어진 강연 시간이 짧아서 충분히 말씀할 수는 없었겠습니다만. 제 생각에는 북유럽 모델도 세계화 과정 속에서 변화·발전하고 있다는 것을 우리가 인식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서 '그건 뭘까' 하고 생각해보면, 우리 사회가 -적어도 생각 가능한 범위 내에서- 발전시킬 수 있는 것은 '시장경제와 민주주의의 균형적인 발전'이 아닌가 합니다. 시장경제를 발전시킨다는 것은 자본의 유연성과 노동의 유연성을 확대·발전시킨다는 것이고, 다른 한편으론 그로 인해 생기는 문제들을 민주주의를 통해서 -절차상의 민주주의뿐 아니라 사회경제적 차원의 민주주의를 확대시켜 나가는 것- 해결하는 것이죠.
사실 영미 모델이라 해서 모두 악마인 게 아닙니다. 영미 모델에도 일정하게 긍정적인 부분이 있습니다. 그게 바로 자본의 유연성과 노동의 유연성입니다. 물론 노동의 유연성이 과도해진 부분이 있습니다만. 그건 민주주의가 제대로 안 된 부분하고 결합이 되면서, 미국의 커다란 사회문제가 되고 있는 건데요. 그렇지만 자본의 유연성과 노동의 유연성은, 인간의 삶을 파괴하지 않는 한도 내에서는, 시장경제의 핵심입니다. 시장경제 내에서는 자원 배분을 효율적으로, 합리적으로 하는 것이니까요.
북유럽 국가들에서는, 예컨대 덴마크에서는 노조가 노동자의 해고에 대해 반대하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노동자들을 마구잡이로 자른다는 뜻은 아니고요. 어쨌든 그런 북유럽의 변화·발전을 세계화에 대응하는 방식이라고 봅니다.
물론 다른 한편으로 세계적 차원의 민주주의가 필요합니다. 세계적 차원의 시장경제와 세계적 차원의 민주주의를 결합시켜야 하는데, 세계적 차원의 민주주의와는 별도로 개별 국가 차원에서 할 수 있는 게 뭘까 궁리를 해서, 변화해 나가고 있는 부분, 특히 90년대 이후에 변화해 나가고 있는 부분을 우리가 연구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것이 제일 급한데, 사실 저도 잘 모릅니다. 우리 진보개혁 학자들이 아직 제대로 안 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열심히 하자는 취지에서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김대중-노무현 정권을 시장만능주의라고 한칼로 치는 것은 틀렸습니다"
그 다음으로, 이정우 교수님은 지난 40년간의 한국경제를 박정희 모델과 시장만능주의 모델로 설명하셨습니다. 다른 분들도 그렇게 많이 말씀하시고, 이 교수님도 강연 시간이 짧으니까 그냥 그렇게 간단하게 말씀하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만, 아무튼 저는 조금 다르다고 생각해요. 물론 박정희 시대에는 박정희가 박정희 모델을 했습니다. 그런데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권 하에서는 시장 만능주의적인 경향이 -갑자기는 아니고 그 전부터 대두되기는 했습니다만- 크게 힘이 세지긴 했는데 그렇다고 시장만능주의 모델만이 10년 동안 횡행했던 건 아니고요.
예컨대, 노사정위원회 같은 사회민주주의적인 모델이라든가 재벌개혁 같은 구자유주의 모델이라든가 과거의 빅딜(big deal) 같은 개발독재 모델이 각축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그러니까 김대중 정권과 노무현 정권을 시장만능주의라고 한칼로 때려 치는 것은 틀렸다고 생각합니다. -이와 관련해서 제가 금년 <창작과비평> 가을호에 쓴 글이 있는데 시간이 나시면 참조해 주십시오.-
자, 생각을 해봅시다. 소수파이긴 하지만 어쨌든 이정우 선생님과 정태인 선생이 (청와대 안에) 있었는데 어떻게 (노무현 정부가) 시장만능주의만으로 일관할 수 있었겠습니까. 그렇게 말씀하시면 자신들의 역할을 비하시키는 것이니까 그건 아니고요. 게다가 (시장만능주의와 박정희 모델이) 각축하고 있어요. 각축하고 있다고 봐야, 거기서 발전시킬 부분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완전히 시장만능주의 일색이 돼버렸다면 이건 굉장히 변화시키기 힘들 겁니다. 뭔가 각축하고 있는 부분이 있고, 그러니까 변화의 가능성이 있는 것이죠.
"한국은 다른 선진국들의 나쁜 점을 다 합친 선진국이 될지도 모릅니다"
다만 한국경제가 당분간 어디로 갈까 생각을 해본다면, 제 생각에는, 1인당 소득이 올라가고 민주주의가 확대되면서 선진국으로 가려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문제는 어떤 선진국이냐는 것이죠, 거기서 결국 북미식이나 영미식이냐 이런 차이가 생기는 것이니까요. 제 판단에는 적어도 상당 기간 동안은 이태리의 나쁜 점, 미국의 나쁜 점, 한국의 나쁜 점을 합친 그런 선진국으로 갈 가능성이 대단히 높습니다.
예컨대 이태리의 경우, 자영업자 비율이 선진국 중에서는 예외적으로 20%가 넘습니다. 그런 선진국이 달리 없어요. 또 이태리에서는 북쪽은 잘 살고 남쪽은 못 삽니다. 자, 한국에서 남북한이 통일되면 거꾸로죠. 그 다음에 이태리 경제는 부패자본주의입니다. 마피아도 존재하지만, 연고 자본주의도 굉장히 강합니다. 미국의 나쁜 점은 -아까 보신 듯이- 노조 조직률이 낮고, 사회 보장 제도가 약하다는 것이고요. 한국의 나쁜 점은 재벌 체제가 상당 기간 갈 것이라는 점입니다. 이런 게 모두 짬뽕이 된, 그런 선진국으로 갈 가능성이 굉장히 높다는 생각이 듭니다.
자, 이걸 어떻게 하면 바람직한 북유럽식의 사민주의로 끌고 갈 것이냐? 물론 북유럽도 완벽한 사회는 아닙니다. 우리는 그걸 토대로 해서 더 개선·발전시켜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어쨌든 그건 쉽지 않은, 대단히 어려운 일이 될 것입니다.
"'군사정권은 부동산 투기, 민주정권은 부동산 가격 안정'이라고요?"
그 다음에, 이정우 교수님의 강연 발제문에서 조금 더 치밀했으면 하는 부분들을 간단히 지적하겠습니다.
군사정권과 부동산 투기의 상관관계라는 게 대단히 흥미로운 부분입니다. 그런데, 예컨대 이렇게 다르게 생각할 수도 있지요. 김영삼 정부 이후 부동산 가격 상승이 둔화된 것은 노태우 정권의 200만 호라든가 토지 공개념과 같은 부분도 상당히 작용을 했다는 생각입니다. '군사정권은 부동산 투기, 민주정권은 부동산 가격 안정', 이렇게 너무 단순화시킨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조금 더 정치화시켰으면 좋겠고요.
그리고 비교 정치경제 모델의 그림에서 성장을 이쪽, 분배를 그 반대쪽에 두셨습니다. 이게 자칫 어떻게 받아들여지냐면, 성장과 분배는 꼭 양자택일적인 것처럼 보이기 쉽거든요. 성장을 하기 위해서는 분배를 포기해야 되는 식으로…. 제 생각에는 성장을 이렇게(X축에) 갖다 놓고, 분배를 이렇게(Y축에) 갖다 놓는, 그런 입체적인 모델을 그리면 좋겠습니다. 제가 기하학이 좀 약한데 어쨌든 그런 부분을 생각해 볼 수 있겠고요.
사실 스탈린 모델에 관해서는 저는 생각이 조금 다릅니다. 제 나름의 독자적인 생각인데요, 스탈린 모델이 분배를 추구하는 것 같은데 사실 분배를 내세우지만 그쪽도 이쪽 모델(박정희 모델)에 속한다는 생각입니다. 무슨 말이냐 하면, 박정희 모델이라는 건 자본과 노동 사이의 분배 구조를 악화시켜서 성장을 추진한다는 건데요, 스탈린 모델도 역시 자본과 노동의 분배 구조를 악화시키는 것입니다. -자본과 노동의 분배구조를 악화시킨다는 것이 무슨 이야기냐 하면, 인민의 생활을 악화시키고, 즉 크게 개선시키지 않고, 그 대신에 국가가 자본의 역할을 대신해 축적도 하고 무기도 만드는 겁니다.- 그런 면에서는 (스탈린 모델과 박정희 모델에도) 유사한 면도 있다는 겁니다. 모델을 잘 설정을 하셨는데요, 지금보다는 더 입체화시키고 다양화하셨으면 좋겠다는 생각이고요.
경제민주주의와 산업민주주의, 이것도 용어 구분이 불분명한 것 같습니다. 그리고 노무현 정권 아래서 사회복지 예산이 증가한 것이 주로 국민연금 수혜자가 증가했기 때문이라고 하셨는데, 제가 얼핏 보기에는, 꼭 그렇지 않은 것 같기도 합니다. 대략 이 정도입니다. 고맙습니다.
정 태 인: 감사합니다. 경제학자들 중에 진보개혁적 지향과 인품이 훌륭한 분은 이정우 선생님뿐만 아니라 김기원 선생님도 그렇습니다. (청중 웃음) 발랄해지시기까지…. (청중 웃음) 제가 (김기원 선생님의 질문에) 대답을 안 해도 된다는 것이 다행입니다. 다음으로, 전창환 선생님이 이야기해 주시겠습니다.
전 창 환 (한신대 국제경제학과 교수): 정치경제학계에서 이정우 선생님과 김기원 선생님은, 어떻게 보면, 제가 배웠던 선배나 선생님 격입니다. 저는 그 밑에서 여러 가지 새로운 아이디어를 배웠던 그런 연배이고, 지금도 이런 문제의식을 계속 이어서 고민하고 있습니다. 저도 개인적으로 <한겨레신문> 등과 같은 여러 매체에서 제3의 길이나 북구모델에 대해 써왔습니다. 많은 관심을 가지고 이런 주제들을 공부해 왔고요, 지금도 조금 보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정우 선생님의 발제문 기조에서, 논의의 핵심에서 결정적으로 빠져 있는 게 있다고 생각하고, 그것을 중심으로 오늘의 논의를 가져가 보려고 생각합니다.
저는 참여정부를 보면서 이렇게 생각합니다. 예를 들면, 분배나 사회정의 등과 관련해서는 -보는 사람마다 다를 텐데요- 뭐가 좀 되는 것 같다, 기본적인 틀은 되는 것 같다고 이야기 합니다. 하지만, 사실 정작 중요한 것은 '금융'입니다. 보시면 알겠지만, 참여정부에서는 금융과 관련해서 굉장히 많은 개혁이 돼 있습니다. 동북아 금융허브, KIC(한국투자공사), 국민연금….
장병완 기획예산처 장관이 지금 하는 일이 뭐냐면, 연금 기금운용위원회를 현재 가입자 대표들로부터 떼 가지고 민간 전문가가, 소위 금융 관료나 금융 전문가들이 운용을 할 수 있도록, 전문화 시키려고 하는 일련의 시도입니다. 이런 게 과연 뭘까요? 또한 경제 정책의 중요한 핵심에서 소위 금융 관료 내지는 금융 엘리트들이 전문적으로 자기 영역을 확보하면서 나머지 주요 정책에 관여했던 사람들이 배제되는 양상이 많이 생겼다고 저는 봅니다.
어떻게 보면, 이정우 선생님도 전공이 소득 분배나 노사 관계 이런 쪽이다 보니까, 아무래도 참여정부나 21세기의 경제 핵심인 금융과 관련해 제3의 길로 가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 한국의 이전 모델에서 금융에 어떤 문제가 있었는지 등에 대한 문제의식이 심하게 이야기하면 '전혀 안 들어와 있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금융 관점 빠진 제3의 길이라니요?"
그게 어디에 반영이 돼 있냐면, 우선 첫 번째 박정희 모델을 평가할 때, 흔히들 노동 배제적인, -그 다음으로 꼭 붙이는 게- 금융 억압적인 발전국가 모델이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쉽게 말하면, 박정희가 금융을 틀어쥐고 굉장히 강하게 규제를 해서 금융을 억압했다는 겁니다. 박정희가 금융억압을 해서, 소위 영미식 국가들, 미국, 호주, 영국 등 지금 자본시장통합법 쪽으로 가는 그런 국가들과는 달리, 금융이 엉망인 상태, 공무원이 금융을 다 좌지우지 하는 것이 사실 박정희 때 만들어진 겁니다.
바로 이것이, 금융에 관심을 가지고 공부를 하는 사람 입장에서 봤을 때는, 굉장히 취약한 고리인데요. 제가 보기에는 이정우 선생님은 (박정희 모델을 이야기할 때) 노동 배제, 인권 탄압 이런 쪽만 이야기 하시고, 박정희 모델의 핵심 중 하나인 금융억압적인 정책이 갖는 폐해 등에 대해서는 별로 언급이 없는 것 같습니다.
그게 (제2의 길인 시장만능주의로) 넘어가게 되면, 저는 시장 만능주의의 핵심은 자본시장을 전면적으로 사회경제 규제 기능의 핵심으로 가져다 놓는 것이라고 봅니다. 금융시장, 자본시장의 수익성을 전면으로 사회 조정의 핵심기제로 가져가는 것이죠. 그 안에 투자은행(IB)이라든지, 기관투자가라든지, 자본시장이라든지 이런 것들이 들러붙어가지고 시스템을 바꿔나갑니다.
제가 보기에는 이 선생님은 시장 만능주의를 설명하실 때도 이런 것들의 영향력과 중요성에 대한 언급을 별로 하지 않으신 것 같습니다. 1997년 외환위기 발생 과정에 대한 이정우 선생님의 설명에서도, 관치 하의 억압된 금융 시스템이라는 박정희 모델의 유산과 1990년대 중반의 급속한 금융규제 완화가 맞불려 위기가 발생했다는 점이 충분히 부각되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참여정부가 금융허브 추진했을 때 진보진영은 '방치'해 버렸습니다"
이렇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자본시장의 규율을 그야말로 전면에 내세우는 그런 세계에서, 자본시장의 핵심적인 가치는 유동성입니다. 다시 말해서, 투자자, 소액 투자자가 본인이 싫으면 주식 팔고 나가고, 언제든지 사고 이러는 겁니다. 언제든지 자기가 편할 때 (주식을) 현금으로 바꾸는 것, 이런 속성을 우리가 유동성이라고 부릅니다.
21세기 자본주의는 자본의 유동성을 극대화하는 것을 제도적으로 보장하는 시스템으로 가고 있고, 그 첨단을 걷는 나라가 바로 미국과 영국입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서민의 아픔을 달랜다는, 서민의 경제를 개선한다는 참여정부가 -김기원 선생이 주장했지만 둔감한 것은 당연한 거고요- 그런 서민 정책보다는 영미에서 지고의 가치로 생각하는 자본시장의 유동화를 점점 강화하는 정책을 동북아 금융허브 때부터 추진했던 겁니다. 그렇지요?
일군에서 이렇게 이야기하지요. '야, 자본시장 중심이나 금융세계화가 대세 아니냐, 영국도 하고, 미국도 하고.' 일부 정부 관료들은 지금 호주가 그걸(금융세계화를) 잘 해 가지고 성공한 케이스라고 합니다. 영미는 말할 것도 없고 호주도 2000년 자본시장통합법을 시행하고 자본시장을 통합해서 굉장히 짧은 시간 내에 급속하게 금융의 발전을 구가했다는 것이죠. 보시면 알겠지만, 금융 통합해서 성공한 나라는 미국, 영국, 호주입니다. 이정우 선생님이 말씀하신 앵글로색슨형 국가, 자유시장경제(liberal market economy)에서만 가능한 것이죠.
참여정부가 그걸 추진했을 때, 진보 진영에서는 어느 누구도 문제 제기를 하지 않았습니다. 한국과 같은 모델에서 소위 영미모델, 그 중에서도 법·제도도 가장 다르고 제도·시스템도 가장 다른 그런 면을 추구하는 게 과연 가능할까, 그리고 가능하지 않다면 어떤 폐해가 있을까 등과 같은 문제 제기를 했어야 했는데…. 제가 보기엔, 이정우 선생님도 별로 문제 제기를 안 했던 것 같습니다. 이 문제는 지금 방치됐던 영역이었고, 그게 지금 여전히 심각한 문제로 남아 있는 것이라고 봅니다.
"북구형 모델도 금융화로부터 자유롭지 않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럼 유럽은, 북구형 모델은 (금융세계화 시대에) 편하게 혹은 아무 제약 없이 그대로 갈 수 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아시겠지만, 유럽을 포함해 전 세계 국가들이 자본시장 간 경쟁을 합니다. 소위 '신자유주의 금융화' 시대에는 미국의 뉴욕증시와 영국의 런던증시-LSE라고 하지요-가 경쟁을 합니다.
최근 미국에서 사베인-옥슬리 법안(Sabanes-Oxley Act, 상장기업의 이사회, 경영진 및 회계법인에 대한 강화된 또는 새로운 원칙을 제시한 법)라는 법이 통과되면서 뉴욕증시에 상장하는 기업 수가 대폭 줄자, 뉴욕시장(마이클 블룸버그)이나 미국의 민주당 상원의원(찰스 슈머)이 다음과 같이 이야기 합니다. '미국의 자본시장의 경쟁력이 급격히 떨어지고 있다. 그 상장기업이 다 어디로 가느냐? 대부분 다 영국으로 가고 있다. 지금 미국은 자본시장의 경쟁력을 영국에 빼앗기고 있다.' 그러면서 이 둘은 2007년 보고서에서 뉴욕 월 스트리트를, 우리가 이미 '금융의 천국'이라고 알고 있는 뉴욕을 미국의 금융특구로 만들자고 제안합니다. 즉, 우리와 똑같이, 뉴욕에 소위 금융허브를 만들자는 이야기를 지금 하고 있다는 겁니다.
미국만 그렇게 하는 게 아닙니다. 일본도 2007년에 금융상품거래법을 통과시켜서 소위 자본시장 내지는 자본시장의 규율을, 금융수익성 규율을 시장 시스템의, 경제 시스템의 핵심으로 가져가는 그런 조치를 취하고 있고요. 유럽을 보시면, 지금 영국과 독일이 자본시장의 우위를 둘러싸고 쟁탈전을 벌이고 있는 상황입니다. 그 다음으로는 오늘 이야기가 나왔던 네덜란드가 참 재밌는 나라인데요, 네덜란드는 지금 벨기에, 프랑스와 함께 초국적 자본시장 거래소, '유로 넥스트(EURO Next)'를 만들고 있습니다. 사회적 타협의 중요한 모델 중 하나로 알려져 있는 네덜란드가, 유럽 내에서의 자본시장 간 경쟁의 한 축으로, 유로 넥스트에 포함되면서, 그 안에서는 사회적 통합 모델이 현격히 약해지는 어려움에 봉착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런 것들에 주목을 해야 될 것 같습니다.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자본시장의 규율 그리고 JP 모건스와 같은 투자은행이 1920년대 말 이전처럼 거대한 금융권력을 갖는 그런 시대가 됐을 때, 과연 사회적 타협이나 조직의 민주화, 기업 지배구조에 노동자 대표가 참여하는 제도적 시스템이 가능할까 하는 것입니다.
"금융수익성이 눈 앞에 보이는데 무슨 사회적 연대를 이야기하겠습니까?"
이런 의미에서, 사회적 타협이 가능하게 하려면 그 첫 번째 일은 금융세계화나 신자유주의적 금융화(financialization) 속에서 자본시장과 투자은행의 기관투자가와 같은 세력들을, 그리고 우리가 흔히 글로벌 플레이어, IB(투자은행) 플레이어라고 하는 사람들을 전면적으로 활동할 수 있도록 내버려 두는 방향으로 갈 것인지, 아니면 그걸 전면 거부하든지에 대해 결정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로는, 이런 흐름을 전면 거부한다면, 어떻게 금융세계화나 금융 영역에 -이정우 선생님이 말씀하셨던- 어떻게 '민주적으로 개입할 것이냐'는 문제에 대해 사고를 해야 한다는 겁니다. 이 둘 중에 어느 하나를 하지 않으면 제 느낌에는….
요새 펀드 열풍입니다. 모든 개인이 자신이 맡긴 펀드 수익률이 몇 퍼센트인지에 관심이 있습니다. 2005년 노동부와 재경부가 합작이 돼 퇴직 연금제를 만들었기 때문에, 이제는 기업들이 퇴직연금 수익률을 놓고 경쟁을 하게 돼 있습니다. 그러면 북구모델이 중요한 가치로 생각하는 사회적 연대는 안 됩니다. 금융수익성이 눈앞에 보이는데 무슨 사회적 연대를 이야기하겠습니까.
더 심각한 문제는 -제가 이미 말씀드렸던 것처럼- 지금 기획예산처 장관이 보건복지부 산하에 있는 국민연금 최고의사결정기구인 기금운용위원회에서 가입자를 떼 내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는 참여모델 식으로 노동자 대표, 시민사회 대표 등 가입자 대표가 민주적으로 참여해서 민주적으로 발언하는 -물론 사실상 그렇게 됐느냐는 별도의 문제기는 하지만- 체제였는데요, 앞으로는 그런 것을 완전히 배제하고 소위 금융 관료들과 -참여정부 내에서 고속승진을 했던 일부 금융관료들- 금융 엘리트들, 그리고 대학에서 금융경제나 재무경제, 재무관리를 공부했던 사람들이 한국의 금융을 주무르게 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사회 타협 등을 통해 북구형 모델로 가기 굉장히 어렵지 않느냐는 생각이 듭니다. 이런 흐름에 대해서 저희 진보진영이 대항을 할 필요가 있고, 여기에 대한 준비를 해야 된다는 생각입니다.
참여정부가 실패한 한 원인도, 자본시장이나 금융시장이 취약하다는 이유로 그걸 그냥 육성하는 쪽으로만 갔고, 그것이 갖는 폐해에 대한 문제의식을 깊이 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문제의식이 아이러니하게도 제3의 길을 논의하는데 있어서 거의 언급이 안 되고 있다고 하는 것은, 역시 이정우 선생님의 사고 틀 내에서는 금융 문제가 부차화돼 있지 않나, 이런 문제의식을 전면으로 가져와서 고민을 하셨다면 오늘의 논의가 달라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지금 '금융'을 놓쳐 버리면, 다른 어떤 방법으로도 제3의 길은 불가능해집니다"
마지막으로 하나만 더 말씀드리겠습니다. 비교 자본주의 모델은 영미형 모델이냐, 조정형 시장모델이냐 이런 것을 구분합니다. 하지만 이제는 독일도 그렇고, 미국도 그렇고, 유럽도 그렇고, 호주도 그렇고, 모두 파이낸스 캐피털리즘(finance capitalism, 금융자본주의)입니다. 모두 금융자본주의로 가고 있는데, 다만 '어떤 상이한 버전의 금융자본주의냐' 에서만 다릅니다.
독일을 예로 들겠습니다. 독일의 슈뢰더 사민당 정부가 무엇을 했느냐면, 우리가 생각했을 때는 굉장히 친(親)노조적인 정책을 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데요, 사실은 주주자본주의(shareholder capitalism)의 틀을 만드는 데 거의 많은 시간을 보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미국의 경우, 클린턴과 ·부시 정부는 일련의 여러 가지 정책들 통해 금융자본주의로 가는 법·제오 개혁을 시행했고, 그것으로도 모자라서 이제는 뉴욕시를 금융특구로 만들려는 시도를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 어떻습니까?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자통법, KIC, 국민연금…. 200조 원이 넘는 연기금을 주식투자, 해외투자 한다, 이런 컨셉도 크게 보면 이런 쪽에 맞닿아있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금융수익성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자본시장의 유동성을 중시하는 이런 세계에서 사회적 대통합이나 사회적 합의를 어떻게 가져갈까, 이것이 문제입니다. (금융세계화에 대한) 전면 거부를 하지 않는다면, 시민단체든 노조든 금융에 대한 일정한 개입의 계기를 찾는 게 시장만능주의로 쏠리는 것을 일정하게나마 제어하는 게 아니겠냐는 생각이 들고요.
그걸 지금처럼 무관심하게 놓치게 되면 다른 제도적인 틀을 아무리 잘 쥐고 있다 하더라도 아무런 힘을 발휘할 수 없는 상태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정우 선생님의 전체 글 기조에, 21세기 금융의 핵심인 신자유주의 금융화와 금융자본시장의 제도적인 특징, 그리고 그것이 갖는 문제들을 충분히 이끌고 오지 않은 점을 지적하는 것으로 이야기를 마치겠습니다.
정 태 인: 글로벌라이제이션(globalization, 세계화)의 핵심은 금융화이고, (전 세계 국가들이) 금융화를 경쟁적으로 내재화하고 있는 가운데 어떻게 사민주의, 또는 다른 대안이 가능한가에 대한 질문이었습니다.
청중 중에 혹시 오해하는 분이 있을 것 같아서 제가 하나만 이야기하고 넘어가려고 합니다. '제3의 길'은 이미 유행이 된 기든스의 표현인데요, 이것과 지금 이정우 선생님이 말씀하시는 제3의 길은 분명히 내용이 다릅니다. 이미 완전히 신자유주의로 기운 대처 시대의 경제정책에다가 인적자본에 대한 투자 등과 같은 사민주의적 요소를 몇 개 섞어놓은 것이 기든스가 이야기한 제3의 길, 즉 사회투자국가입니다. 요새 유시민 의원이 이야기하는 사회투자국가는 그중에서도 개인적 아동발달지원계좌(CDA) 등 우파적인 것만 살짝 골라내서 섞어놓은 것이죠.
이와는 다르게 이정우 선생님은 원래 진정한 의미에서의 북구 사민주의로 가자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현격히 다르지요. 다음으로 이정우 선생님 말씀 듣겠습니다.
이 정 우 (경북대 경제학과 교수): 김기원, 전창환 두 분 말씀 대단히 고맙습니다. 두 분 다 경제학계에서 가장 열심히 하고 가장 뛰어난 경제학자들입니다. 나이는 저보다 적은 것 같은데, 저는 이분들의 글도 열심히 읽고, 가끔 언론에 나오는 칼럼도 읽고, 그렇게 열심히 배우는 중입니다. 오늘 대단히 좋은 지적을 많이 해주셨습니다. 대체로 수긍이 가는 지적이기 때문에, 저로서는 할 말이 없고요. "아이고 잘못했습니다" 하고 받을 수밖에 없는 그런 지적이 참으로 많습니다.
하나하나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김기원 선생이 '청와대에서 일할 때 거기서 뭐했느냐. 생각은 이런데 실제로 해놓은 게 뭐냐' 하고 질책을 해 주셨습니다. 아마 더 심하게 꾸중을 하고 싶은데, 평소에 안면이 있다고 좀 봐주시는 거 같아요. 실제로 저희는 참여정부 전반기에 일을 한 셈인데요, 그 뒤로는 나왔기 때문에 어떻게 돌아갔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저로서는 굉장히 아쉬움이 많습니다. "좀 더 잘할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많고요. 또한 "그 때는 한다고 했는데, 결과가 어떻게 이 모양이냐"는 자책도 참 많이 듭니다.
다음에 개혁정부가 들어선다면, -저는 개혁정부가 들어서야지 이 나라가 살지 뒤로 가는 길은 결코 있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 다음 개혁정부도 이런 딜레마에 빠질 것 같아요. 한편으로는 개혁적인 인사를 많이 써서 개혁을 하고 싶은 생각이 있을 것이고요, 또 한편으로는 이렇게 하다가 갑자기 경제를 망치면 어떡하나, 특히 경제는 겁이 난다는 생각도 있을 것입니다. 사회 정책 등은 크게 사고가 날 일이 없어 보이는데 경제는 갑자기 요동칠 수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래서인지 참여정부도 경제에 대해서는 개혁적 인사를 쓰기를 꺼렸고, 사회정책 쪽으로는 개혁적 인사들을 안심하고 쓰고 그랬던 것 같습니다. 저는 그 점이 굉장히 아쉽습니다. 경제정책에서도 개혁적인 인사를 써야 경제를 살릴 수 있다, 그게 제가 청와대서 일하고 나온 경험에서 얻은 결론입니다.
"개혁은 6개월 안에 끝내야…국민은 오래 기다려주지 않습니다"
오히려 경제일수록 정말 개혁적인 인사들이 들어가서 '이걸 해야 된다' 이래야지, 그 안에서 잡음이 나고 불협화음이 생겨가지고서는 일이 안 되는 것이죠. 때문에 다음 개혁정부는 정말 개혁적인 인사로 완전히 포진해서 일을 해야 합니다. 일을 오래 할 것이 아니라 1년 안에 다 한다 이렇게 단단히 각오를 하고, 처음부터 완전히 개혁인사로만 포진을 해야 합니다.
일부 보수언론에서는 코드인사라고 시비를 거는데, 그것만큼 틀린 말이 없지요. 코드인사 안 하는 정부가 세상 어느 나라에 있겠습니까. 개혁정부는 개혁인사를 쓰는 것입니다. 또 보수정권이 들어서면 보수인사를 쓰는 것이지요. 거기에 대해서 시비를 건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되는 겁니다. 그 점이 굉장히 아쉽고요.
그러자면 개혁 진영에서도 미리 준비를 해야 되고요. 사실 개혁진영이 사실 정권에 들어가서 체계적으로 일을 본 적이 거의 없기 때문에 -장식용으로 가끔 들어간 사람은 봤습니다만- 대통령이 윗자리에서 보면 좀 불안할 수도 있겠죠. 그렇기 때문에 평소에 미리 준비를 한 개혁인사가 많아져야 하고요. 그리고 프로그램도 미리, 아주 구체적으로 짜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1994년 미국에 있을 때 룰라가 하버드 대학에 강연을 하러 왔길래 제가 가서 들어봤습니다. 마침 그 때는 브라질 대통령 선거가 임박한 때였습니다. 석 달 뒤에 선거가 있었는데요. 룰라가 포르투갈 말로 강연을 하면, 통역자가 영어로 통역하는 식으로 강연이 진행됐습니다. 그런데 룰라는 이날 강연에 자기 참모들을 다 데리고 왔어요. 그래서 청중석에서 질문이 나오니까, '그 문제는 내가 잘 모르니까, 다음 정권에서 무슨 장관을 맡을 아무개 씨가 대신 대답을 하라' 이렇게 하더라고요. 선거 몇 달 전에 이미 캐비닛(cabinet, 내각)을 다 짜고 온 것이었어요.
그런데 지금 한국은 어떻습니까? 우리 정당에도 그런 섀도 캐비닛(shadow cabinet)이 있어야 됩니다. 정권을 잡으면 누가 경제부총리를 하고 누가 복지부 장관을 할지 그 명단이 선거 몇 달 전에는 나와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이들의 머릿속에 많은 정책 구상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정권을 잡고난 뒤에 개혁을 할 수 있습니다.
밀턴 프리드먼이 시장주의의 원조가 되는 굉장히 보수적인 경제학자인데, 이 사람이 한 이야기 중에 아주 경청할 만한 게 있습니다. "어떤 정부든 개혁은 첫 6개월 안에 끝내야 된다." 저는 이 말이 상당히 맞다고 봅니다. 6개월이 너무 심하다면 적어도 1년 안에 할 만 한 건 다 해야 합니다. 그러자면 진용은 물론이고 정책까지 상당히 구체화돼 있어야 합니다.
참여정부는 어땠느냐? 인수위 때 처음으로 정책 마련에 착수했습니다. 과거 정부에 비하면 그래도 비교적 준비가 많이 된 정부였다고 합니다. 과거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정부 때나 김영삼, 김대중 정부 때 이야기도 들어봤는데, 모두 거의 준비 없이 대통령이 됐더라고요. 진용도 없고, 정책도 없는 상태에서. 참여정부의 경우, 인수위 보고서 한 번 보십시오. 굉장히 체계적이고요, 정책별로 내용이 많아서 두껍습니다. 그 2달 동안 참 열심히 작업을 했거든요. 그런데 그게 우리나라가 생기고 처음 있는 일입니다. 이 정도로 과거 정권들은 준비가 부족한 상태에서 출발을 했습니다.
그러나 국민은 오래 기다려주지 않기 때문에 1년 안에 뭔가 나오지 않으면 그 정권 자체가 제대로 유지되기도 어렵고, 좋은 평가를 받기도 어려운 것입니다.
노무현 정부가 정치를 가장 잘못했고, 특히 서민들을 괴롭히는 정책을 많이 썼다, 특히 신불자 문제, 이자제한법 문제, 성매매 처벌…. 이런 데 대해서는 의견이 조금씩 다를 수 있다고 봅니다. 신불자 문제에서는 정부가 고민했던 것은 소위 정신적 해이 문제, 경제학에서 말하는 모럴 해저드(moral hazard) 문제를 어떻게 할 것이냐, 이거 봐주면 다음에 누가 조심하겠느냐, 신불자가 됐으면 스스로 책임을 져야지 그걸 다 면제해 주고 봐주기는 어렵지 않느냐, 이런 정신적 해이 문제와 계속 다투는 과정에서 늦어진 측면이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성매매 처벌법도 논란이 많은데요. 제가 지난번에 스웨덴에 가보니까 원래 스톡홀름 중앙역 앞에 죽 있었던 사창가가 깨끗하게 싹없어져 버렸어요. '어떻게 해서 없어졌느냐'고 물어보니까 '손님을 처벌하니까 그게 없어지더라'라고 대답하더군요. 여자들도 처벌했는지 모르겠는데…. (김기원: 처벌 안했습니다.) 아, 여자들은 처벌 안하고 손님만 처벌했습니까? 김기원 선생님, 그 쪽으로 연구를 많이 하셨군요. (청중 웃음) 그걸 보면서 한국도 언젠가 이건 없애야 하는데, 손님을 처벌하면 우리도 저걸 없앨 수 있겠구나 그런 아이디어를 얻어 가지고 왔지요. 손님은 늘 봐주고 여자들만 처벌했거든요. 잘못됐죠. 그걸 참여정부가 단칼에 해치워 버렸어요. 너무 과격하고 급진적으로 한 것 같고, 적응 기간도 두면서 점진적으로 이것을 시행했어야 하지 않느냐, 이것 때문에 경기가 더 나빠지고 참여정부도 더 욕을 먹는 게 아니냐, 이거는 맞는 말이죠.
"재벌총수는 언제까지 휠체어 타고 나올 겁니까?"
'경영권 보장과 복지를 맞바꾼다,' 저는 아까 말씀드린 대로 경영권이란 것은 그런 식으로 보장해줄 원리가 없다고 봅니다. 그런 식의 보장은 주주자본주의 모델로 보든 유럽식의 관계자 자본주의로 보든 참으로 이상한 일이라고 생각하고요. 이것은 원칙대로 하는 것이 맞지 않느냐고 봅니다.
스웨덴도 재벌 체제입니다. 발렌베리가 스웨덴 경제를 장악하고 있는 범위는 거의 삼성과 비견할 정도일 겁니다. 4대 재벌그룹이 있고요, 그 중 으뜸이 발렌베리인데요. 여러 가지 행동양식이 (한국 재벌과는) 많이 다르지요. 지금 발렌베리는 5대째 내려오고 있는데, 사람들로부터 아주 존경을 받습니다.
무엇보다 이 사람들(마쿠스 발렌베리 SEB 회장과 야콥 발렌베리 인베스터 회장)은 아주 서민적으로 행동합니다. 이웃집하고 정말 이웃처럼 지내고, 주말이 되면 기사더러 집에 가서 쉬라고 하고 직접 발렌베리가 운전을 해서 백화점에 가서 쇼핑도 합니다. 잔디밭에 물을 주면서 이웃 사람하고 잡담도 하고, 아이들 학부모회에도 참석해서 발언도 하고…. 그렇게 살아갑니다. 그러니까 스웨덴 재벌은 친근한 이웃 주민처럼 살고, 세금도 많이 내고요, 사회적 책임을 다하기 때문에 국민들이 재벌이라고 해서 반감을 가지지 않고 오히려 존경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재벌들도 그런 쪽으로 가야지, 언제까지 계속 반칙 하고, 황제처럼 군림하려고 하고, '내 눈에 흙이 들어오기 전에는 노조는 안 된다'는 구시대적 생각을 고수할 건지…. 그렇게 해서는 희망이 없는 겁니다. 재벌기업의 경영만 안 되는 것이 아니고, 국민들 전체가 다 피해를 보는 겁니다. 따라서 노동자들의 참여를 확대하고 노조를 살리는 방식, 이를 통해 조직 내부에서 민주적인 결정을 이루어지도록 하는 방식이 맞지, 재벌에게 특혜와 기득권을 인정해 주고 그 대신에 뭔가를 내놓으라고 하는 것은 원칙이 아니라고 봅니다.
문제가 생기면 (재벌 총수들이) 휠체어 타고 나오고 말이죠, 8000억 원, 1조 원을 사회에 환원하겠다 이런 식으로 때우고 지나가는…. 언제까지 이걸 반복할 겁니까? 원칙대로 민주적인 방식으로 가는 것이 21세기에 맞다고 봅니다.
"간접세는 불공평…그러나 복지엔 도움이 될 수도 있습니다"
다음은 세금 문제입니다. 스웨덴은 이렇게 많은 세금으로 복지를 하는 것을 어떻게 감당 할 수 있느냐? 우리나라는 현재 세금부담률이 20%입니다. 사람들이 더 내지 않으려고 합니다. 예를 들어 종부세 때의 조세저항, 여러분들도 다 잘 아시지 않습니까? 그런데 저 사람들은 50%나 되는 세금을 내는데 어떻게 반대를 안 하고 저렇게 체제가 유지되느냐? 그 차이가 굉장히 중요합니다.
각각의 차이에 대해서 제가 설명을 하겠습니다. 무엇보다 복지 방식이 다르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스웨덴에서는 세금을 내는 인센티브가 있습니다. 세금을 많이 내면 나한테 돌아온다는 것이죠. 공공서비스 형식으로 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또 하나는 세금 구조가 상당히 다르다는 점입니다. 북유럽 전체가 간접세 중심입니다. 이게 우리하고 다른 점인데요. 우리는 (진보 진영을 중심으로) 늘 '간접세 비중이 너무 높아서 재분배가 안 된다' 이렇게 이야기를 하지요, 그리고 '소득세 비중 높여야 한다, 재산세 비중 높여야 한다' 이렇게 주장합니다. 북유럽은 반대의 길을 걸었습니다. 오히려 간접세 비중을 대폭 높여가지고 -부가가치세가 간접세인데요, 우리나라에서는 부가가치세가 10%입니다- 유럽은 대체로 간접세가 15%, 더 높은 나라는 25% 정도입니다. 바로 이게 주요 세원입니다. 이걸 가지고 복지를 하거든요.
물론, 간접세는 불공평합니다. 부자들이나 가난한 사람들이나 소주 한 병 마시면 똑같은 세금을 내니까, 소득 대비 세금을 보면 부자들은 굉장히 가볍게 내는 반면 가난한 사람들은 무겁게 내는 셈입니다. 불공평한 세금이지요. 그래서 학자들이 자꾸 간접세를 비판하고 '직접세로 가자'고 이야기를 하는데요. 유럽의 경험을 보면 거꾸로 입니다. '간접세로 가서 복지를 했다'는 것입니다.
이건 우리한테 시사하는 바가 있다고 봅니다. 왜 그러느냐? 직접세는 조세저항이 큽니다. 소득세 내기 싫죠, 재산세 제일 내기 싫습니다. 종부세에 대한 저항이 저렇게 심한 것은 다른 나라에서도 마찬가집니다. 그래서 북유럽은 소득세, 재산세는 깎아주는 방향으로 갔습니다. 최근 스웨덴이 상속세를 폐지한데 이어 부유세를 폐지할 지 말 지를 논의하고 있습니다.
재산세를 깎고 직접세를 줄이는 대신에 간접세 중심으로 가서 일단 조세저항을 막고 세금을 많이 거둬서 -소주 마실 때 세금 내는 거 모르고 그냥 돈 내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조세 저항이 적은 겁니다- 그 세금을 가지고 고(高)복지로 가는 것, 이것은 -우리도 꼭 그렇게 하자는 건 아니지만- 한 번 연구해 볼 만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일자리 말고 노동자를 보호하자…'플렉시큐러티'는 어떻습니까?"
그 다음은 유연성 문제입니다. 유연성에는 여러 가지가 잇습니다. 우리가 흔히 미국의 노동시장이 유연하기 때문에 일자리를 많이 만들었다고 합니다. 일자리를 많이 만든 건 사실입니다. 그런데 미국의 노동시장 유연성을 '외부 유연성'이라고 합니다. 맘대로 노동자를 해고할 수 있는 유연성입니다. 반면에 '내부 유연성'도 있습니다. 기업 안에서 노동력 배치를 자유롭게 하고, 노동자에 대한 훈련을 많이 하고, 실직한 노동자가 다시 새로운 일자리를 찾도록 하는 것이 내부 유연성입니다. 유럽은 주로 내부 유연성을 중시하고 있고요, 영미는 외부 유연성을 많이 강조합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스웨덴, 덴마크와 같은 나라가 (외부 유연성과 내부 유연성을 혼합한) 소위 '플렉시큐러티(flexsecurity)', 유연하면서 안전한 그런 모델로 가고 있는 있습니다. 이것이야말로 이 세계화 시대에 맞는 게 아닌가 하고 생각합니다. 특히 덴마크가 이 플렉시큐러티를 걸 잘하는데요. 제가 올 초에 덴마크에 가서 그곳 노총에서 많은 이야기를 듣고 왔습니다. 덴마크 기업은 해고를 맘대로 할 수 있습니다. 반면 네덜란드는 많이 다릅니다. 해고도 어렵고 보상도 많이 해줘야 합니다. 또 해고에 걸리는 시간이 길고, 법원까지 갈 가능성도 많고, 여하튼 골치 아픕니다. 그런데 덴마크는 그냥 쉽게 노동자를 해고할 수 있게 해준다는 겁니다. 쉽게 해고하되, 단 그 사람이 다시 금방 일자리를 찾을 수 있도록 하는 방식입니다. 그게 플렉시큐러티죠.
플렉시큐러티의 구호가 이렇습니다. "Protect the workers, not the jobs." 일자리를 보호하는 게 아니고 노동자를 보호하자 이겁니다. 노동자는 일자리를 잃습니다. 그 대신에 금방 훈련·재훈련 받아서 다른 일자리를 빨리 찾을 수 있도록 해주는 방식입니다. 바로 이런 게 지금과 같은 세계화 시대에, 특히 산업구조가 급변하는 이런 시대에 맞는 것이 아니냐는 생각이 듭니다. 다시 말해, 북유럽에서 하는 방식은, 영미와는 다르게, 외부 유연성과 내부 유연성을 양쪽 다 갖추면서 적응하는 좋은 방식이 아닌가 싶습니다.
"盧정부에서는 최초로 사회예산이 경제예산을 초과했습니다"
그 다음으로 '김대중, 노무현 정부는 완전한 제2의 길이 아니고 (제1의 길과 제2의 길이) 혼합돼 있다'고 지적하셨습니다. 맞습니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사실 진보 진영에서 김대중, 노무현 정부에 대해 "신자유주의에 투항했다"면서 너무 심하게 욕을 해온 게 아닌가 하는 생각입니다. 혼합이고요. 사실 노사정위원회 같은 것은 영미형에 없는 거죠. 그래서 노무현 정권의 성격은 이렇게 두 가지가 섞여 있는 것인데, 진보 진영은 잘못된 것만 너무 과장해서 비판하는 경향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대로 가다가는 이태리, 미국, 한국 자본주의의 나쁜 점들만 혼합된 최악의 길로 갈 수도 있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좋은 것들은 결합이 잘 안 되고 나쁜 것들은 더 잘 융합이 되고 더 잘 들러붙는 그런 성격이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체질 개선을 할 때 조합이 딱 맞는 것들을 미리 준비해 가야지, 잘못하면 좋은 건 다 떨어져 나가고 나쁜 것만 남기 쉽다고 생각합니다.
그 다음이 토지공개념과 주택 200만 호 문제입니다. 군사정부 대 민간정부. 저는 군사정부에서는 개발주의, 실적주의가 굉장히 강했다고 생각합니다. 그 뒤로 오면서 개발주의가 약해진 건 사실이고요, 물론 토지공개념이 여기에 큰 위력을 발휘했다고 봅니다. 하지만 이것(토지공개념)과 200만 호 중에 어떤 것이 지가 안정에 더 기여했는가에 관한 연구를 제가 본 적이 없습니다. '공급이 중요했느냐 아니면 토지공개념을 통한 수요억제가 중요했느냐' 이걸 실증 분석하는 것이 필요한 단계인데, 아직 그런 연구를 못 봤습니다. 저는 토지공개념이 큰 역할을 했다고 봅니다. 그리고 그것을 김대중 정부에서 다 없애 버린 건 -이를테면 분양가를 자율화했다든지 그린벨트를 풀었다든지- 크게 잘못됐고, 바로 이것이 10년 간 완전히 죽은 '부동산 투기 괴물'을 다시 살린 겁니다. 참여정부가 10.29 대책, 8.31 대책 등 강공책들을 무지하게 써서 겨우 이 괴물이 힘을 좀 잃었는데요, 이는 다음에 두고두고 교훈을 줄 것입니다.
비교 정치경제체제에 관한 그림은 성장-분배를 축으로 3차원으로 하는 게 맞겠습니다. 제가 워낙 그림 실력이 없고 해서 우선 이해하기 쉽게 2차원으로 해 본 겁니다.
스탈린 때의 성장주의와 분배…. 제가 스탈린을 굉장히 분배를 중시한 사람처럼 그려놨는데요, 사실 스탈린은 굉장히 성장주의잡니다. 분배를 아주 싫어하는 사람이고요. 심지어는 "평등주의란 말 자체는 사회주의의 적" 그렇게까지 매도했습니다. 이것은 우리로서는 뜻밖인데요, 왜냐면 많은 사람들이 '사회주의=평등주의' 이렇게 보기 때문입니다. 모든 보수 언론에 그렇게 쓰여 있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우리나라 사람들은 당연히 믿죠. 그런데 스탈린은 평등주의는 사회주의의 적이라면서 아주 맹렬하게 공격했던 사람이고, 고투자-고성장에 아주 매진했던 사람이 맞습니다. 그런데 왜 스탈린 모델을 왼쪽에 위치시켜 놨느냐면, 그러면서도 스탈린 체제에서는 사람들이 최소한의 기본생활을 무료로 누렸기 때문입니다. 사회주의적인 최소한의 공급 체계를 갖췄다는 것입니다. 지금 러시아 같은 곳에서는 체제 개혁 후에 불만을 품는 사람들이 더러 있다고 합니다. 왜냐면, 과거에 전부 공짜였던 병원에도 돈을 내야 하고 다른 공짜였던 것들에도 돈을 내야 하니까 오히려 전보다 살기 힘들어졌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특히 노인들이 많다는 겁니다. 이건 무얼 말하느냐 하면 스탈린이 분배 측면에서는 굉장히 왼쪽에 있는 정책을 채택했다는 겁니다. 스탈린의 사고방식은 그렇지 않았지만요.
노무현 정부가 복지 국가를 했지만 별로 복지 예산을 늘리지 않았다, 주로 국민연금 가입자가 늘어나고 인구가 고령화 하면서 복지 예산의 자연증가분이 많았지 정부의 노력에 의해서 인위적으로 높아진 것은 적다, 제가 이렇게 썼는데요, 이것은 맞을 겁니다. 그러나 참여정부가 복지 확대를 위해 노력한 게 없느냐? 꽤 있지요. 아동 빈곤 대책도 세우는 등 여러 가지를 많이 했습니다. 이렇게 해서 인위적으로 복지 예산을 늘린 부분도 있고 자연증가분도 많고요. 사실 노무현 정부가 자랑할 만한 것이 복지 예산 또는 사회 예산이 최초로 경제 예산을 초과한 정부라는 것입니다. 이건 대서특필해서 자랑해야 되는 건데 별로 자랑이 안 되고 그냥 지나가버렸습니다. 지난 수십 년 간 우리나라에서는 경제 예산이 사회 예산의 2배가량이었습니다. 그게 최근에 역전이 돼서 이제 사회 예산이 경제 예산보다 조금 많아졌어요. 비슷한데 조금 더 많아진 정돕니다. 그런데 이게 왜 획기적이냐? 경제 예산이 사회 예산보다 많은 선진국이 한 나라도 없습니다. 심지어 영미형이라고 하는 미국조차도 경제 예산에 비해서 사회 예산이 5배입니다. 5대 1이거든요. 선진국에서는 예산이라고 하면 거의 다 사회 예산이지 경제 예산이란 게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계속 개발주의, 성장 일변도로 가면서, 계속 다리 놓고, 도로 닦고 이런 것만 정부가 해 오면서, 줄곧 경제 예산이 사회 예산을 앞질렀던 겁니다. 그게 바로 개발주의고 토건국가입니다. 이제는 그 길을 바꿔야죠. 소프트웨어에 투자하는 방식으로 바꾸는 것이 필요한 시기입니다. 사실 지금도 많이 늦은 건데요, 늦게나마 참여정부가 유턴을 시도한 정부라는 점만은 높이 평가해야 합니다.
"정말로 주주가 회사의 주인인가요?"
이 정도로 김기원 선생님한테는 제가 비교적 상세하게 답변을 했는데요. 그 다음 전창환 선생의 코멘트는 주로 금융에 관한 겁니다. 금융의 세계화나 금융자본주의의 득세, 이런 것에 대해서 제가 글에서 거의 언급을 안 해 놨는데, 맞습니다. 이것을 해야 된다, 맞는 말이고요. 그런데 제 전공이 경제학 쪽에서도 노동이나 복지, 분배 이런 쪽이다 보니까 잘 몰라서 안 썼다는 게 제일 정확한 표현이고요. 다른 하나는 시간이 없어서 거기까지는 못 썼습니다. 이걸 쓰려면 제가 따로 공부를 해야 하는데 굉장히 급하게 글을 쓰느라고 그만한 시간이 없었습니다. 거기까지 못 들여다 본 것에 대해 양해를 구합니다.
그건 그렇다 치고, (청와대에서) 일할 땐 뭐했느냐는 비판에는 변명의 여지가 없습니다. 청와대에서 일할 때 왜 KIC, 금융허브, 연금 운용 이런 걸 제대로 못했느냐? -연금 운용을 어떻게 하느냐는 최근에 논의되고 있습니다- 제가 일할 때 이런 것들이 안건으로 올라온 것 맞고죠, 제가 볼 때도 제가 제대로 못한 것도 맞습니다. 솔직히 제가 이쪽을 잘 모르기 때문에 -이런 걸 하면 금융 전문가들의 이야기를 들어보고, 그 때 그 때 회의도 하고 이렇게 하는데요- 사실은 굉장히 제대로 못 챙긴 것이 맞습니다. 그러면서도 사실 잘 모르는 걸 가지고 주장을 강하게 할 수도 없었고, 이런 건 분업이 돼 있으니까 이걸 잘 아는 다른 분들이 맡는 것이 맞지 않나, 이렇게 생각했었던 것이죠. 어쨌든 지금 와서 보면 이쪽으로 그렇게 잘했다 자랑할 만한 상태는 못 되지 않나 싶습니다. 전창환 선생의 비판에 대해서는 별로 변명의 여지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금융화(financialization), 이건 정말 무서운 것이고요. 그 부작용이 정말 너무 심한 것입니다. 정말 이대로 세상이 갈까, 전부 펀드 열풍, 제조업보다도 금융자본이 더 우위에 서고…. 저는 이런 것도 계속 가지는 않으리라고 봅니다. 뭔가 제어 장치가 나올 것이라고 봅니다. 국경을 넘나드는 자본의 농간, 가령 우리나라에 론스타 같은 펀드가 들어와서 농간 부리고 차액 챙기고 나가는 것에 대한 규제가 머지않아서 세계적으로 나타나지 않을까 라고 생각합니다. 금융자본주의는 주주 자본주의(shareholder capitalism) 중에서도 아주 극단적인 형태라고 생각합니다.
어떻게 생각하면 참 웃기는 이야기죠. 지금은 '주주가 회사의 주인이다' 이렇게 돼 있습니다. 과연 맞는 말인지 한 번 따져볼 필요가 있어요. 지금 회사의 주인이라고 돼 있는 주주들이 주주총회에서 주인 행세하고, 싫증나면 사장도 쫓아내고 하는데요. 그 안에서는 굉장히 문제가 많죠. 왜냐면 주주들이란 언제든 자기가 마음에 안 들면 몇 초 안에 주식을 바꿀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여기에다 투자했던 돈을 저리로 빼돌릴 수 있습니다. 주식을 오래 가지고 있지도 않아요. 그러니까 대부분은 왔다 갔다 하는 유동자본이고 -아주 일부만이 대주주인데요- 그 왔다 갔다 하는 유동적인 사람이 과연 회사에 관심이 많고 애착이 있을까요? 아니면, 그 회사에서 평생 일할 노동자나 공급업체, 아니면 그 동네 주민들이 더 관심과 애착을 가질까요? 바로 이 사람들이 평생 운명을 같이 하죠. 이 사람들이 회사에 애착과 관심을 갖는 주인입니다.
저는 이해관계자 자본주의(stakeholder capitalism) 모델이 맞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앞으로 세상이 꼭 그리로 갈지, 아니면 주주자본주의가 계속 더 기승을 부리고, 그 중에서도 특히 발이 가벼운 금융자본이 국경을 넘나들면서 계속 주인 노릇을 할지는 두고 봐야겠습니다. 뭔가 이에 대한 제어장치가 나타나야 하고, 또 머지않아 폐해가 커지면서 제어장치가 나타나지 않을까, 저는 그렇게 봅니다. 이 부분은 제가 잘 몰라서 답변을 충분히 못 드렸습니다. 전창환 선생한테는 대단히 미안합니다.
정 태 인: 사실은 동북아 금융허브하고 KIC는 제 소관이었습니다. 시간을 주시면 제가 대답을 하겠지만…. 다음으로는 청중에서 질문을 받겠습니다.
정 건 화 (한신대 경제학과 교수): 제가 간략하게 이정우 선생님 강연의 결론을 요약해 보겠습니다. 우리 사회에 과거에는 박정희 모델이 있었고, 궁극적으로 박정희 모델이라는 전체적 동원 경제에는 한계가 있었고, 그 이후에는 시장경제로의 이행이나 시장경제의 독재가 나타나고 있는데, 이것을 북구형 모델로 이행시켜야 한다, 이렇게 말씀하시면서 이행의 필요성을 강조하셨습니다. 그러면서 한미 FTA는, 특히 이 안에 들어간 투자자-국가 제소제(ISD)는 그런 이행의 가능성을 차단하는 것이라는 문제를 제기하셨습니다.
그런데 김기원 교수님이나 전창환 교수님도 지적하신 게 뭐냐면, 북구 사회민주주의 사회로의 이행을 어떻게 할 것인가의 문제에서 금융세계화의 효과 혹은 우리 사회의 다른 여러 가지 현실적 여건의 문제에 대해 지적을 하셨습니다. 또 이정우 선생님은 그런 말씀을 하셨죠. '북구형 사회로의 이행이 불가능하다'고 지적하거나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불가능하다고 할 것만이 아니다' 라고 하셨습니다. (제3의 길로의) 이행 조건을 어떻게 만드느냐가 우리 과제다, 저는 여기에 기본적으로 동의합니다. 그리고 한미 FTA가 그런 가능성을 심각하게 제약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사민주의 경제로의 이행에는 시민사회의 역할이 필수적입니다"
저는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이 시민사회의 역할이나 중요성이라고 생각합니다. 역사적으로 보더라도, 또는 우리 사회의 발전 수준으로 보더라도, 정부·국가의 역할이나 주도성은 상당히 제한적이고 한계가 많다는 생각이 듭니다. 사실 선진 사회, 사민주의 국가로 간다는 것을 국가가 아니라 시민사회의 중요성이 강화된 것인데요. 그렇다면 오늘의 논의가 주로 국가의 정책과 시장 이야기를 주로 하고 있고, 조금 더 넓은 의미에서 우리 사회 전체를 움직이는 시민사회에 대한 이야기가 빠진 것이 아쉽습니다. 사실 해법은 거기서 찾아봐야 하는데, 여전히 국가와 시장이라는 기존의 익숙한 논의에만 머물고 있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다시 말해, 시민사회의 역할에서 어떤 희망이 있느냐는 문제가 훨씬 더 깊게 성찰이 돼야 하는데, 오늘 강연과 토론에서는 그런 게 부족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시민사회가 무엇이냐? 좁은 의미에서 조금 더 쪼개보면, 시장과 공동체적 시민사회로 나눠볼 수 있고. 주체로 본다면 기업, 전통적·연고적인 지역 공동체, 민주적인 결사체, 그리고 그 밖의 이익집단들 이렇게 크게 4부류가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지금 시민사회의 주도성은 기업에게로 넘어가고 있습니다. 또 여타의 이익집단들의 역할이 또 강화되고 있고. 반면 기존의 전통적이고 연고적인 지역적 공동체들이나 좁은 의미의 시민사회, 즉 민주적 결사체로서의 시민단체의 역할은 매우 작은 것이 우리 시민사회의 형편입니다.
그렇게 때문에 이 같은 시민사회 단체들의 역량이 강화되지 않으면, 이행의 조건을 충족시키거나 이행할 수 있는 가능성이 무지 낮다고 봅니다. 한미 FTA 때문만이 아니라 우리 시민사회의 여건 자체가 결정적으로 낮은 수준에 머물러 있다는 것, 북구 사민주의적 길이라는 건 그런 시민사회의 역량 강화 없이는 가기 어려운 것 아니냐는 것이지요.
예를 들어, 참여정부가 시행했던 정책 중에서도 혁신정책, 지역정책, 교육정책 등은 결국은 위에서만 만들지만, 이에 대한 호응이나 참여수준, 전달체계 혹은 평가시스템 등 모든 면에서 시민사회 주체들의 한계가 드러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시민사회 자체도 기존의 학생운동이나 사회운동의 꺼풀이 벗겨졌을 때 드러나는 것은 이익집단과 기업이 주도하는 시민사회 그 이상의 것이 아닐 때, 이 부분을 어떻게 재조직하고 어떻게 스스로 작은 대안들을 찾을지가 관건입니다. 공정무역이라든지 사회적 기업이라든지 아니면 시민사회 내부 역량의 혁신이라든지, 이념이 아니라 실제로 작은 실천들이 축적되지 않으면 대안이 없다고 봅니다.
이런 의미에서 여전히 국가 정책이나 거대한 담론을 가지고 이행 논의를 하는 것에 대해 -물론 이것도 중요하고, 한미 FTA가 커다란 재앙이라는 것을 인정합니다만- 지금은 뭔가 접근법이 달라져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정 태 인: 조금 더 추상적으로 이야기하면, 주체의 형성이라든가 각 주체의 역할에 관한 지적이었습니다.
김 양 희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 연구위원): 주체의 형성과 관련해, 제가 표면적으로 느꼈던 아쉬움 2가지를 먼저 말씀드려 보면, 이 자리에 김기원 선생님이나 전창환 선생님 말고, 이 분들도 정치경제학 연구를 많이 하시지만- 정치나 정치학을 하시는 분이 최소한 1분은 오셨어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 왜냐면 '한국경제 제3의 길은 가능한가'라는 문제는 엄밀히 따져봤을 때 경제 영역의 문제가 아니라 최소한 정치경제, 아니면 고도의 정치 영역에서 다뤄져야할 문제가 아닌가 하기 때문입니다.
"제대로 된 진보정당이 필요합니다"
또 다른 차원에서의 아쉬움 한 가지는 이정우 선생님과 정태인 선생님 밑에서 많이 배워가면서 한 때 참여정부에 몸담았던 경험을 가지고 있는 한 사람으로서, 왜 두 사람이 '청와대에 들어가서 뭐했냐'는 몰매를 맞아야 하는가에 관하여 -비호라면 비호랄까, 변명이라면 변명이랄까- '그것만이 아니다' 라는 점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무엇을 이야기하고 싶은가 하면, 주체의 형성과 관련해서 개혁인사가 좀 더 많이 들어가야 했다는 점에 조금 더 제도적으로 접근해 보면, 제대로 된 진보 정당, 개혁 정당이 없다는 현실에 대해서 좀 더 천착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아무리 두 분이 열심히 뛰었다한들, 관료들의 저항 내지는 기득권을 위한 싸움은 워낙 일상적으로 일어났고, 싸우는 것조차도 상당히 버거웠던 것이 일상이었습니다. 표면적으로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결과적으로는 막은 것이 많습니다.
혹자는 그러면 아예 들어가지 말았어야 한다고 이야기를 하는데, 저는 그렇게 보지 않습니다. 문제는 두 사람이 들어가서 뭐했느냐는 비판에 초점을 맞출 것이 아니라 보다 제대로 된, 방향을 맞춘, 실질적으로 워커블한(workable, 실행할 수 있는) 정책을 만들어서 청와대에 들어갈 수 있는 그런 정당이 부재했다는 것입니다. 바로 이런 부분에 대해 우리가 보다 심각하게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요?
이런 차원에서 한국경제 제3의 길이 가능한가, 어떻게 가능하게 할 것인가와 같은 주제를 논의하는 것도 -물론 시민사회가 나름대로 중요한 일익을 담당할 부분도 있겠지만- 청와대에 들어가서 제대로 일할 수 있는 정당을 준비하는 것에 대한 논의도 집중적으로 이뤄질 필요가 있겠습니다.
정 태 인: 정건화 교수가 시민사회의 역할에 강조점을 뒀다면, 김양희 박사는 정책정당, 혹은 정당의 역할을 강조했습니다.
김 영 수 (인천 시민): 오늘 말씀을 듣다보니까 사실 답답합니다. 거대 담론은 있는데 우리 시민사회에 와 닿는, 시민의 의식과 맞닿는 변화나 변혁은 아직도 멀었다는 느낌이 듭니다. 한국경제 제3의 길에 대한 논의는 꽤 오래 전부터 전개가 돼 왔는데 아직도 이걸 또 물어야 하는 현실에 상당히 답답함을 느끼고요.
지난번에 김대중 정부 당시 보건복지부 장관이었던 이태복 씨가 이런 이야기를 하더라고요. 본인이 약값을 50% 가량 낮추려고 했는데, 국제 제약회사의 권력 때문에 발표 하루 전에 (장관직을) 그만 두게 됐다. 우리나라 청와대 내부의 권력 관계도 이 정도라고 하는데요. 오늘 실제로 이정우 교수님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국가 권력 내에서의 외로움, 어떤 절박함을 시민에게 전하면서 앞으로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겠다는 부분도 좀 약하지 않았나는 생각입니다.
이정우 선생님한테 한 가지 질문을 드려보겠습니다. 지금 한국의 상당수 서민들이 북구식의 사회(민주)주의 경제를 좋아하고 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조금 전 전창환 교수님이 말씀하신 초국적 거대 금융자본의 권력에 대한 한국의 정치적 입장, 또 김기원 교수님께서 이야기했듯이 정치경제학적 측면에서 거대 권력과 한국과의 관계 등에 접목돼서 분배, 사회복지 이런 것들이 같이 나가줘야만 길이 보이는데, 이런 쪽에서는 아직 통일된 안이 없다는 느낌입니다. 어떤 통일된 안이 있을 수가 있는지에 대한 질문을 드려보고요.
또 하나는 실용적인 측면에서, 아까 두 분이 시민의식이라든지 시민주도와 같은 걸 말씀하셨는데, 이런 부분은 헌법적인 부분과 연결시켜 시민들한테 물어볼 필요도 있거든요. 재벌들이나 지식인들하고만 논쟁을 하다보니까 비생산적인 경우가 지나치게 많은 것 같습니다. 이런 면에서, 한국경제 제3의 길에 대한 구체적인 대안을 내서, 국민들에게 한 번 물어보고, 국민들과 함께 적극적으로 토론하는 장을 앞으로 마련할 수 없는 지를 여쭤보겠습니다.
이 정 우: 정건화 선생의 지적은 이행에 관한 방법, 특히 시민사회의 역할입니다. 제가 발제문에서도 이렇게 써놨습니다. 한국은 절대로 스웨덴 같은 북구형으로 못 간다는 비관주의가 지배적입니다. 그 이유는 한국은 노조가 너무 약하다, 인구가 너무 많다 등입니다. 물론 작은 나라가 사회적 합의 하기 쉽습니다. 북유럽 국가들 대부분 작지요. 인구가 400만~1000만 명 규모입니다. 그런데 이 두 가지가 결정적인 장애가 되는가 하면, 저는 인구는 극복 가능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반면 노조가 약한 것은 참 어려운 장애임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북유럽은 노조가 왜 이렇게 강한가? 70% 이상의 노조 조직률을 갖고 있습니다. 이렇게 노조가 많아진 제도적 계기가 된 것이 바로 실업보험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국가가 실업보험을 운영하는데, 이들 나라는 실업보험 운영권을 노조한테 줬습니다. 노조에 가입해야 실업보험을 탈 수 있기 때문에, 사람들이 다투어 노조에 가입한 것이죠. 바로 이것이 북유럽의 노조 가입률이 70%를 넘어서게 된 배경입니다. 그리고 노조가 굉장히 성공적입니다. 이들 국가의 노조는 강하면서도 책임감을 갖고 국가 경쟁력을 생각합니다. 말하자면 사회의식을 가진 수준 높은 노조로서 국가 경쟁력 강화에 일약을 담당하고 있는 것이지요.
우리는 그렇게 못 갔습니다. 오히려 수십 년 간 우파 정권들이 계속 노조를 억압해 왔기 때문에 노조가 계속 죽어갔습니다. 지금 노조 조직률이 11% 수준이고, 이제 한 자리 숫자가 눈앞에 와 있습니다. 이게 국가 경쟁력을 위해서 좋은 거냐? 아니라는 거죠. 역설적이지만, 오히려 이것이 경쟁력의 발목을 잡고 있는 가장 중요한 문제입니다. 때문에 노조도 살려야 하고, 사회적 대화도 복원해야 합니다.
"안심하고 개혁인사 많이 쓰십시오"
그런데 이렇게 노조가 11%밖에 안 되지만 제가 희망을 거는 이유가 있습니다. 1987년 이후 시민사회가 딴 나라에 비해서 급속히 성장해 왔다는 점입니다. 20년 만에 시민사회가 이렇게까지 커서 발언권을 많이 행사하고 정책에까지 깊숙이 관여하는 나라가 얼마 없을 겁니다. 저는 시민사회가 부디 타락하지 않고, 오만해지지 않고, 건전한 자세를 유지하면서 새로운 제3의 길로 가는 데 상당한 역할을 해주기를 기대하면서 희망을 피력해 봤습니다.
김양희 박사의 지적은 '이것은 결국 정치적 영역의 문제다'라는 것인데요. 그렇습니다. 정치입니다. 경제이기도 하고 정치이기도 하고. 개혁인사가 부족한 것이 사실이고요. 공부는 많이 했는데 (정권) 안에 들어가서 일해 볼 경험이 없었죠. 무엇보다 써주질 않았기 때문입니다. 과거 수십 년 간 진보적 인사가 기용된 적이 거의 없었습니다. 계속 우파 인사들, 보수적 인사들만 기용하고 기용했지요. 그래서 그 사람들은 경험이 많고, 이쪽은 이론은 강한데 경험은 없는 그런 상태에 있습니다.
그러나 제가 안에서 들어가서 느낀 것은 중요한 것은 이론이지 경험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이론과 방향이 중요한 것이지, 세부적이고 실무적인 것은 관료들이 잘 합니다. 큰 방향을 잡아주는 것이 결정적으로 중요하고요. 그 점에서 저는 안심하고 개혁 인사들을 많이 써도 된다고 봅니다. 너무 움츠릴 필요가 없습니다.
"답답하시겠지만, 이제 겨우 시작일뿐입니다"
인천에서 오신 김영주 선생의 지적은 '답답하다'는 것입니다. 물론 답답하실 겁니다. 논의가 겨우 이제 이 정도 수준밖에 안 됐습니다. 제가 글을 잘 못 쓴 책임이 제일 크지만, 보다 근본적으로는 지금까지 수십 년 간 우리나라가 우파 일색의 독재로서 이쪽(진보 진영)을 완전히 말살했기 때문입니다. 왜 저쪽 구석(관치경제)에 머물다가 이쪽 밑(시장만능주의)으로 가고 왼쪽(사민주의)으로 한 발짝도 못 갑니까? 식민지 시대에는 계속 극우파 파쇼였고, 그 뒤에도 계속 극우파가 정권을 잡아서 100년을 왔습니다.
그게 우리나라와 스웨덴의 차이입니다. 스웨덴은 100년 전 우리보다 훨씬 낮은 경제발전 수준에 있을 때 극우파가 정권을 안 잡고 좌파, 우파가 온건하게 대화를 하며 정권을 주고받았습니다. 지금도 좌파와 우파는 활발하게 대화하고 있습니다. 그런 역사가 지금의 저런 높은 수준을 가능하게 한 것입니다.
우리는 대화가 통하지 않는, 좌파를 절멸시켜 아예 씨앗도 자라지 않게 하는 100년의 역사를 경험했습니다. 그러면 앞으로는 좌든 우든 활발하게 대화해서 해답을 찾아나가야 합니다. 이제 겨우 시작일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김대중 정부부터 민주정부라고 치면 이제 겨우 10년째입니다. -100년 중 나머지 90년은 우파였고요.- 이쪽도 물론 좌파는 아닙니다. 김대중, 노무현 정부 와서 이제 겨우 중도적인 정부 정도가 된 것이지요. 이제 대화라도 하자는 것이 우리의 발전 수준이 아닌가 합니다. 이 정도 답을 드리겠습니다.
"진보세력은 도덕적인 우월감으로만 판단해서는 안 됩니다"
김 기 원: 제가 마지막으로 발랄한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아까 이정우 선생님이 말씀하셨듯 제가 성매매처벌법과 관련해서 공부를 좀 했습니다. (청중 웃음) 왜 공부를 했냐면 물론 법 그 자체도 대단히 중요하지만, 제가 '노무현 정권이 뭘 잘못했을까'-물론 잘한 것도 있지만-를 나름대로 열심히 고민하다가 잡은 열쇠 하나가 그 법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좀 연구를 했는데, 그 연구결과를 간단하게 말씀드려 보겠습니다.
선진국 중에서 성매매처벌법을 시행하는 나라는 미국하고 스웨덴 2곳뿐입니다. 미국은 기독교 근본주의가 자리 잡고 있어서 그런 것이고, 스웨덴은 여자는 처벌하지 않고 남자만 처벌합니다. 그런데 스웨덴의 경우 인구 900만 명 가운데 성매매에 종사하는 여성이 2500여 명 정도 됩니다. 성매매처벌법 만들기 전에 (성매매가) 합법이었던 상태에서 900만 명 중 2500명입니다. 옛날의 북한 또는 전체주의 국가들을 빼고는 세계에서 가장 낮은 수준입니다.
그 원인은 법 때문이 아닙니다. 사회복지 제도가 잘 돼 있어서 그런 겁니다. 사실 스웨덴에서도 이걸 법으로 처벌한다고 했더니, 눈에 버리는 거리의 여성은 줄어들었는데 대신 음성적인 게 늘어났어요. 또 성매매가 합법인 노르웨이로 가고. 그러니까 이걸 법으로 처벌한다는 발상도 문제고, 실제로 그랬을 때 서민이 어떤 영향을 받는가에 대해서는 철저한 연구와 준비가 안 돼 있어요.
제가 하도 답답해서 이 법을 만든 여성계와 토론을 하자, 공개적으로 해서 부담스러우면 비공개라도 하자 하고 여러 달 전에 이미 이야기를 다 했는데 답이 없어요. 그래서 논리가 없는가 보다. 그 사람들도 다 스스로를 다 진보세력이라고 하는데, 진보 세력이 문제를 볼 때 도덕적인 것만 가지고 판단해서는 안 되는 부분이 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도 도덕적인 우월감만 가지고 정부를 끌고 나간 부분이 있습니다.
물론 반드시 옳은 거면 당장 서민에게 피해가 가더라도 해야 하겠지만, 선진국의 경우를 보면 이게(성매매 처벌이) 옳은 방향이 아니라는 게 제가 내린 결론입니다. 분위기가 좀 부드러워졌습니까? (청중 웃음)
"200조원 넘는 국민연금, 소수의 금융 엘리트들이 다 주무르려고 합니다"
전 창 환: 정태인 선생님이나 이정우 선생님 몇 분으로 해결될 문제는 아니라고 봅니다. 전반적으로 진보 진영의 연구자나 정책 연구자들이 너무나 적습니다. 사실 이런 상태에서 무슨 제3의 길이냐, 일종의 사치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제가 볼 때는 이런 인프라가 충분히 갖춰져야 제3의 길에 대한 논의를 할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참여정부의 사회정책이나 노사관계·복지정책에는 그나마 참여형 모델이 관철됐다고 봅니다. 그러나 핵심은 노무현 정부가 자본시장 및 금융 정책에서는 철저히 배제로 일관했던 정부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금융관료 또는 재계 엘리트들이 주도했던 결과가 아닐까, 양자 간의 힘의 균형이 기울었던 결과가 아닐까 합니다.
진보진영이, 시민사회든 노동운동 쪽이든, 자본시장 및 금융 관련 핵심정책에 관련해서 진보적인 안을 내놓는 것이 굉장히 중요할 것 같습니다.
제가 보건복지부 국민연금 성과평가단의 멤버인데요, 서글프게도 민주노총도 관심이 없고 한국노총도 관심이 없습니다. 그냥 모든 걸 저한테 일임 해놓고 있는 상태입니다. 그 정책이 매우 중요함에도 불구하고 (이에 대해 논의하고 입장을 정하고 대안을 내놓는) 소위 네트워크 간의 연결이 없습니다. 사실 저도 평가단에 가서 무슨 이야기를 해야 될 지 잘 모르겠습니다.
국민연금 기금에 관한 논의는 정말 중요한 일입니다. 200조 원이 넘는 돈이고, 앞으로 3~4년이 지나면 이 돈이 500조 원, 1000조 원이 될 것입니다. 이 돈을 어떻게 하는지에 따라 한국의 자본시장은 물로 노동, 복지, 재정이 전부 왔다 갔다 합니다. 그런데 지금 그걸 누가 다 주무르려고 하느냐? 소수의 금융 엘리트들이 다 가져가려고 합니다. 이걸 제어하는 게 진보진영의 굉장히 중요한 과제가 아닌가 하는 생각입니다.
정 태 인: 금융국제화에 대해서 어떤 대안이 필요하다는 지적이셨습니다.
사실 금융허브나 KIC는 국민의 정부, 김대중 정부 시대에 재정경제부가 마련한 정책이었습니다. 동북아 구상 자체는 참여정부에서 만들었습니다만, 거기에 (금융허브와 KIC를) 끼워 넣은 거죠. 원래 참여정부의 동북아 구상, 또는 대통령의 원래 구상은 협력모델이었습니다. 거기에 허브 구상이 들어가 있었던 거죠.
제가 허브 구상에 있어서 잘못한 건 뭐냐면 재경부가 금융허브나 물류허브냐를 놓고 싸울 때, 거기다가 IT허브라는 좀 더 그럴 듯하고 가능성 있는 것을 집어넣었지, 이 2개(금융허브와 물류허브)를 어떻게 한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사실 재경부 내에서 확정된 것들에 대해 재고하기는 참 어렵습니다. KIC 문제에 대해 논의할 때, 저희 쪽이 (외환보유액 운용을) 민간 전문가들에게 넘기자는 것이었고 이헌재 당시 재경부 장관은 재경부 쪽에 두자는 것이었습니다. 아까 전창환 교수가 국민연금 기금운용이 민간 전문가들에게 넘어가는 걸 비판했지만, 당시에는 재경부로 넘어가는 걸 막는 게 중요했습니다. 결국 제가 청와대에서 잘린 지 며칠 지나지 않아 얼마 전 론스타 건으로 구속된 이강원 외환은행 행장이 KIC 사장으로 갔습니다. 사실은 제가 잘못 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자산관리업이나 금융업이란 것은 어떻게 보면 '죄수의 딜레마' 게임입니다. 그 흐름에서 빠져버리고 돈이 빠져버렸을 때의 문제도 심각하기 때문에, 어느 정도는 참여해야 합니다. 다만 재경부 같은 경제 부처가 이것을 장악하지 않도록 하는 방법이 과연 어떤 것이냐, 아예 못하게 하는 것이었느냐? 그게 더 맞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요새 재경부 출신 박병원 씨가 우리금융지주 회장을 갔다든가, 역시 재경부 출신인 변양호 씨가 자산관리회사(보고펀드)를 만들었다는 것은 재경부와 민간 금융자산가가 하나의 유착관계를 이루고 왔다 갔다 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전체에 대해서 반대하는 것은 현재로선 불가능하다는 이정우 선생님의 의견에 저도 동의합니다. 이런 자본주의 체제가 유지되는 것은 사실 불가능합니다. 이미 미국 프라임모기지 사건에서 드러났듯이, 연계가 너무나 많아졌기 때문에 감독·규제가 불가능한 상태입니다. 언젠가는 터질 것입니다.
이에 대한 대안은 금융국제화니까 세계정부에 있죠. 그렇지만 세계정부가 안 되는 상태에서는 크게 2가지 흐름이 형성되리라고 봅니다. 한편으로는 '신자유주의 저항'이라는 광범위한 시민사회 운동과 '국제금융기구(international financial institution, IMF와 World Bank 등)의 민주화'-스티글리츠가 이야기한-라는 민주화적 재편이라는 한 흐름이 생길 것입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가장 약한 수준의 규제가 세계 차원에서는 도입될 겁니다. 예를 들면 토빈세(Tobin' tax, 국경 간 외환거래에 부과하는 세금)라든가 외환가변예치제(variable deposit requirement, 유입자본 중 일정액을 무이자나 낮은 이자로 의무적으로 은행에 예치하게 하는 제도)와 같은 것들이 먼저 도입될 것입니다.
아시아 지역주의 관점에서 볼 때는, 아시아 내부의 지역금융을 통해서 완전한 영미형에서 어느 정도 거리를 두는 것도 가능하지 않을까 라고 생각합니다. 만일 정권이 바뀐다면, 현재 진행되고 있는 동북아 금융허브를 '소셜 아시아(social Asia, 호혜적 분업체계에 기초한 동아시아 공동체 슬로건)', 즉 영미형에서 벗어나는 지역금융으로 전환해 금융국제화의 대안으로 만드는 것이 현재로서 저희가 생각할 수 있는 방안이 아닌가 합니다.
"국정목표가 소득 2만불이라니…남보기 부끄럽습니다"
김 인 봉 (안양 시민운동가): 노무현 정부에서 제일 처음 했던 이야기가 바로 '1인당 소득 2만 불 시대'입니다. 사실 국민들을 잘 살게 한다는 개념은 '돈으로 잘 살게 한다'는 개념보다는 '삶의 질로 잘 살게 한다'는 개념으로 해야 하는데, 우리 사회 전체가 잘 사는 것을 돈으로 잘 사는 문제로만 환원해서 이야기하고 있는 시대이지 않습니까? 애초에 박정희 시대부터 '잘 살아보세'는 것은 오로지 잘 먹고 잘 살아보자는 물질적 개념이었고, 그것이 이어진 결과 이번 대통령 선거에서도 국민들이 '뭐가 문제냐, 도덕적인 게 뭐가 문제냐, 그냥 잘 살면 되지' 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은 것 습니다.
이렇게 해서 이명박 씨가 대통령에 당선될 경우, 그 다음에도 국민들이 '아, 이렇게는 안 되겠다'는 각성으로 나아갈 수 있겠는 지, 아니면 국민들이 자신들이 조금 더 돈을 더 잘 버는 세상을 바라게 될 것인지, 바로 이런 점을 경제학자분들도 고민해 주셨으면 합니다. 즉, 인문학적인 경제학, 이런 쪽으로 대안도 만드셨으면 좋겠는데 오늘은 좀 부족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정 태 인: 제가 보기에 경제학자 중에 가장 인문학적인 분이 이정우 선생님입니다. (청중 웃음)
이 정 우: 네, 아주 좋은 질문을 하셨는데요. 참여정부 초기에 1인당 소득 2만 불을 국정목표로 내걸었습니다. 삼성의 무슨 보고서 내용을 그대로 옮긴 모양인데요. 저는 그건 잘못됐다고 봅니다. 사실 1인당 소득을 목표로 하는 것은 너무나 유치합니다. 국정 목표가 될 수 없는 것이지요. 다른 나라 보기에 부끄러운 것인데 그렇게 나가버렸습니다. 그리고 예상대로 그게 오래 가지 않았습니다. 1~2달 2만 불 이야기를 하더니 결국 사라져버렸어요.
그런 것을 가지고는 국민들 마음을 움직일 수가 없는 것이죠. 인문학적인 경제학이 필요하다는 의견에는 전적으로 찬성입니다. 제가 경제학을 전공하지만은 사실 너무 딱딱하고 재미없고 비인간적이라는 느낌을 많이 받습니다. 경제학도 좀 더 인간적인 경제학이 돼야 하는데, 실력이 짧아서 아직 그렇게 못했습니다.
"역시 준비된 정책정당이 필요합니다"
익 명 (시민): 오늘 강연 잘 들었습니다. 오늘 하신 말씀 하나하나가 절절히 공감이 되고 우리나라가 그렇게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문제는 국민들이 찍어주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거든요. 어떻게 대중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나. 어떻게 이런 사고로 국민들을 감동시키고 표를 찍게 할 수 있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좀 듣고 싶네요.
정 태 인: 대단히 비정치적인 분한테 정치적인 질문을 하셨네요. 임종인 의원이 대답해 보시죠. (청중 웃음) 앞에 나와 있는 사람들 중에 그래도 제가 정치적입니다. 민주노동당 한미 FTA 저지 사업본부장이기 때문에. 아까 잠시 그런 말이 나왔지만, 사실 우리나라 정당 중에는 정책 정당이 없습니다. 대통령이 이렇게까지 왔다 갔다 할 수 있는 것도 그 때문입니다. 정책 정당의 후보로 대통령에 당선된 사람이라면, 그 정당의 색깔이 좌에서 우까지 다 결정돼 있기 때문에, 그 사람이 아무리 움직여도 그 사이에서 움직이게 돼 있습니다. 그런데, 다 아시다시피 노무현 대통령이 나온 민주당이 깨졌고 우리당은 잡탕정당이었기 때문에 좌에서부터 우까지 진폭이 굉장히 컸습니다. 현재로서는 정책 정당은 민주노동당 밖에 없어요. 제가 지금 민주노동당에 들어와서 하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한나라당에 무슨 정책이 있고 민주통합신당에 무슨 정책이 있습니까?
임 종 인 (국회의원, 무소속): 굳이 기회를 주신다면 한 번 말해 보겠습니다. (청중 웃음) 존경하는 이 선생님, 정 선생님의 좋은 말씀 잘 들었습니다. 지금 말씀하신 정당의 문제에서 저는 이정우 선생님과 판단이 같습니다. 정권을 잡은 후 진용을 짜고 정책을 만들어 시행하려고 하면 안 되지요. 진용과 정책을 다 정당에서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정 선생님 말씀대로, 노무현 정부와 열린우리당의 실패는 -여러 가지가 이유가 있습니다만- 결국은 지지층을 배신했기 때문입니다. 이들을 위한 어떠한 정책도 마련하지 않았고, 그것을 할 사람도 없었습니다. 바로 이것이 노무현 정부와 우리당의 불행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역시 좋은 정당이 필요하다, 최장집 선생이 말씀하신 것처럼, 저는 그것이 바로 오늘 이정우 선생님이 말씀하신 사민주의 정당이 아닌가 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정 태 인: 임종인 의원께서 좋은 정당을 만드실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것으로 오늘 이정우 교수님의 강연 및 김기원, 전창환 교수님의 토론을 마치겠습니다. 다음 강연은 10월 17일('문화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 도정일 경희대 명예교수)입니다. 많이 오셔서 오늘과 같이 활발한 토론 있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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