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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212조원+α '뭉칫돈'의 향방은?

[연못 속 고래, 국민연금①] 금융계 큰 손

국민연금이 두 번째 수술대에 오른다. 정부는 지난 11일 국민연금 기금 운용의 최고 의사결정기구인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원회를 정부에서 민간으로 이전하는 내용의 '국민연금 운용체계 개편방안'을 발표했다. 지난 7월 '전처럼 내고 전보다 덜 받는' 내용의 국민연금법 개정안이 통과된 지 두 달만의 일이다.

첫 번째 수술이 국민연금의 기금 고갈 사태를 막자는 차원에서 이뤄진 것이라면, 두 번째는 갈수록 커지고 있는 기금의 운용을 독립·전문화 하자는 차원에서 시도되는 것이다. 한편에서는 기금이 고갈될 것이라며 난리더니, 다른 한편에서는 기금이 쌓이고 있어 이를 어떻게 다룰 지가 문제라고 하니 얼핏 듣기에는 모순 같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무엇보다도 기금 고갈은 아직 닥치지 않은 미래의 예상 시나리오 중 하나에 불과한 반면 천문학적 규모의 기금 운용 문제는 지금 당장 우리가 당면한 현실이다. 설령 미래에 기금이 고갈된다 해도 그 전에 기금은 천문학적 액수로 쌓이는 과정을 겪게 된다.

문제는 이 어마어마한 뭉칫돈을 '누가', '어떤 원칙에 입각해', '어떻게' 굴리느냐는 것이다.

이미 200조 원이 넘는 국민연금 기금은 국민경제에 비해 그 규모와 영향력이 너무 커서 '연못 속 고래'에 비유되곤 한다. 한국경제가 연못이라면, 국민연금은 이 연못 속에 살고 있는 고래라는 것이다. 게다가 이 고래는 갈수록 커지고 있다. 당연히 이 고래가 어떻게 움직이느냐는 연못의 제반 환경과 연못 속 다른 생물들의 삶에 엄청난 영향을 미칠 것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런 문제들은 국민연금 재정 파탄 문제나 연금 사각지대 문제 등에 밀려 상대적으로 대중의 주목을 받지 못했다. 다행히 정부가 이번에 국민연금 지배구조 개편안을 내놓은 것을 계기로 국민연금 운용에 관한 논의들의 물꼬가 트이고 있다. 때마침 국제사회에서도 세계은행(World Bank)과 국제통화기금(IMF)을 중심으로 이와 관련된 논의가 활발해지고 있다.


<프레시안>도 이런 흐름에 동참해 3회에 걸쳐 국민연금의 기금 현황과 이를 둘러싼 각종 논란을 짚어본다. 미흡하나마 이런 시도가 국민연금 기금 문제를 공론화하는 데 보탬이 되기를 바란다. <편집자>

올해로 국민연금이 20돌을 맞는다. 지난 1988년부터 20년 간 차곡차곡 쌓여온 국민연금 기금은 지난 4월 200조 원을 돌파한 후 7월 말 현재 212조 원에 이르렀다.

이는 '국민기업'이라는 삼성전자의 시가총액 84조 원은 물론 우리나라의 올해 예산 163조 원을 훌쩍 뛰어넘는 액수이자, 국내 상장사 시가총액 900조 원(유가증권시장+코스닥시장)에 견줘 '유의미'하고도 남는 금액이다.

국민연금 기금은 앞으로 더욱 불어날 전망이다. 지난 2003년 정부는 국민연금 기금이 경상가격을 기준으로 2012년 400조 원, 2035년 1715조 원, 2043년 2600조 원, 2054년 5820조 원으로 증가할 것이라고 추계한 바 있다.

지난 7월에 국회를 통과한 국민연금법 개정안에 따라 2028년까지 평균 연금 급여율이 현행 60%에서 40%로 낮아지면 적립금의 규모는 이보다 한층 더 커질 전망이다.

국민연금 99.7%는 금융시장으로

이 어마어마한 '고래'는 국고에 쌓여 한가하게 낮잠을 자고 있지는 않다. 정부는 계속해서 쌓이고 있는 국민연금 기금을 공공부문, 복지부문, 금융부문 등 여러 부문에 나눠 투자해 왔다.
▲ 지난 2003년 정부가 '국민연금이 30년 안에 고갈될 지도 모른다'는 비관적인 전망을 내놓은 후 국민연금에 대한 국민 여론은 급격히 악화됐다. 그러나 이런 여론 동향과는 무관하게 국민연금은 계속 불어나는 중이다. ⓒ연합뉴스

1988년 국민연금이 도입된 후 10년 간은 기금의 상당 부분이 이른바 '공공자금'이란 이름으로 공공부문에 투입됐다. 하지만 1999년 공공자금관리기금법 개정안에 따라 국민연금의 공공자금 의무예탁이 금지된 2001년 이후엔 금융부문에의 투자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아졌다. 2006년 말 기준 국민연금의 금융부문 투자 비중은 99.7%에 달한다.

금융부문의 투자는 다시 '채권투자'와 '주식투자', 그리고 부동산 투자, 사회기반시설 투자와 같은 '대체투자'로 나뉜다.

최근까지만 해도 채권투자가 80% 이상이고, 주식투자와 대체투자는 각각 10%대와 1%대 수준에 머물렀다. 하지만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원회는 앞으로 주식투자, 대체투자의 비중을 높인다는 방침이다. 기금운용위가 내놓은 중기 자산운용안에 따르면, 2012년까지 주식투자 비중과 대체투자 비중이 30%와 10%로 각각 증가한다. 해외투자 비중도 20%로 확대된다.

국민연금의 금융부문 투자가 채권투자보다 변동성이 큰 주식투자, 대체투자, 그리고 해외투자로 옮겨가는 것은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국민연금이라는 '고래'의 덩치가 계속 크고 있기 때문에 이 거대한 고래가 움직일 수 있는 시장 역시 커져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국민연금의 운용이 금융 부문에의 투자로, 그 중에서도 주식투자로 몰리고 있는 배경에는 '국민연금의 수익률이 일반 펀드에 비해 낮다'는 국민들의 불만과 '낮은 수익률은 주식투자 비중이 낮기 때문'이라는 증시 전문가들의 비판, 무엇보다도 '국민연금으로 국내 금융시장의 판돈을 키워보자'는 정부 및 경제 관련 부처들의 계산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다.

채권시장에선 "갑 오브 갑"…주식시장에서 "큰 손" 또는 "황제"

200조 원 규모 뭉칫돈의 이같은 행보는 당연히 국내 채권시장과 주식시장 등 전통적인 금융시장에 엄청난 영향을 미친다.

채권시장에서는 이미 국민연금이 '갑(甲) 오브 갑'으로 통한다. 채권시장의 고객, 즉 '갑'에 해당하는 국민연금이 채권시장의 또 다른 '갑'인 은행의 은행채를 싹쓸이하면서 사실상 은행채 금리를 결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최근 은행권이 수신 하락을 보전하고자 은행채를 공격적으로 발행하면서 증권사와 보험사에 비해 '총탄이 넉넉한' 국민연금은 더욱 대접을 받고 있다.

하지만 국민연금의 행보가 더욱 주목받는 곳은 주식시장이다. 가령, 지난해 코스닥 시장에서는 기관 전체가 6262억 원을 순매도했지만, 국민연금은 홀로 896억 원을 순매수하는 파워를 과시했다. 올해도 마찬가지다.

'국민연금의 힘'를 보여주는 사건은 빈번히 일어난다. 선물·옵션 동시 만기일, 소위 '트리플 위칭 데이'였던 지난 13일에는 지수 하락이 불가피하다는 전망이 대세였지만, 국민연금이 자금을 집행한다는 루머가 돌면서 장은 오히려 큰 폭의 지수 상승을 기록하며 마감됐다.

국민연금 운용위 측은 연금 개입설에 대해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지만, 이 개입설이 시장에 나온 것만으로도 증시 부양 효과는 충분했다. 국민연금이 '연못 속 고래' 외에 '금융계의 큰 손', '증권시장의 황제' 등과 같은 다양한 별칭으로 불리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LG카드 인수 이어 우리금융, 외환은행 투자도 고려

채권시장이나 주식시장과 같은 시장 단위가 아니라 기업 단위로 보면 국민연금의 영향력은 한층 더 커진다.

무엇보다도 국민연금은 KT와 같은 국내 굴지 기업의 최대주주(2.3%)로 그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국민연금관리공단이 지난해 국회에 제출한 '연금수급 현황'에 따르면, 2006년 6월 기준 국민연금이 보유한 증시 종목 500여 개 가운데 지분을 5% 이상 보유한 종목이 70개나 된다.

국민연금은 얼마전까지만 해도 주식을 보유하기만 할 뿐 적극적으로 의결권을 행사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지난해 3월 '주식 의결권 행사 전문위원회'를 만든 것을 계기로 지분 보유 기업에 대해 적극적으로 의결권을 행사하기 시작했다. 2006년 국민연금은 487회의 주주총회에 참석해 1878건의 상정안에 대해 의결권을 행사했다.

국민연금은 국가적으로 논란이 되고 있는 경제 문제에 자주 개입하기도, 또는 개입되기도 한다.

국민연금은 올해 1월 신한금융지주가 LG카드를 인수하는 데 9028억 원을 투자하며 논란을 일으키더니, 최근에는 민영화 문제로 시끄러운 우리금융지주 및 론스타의 불법 인수 문제가 아직 미해결 상태로 남아 있는 외환은행의 지분을 매입하는 것을 검토 중이라고 한다.

민영화 시점이 내년 3월로 다가온 우리금융의 경우, 연금 외에는 사실상 인수할 곳이 없다는 것이 금융계의 중론이다. 재경부는 그동안은 국민연금이 금융회사에 해당하는 만큼 우리금융의 주인이 될 수 없다는 입장이었지만, 이제는 국민연금이 이런 내용의 금융지주회사법을 피해 우리금융을 인수할 수 있는 각종 장치들을 제시하고 있다.

외환은행의 경우는 이와 또 다르다. 국민연금 측은 철저히 수익성 차원에서 외환은행 인수를 고려하고 있다는 입장이지만, 여기에는 이제 그만 한국을 뜨고 싶은 론스타, 론스타의 외환은행 인수를 둘러싼 각종 논란과 비판을 잠재우고 싶은 정부의 바람이 강하게 작용했다. 심지어 정부는 국민연금을 '토종자본'이라며 치켜세우고 있다.

세계 5위의 연기금 국민연금

국내 금융시장에서 이처럼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국민연금은 사실 국내보다는 해외에서 더욱 주목 받고 있다. 무엇보다 세계 연금 5위 규모를 자랑하는 엄청난 자금(7월 말 현재 212조 원)이 주목 받는 이유다. 최근 연달아 미국계 기업을 사들이면서 미국의 강한 견제를 받았던 중국 외환투자공사의 자금 규모가 280조 원이다.

이 엄청난 돈뭉치는 누구보다도 천문학적인 빚에 허덕이는 미국과 전 세계 머니게임에 투입할 자금을 찾고 있는 해외 투자자들에게 매혹적이다. 향후 정부가 2008년 시행되는 자본시장통합법과 아직 비준 절차를 남겨놓은 한미 FTA을 통해 이들을 국내로 유인하는 한편 국민연금 운용위가 해외투자 규모를 확대하면, 국민연금이라는 '고래'는 세계 금융시장이라는 '바다' 속에 퐁당 몸을 담구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 최근 국민연금은 모건스탠리 등 미국계 투자회사들에 지분을 투자하고 이들 투자회사로부터 투자 기법을 전수받는 내용의 협정을 맺기도 했다. 정부는 이런 관계를 확대해 향후에 이들 자산운용사에 자금을 맡기는 방식으로 이들을 국내 금융시장으로 끌어들이겠다는 '야심'을 내비치고 있다.

이처럼 국민연금은 그 덩치와 영향력을 확대하며 국내외 금융시장과 불가분의 관계를 맺어 나가고 있다.

문제는 국민연금이 국내외 금융시장에 미치는 파급효과, 거꾸로 국내외 금융시장이 국민연금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한 구체적인 운용 원칙이 없다는 것이다. 이해당사자들의 각각 다른 '속셈'만 있을 뿐이다. 최근 정부가 마련한 국민연금 운용체계 개편안과 이를 둘러싼 논란에도 이들의 이해관계가 투영돼 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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