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우 교수는 이 강연에서 한국경제가 위기라는 경고는 과도하지만 한국경제가 '저투자-저성장'과 '양극화'라는 두 가지 근본적인 문제에 부닥친 것만은 틀림없다고 진단했다. 이 교수는 이 두 가지 문제는 현재 한국경제가 취하고 있는 '영미식 시장경제 모델'(제2의 길) 또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잔존하고 있는 '박정희식 관치경제 모델'(제1의 길)의 유산으로는 해결할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여기서 한 발 나아가 이 교수는 바로 이 두 개의 길이 저성장과 양극화라는 문제를 낳은 근본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박정희 모델이 부동산 거품경제를 통해 오늘날의 저성장-양극화의 토대를 닦았다면, 제2의 길인 시장만능주의는 이 저성장-양극화를 심화·고착시킨다는 것이다.
이 교수의 지적대로라면, '시장에 맡겨라'라는 정·재계와 보수언론의 주장은 문제의 원인을 더 강화함으로써 문제를 해결하려는 기막힌 '모순'일 뿐이다. 이 교수는 한국경제가 취해야 할 제3의 길은 현존하는 자본주의 모델 중 성장과 분배 면에서 고루 좋은 실적을 보여주고 있는 스웨덴식 사회민주주의 모델이라고 주장했다.
이 교수는 이 같은 주장을 하는데 그치지 않고 사민주의 경제로 가기 위한 구체적인 방안도 제시했다. 여기에는 △노조의 산별노조화 △사회적 대타협 △종업원지주제 확대 및 노사 공동결정제도의 도입 △'보편적 복지' 방식의 사회복지 확대 △간접세(부가가치세) 비중의 확대 등을 제시했다. 하나같이 현재 한국사회에서 논쟁의 대상이 되고 있는 것들이다. <편집자>
이 정 우 (경북대 경제통상학부 교수): 반갑습니다. 2007년 10월 2일, 남북 정상이 7년 만에 만나는 역사적인 날에 이렇게 <프레시안>과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에서 주최하는 중요한 토론의 장에 저를 연사로 초대해 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제가 여기 오기 전에 집에서 TV로 남북 정상이 만나는 장면을 보면서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특히, 1948년 김구 선생과 김규식 선생이 남북 분단을 막기 위한 최후의 노력으로 38선을 넘어 가시던 그 때의 장면이 머릿속에서 교차하고 해서 감회가 참 새롭습니다.
오늘 제가 말씀드릴 주제는 '한국경제, 제3의 길은 가능한가' 입니다. 대단히 어렵고 의욕적인 제목을 한 번 걸어 봤습니다. 제 능력에 벗어나는 제목인데요. 그러나 저는 이 주제가 중요하다고 봅니다. 앞으로 저보다 더 유능한 분이 많이 나와서 이 문제에 대해 좀 더 좋은 해답을 찾아주시기를 바라면서, 저는 '이런 쪽으로 관심을 돌린다' 정도를 오늘 강연의 목표로 잡고 있습니다.
한국경제, 위기인가?
많은 사람들이 '한국 경제가 위기다' 라고 이야기합니다. 특히 지난 몇 년 간 위기론이 팽배했습니다. "일본형 장기 침체에 빠질 것이다", "남미형 경제로 간다", "국가경쟁력이 후퇴한다" 등 대단히 많은 위기론이 나왔습니다. 그런데 하나하나 검토해 보면 대체로 과장이거나 근거가 없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한국경제가 괜찮은가? 아마 그렇다고 낙관할 수도 없을 겁니다. 한국경제가 어려운 것이 사실이고요, 분명히 과거보다 저성장-저투자입니다. 또 전보다 양극화가 심해졌습니다. 소득분배에서뿐만 아니라 산업적으로, 지역적으로, 또는 대기업-중소기업, 정규직-비정규직 등 사회 전반의 양극화가 커져가고 있고, 그 정도가 심하고, 해결책이 잘 보이지 않는 상황에 있습니다. 특히, 여러분들이 TV나 신문을 통해 다 아시다시피 비정규직 문제, 이랜드 사태나 그보다 더 오래된 KTX 여승무원 문제를 보더라도, 본인들로서는 대단히 억울할 것이고, 상황이 대단히 어렵습니다. 뭔가 해결책을 찾아야 하는데, 우리 사회가 아직도 답을 못 찾고 있는 그런 상황입니다.
'저성장'과 '양극화'라는 이 2개의 문제는 분명히 우리 앞에 놓여 있습니다. 위기라고는 볼 수 없지만, 이 2개의 문제는 과거에는 볼 수 없었던 문제이기 때문에 이것도 위기라면 위기라 할 수 있겠습니다. 사실 문제의 핵심은 지금까지 나온 위기론들보다 이 저투자-저성장과 양극화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면 왜 이런 문제가 발생했는가? 지난 40년 간 우리나라 경제가 걸어온 길을 되돌아본다면 2개의 모델이 있었습니다. 첫 번째 제1의 길은 '박정희 모델'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꽤 오랫동안 성공을 했습니다. 한 30년 성공했다고 볼 수 있겠지요. 그 다음에 나타난 것이 제2의 길인데, 이것은 '시장 만능주의', 또는 보통 신자유주의라고 하는 겁니다. 뭐든지 '시장에 맡기자'고 하는 것이고, 어떻게 보면 박정희 모델의 정반대가 되겠습니다.
박정희 모델은 다 아시다시피 철저한 관치경제입니다. 정부가 뭐든지 개입해서 지시하고, 감독하고, 자원을 '이렇게 배분해라, 저렇게 배분해라' 명령하는, 한 마디로 통제경제 또는 관치경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제1의 길이 30년 가다가 고장이 나서 주저앉았고요. 그 다음에 나타나 박정희 모델은 대체한 것이, IMF(국제통화기금) 사태 이후에 우리 사회에 도입된 시장만능주의입니다. 이것은 '모든 것을 시장에 맡기자'는 것이니까 박정희 모델과 정반대의 길로 가겠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제2의 길입니다. 이 제2의 길을 우리는 지난 10년 간 걸어오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도 역시 우리한테 맞는 옷은 아닌 것 같습니다. 저성장과 양극화라고 하는, 제가 처음에 던진 이 2가지 심각한 문제가 나타난 것도 결국은 우리가 우리한테 딱 맞는 옷을 아직 못 입고 있기 때문이 아니냐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제3의 길이 필요하겠고요. 제1의 길은 오래 전에 이미 수명을 다 했고 제2의 길도 문제가 너무나 많기 때문에 계속 가져갈 수 없다, 이렇게 보고 제3의 길을 찾아야 합니다. 그것도 아주 시급히 찾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다가는 저성장과 양극화가 오래 갈 것입니다. 이 문제들은 체제 내부에서 스스로 조정될 가능성이 별로 없어 보입니다. 이대로 가면 문제가 더 나빠질 겁니다. 환자는 대폭 수술을 해야 하는 상태입니다. 즉, 근본적인 경제 운용 패러다임을 바꾸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 패러다임을 저는 제3의 길이라고 보고, 오늘 그 방향을 제시하고, 여러분들과 함께 토론을 해보려고 합니다.
제1의 길: 박정희 모델
그러면 먼저 간략히 우리가 걸어온 제1의 길과 제2의 길에 대해서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제1의 길은 박정희 모델입니다. 박정희 모델은 1960년대에 시작해서 1980년대, 1990년대 초까지는 계속 잘 나갔다고 할 수 있는 모델이죠. 이 모델은 몇 가지 특징이 있는데, 공교롭게도 소련이 채택했던 스탈린 모델과 상당히 유사합니다. 제가 그 공통점을 몇 개 지적해 낼 수 있는데요.
첫째가 투자율이 굉장히 높습니다. 고투자입니다. 스탈린이 당시 국민소득 대비 투자율을 28%로 높였는데, 이게 당시 세계 기록이었습니다. 스탈린은 투자율을 엄청나게 높였고, 그 대신 그 대가로 치른 것이 뭐냐? 소비의 희생입니다. 국민들, 특히 농민들이 많이 굶주렸습니다. 그러니까 주린 배를 움켜잡으면서 고투자를 해서 경제 고성장을 가져왔던 모델입니다. 스탈린 시대에 많은 사람이 굶어죽었습니다. 대단히 잔인한 정책인데요, 어쨌든 공업화를 단기간에 달성하는 데는 성공했습니다. 그 때 당시의 투자율 28%를 깬 나라가 지금까지 별로 없는데, 그것을 깬 나라들은 주로 동아시아에서 나옵니다. 일본, 그리고 한국, 대만…. 아시아의 4마리의 용, 호랑이라고 불리는 이 나라들이 그 기록을 깨게 됩니다. 박정희 모델도 고투자라는 점에서 스탈린 모델과 비슷합니다.
두 번째가 중공업 우선입니다. 스탈린은 극단적인 중공업 우선 정책을 밀어붙였습니다. 당시 소련에서는 유리창은 깨지고 칫솔은 부족한데 탱크나 중공업은 아주 막강했습니다. 이런 극단적인 불균형 정책으로 경제를 끌고 갔습니다. 박정희 모델도 1970년부터 당시로서는 무리하게 보일 정도로 중화학공업 육성책을 강행했습니다. 양국이 똑같이 부국강병 정책을 썼고, 이 부국강병 정책의 핵심이 중화학 공업화에 있었다는 것이 공통점입니다.
세 번째가 대기업 중심인데요. 중소기업을 무시하고 그 희생 위에서 대기업을 집중적으로 육성한 겁니다. 소련은 아예 중소기업이 없다고 해도 좋을 정도로 대기업 우선이었습니다. 스탈린이 '달에서도 보일 정도로 큰 공장을 지어라' 라는 말을 한 적이 있는데요. 이는 대기업주의를 나타내는 말입니다. 한국도 중소기업을 거의 도외시한 채 대기업, 재벌기업 중심으로 경제가 갔습니다. 그로 인한 폐해가 지금도 나타나고 있습니다. 중소기업은 신음하고 있는데 대기업은 훨훨 세계시장을 누비고 다니고 있습니다. 이 양극화 문제를 해결해야 됩니다. 이것은 박정희 시대의 유산입니다.
네 번째 공통점은 이 모델들은 둘 다 처음에는 잘 나갔는데 20~30년을 고비로 더 이상 잘 나갈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게 한계입니다. 소련도 1960년까지는 잘 나갔습니다. 1960년에 마침 흐루시초프가 유엔(UN) 총회에서 연설을 했는데요, "우리가 앞으로 미국을 매장시키겠다, 소련 경제가 미국 경제를 매장시키겠다, 전쟁으로 무기로 매장시키는 게 아니라 경제적으로 매장시키겠다" 라고 큰소리를 치면서 흥분해서 자신의 구두를 벗어 연단을 막 내리치면서 연설을 했습니다. 그 정도로 자신에 차 있었는데요. 그러나 공교롭게도 1960년부터 소련 경제가 내리막길로 들어가고, 그 뒤로 성장률이 뚝 뚝 뚝 떨어졌습니다. 1980년대에 오면 소련 경제가 완전히 회복불능 상태에 빠집니다. 고르바초프가 페레스트로이카(개혁정책), 글라스노트(개방정책) 등 여러 가지 개혁을 한다고 했지만, 환자의 병이 이미 너무 깊어서 회복을 하지 못 하고 사회주의는 멸망하고 말았습니다.
박정희 모델도 20~30년 잘 나간 겁니다. 하지만 계속 잘 나가기는 어렵습니다. 그러면 왜 스탈린 모델이나 박정희 모델이 처음에는 잘 나갔는데 계속 못 나가는가? 그 이유는 이렇습니다. 두 모델이 하나는 아주 좌파고 다른 하나는 아주 우파입니다. 스탈린은 좌파고 박정희는 우파인데요. 그러면서 둘 다 공통점이 있습니다. 둘 다 동원 체제입니다. 둘 다 국민경제의 모든 자원을 단기간에 총동원하는 그런 체제를 갖추는 데는 성공했습니다. 이것은 너무나 비민주적이고, 명령과 억압에 의한 체제이기 때문에 처음에는 잘 나갑니다. 사람들이 움직이죠. 하지만 그게 영원히 계속될 수는 없습니다. 양적 성장 단계가 끝나고 추가적인 양적 성장 생산요소의 투입이 불가능해지면 -이를테면 농촌의 노동력도 다 도시로 올라오면- 그 때부터는 질적 성장으로 전환해야 됩니다. 그러자면 생산성 향상이 있어야 되는데, 이 생산성 향상을 위해서 가장 필수적인 것이 창의적인 아이디어, 조직의 유연성 등과 같은 것입니다. 이게 안 되는 겁니다. 이 체제 자체가. 스탈린 체제도 안 되고 박정희 체제도 안 됩니다. 민주주의를 억압했으니까요. 다시 말해, 조직이 유연하게 움직이고 사람들이 자유롭게 발상과 토론을 하는 문화, 이런 것이 안 돼 있으니까 생산성 향상이나 혁신이 한계에 부딪치고 그래서 고장이 나는 겁니다. 그래서 이 체제는 '십리도 못 가서 발병 나는 체제'입니다. 그렇게 해서 스탈린 체제도 무너졌고, 박정희 체제도 종언을 고한 것입니다.
지금도 박정희에 대해 향수를 갖고 그 때가 좋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체제입니다. 하는 데까지 하다가 그냥 끝난 겁니다. 더 이상 회복할 수 없고, 돌아갈 수도 없습니다. 사실, 지금 이 시대의 자유로운 공기를 맛본 사람이 60~70년대 유신시대로 돌아가서 살아보라고 하면 아마 한 달도 못 살 거예요. 그러면서도 그 때가 막연히 좋았다고 생각하는 착각에 빠져 있는 것입니다. 제가 여기서 보여드리고 싶은 것이 <표 1>입니다. '박정희 때 경제가 좋았다', '박정희가 경제는 살렸다'고 하는데, 제가 최근에 그렇지 않다는 증거를 하나 발견했습니다.
..................<표 1> 역대 정권의 부동산 성적표
이 표는 역대 정권의 부동산 성적표입니다. 보시면, '정권 초기의 전국 땅값 총액'이 나오고, 그 다음에 '정권 말기의 땅값 총액'이 나오고, 그 다음에 그 차액이 나오는데 바로 이것이 '지가 상승으로 인한 불로소득'이라고 파악합니다. 연평균 지가상승률을 보시면 이승만 때 21%, 박정희 때 33%, 전두환 14%, 노태우 17%, 그 다음부터 뚝 떨어집니다.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에 와서는 마이너스(-) 또는 4.5%입니다. 최근 '노무현 정부 들어와서 땅값, 집값 올랐다'고 아우성이고, 민심이 아주 흉흉했습니다. 그런데 노무현 정부 때의 땅값 상승률은 4.5%입니다. 만일 지금의 국민들이 노태우, 전두환, 박정희, 이승만 시대의 그 '땅값 폭등 시대'에 거꾸로 갖다 놓는다면 살 수 있을까요? 폭동이 일어날 겁니다. 그런데 과거는 다 잊어버리고 현재에 대해서는 굉장히 인내가 없어진 것이지요. 사람들의 참을성이 없다는 것을 이 표를 통해서 금방 알 수 있습니다.
특히 부동산 값이 폭등한 것이 박정희 시대입니다. 집권 기간 동안 '생산에 의한 국민소득 대비 불로소득'을 비교했을 때, 다른 정권들은 다 불로소득이 크긴 하지만 그래도 100% 이내입니다. 그러니까 배보다 배꼽이 작은 거지요. 박정희 때는 배꼽이 배보다 2배반이나 큽니다. 248.8%, 여러분, 이 숫자 보이십니까? 불로소득이 생산소득의 2배반이 됐던 이 기막힌 시대, 이게 박정희 시대입니다. 가난한 사람들이 살기 어려운 거예요. 성장률은 9.1%로 제일 높습니다. 이 성장은 대폭 깎아서 봐야 됩니다. 왜냐? 불로소득 거품경제가 판을 치고, 가진 자들은 더욱 더 갖고. 강남 개발 같은 것을 통해 얼마나 많은 천문학적인 돈이 가진 자들의 수중에 들어갔습니까. 반면에 집 없는 서민들은 그 때에도 집이 없었고요, 피해자들입니다. 이 거품경제의 원조가 박정희고, 그 사람이 경제를 살렸다고 한다면 큰 오해입니다. 이제 박정희를 똑바로 봐야 합니다. 이 사람이 올린 땅값 때문에 지금도 우리가, 우리 국가 경쟁력이 피해를 보는 것입니다. 지금도 우리나라의 비싼 땅값 때문에 국내에서 공장을 할 수 없어서 중국으로 갑니다. 중국에 가는 이유는 -임금이 10분의 1이라는 이유도 있지만- 그곳의 땅값이 한국 땅값의 40분의 1이니까요. 지난 40~50년 동안 어떤 대통령이 가장 무책임하게 땅값을 폭등시켰는가? 박정희가 전국 개발했죠, 전국 다니면서 테이프 끊고 기공식 하고 그랬습니다. 그러면서 땅값에 대해서는 완전히 방치해 버렸습니다. 그렇게 해서 부동산 값을 폭등시킨 이 책임을 우리가 엄중히 물어야 하는 겁니다. 개발주의, 단기실적주의, 테이프 끊고 잘했다 박수 칠 일이 결코 아닙니다.
최근에 이명박 후보가 청계천 또는 대운하, 즉 개발주의 토건국가를 들고 나왔는데 이것은 박정희 모델입니다. 시대에 맞지 않습니다. 이런 옛날식 패러다임을 갖고서 어떻게 21세기 국제경쟁을 헤쳐 나갈 수 있을지 참으로 걱정스럽습니다.
흔히 군부정권 또는 독재정권이 '독재는 했지만 경제는 잘했다'고 합니다. 경제성장률을 보고 그렇게 평가하는 것이지요. 당시 성장률은 9.1%(박정희), 8.7%(전두환), 8.3%(노태우)입니다. 그 뒤에 오는 정권들 보십시오. 7.1%(김영삼), 4.2%(김대중), 4.2%(노무현)로 성장률이 떨어졌습니다. 하지만 경제발전 초기에는 원래 잘 나가는 겁니다. 중국도 지금 경제성장률 10% 하지요, 그런데 계속 10% 못 합니다. 떨어지게 돼 있습니다. 다른 하나는 이 사람들이 한 경제성장이란 결국 전국을 개발해서 -개발주의 토건국가로- 땅값 올려서, 그 부담은 뒤에 오는 정권, 뒤에 오는 후손들한테 두고두고 떠넘기면서, 자기 임기 중 생색을 낸 겁니다. '외상경제'지요. 따라서 이것은 깎아서 봐야 되는 것이고요. 다시 말해, 군부정권의 경제성장률은 대폭 할인해서 봐야 된다는 겁니다. 뒤에 오는 정권들은 땅값을 올리지 않고 신중하게 경제를 운용한 것이기 때문에 깎을 게 없는, 그대로 받아들 수 있는 성장률입니다. 이제 우리가 이 점을 인식하고 '민주 인사들은 경제운용에 실패했다'는 최근의 이 잘못된 유행어에 그대로 넘어가면 안 됩니다. 책임 있게 경제를 운용한 사람은 역시 민주 인사들입니다. 군부정권들은 대단히 무책임하게 자기 임기 중에 실적 내기에만 급급했지 그 뒤에 오는 책임은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 때 당시 물가 많이 오르고 땅값 많이 올라서 지금도 우리나라 물가가 세계적으로 비쌉니다. 세계에서 땅값이 제일 비쌉니다. 왜 이렇게 됐습니까? 이 문제의 뿌리를 근원적으로 찾아 들어가면, 바로 이 '경제 살렸다'고 하는 군부정권들한테 책임이 있다고 봅니다.
제2의 길: 시장만능주의
그 다음에는 제2의 길을 살펴보겠습니다. 제2의 길은 시장 만능주의입니다. 이것은 특히 IMF 사태 이후에 급속히 도입됐습니다. 그 이전만 하더라도 철저히 관치경제였지요.
전두환 정부 시절 아웅산에 가서 폭발·사망했던 사람 중에 김재익이라는 청와대 경제수석이 있었습니다. 이 사람은 당시로서는 아직 보기 드문 시장주의자였습니다. 미국에서 공부를 하면서 당시 미국에서 싹트기 시작한 시장주의 또는 신자유주의에 깊이 경도돼서 한국에 돌아와서 그걸 자꾸 주장하고 다녔어요. 전혀 먹혀 들어가지 않았고, '무슨 저런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느냐'며 주위에서 냉대를 받았고, 너무나 인기가 없었습니다. 그 사람의 회고록을 읽어보니까, 당시 청와대 안에서도 이 사람이 복도에 나가면 옆방에 있는 청와대 동료들조차도 인사를 안 하고 고개를 돌릴 정도로 냉대를 받았다고 나와 있습니다. 그게 1980년대일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어떻습니까? 시장주의가 판을 치고 있습니다. 김재익의 사상이 지금은 오히려 주류가 됐고요, 시장에 어긋나는 다른 주장을 하면 냉대 당하고 왕따 당하는 그런 세상이 됐습니다. 20년 만에 세상이 이렇게 변한 겁니다.
이 시장만능주의는 IMF 신탁통치시기에 강요에 의해서 그렇게 된 면도 있고요. 또 하나는 우리 내부의 많은 사람들이 미국 유학을 가서 경제학을 공부하고 돌아와서 그렇게 된 면도 있습니다. 비단 학자들뿐만이 아닙니다. 언론계, 관계, 재계 등에서 워낙 유학을 많이 갔기 때문에 지금은 미국 유학을 갔다가 돌아온 시장주의자들이 도처에 포진해 있고, 이 사람들이 언론 칼럼을 거의 다 장악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시장'은 이 사람들이 아주 신성시하는 단어이고, 여기에 대해서 반기를 드는 사람은 뭔가 이단적인 사람, 틀린 사람, 시대에 뒤떨어진 사람 이렇게 따돌림 받는 그런 세상이 돼버렸습니다. 이것도 사실은 극단적인 것입니다. 박정희 모델이 극단적인 관치경제였고 그것 때문에 한계에 부닥쳐 저절로 주저앉았듯이, 시장 만능주의라도 우리나라처럼 이렇게 극단적으로 가는 경우는 잘 없을 거라고 봅니다. 너무 정반대 쪽 극단으로 온 겁니다.
어떤 나라에든지, 시장과 정부는 경제를 운용하는 두 개의 중요한 주체입니다. 그 비율은 나라마다 다르지요. 그 둘이 힘을 합쳐서, 어떤 것은 정부가 맡고 어떤 것은 시장이 맡고 해서 경제가 굴러가는 것입니다. 다만 그 비율은 나라마다 다릅니다. 각 나라의 역사와 정치사회 구조 등 여러 가지 요소들의 영향을 받아서 결정됩니다. 그런데 지금 보수언론과 한나라당 그리고 보수 경제학계가 늘 시장, 시장 하면서 '모든 것을 다 시장에 맡기자', '부동산도 시장에 맡기자', '교육도 시장에 맡기자', 이렇게 주장하고 있습니다. 제가 볼 때에는 대단히 무책임한 주장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됐을 때 어떤 결과가 올지 미리 내다보고 그런 소리를 하는지 모르겠어요. 그냥 미국 경제학 교과서에 '시장'이라고 나와 있으니까 그냥 맹목적으로 시장을 주장하는 게 아닌지, 제 눈에는 그렇게 보입니다. 분명히 이대로 가면 큰 사고가 나고 낭패를 볼 게 뻔 한데도 그렇게 주장하는 것이죠.
예를 하나 들어볼까요. 국민의 정부 때 IMF의 많은 압력을 받아서 시장원리로 많이 갔고요, 민영화도 꽤 많이 했습니다. 또 부동산 정책에서, 그 때 당시 시장원리를 한다고 하면서 규제를 많이 풀었습니다. 그 중에 대표적인 것이 분양가 자율화가 있었고요, 그린벨트도 풀었습니다. 토지 공개념 3법도 그 때 셋 다 없앴습니다. 이게 전부 다 '시장원리 해야 한다'는 시장주의자들의 강력한 요구를 못 이겨서 한 것인데, 결과는 어떻습니까? 그 결과는 2002년부터 부동산 가격이 폭등한 것입니다. 부동산 가격이 얼마나 많이 올랐고, 민심이 흉흉했고, 정권이 흔들릴 정도가 되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그 피해는 고스란히 참여정부가 입은 겁니다. 지금은 다시 분양가 자율화를 없애서 분양가 상한제를 실시하고 아파트 원가를 공개하는 등 다른 정책들을 많이 도입해서 이제 겨우 이 문제를 잡은 겁니다. 묻고 싶습니다. 2000년 당시 분양가를 자율화해야 된다고 주장했던 그 시장주의자들이 지금 다 어디에 있습니까? 정말 시장에 맡기면 모든 문제가 다 풀린다고 생각하는 것인지 묻고 싶어요. 시장만으로 되지 않는 겁니다. 저 사람들은 뭐든지 시장만 내세우면 된다고 생각하는데, 이것만큼 위험하고 극단적인 생각이 없습니다. 관치경제가 위험하듯이 시장만능주의도 대단히 위험한 겁니다. 많은 사람들이 다치고 죽습니다.
제3의 길
결국 좀 더 균형을 잡아야 되고요, 뭔가 새로운 길을 찾아야 됩니다. 제3의 길을 찾아야 합니다. 그러면 이 새로운 길은 어디냐? 박정희 모델은 한 마디로 정치적 독재입니다. 그리고 경제적으로도 독재지요. 정치와 경제 양면의 독재·비민주성을 특징으로 합니다. 지금은 어떻습니까? 정치는 1987년 이후 20년 만에 많이 민주화 됐습니다. 지금 술집에 앉아서 아무 걱정 없이 대통령 욕할 수 있지 않습니까? 이게 젊은이들한테는 당연하게 보이겠지만, 나이 50이 넘은 사람들은 제 말을 이해할 겁니다. 그 때 술집에 앉아서 마음 놓고 대통령 욕을 할 수 있었던 것인지. 택도 없는 일이지요. 제2의 길은 시장의 독재입니다. 이것을 '마켓 데스포티즘(market despotism)'이라고 하는데요, '시장 하는 대로 내버려 두자'는 겁니다. 그 시장독재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희생되는 겁니다. 약자들은 살기 어렵습니다. 이처럼 제1의 길은 정치적 독재고, 제2의 길은 시장의 독재라면, 제3의 길로는 보다 인간적이고, 보다 민주적인 그런 경제모델이 있지 않겠는가, 그것을 한 번 찾아보려고 합니다. 대안을 찾기 위해서, '지금 세계경제에 어떤 모델들이 있는가'를 그림으로 설명해 보겠습니다.
이 그림은 비교정치경제 모델에서 나오는 모델입니다. X축과 Y축이 있습니다. X축에서는 오른쪽으로 갈수록 성장을 중시하고, 왼쪽으로 갈수록 분배 또는 재분배를 중시하는 그런 체제입니다. Y축에서는, 위로 갈수록 정부가 경제에서 많은 역할을 하고, 밑으로 갈수록 경제를 시장에 맡기는 그런 체제입니다. 이렇게 본다면, 이 2개의 기준으로 여러 체제가 나올 수 있습니다. 네 개의 체제가 나올 수 있겠는데요. 제일 왼쪽에 있는 것이 사회주의 체제입니다. 스탈린 모델이 바로 저기에 있는 것이지요. 이것은 정부가 명령하는 경제이고, 분배는 강조했지만 성장은 무시하는 모델입니다. 지금 소련, 중국 등 거의 모든 사회주의 국가들이, 살기 위해서, 저기서 탈출해 오고 있습니다. 그게 체제 개혁이죠. 안타깝게도 북한은 아직도 저 체제를 고수하고 있고, 아직도 저성장과 빈곤에 허덕이고 있습니다.
또 하나가 박정희 모델입니다. 오른쪽에 있는 관치경제인데 -박정희 모델이나 스탈린 모델이나 둘 다 명령경제라는 점에서 똑같이 X축 위에 가 있고요- 박정희 모델은 극우파의 모델입니다. 이 모델의 출발은 일본식 관치경제입니다. 메이지 유신 후에 이토 히로부미 같은 사람이 미쯔이, 미쯔비시를 찾아다니면서 '제발 좀 제조업에 투자하시오, 그러면 그 대신 이러이러한 특혜를 주겠다'고 제시합니다. 이게 일본식 관치경제의 출발이고 일본식 부정부패, 정경유착의 출발입니다. 이 모델이 1930년대 만주국에 와서 다시 '만주국 모델'이란 이름으로 나타나는데요, 이것을 주도한 사람이 다섯 명이 있습니다. 이들을 '니키 산스케'라고 부릅니다. 이름이 '키'로 끝나는 사람이 2명, '스케'로 끝나는 사람이 3명이 있었기 때문에 '니키 산스케'라고 부르는데요. '니키' 중에 여러분이 잘 아는 사람이 도조 히데키입니다. 전범으로 처형된 도조 히데키인데요, 당시 관동군 사령관으로서 만주에 있었습니다. 이름이 '스케'로 끝나는 사람 중에는 기시 노부스케가 있고요. 이 사람은 전범인데 처형을 당하지 않았고, 해방 후에 총리가 되고, 자민당의 원조가 된 사람입니다. -그 외손자가 바로 최근에 사표를 낸 아베 신조입니다.- 이 사람들이 통제경제 실험을 한 곳이 바로 만주국이었고요. 박정희가 젊은 시절 그곳에서 군관학교도 다녔고, 일본군 소위로 1년 정도 근무도 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마 박정희 머릿속에는 이 만주국 모델이 뿌리 깊게 있었을 것이고, 바로 이것이 나중에 그가 쿠데타를 일으키고 대통령이 된 후에 자신의 경제철학의 바탕이 되었을 것이라고 봅니다. 히틀러도 경제는 살렸습니다. 히틀러는 대공황을 극복했고, 경제를 살리는 군비지출을 강화했고, 통제경제를 했습니다. 이렇게 해서 경제는 많이 좋았지요. 다시 말해, 저 관치경제 모델은 처음에는 잘 나갑니다. 하지만 오래 가지는 않습니다. 그 비민주성으로 인해 결국은 무너지게 돼 있는 체제입니다.
그러면 이제 X축 밑으로 가야 됩니다. 저 사회주의도 망했고, 이 관치경제도 망했고. -일본 경제도 이제 여기서 벗어나려고 하는데 빨리 못 벗어나기 때문에 지금 장기침체에 빠져 있다고 봅니다.- 밑으로 오자니, 세 개의 대안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제일 오른쪽이 자유시장 경제, 또는 앵글로색슨 모델이나 신자유주의 모델, 혹은 시장만능주의라고 불러도 좋겠습니다. 좀 더 왼쪽에 유럽대륙형이 있습니다. 오스트리아, 벨기에, 독일, 화란(네덜란드), 스위스 이런 나라들이 여기에 속합니다. 유럽대륙형 왼쪽에 북구 사민주의 체제가 있습니다. 덴마크, 노르웨이, 스웨덴, 핀란드가 여기 해당합니다. 이 세 개가 지금 우리에게 주어진 대안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우리가 IMF 사태 이후에 10년 간 해온 것, 즉 제2의 길은 바로 이들 중 하나인 자유시장 경제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디에 있습니까? -일본은 아직 X축 위에 있습니다.- 관치경제의 유산을 청산하지 못해 아직 정부의 규제가 많이 남아 있으면서, 또 일부에서는 지난 10년 간 자유시장 경제, 앵글로색슨 모델을 급속히 받아들였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관치경제와 자유시장경제, 이 두 개가 혼합된 체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편으로는 이게 남아 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저게 있고 해서, 말하자면 체제가 하나로 깔끔하게 정리가 되지 않고, 내부에서 많은 충돌이 일어나는 그런 체제인 것입니다. 이제는 정리가 돼야 됩니다. 어느 한쪽으로 수레가 굴러가야 됩니다. 서로 반대되는 2개의 수레가 하나는 앞으로 가려고 하고, 다른 하나는 뒤로 가려고 하면서 삐거덕거리는 것, 이런 상태에서 지금 우리 경제가 갈 길을 못 찾고 헤매고 있습니다. 그게 바로 현재의 상태라고 봅니다.
저는 이것(자유시장경제)도 답이 아니고 저것(관치경제)도 답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왼쪽에 더 좋은 길이 2개(유럽대륙형과 북구형) 있습니다. 그 둘 중에 유럽대륙형은 별로 취할 게 못 되는 것 같습니다. 왜냐? 옛날에는 잘 나갔습니다. 독일 경제는 1980년대까지는 잘 나갔지요. 독일은 한 때 세계의 모델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아닙니다. 지금은 제일 허덕이고 있는 나라들이 유럽대륙형 국가들입니다. 우선 성장률이 낮고요, 실업률도 높은 편이고, 일자리 창출이 안 됩니다. 양 체제(영미형과 북구형)에 비해서 혁신 속도도 떨어집니다. 그래서 유럽대륙형은 이 세 체제(영미형, 유럽대륙형, 북구형) 중에서 가장 성적이 나쁩니다. 그래서 이쪽은 취할 바가 못 된다고 봅니다.
그러면 남는 것이 양쪽 2개(영미형과 북구형)입니다. 자유시장 경제로 그대로 갈 것이냐, 그러면 제1의 길, 관치경제를 하루 빨리 청산하고, 즉 불필요한 규제 이런 거 다 없애버리고, X축 밑으로 빨리 내려오는 방법이 있습니다.
박근혜 후보의 이번 선거공약이 '줄푸세'라고 합니다. 여러분, '줄푸세' 들어봤습니까? '줄푸세'가 뭡니까? 세금을 줄이고, 규제는 풀고, 원칙은 세운다는 것입니다. '줄', 세금을 줄이겠다는 것은 X축 상에서 오른쪽으로 가겠다는 것이고요. 거기에는 낭떠러지가 있죠. 거기는 사람이 못 사는 뎁니다. 그리로 가겠다는 것이 박근혜입니다. 그래서 틀렸고요. 규제는 푸는 게 맞습니다. '줄푸세' 중에 맞는 것은 '푸'입니다. '푸'는 맞는데 '줄'은 틀렸습니다. 다음으로 '세', '원칙 세운다'는 것은 농민들이나 노동자들이 불법 시위를 하면 법대로 처벌하겠다, 저런 불법이 판치지 못하도록 하겠다, 말하자면 한국의 대처가 되겠다는 말입니다. 세, 글쎄요, 그렇게 해서 원칙이 세워질까요? 저는 그렇지 않으리라고 봅니다. 결론적으로, 저는 '줄푸세' 중에 맞는 것은 '푸' 하나밖에 없다고 봅니다.
한국은 자유시장 경제 국가들보다 정부 규모가 훨씬 더 작고 복지가 잘 안 돼 있습니다. 복지가 너무 안 돼 있어서 문젠데, 이걸 더 줄이겠다고 하는 건 아주 냉혹한 경제 철학입니다. 그렇게 하면 사람이 많이 죽죠. 그래서 2가지(북구형과 영미형) 중에 자유시장 경제 쪽으로 갈려면, 규제는 줄이되 세금은 오히려 더 늘여야 될 겁니다. 세금 늘이고 복지 늘이면서 자유시장 경제로 가는 방법이 하나 있겠습니다. 아니면 북구 사민주의로 가는 방법이 있겠는데요. 각 자본주의의 주요 경제성과를 보겠습니다.
..............<표 2> 3자본주의의 주요 성과
제일 위에 나온 것이 북구 사민주의입니다. 네 나라(덴마크, 핀란드, 노르웨이, 스웨덴)가 여기 속합니다. 그 중간에 있는 게 유럽대륙형이고요. 그 밑에 영미형 시장 만능주의 국가들이 나와 있습니다. 보시면, 일인당 소득은 세 집단이 거의 같습니다. 성장률에서는, 1960년부터 1980년까지는 북구형이 제일 높고 그 다음이 영미형이었는데, 최근 20년 사이에 그게 바뀌어서 지금은 영미형이 2.3%로 제일 높고, 그 다음이 북구형 2.1%입니다. 그 다음이 좀 떨어져서 유럽형(1.7%)입니다. 그 다음으로는 고용증가율, 일자리 창출 면에서 큰 차이가 나는데요, 북구형과 유럽대륙형은 고용증가율이 각각 0.1%, 0.8% 인데 비해서 영미형은 1.7%입니다. 지니계수도 많은 차이가 나는데요, 지니계수를 보면 유럽이 미국보다 훨씬 평등합니다. 미국뿐 아니라 영미형 국가들은 대체로 다 지니계수가 높습니다. 그러니까 영미형 국가는 불평등한 겁니다. 최근 우리 사회의 양극화도 우리가 제1의 길에서 제2의 길로 급속히 가면서 나타난 현상으로 보입니다. 게다가, 미국의 경우를 보면, 한 번 그 길로 가면 양극화가 좀처럼 멈추질 않습니다. 30년째 계속 불평등이 심해졌거든요.
이런 것들을 보더라도, 우리가 취할 만한 가장 좋은 모델은 북구형이라고 생각합니다. 영미형에 비해 성장률이 낮지 않고요, 다른 장점도 많습니다. 북구형이 영미형보다 못한 게 있다면 고용창출이고, 나머지는 거의 다 북구형이 더 낫습니다. 예를 들어, 재정상태가 더 낫고요, 또 분배가 평등하고, 사회 문제, 범죄 같은 게 거의 없고, 사회 연대가 잘돼 있지요. 말하자면, 살기 좋은 따뜻한 사회입니다. 북구형의 또 하나의 특징은 수출을 많이 한다는 겁니다. 영미형에 비해서 수출 비율이 굉장히 높고요, 훨씬 대외 지향적입니다. 그리고 수출 주도적이기 때문에 경쟁력을 훨씬 더 민감하게 생각합니다. 경쟁력에 신경을 많이 쓰고, 따라서 임금 인상도 많이 자제합니다. 다음 표에는 '실업률'이 나와 있는데요.
..................<표 3> 3자본주의의 실업률(1980-2003)
한 때에는 유럽의 실업률이 너무 높았고, 그래서 그런 현상을 '유럽병'이라고 부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최근 통계를 보니까, 유럽의 실업률도 이제 많이 낮아졌습니다. 평균 실업률을 보면, 영미형 국가들의 실업률이 한 때는 10% 정도였는데 지금은 5.6%로 떨어졌고요. 유럽대륙의 실업률도 굉장히 높았다고 하는데 지금은 5%대입니다. 북구도 5%대입니다. 최근에는 실업률이 다 평균 5%대로 떨어졌습니다. 그런데도 우리에게는 '유럽은 실업률이 높다'는 강한 인상이 남아 있는데요, 그것은 아마 과거 10년 전에 그랬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10년 전만 해도 실업률이 10%가 넘는 나라가 많았거든요. 프랑스, 독일이 그랬고, 이 표에서 빠져 있는 스페인의 실업률이 특히 높았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실업률 자체에서는 큰 차이가 없어졌습니다. 다만 최근 10~20년 사이에 일자리 창출 속도에서는 굉장히 차이가 납니다. 일자리 창출은 차이가 많이 나는데 실업은 비슷해진 이유는 무엇일까요? 고용률에서 차이가 나기 때문입니다. 유럽 국가들은 다른 나라에 비해서 고용률이 높습니다. 고용률은 '100명 중에 일을 하고 있는 사람이 몇 명이냐'는 겁니다. 유럽에서는 일자리를 가지고 있는 사람의 비중이 높습니다. 특히 북구의 고용률이 높습니다. 대개 70%입니다. 100명 중에 70명이 일한다. 집에서 노는 사람이 없고, -주부들이나 학생들은 통계에서 빠지지만- 빠지는 사람이 적고, 나이 많은 사람이나 여자들이 밖에 나와서 일을 많이 하기 때문에 고용률이 높습니다. 우리나라는 고용률이 낮고요. 이걸 높이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지요. 많은 사람들이 복지에 의존해서 사는 것보다는 일을 해서 사는 게 좋고요, 그렇게 하자면 고용률 자체가 높아져야 합니다.
그 다음으로 이 세 모델은 임금협상 제도에서 결정적인 차이가 납니다. 다음 표를 보시면, 앞에는 노조 조직률이, 그 다음에는 단체협약 적용률이 나와 있습니다.
.................<표 4> 세 자본주의의 힘금협상 제도(1980-2000)
우리는 대개 '지난 20년 동안 세계적으로 노조가 쇠퇴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한국 언론이 특히 그걸 강조해 왔지요. 근데 이 표를 보시면 북구의 노조는 쇠퇴하지 않았습니다. 1980년대에 노조 조직률이 72%였는데, 지금도 71%입니다. 북구 노조는 쇠퇴하지 않았습니다. 노조가 쇠퇴한 것은 유럽대륙형과 영미형입니다. 유럽은 노조 조직률이 42%에서 32%로 떨어졌고, 영미형은 47%에서 26%로 떨어졌습니다. 특히 영미형이 많이 떨어진 겁니다. 엄청나게 떨어졌습니다. 또 하나의 차이는 단체협약 적용률입니다. 독일의 경우, 노조 조직률이 35%에서 25%로 많이 떨어졌지요, 그래서 노조가 별 볼일이 없겠구나 싶은데, 그렇지 않습니다. 왜냐? 중요한 것이 단체협약 적용률입니다. 노조는 없더라도 노조가 단체협약을 맺으면 그 협약이 적용되는 범위는 노조보다 훨씬 넓습니다. 독일의 경우, 단체협약 적용률은 68%나 됩니다. 이게 큰 차이가 나는 거죠. 단체협약 적용률에서 유럽은 70%대인데 비해서 이쪽(영미형)은 뚝 떨어집니다. 자유시장 경제, 즉 영미형은 -제가 일부러 영미형 국가들의 적용률 평균을 내지 않았습니다. 호주가 80%의 적용률을 갖는 예외적인 나라이고, 나머지는 전부 10%, 20%, 30%거든요. 그래서 평균을 내면 이상하게 나옵니다.- 호주만 빼고 보면 노조도 약하고 적용률도 약합니다. 반면 유럽에서는 노조가 아주 세고 적용률도 높든지, 아니면 노조는 약해졌지만 여전히 적용률은 높습니다. 유럽에서는 아직 노조가 살아 있는 겁니다.
노동조합과 경제
이게 우리한테 많은 시사점을 줍니다. 한국은 노조 조직률이 11%니까 미국 수준보다 더 낮지요. 단체협약 적용률도 11%입니다. 한국에서는 단체협약이 노조 이외에는 적용이 안 되니까요. 그러니까 적용률도 역시 최하위로 바닥에 있습니다. 영미형보다 더 밑에 있는 나라가 한국인 것입니다. 이게 과연 잘하고 있는 것인가 하는 의문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북구가 저렇게 높은 노조 조직률을 가지고서 수출 잘하고 있습니다. 수출주도형 경제거든요. 어떻게 그게 가능할까요? 강한 노조일수록 오히려 임금 인상을 자제하는 겁니다. 왜 그럴까요? 임금 협상 방법에 차이가 나기 때문입니다. 유럽 국가들은 임금 협상을 할 때 중앙집중식 또는 산별식으로 합니다. 그에 비해서 영미형 국가들에서는 -분권화가 많이 돼가지고- 훨씬 미시적으로 협상을 합니다. 미국에서는 기업별로 임금 협상을 하기까지 합니다. 예를 들어서, GM(제너럴모터스) 노조가 최근 파업을 하고 임금 협상을 하고 있는 겁니다. 반면 유럽에서는 기업 단위 협상을 하지 않습니다. 적어도 산별, 지역별 또는 전국 협상, 이렇게 합니다. 물론 세계적으로는 임금협상이 분권화, 분산화 되고 있습니다. 그건 사실입니다.
그런데 기업별 협상을 하는 나라, 제일 밑에 와 있는 나라는 일본하고 한국밖에 없습니다. 이게 잘하고 있는 것이냐? 아니라는 겁니다. 왜 이런 게 우리나라에 들어왔을까요? 박정희, 전두환 시대에 '산업별로 임금협상을 하면 노조가 과격해질지 모른다'며 이를 통제하기 위한 수단으로 기업별 임금협상을 도입한 겁니다. 노조를 탄압·통제하기 위한 수단으로 임금협상을 기업별로 쪼개놓자, 그러면 힘을 못 쓸 것이다, 이런 발상이었을 것 같습니다. 그게 그 시대에는 맞았습니다. 그런데 지금 시대에도 맞느냐, 민주화된 이후에도 맞느냐? 이제는 안 맞습니다. 바로 여기에서 제도의 부조화가 나타나고 있는 겁니다. 독재 시대에는 정치도 독재고, 경제도 독재고, 노조를 탄압하고 임금을 억압하는 게 가능했습니다. 지금은 안 되지요. 정치가 민주화 됐기 때문입니다. 밑에서 계속 부글부글 끓으면서 올라옵니다. 그러면서 임금인상 요구가 나타나고, 기업별로 임금협상을 하다보니까 협상 비용이 너무 많이 들고요. 모든 기업에서 매년 임금협상을 하지 않습니까? 머리에 붉은 띠 두르고 하는 과정에서 노사가 서로 감정 다 상하고 원수 되고…. 돌아서서 내일부터는 다시 악수하고 같이 일을 해야 되는데 이렇게 해가지고 되겠습니까? 싸움은 저 위에서, 안 보이는 데서 하는 게 좋습니다. 산별로 하든지, 전국에서 하든지, 싸움은 안 보이는데서 하고 기업 안에서 매일 보는 사람끼리는 친해야죠. 다시 말해, 기업별 노조, 기업별 임금협상이란 대단히 잘못된 체제인 것입니다. 독재 시대에 맞는 낡은 옷을 우리가 아직도 입고 있습니다. 이제는 이 옷을 바꿔 입어야 합니다. 산별 노조, 산별 임금협상으로 가야 합니다.
지금 금속노조가 산별로 가고 있습니다. 첫 시도인데요. 상당히 어렵습니다. 왜냐? 기업 측에서 이걸 겁을 냅니다. 산별로 가면 과격해질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죠. 그런데 유럽의 경험을 보면, 산별로 가고 전국별로 갈수록 임금 인상을 자제합니다. 경제학 이론에 이미 그게 증명이 돼 있습니다. 자기끼리 하면 많이 올려도 괜찮아요. 우리 기업에서 100% 올리면 노동자한테 제일 덕이죠. 전국으로 가도 그럴까요? 전국 단위 노조에서 임금을 2배로 올리면 어떻게 됩니까? 물가가 왕창 오릅니다. 자기가 임금협상에서 올렸던 것을 다 까먹게 되요. 그러니까 전국 단위로 가면 노동자들한테 책임감이 생기는 겁니다. '임금을 많이 올리면, 물가가 오르고, 수출 경쟁력 떨어지고, 경제 망치고, 결국 나한테 피해가 다 돌아오는구나' 이렇게 느낍니다. 그래서 임금 인상을 자제하게 됩니다. 그런데 개별로 협상을 하면 임금을 올릴수록 나한테 득입니다. 그러니까 미시로 보느냐 거시로 보느냐 그 차이고요. 현재 우리는 기업별 노조라는 큰 함정에 빠져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데, 이게 우리 경제의 큰 문제입니다.
일본이 우리와 똑같이 기업별 임금협상을 합니다. 그런데 일본은 괜찮습니다. 왜냐? 일본은 오랫동안 노사화합의 전통을 가지고 있습니다. 싸우지 않습니다. 그래서 기업별로 임금협상을 해도 별 문제가 없고, 노사가 그런 대로 조화를 이루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만 이 제도 때문에 엄청난 갈등 비용을 치르고 있는 겁니다. 이걸 바꿔갈 필요가 있겠다는 생각입니다.
경제민주화를 어떻게 이룰 것인가?
그리고 이제는 정치의 민주화는 됐는데 경제는 민주화되지 못한 이 부조화, 이것을 해결해야 합니다. 이게 제3의 길의 핵심이라고 봅니다. 어떻게 할 것이냐? 하나는 옛날식으로 되돌아가자, 박정희 시대가 좋았다,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꽤 있습니다. '역시 그때 식으로 밟아야 돼', 이런 식의 과격한 소리를 술집에서 가끔 듣습니다. 이것은 불가능한 일이죠. 옳지도 않고요. 박정희 모델은 아까 말씀드린 대로 수명을 다 한 것인데 그게 굴러갈까요? 안 굴러갑니다. 그러니까 결국 앞으로 나가는 길 밖에 없습니다. 경제도 민주화해야 되는 겁니다. 정치는 20년 간 많이 민주화 했는데 경제는 저 뒤에 있고, 이 둘 사이의 부조화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경제를 민주화하는 방법으로 저는 두 가지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는 거시적인 측면에서 봤을 때 '사회적 대타협'입니다. 예를 들어, 네덜란드가 경제 위기를 맞았을 때 1982년 '바세나르 협약(Wassenaar Accord)'을 맺어서 노사가 대타협을 이뤘습니다. 임금 인상을 자제하고, 일자리 만들고, 복지 확충하고, 이렇게 해서 경제의 기적을 이루어 냈습니다. 그래서 이것을 네덜란드의 기적, '더치 미러클(Dutch miracle)'이라고 부릅니다. 더치 디지즈(Dutch disease), 즉 화란병 환자가 벌떡 일어나서 화란의 기적을 이뤄낸 겁니다. 그게 사회 대타협의 위력입니다. 다른 예로는 아일랜드가 있습니다. 지난 20년을 뒤돌아 봤을 때, 영미형 국가들 중에서 제일 경제성장률이 높은 나라가 아일랜드입니다. -사실 예외적으로 성장률이 높은 아일랜드가 영미형 국가들의 전체 성장률 평균을 높여주고 있고요, 그래서 아일랜드를 통계에서 빼야 할지도 모릅니다.- 아일랜드가 어떤 나라입니까? 오랫동안 영국 식민지였고, 가난한 나라였습니다. 억압과 설움의 나라, 우리나라와 비슷한 나라였습니다. 그런데 몇 년 전 이 나라가 영국을 앞질러서 1인당 소득 3만 불을 달성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이를 기념해서 몇 년 전에 아일랜드의 수도 더블린에 '더블린 스파이어(Dublin spire)'라는 아주 높은 첨탑을 세웠는데요. 저는 사진만 봤습니다. -제가 한 번도 아일랜드를 가본 적이 없어서 한 번 가보고 싶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노래 '아 목동아'에 나오는 런던데리라는 항구도시도 한번 가보고 싶고요. 아일랜드는 우리 민족성하고도 통하는 데가 있는 것 같아 더 가보고 싶습니다.- 여러분도 혹시 아일랜드에 가시게 되면, 더블린 스파이어라는 뾰족한 첨탑을 꼭 보고 오시기 바랍니다. 아일랜드가 이렇게 고성장을 한 것이 1987년부터 20년 동안 3년마다 사회 대타협을 갱신하고, 많은 외국자본을 끌어들이고, 그렇게 해서 -유럽의 다른 나라들이 다 1~2% 성장을 하는데- 아일랜드만 4% 단독질주를 해왔습니다. 이런 것이 사회 대타협의 위력이라고 생각합니다. 사회적 대타협이 거시적인 관점에서 이뤄져야 한다고 보고요.
미시적으로 들어가면, 조직 하나하나가 민주화돼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조직의 민주화, 모든 조직에서 민주화가 돼야 하는데요. 우리가 달성한 정치적 민주화, -지난 20년 간 정치적 민주화에는 성공했다고 하니까요- 그 민주화는 말하자면 대통령 선거를 체육관에서 하지 않고 국민이 투표장에서 1인1표를 행사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미시적으로 들어가면 조직 하나하나는 아직도 구체제, 낡은 사고방식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병영문화가 아직도 권위적이고요, 거기서 사고가 수시로 터집니다. 학교, 아직도 비민주적인 게 많이 남아 있고, 수시로 사고가 터지지 않습니까. 병원도 굉장히 권위적입니다. 종교조차도 권위적입니다. 우리나라의 거의 모든 조직이 아직도 권위적입니다. 독재의 잔재를 아직도 청산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이야기하는 경제조직, 즉 기업을 볼까요? 기업 내부는 아직도 굉장히 비민주적입니다. 재벌들의 황제경영이 아직도 횡행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에 맞지 않죠. 이런 것들을 민주적인 조직으로 바꿔가야지 정치와 경제의 부조화가 해소되고, 앞으로도 계속 굴러갈 수 있는 지속성을 가지는 그런 경제체제가 성립할 수 있는 겁니다.
자, 그러면 경제조직, 즉 기업을 민주화 한다고 했을 때 그 방법이 뭐냐? 두 가지 모델이 있습니다. 하나는 '경제민주주의'입니다. 경제민주주의는 소유의 민주화입니다. 노동자들이 자기 기업의 주식을 갖도록 하는 '종업원지주제'가 핵심입니다. 종업원지주제는 영미에서 많이 성공을 했습니다. <그림 2>를 보시면 경제민주주의와 산업민주주의라는 2개의 큰 방향을 볼 수 있습니다.
오른쪽으로 가는 것이 소유를 민주화하는 것인데요, 소유의 민주화는 영국과 미국에서 많이 발달해 있습니다. 특히 미국의 ESOP(Employee Stock Ownership Plan)이라는 종업원 지주제는 많은 혁신기업에서 도입을 했습니다. 현재 1만 개 이상의 기업이 ESOP을 시행하고 있고 굉장히 성공적입니다. 생산성을 높이고, 애사심도 높이고, 근속년수도 높이고, 이윤도 늘어나고…. 미국에는 '고(高)성과 작업장'이 많은데요, 주로 ESOP을 하는 기업들입니다. 반대로 독일은 산업민주주의가 많이 발전한 나라입니다. 소유가 아니라 의사결정 쪽에서의 민주주의가 발전한 겁니다. 독일은 공동결정제도(Mit-bestimmung)를 시행하고 있는 유일한 나라입니다. 대기업의 경우, 이사회에 노동이사 1명이 참석합니다. -이사회 위에 감사회가 있는 이중 지배구조인데요- 감사회에는 노사가 동수 혹은 3분의 1씩 참석해서 노동자들의 의사를 반영하고 있습니다. 이 같은 의사 결정의 민주화를 '산업민주주의'라고 부르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 2개의 서로 다른 길을 조금씩 절충해서 시행하는 나라가 스웨덴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한국과 일본은 경제민주주의와 산업민주주의 둘 다 아직도 미발달된 상태에 있습니다. 한국은 종업원지주제, 우리사주제를 -아직은 부족하지만- 조금은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독일보다는 약간 오른쪽에 한국을 위치시켜 봤습니다.
한국이 경제 민주화를 이루려면, 이 세 개의 길(미국형, 독일형, 스웨덴식 절충형) 중 어느 하나를 택해 조직을 민주화하고, 그렇게 해서 기업이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담아내야 하는 겁니다. 그걸 계속 배제하고 '노조는 안 된다'는 옛날 독재시절에 했던 그런 사고방식으로 노조의 목소리를 들으려고 하지 않는 기업가는 이 시대에 맞지 않습니다. 그런 기업가가 있기 때문에 우리가 계속 싸우고, 마찰이 일어나고, 앞으로 나가지 못하고 있는 것이지요. 미시적인 차원에서, 기업의 민주화를 이룰 때에만 비로소 우리도 북구형이 성취한 저런 성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또 하나, (경제 민주화를 위해서는) 복지국가 쪽으로 가야 합니다. 복지 국가도 <그림 1>에서처럼 3개의 모델이 있습니다. 영미형, 유럽형, 북구형, 이 3개의 정치경제 모델이 복지국가 모델이기도 합니다. 우리나라는 아직 복지국가라는 이름조차 붙일 수가 없는, 참 가난한 상태입니다. 불쌍한 상태에 있고요. 그래서 우리도 복지국가를 지향해야 하는데, 문제는 이 3개의 길 중에 어떤 길을 지향해야 할 것이냐 입니다. 제가 봤을 때는, 이쪽(영미형)은 역시 길이 아니다, 단점이 너무 많습니다. 유럽대륙형은 복지국가로 봤을 때도 역시 북구에 비해 못합니다. 왜냐면 유럽대륙형은 주로 사회보험을 통해 복지국가를 운영합니다. 실업보험, 의료보험 등 보험에 가입한 사람이 돈을 내서 자기가 타가는 식입니다. 돈 많이 버는 사람은 보험료 많이 내고, 보험 많이 타가는 식입니다. 이런 식의 복지는 그렇게 재분배적이지 못하고요. 제일 재분배적인 것은 사민주의형의 복지국가입니다. 이 나라들은 세금을 많이 걷어서 '보편적 복지' 형태로 복지를 제공합니다. 즉, 누구나 다 혜택을 본다는 겁니다. 공공서비스 방식으로 병원도 무료, 학교도 무료, 이런 식으로 갑니다. 사고파는 것이 아니고 탈상품화로 가는 것이죠. 인간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기본재를 상품이 아닌 탈상품으로 바꾸는, 그런 방향을 취하고 있습니다.
이들 모델은 복지에 있어서도 큰 차이를 보입니다. 영미형의 복지는 소득조사에 기초해서 가난한 사람한테 이전지출을 하는 식입니다. 소득조사를 해서 가난한 사람한테만 돈을 주는 방식이지요. 그것도 아주 약소하죠. 소득조사를 하면 제일 큰 문제는 '드러난다'는 겁니다. 가난한 사람은 조사받는 것 자체가 부끄럽죠. 그래서 낙인효과가 발생합니다. 반면 북유럽은 이게 아주 약합니다. 소득조사는 잘 하지 않고요. 무기명으로 세금을 많이 거둡니다. 소득조사에 의한 현금지출 대신에 보편적 복지를 제공하는 식입니다. 누진적으로 세금을 걷으니까 부자들이 세금을 많이 내겠죠. 반면 혜택은 모든 국민에게 골고루 돌아가니까 낙인효과도 없고요. '어떻게 하면 세금을 50%씩이나 거둘 수 있느냐' 라는 질문에 대한 답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보편적 복지로, 현금이 아니고 현물주의로 가기 때문에, 공공서비스 방식으로 가기 때문에, 세금을 내는 데 대한 저항이 적은 겁니다. 그게 영미형과의 큰 차이입니다. 우리나라는 지금 영미형 복지가 들어와 있어서 조세 저항이 굉장히 심합니다. 세금 내 봤자 나한테는 안 돌아오고 내가 얼굴도 모르는 어느 가난한 사람한테 갈 것이다, 그러니까 내기 싫다, 이렇게 되는 거죠. 그러나 북구는 그렇지 않습니다. 내가 세금 내면 결국 이 세금이 무료 병원, 무료 학교의 형태로 나에게 돌아온다, 이렇게 믿기 때문에 세금을 많이 내고도 조세저항이 없는 겁니다. 그 차이입니다.
따라서 우리도 스웨덴처럼 수출주도형 경제를 가지고 있습니다. 또 스웨덴도 우리처럼 재벌경제입니다. 재벌경제 구조도 비슷합니다. 또 복지에서도 낙인효과에다 조세저항까지 심한 영미형보다는 북구형의 보편적인 복지 방식이 더 낫겠다는 생각입니다. 다시 말해, 노동으로 보나 복지로 보나 -학교, 병원 등 각론으로 들어가면 끝이 없겠지만- 역시 북유럽 체제가, 인간이 지금까지 인간의 머리로 만들어놓은 체제 중에는 가장 우수한 체제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지금까지 자본주의에 대한 여러 가지 대안적인 논의가 있었는데 대부분의 경우에 실패했습니다. 대표적인 게 사회주의지요, 사회주의는 망해 버렸고요. 지금까지 인간이 생각해낸 자본주의의 대안 중에 그래도 가장 실현 가능한 대안, 70년 간 스웨덴에서 실험을 해서 '잘 굴러간다'고 증명이 된 대안, 그러니까 우리도 안심하고 그 길을 가도 되는 것이지요. 스웨덴도 처음 그 길로 갈 때는 굉장히 불안했을 겁니다. '이대로 가도 되겠나', 불안했을 겁니다. 콜럼버스가 배를 타고 항해에 나설 때는 굉장히 불안했을 겁니다. 그래서 계속 새를 날려 보내고 새가 돌아오느냐 돌아오지 않는지를 확인했습니다. 새가 안 돌아오는 걸 보고서야 '야, 육지가 있구나' 라고 안심을 했지요. 콜럼버스도 처음에는 그렇게 불안하게 항해를 한 것이지요. 우리로서는 첫 항해가 아닙니다. 앞서간 나라들의 수십 년 경험이 '안심해도 된다'는 것을 보여줬기 때문에, 우리도 안심하고 제3의 길로 가는 것이 맞다고 생각합니다.
과거에는 이런 이야기를 못했습니다. 과거에는 이런 이야기를 하면 잡아갔기 때문입니다. 최근에 명예가 회복된 죽산 조봉암 선생의 사상이 아마 온건한 사민주의였을 겁니다. 억울하게 돌아가신 참 훌륭한 분인데요. 그때는 목숨을 걸고 그런 주장을 했어야 했지요. 그런데 지금은 민주화가 많이 됐고, 제가 이런 공개적인 장소에서 사민주의가 옳다고 주장할 수 있게 됐습니다. 이것도 우리가 민주화의 맑은 공기를 맘 놓고 숨 쉴 수 있는 세상이 됐기 때문에 가능한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한미 FTA(자유무역협정)에 대해서, 이것(제3의 길)과 관련이 되기 때문에, 간단히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저하고 오늘 사회를 보시는 정태인 선생이 청와대에서 오랫동안 일을 하며, 노무현 대통령의 참모 역할을 했습니다. 그러던 사람이 이제 와서 한미 FTA에 반대하는 바람에 많은 사람들이 의구심을 갖습니다. 심지어는 배신했다, 이렇게까지 표현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왜 반대했을까요? 한국이 한미 FTA를 하게 되면 자유시장경제의 벽을 넘어서 왼쪽으로 못 가게 될 것이라고 봅니다. 이리(북구형)로 가려면 정책도 바꾸고, 제도도 바꾸고, 관습도 바꾸고, 다 바꾸면서 수십 년에 걸쳐 점진적으로 가야 할 겁니다. 하루아침에 안 됩니다. 그런데 미국의 자본가들은 한국에 투자하고 난 뒤에 이리로 가는 것을 허용하지 않을 겁니다. 이리로 가면은 '어, 이것 때문에 장사 못하겠다, 나 손해 봤다' 라고 하면서 무시무시한 투자자-국가 제소제(ISD: Investor-State Dispute)로 한국 정부를 제소할 것입니다. 그러면 법이고 제도고 못 바꾸는 거지요. 옴짝달싹 못하게 벽을 딱 치는 겁니다. 우리의 이상향인 북구 사민주의로 넘어갈 수 없는 장벽을 쳐버리는 것이 한미 FTA의 가장 결정적인 문제점이라고 봅니다. 한 마디로 "꿈은 사라지고"입니다. 많은 진보적인 사람들이 품었던 그 꿈, 죽산 조봉암 선생이 꾸었던 그 꿈을 실현할 수도 있는데 스스로 족쇄를 차고 담을 쌓아가지고 여기서 한 발짝만 벗어나면 소송한다는 이런 FTA를 왜 합니까. 정태인 선생이나 저나 다른 FTA는 반대하지 않습니다. FTA, 대체로 찬성합니다. 개방주의, 찬성합니다. 그러나 미국과의 FTA만은 다릅니다. 미국은 투자자-국가 제소제라는 이 아주 무서운 무기를 가지고 우리를 감시하고 우리가 체제를 개혁·변형하는 것 자체를 허용하지 않을 겁니다. 왜 우리의 운명을, 나라의 운명을 한 개의 통상협정으로 구속하려는 겁니까? 이것은 부당하죠. 이상으로 제 발표를 마치겠습니다. 경청해 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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