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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금 많이 걷는 나라'에서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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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금 많이 걷는 나라'에서 살고 싶다"

[밥&돈·8]"세금은 무조건 악인가"…세금을 위한 변명

이번 주 '밥&돈'의 주제는 '세금'이다. 누구나 싫어하는 대상이다. 그런데 '밥&돈' 필자 가운데 한 명인 오건호 박사의 생각은 조금 다르다. 세금은 과거처럼 약자를 쥐어짜던 수단만은 아니라는 것. 오히려 한국 상황에서는 세금을 보다 많이 내야한다는 것이다. 논란이 따를 법한 주장이다.

이런 주장을 보다 부드럽게 전하기 위해 오 박사는 세금을 의인화하여 억울한 오해에 시달리는 세금이 스스로를 변호하는 내용으로 글을 썼다. 이번 기고가 세금 문제에 대한 보다 진지한 토론으로 이어졌으면 하는 것은 오 박사와 <프레시안> 모두의 바람이다. <편집자>

나는 세금이다. 당신들이 그토록 못마땅해 하는 놈이다. 돈 잘 버는 사람이나 가난한 사람이나 나만 보면 분통을 터트리니 원….

하지만 나 같은 놈에게도 친구가 있는 법이다. 엊그제 만난 국민연금이 이곳을 알려주었다. 답답한 사연을 여기 와서 풀어보라고 말이다. 세금을 내면서도 나에 대해 통 알지 못 하는 당신들에게 면담을 요청한다.

외국과 비슷한 기름값, 부담은 두 배

우선 최근 논란이 된 유류세에 대해서 내 생각을 전하고 싶다. 기름값 때문에 많은 사람이 힘든 줄 안다. 원가도 공개하지 않으면서 큰 돈 번 것 없다고 뒷짐 지는 정유사 탓은 더 안하겠다. 나도 그들과는 정말 이야기조차하기 싫다.

나 때문에 기름값이 비싸진 것, 솔직히 인정한다. 애를 병원에 데려가고 부모님 모시려면 자동차가 필수인 세상이다. 번듯한 가게 하나 내지 못하여 트럭에 마누라를 태우고 거리를 돌아다니는 당신 마음을 나도 안다. 내가 당신이라도 세금 깍으라고 아우성칠 것이다.

정부는 당신네 나라 기름값이 외국에 비해 높지 않다고 한다. 유류세로만 한해 거두는 26조 원의 세수를 유지하고픈 속 뜻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참 답답한 이야기다. 국제가격이야 정해져 있는 것이고 나라마다 보통 50~60%씩 세금을 매기니 가격이 비슷하다는 것은 하나마나한 이야기다.

문제는 사람들이 그 기름값을 낼 여유가 있느냐에 있다. OECD 1인당 국민총소득(GNI) 평균이 4만 달러 수준인데 당신나란 절반인 2만 달러다. 기름값이 비슷해도 당신들이 지는 부담이 2배라는 것이다. 국제원유가야 어찌할 수 없다 해도, 우리 때문에 고통이 가중된 당신들에게 정말 미안하다.

유류세는 환경세세율은 높게, 서민 생계 상 필요에 대해서만 환급해야

하지만 당신들이 원하듯 유류세를 인하할 수 없는 게 내 신세다. 나는 서민을 괴롭히는 유류세이지만 당신들의 지구 파괴를 억제하는 환경세이기도 하다.

지구온난화의 심각성은 당신들도 잘 알 것이다. 게다가 석유 한 방울 나지 않는 당신 나라의 에너지효율이 영 아니다. 솔직히, 여기선 우릴 탓하지 마라. 돈만 벌 수 있으면, 그리고 돈만 많이 있으며, 기름을 막 쓰는 게 당신들이다. 당신들이 유류세를 못 내리게 하는 데 일조했다는 이야기다.

남는 건 서민 부담 문제다. 우리라고 마음이 편하겠는가? 해답을 찾는 게 꼭 어렵지만은 않다는 게 나의 판단이다.

서민들에게 꼭 필요한 기름만큼 세금부담을 보전해주면 된다. 예를 들어 소형승용차, 소형트럭을 가진 사람에게 한달 일정량에 한해 유류세를 환급해주는 카드를 만들자. 서민에게 필수적 기름 사용은 지원하되, 환경세로서 유류세율은 유지하자는 제안이다.

난 당신들이 이 방안을 왜 도입하지 않는 지 오히려 이상하다. 혹시 유류세를 깍자는 정당이나, 절대 안된다는 정부나 애초 서민을 안중에 둔 것은 아니지 않았을까.

유류세 인하 주장을 거둬 달라. 당신과 내가 이 문제로 더 실랑이를 안했으면 좋겠다. 대신 기름을 많이 쓰는 사람에게 그만큼 세금을 내게 하고, 서민들은 필수 양만큼 세금을 보전받는 '알뜰기름카드'를 도입해 달라. 난 지구를 지키는 태권V가 되고, 서민에게 칭찬받는 민생 지킴이가 되고 싶다.

7년째 내리막 소득세율, 양도소득세 내는 이들이 부럽다

이제부턴 내가 오래전부터 하고팠던 말을 해야겠다. 조만간 당신과 친해질 것이라 기대하지는 않지만, 최소한 나를 욕하더라도 제대로 알고 해달라는 주문이다. 혹 기분이 나쁘더라도 끝까지 읽어주길 바란다.

첫째, 작년에 비해 소득세가 많이 나왔다면 당신은 화를 내는가? 기뻐하는가? 만약 당신이 전자의 사람이라면 거의 바보이거나 욕심꾸러기이다. 세율이 인상되어 세금이 올랐다면 물론 항의할만 하다.

하지만 2001년 이후 소득세율은 계속 내리기만 했다. 그런데도 당신이 소득세가 증가했다면...그렇다! 당신이 소득이 크게 늘어난 거다. 만약 작년보다 당신의 소득세가 대폭 높게 나온다면, 이는 활짝 웃을 일이다. 당신이 잘 나가는 사람이라는 증거니까.

근래 부동산세금이 정비되면서 양도소득세도 너무 많다고 불평하는 사람들이 많다. 2000~3000만 원이나 세금을 내야하니 분통이 터질만 하다.

하지만 난 오히려 당신이 너무 부럽다. 인구의 절반이 자기집이 없는 나라에서 그나마 집을 가진 당신, 그 집을 사고 팔아 2억 원이나 양도차익을 얻은 당신이 아닌가?

당신 나라에서 양도소득세를 낼 수 있는 사람들, 이들은 하늘의 축복을 받은 사람들이다. 하늘이 얼마나 공정한 지는 모르겠지만.

소득세 경감, 연봉 3000만 원 이하에겐 손해…300만 명에게만 이익

둘째, 지금 소득세율을 인하한다면 당신은 찬성하겠는가? 반대하겠는가? 당신을 시험하는 것 같아 미안하지만 이 건 참 중요한 질문이다. 내 답은 이렇다. 만약 당신이 꽤 소득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를 반겨도 된다. 하지만 당신의 연봉이 3000~3500만 원에 못미치는데도 소득세율 인하에 박수를 보낸다면 이건 좀 곤란하다.

2년 전, 어느 정당이 소득세율 2% 포인트 인하안을 냈었다. 정상적인 나라라면 자기 소득에 따라 찬반이 엇갈려야 했다. 그런데 어떻게 당신의 나라는 대부분이 찬성하는 듯 했다. 난 정말 이해할 수 없었다. 이렇게도 나를 모르다니!

지금 소득세 과세 대상이 약 1600만 명이다. 이 중 절반인 800만 명이 면세자다. 소득이 조금 있으나 여러 공제로 사실상 세금을 내지 않기 때문이다. 대략 자기 연봉이 2000~2500만 원이면 여기에 속할 것이다.

이 사람들은 절대 소득세율 인하에 찬성하면 안된다. 세금을 내지 않으니 인하혜택도 받지 못하지만, 상위소득자들이 얻은 세금 인하 몫만큼 다른 간접세로 메워야 하기 때문이다. 내 계산에 의하면, 이 800만 명은 국가재정을 보전하기 위하여 1인당 14만 원씩을 더 부담해야 할 것이다.

만약 당신이 2500~3500만 원 연봉자라면 약 9만 원 세금을 경감받을 것이다. 하지만 역시 냉철해져야 한다. 결국 부족한 국가재정을 메우기 위해 1인당 평균 14만 원씩 필요하므로 결국 5만 원씩 손해를 볼 개연성이 높다. 이 집단에 속한 사람들도 무려 500만 명이다. 나라면 역시 소득세 인하에 반대할 것이다.

나머지 300만 명이 있다. 이들이야말로 소득세율 인하 혜택을 누릴 사람들이다. 1인당 수십만 원에서 수천만원 이상까지 이득을 볼 것이다. 이들이 쌍수를 들고 인하를 환영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

소득세율 인하에 대하여, 만약 과세대상 1600만명 중 300만명이 찬성하고 1300만명이 반대하면 당신 나라는 괜찮은 곳이다. 사람들이 자기 주소를 정확히 알고 있으니 말이다.

그런데 만약 대부분이 소득세율 인하에 찬성한다면….이런 나라에 사는 나는 참 운이 없다.

"간접세가 높은 게 아니라 직접세가 낮다"

셋째, 당신은 우리나라 간접세가 높다고 생각하는가? 내가 만난 대부분은 그렇다고 대답했지만 내 생각은 다르다.

간접세는 각 나라에서 생산된 부가가치에 일정한 세율이 부과되기에 나라별로 엇비슷한 양상을 보인다. GDP 대비로 보면, 한국은 OECD국가 평균과 동일하게 11%대이다. 경제규모를 고려할 때 다른 나라보다 간접세가 더 높다고 이야기하기 힘들다.

그런데 당신들은 왜 이구동성으로 간접세가 높다고 불평하는가? 한국 조세 중 직접세에 비해 간접세가 차지하는 비중이 크기 때문이다. 간접세의 절대 비중은 외국과 엇비슷하나 직접세가 워낙 취약하다 보니 전체 세금에서 간접세가 과중한 것으로 보이는 것이다.

현재 한국의 GDP대비 직접세 비중은 10% 정도이다. OECD국가 평균에 비해 약 5% 포인트가 부족하다. 금액으론 40조가 넘는다.

당신들이 간접세는 다른 나라만큼 내지만 직접세는 턱 없이 덜 내고 있다는 이야기다. 혹 당신 나라에서 조세개혁의 핵심이 무엇이냐는 질문을 받게 된다면, '높은 간접세'보다는 '취약한 직접세'라고 답하는 당신을 기대한다.

내가 지금 간접세를 옹호하려는 것이 아니다. 당신들이 하도 간접세를 몰아 세우기에 있는 그대로를 알려주고 싶을 뿐이다.

물론 간접세 줄일 수 있으면 더 줄여도 좋다. 당신이 진보적일 수록 간접세를 줄이고 직접세를 올리는 데 찬성해야 한다.

주식투자해서 돈을 벌어도 한 푼 세금 안내는 것이 당신들이다. 요즘 주가도 많이 올랐는 데, 이번 기회에 세금 좀 낼 할 의향은 없는가.

"당신이 노동자라면 '건강 보험료 인상'에 찬성하라"

넷째, 당신들에겐 전기세든, 보험료든 고지서로 날라오는 건 모두 세금인 듯 하다. 세금 이야기가 나온 김에 내 친구 건강보험료에 대해서도 물어보자.

올해엔 건강보험료가 6.5%인상되었다. 물가상승율을 상회한 수준이라 꽤 화가 치밀었으리라 추측된다. 혹, 만약 내년에 건강보험료를 10% 이상 올리겠다면 당신은 찬성하겠는가? 반대하겠는가?

뭐 이런 질문이 다 있냐 할 것 같다. 하지만 난 눈 앞 일만 보면서 조사모사에 놀아나는 당신들이 더 못마땅하다.

의료비 부담은 사전에 내는 보험료와 나중에 내는 본인부담금으로 구성된다. 보험료 수입이 적으면 건강보험의 급여적용도 줄어들고 그만큼 본인부담금이 커진다. 가입자 전체 입장에서 보면, 보험료로 미리 내나 본인부담금으로 나중에 내나 부담하는 총액은 동일할 것이다.

하지만 개인별 부담액으로 가면 상황은 달라진다. 본인부담금은 회사 사장이나 일반 서민이나 치료받은 만큼 낸다. 동일한 금액의 진료비이지만, 그것이 주는 부담의 크기는 사장과 서민에게 다를 것이다. 역진적인 부담이다.

만약에 보험료 비중을 높여 그만큼 본인부담금을 줄이면 어떻게 될까? 보험료는 개인의 소득에 비례해서 부과된다. 노동자의 경우는 노사가 절반씩 내니 부담이 다시 절반으로 줄어든다.

그런데 당신이 노동자라면 건강보험료 인상에 찬성하는 게 옳다. 보험료 인상분보다는 낮아지는 본인부담금이 훨씬 클 것이기 때문이다. 굳이 말하고 싶지는 않지만, 당신이 기업가나 소득이 높은 부자라면 건강보험료 인상에 반대하고 본인부담금으로 떼우는 것이 이익이다.

그런데 당신네 나라, 참 이상하다. 기업가를 대변하는 경총도, 노동자를 위한다는 민주노총, 한국노총도 모두 건강보험료 인상엔 항상 반대니 말이다. 기업가 단체와 노동자 단체 중 하나는 수를 잘못 두고 있다.
▲ 신용카드 사용이 늘면서 고소득 자영자의 소득원도 조금씩 투명해지고 있다. '세금에 대한 반감'을 줄이는 지름길은 고소득 자영자들이 제대로 세금을 내게 하는 것이다. ⓒ프레시안

고소득 자영자에 대해서는 경계 늦추지 말아야

마지막으로, 내 얘기가 다 옳아도 노동자와 자영자 간 세금 형평성이 마련되지 않는 한 결코 나를 좋아할 수 없다는 사람들이 꽤 있다.

이런 지적에 대해선 뼈아프게 받아들인다. 몇 년동안 내가 고심하고 있는 주제도 이거다.

하지만 이것 때문에 나를 외면하지는 말기를 부탁한다. 우리도 무척 노력하고 있고 조금씩 좋아지고 있는 점은 인정해 달라.

의사, 변호사, 사설학원 등의 세금탈루가 여전하긴 하지만, 그래도 신용카드 사용이 늘어나면서 고소득자영자의 소득원이 조금씩 잡혀가고 있다.

또한 일부를 제외하곤, 자영자로 속한 다수의 사람들이 대부분 노동자였다가 퇴출당한 당신 동료들이라는 점도 기억해 주길 바란다.

이들은 지금 장사 밑천까지 날릴 처지에 몰려 있다. 일부 고소득 자영자에 대해선 경계를 늦추지 말되, 다수 영세 자영자와는 동변상련을 나누었으면 좋겠다.

약자에 대한 착취 수단이었던 세금, 약자를 돕는 연대 제도로 거듭나

이제 그만 나가야 겠다. 애초에 우린 서민의 적이었다. 불과 백여년 전까지만 해도 세금은 지배자의 호의호식을 위해 어려운 사람들이 내야하는 것이었다. 지배자들을 위한 일종의 착취 도구였던 셈이다.

하지만 당신들의 투쟁 덕택에 나는 잘 사는 사람들이 더 내서 힘겨운 사람들을 도와주는 연대제도로 새롭게 태어났다.

우리 역사책에서 이를 위대한 혁명이라고 부른다. 당신의 나라에서 나의 혁명을 완성하자면 당신의 협조가 절실하다. 난 정말 세금이 높은 나라에서 살고프다. 가능하면 직접세가 센 나라에서 말이다.

(매주 화요일에 실리는 '밥&돈' 연재가 이번 주에는 필자 사정으로 이틀 늦었습니다. 독자 분들께 사과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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