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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FTA, '일탈'이 아니라 '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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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FTA, '일탈'이 아니라 '기획'

[관점] 홍기빈의 '축적 기획으로서의 신자유주의'

<프레시안>은 금융경제연구소 등 10개 연구단체들이 15일 주최한 심포지엄 'IMF에서 FTA로'에서 홍기빈 금융경제연구소 연구위원이 발표한 글 '축적 기획으로서의 신자유주의'를 요약해 게재한다. 이 요약문은 독자들이 IMF 위기 이후 한국 사회가 어떻게 변모해 왔는지, 한미 FTA를 어떻게 봐야 하는지를 판단하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 <편집자>

한미FTA라는 수수께끼

한미 FTA는 많은 이들에게 수수께끼였다. 아무리 따져보아도 이익은 전무하거나 불명확한 반면 피해와 위험은 무수하고 명확한 한미 FTA를, 노무현 정부는 어째서 번갯불에 콩 볶아 먹는 속도로 진행하고 있는 것인가. 경제적 논리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일이기에, 많은 이들은 정치적인 요소로 한미 FTA를 설명하고자 했다. 뭔가 굵직한 치적을 남기고픈 '집권 말기의 심리학'이라는 지적도 나왔고, 대통령 선거판을 주도하려는 노무현 대통령의 전략이라는 주장도 제기됐다. 심지어는 한미 양국의 경제통합을 획책하는 친미 세력들의 '음모'라는 주장도 나왔다.

전통적인 '국민경제'의 관점에서 보면 한미 FTA는 분명 어불성설이다. 하지만 자본주의 정치경제 체제의 동학(動學)이 지향하는 푯대는 '국민경제의 번성'이 아니라 '더욱 효율적인 자본축적'이라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한미 FTA를 '지배 세력이 자본을 축적하기 위해 마련한 새로운 기획'으로 보면 어떨까? 한미 FTA는 IMF 위기 이후 지난 10년간 한국 사회의 구조 변화를 관통하는 일련의 흐름 선상에 놓여 있는 것은 아닐까? 그래서 한미 FTA의 추진은 정치적 차원만이 아니라 경제적 차원에서도 '어불성설'이기는커녕 '사필귀정'이 아닐까? 우리 내부에는 한미 FTA를 원하고 추진해 온 세력이 없었을까? 한미 FTA는 노무현 대통령의 '단독 범행'일까?

이런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는 한미 FTA라는 현재의 사건을 IMF 위기 이후 지난 10년간 진행된 역사적 구조 변화의 '지속(durée)' 속에 놓고 볼 필요가 있다. 안타깝게도, 이 기간에 한국이 겪은 신자유주의적 구조 변화에 대한 설명은 "시장의 전횡"이나 "자본의 강화"와 같은 현상 기술의 수준을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

자본축적과 '축적 기획'

IMF 위기 이후 10년간 진행된 한국 사회의 구조 변화를 설명하는 말로써 많이 쓰였던 것이 바로 '신자유주의적'이라는 형용사이다. 그런데 이 말의 의미는 아직도 모호하다. 어떤 이는 신자유주의를 '시장'이라는 "살인 기계(juggernaut)"의 작동으로 보고, 다른 이는 신자유주의를 '자본주의'의 "몰인격적이며 자연사적인 운동"으로 파악한다. 그런데 '시장'과 '자본주의'라는 전통적인 개념과 그에 기반을 둔 분석틀은 현실의 역동성을 담아내는 데 큰 한계를 지닌다. 이들은 구체적인 현실세계로부터 동떨어진 추상적인 개념이기 때문이다. 시장과 자본주의는 200년 전부터 현실세계를 규정하는 중심 원리로 작동했고, 이미 그 공간적 범위도 전 세계로 확장됐다. 지난 10년간의 한국'으로 한정된 시공의 상황을 이렇게 추상적인 개념으로 포착하려다 보면, '시장의 전횡'이나 '자본주의 본래의 운동법칙'을 넘어서는 분석이 나오기 어렵다. 그 대응책 역시 '국가기구와 시민사회의 협조를 통한 거버넌스로 시장의 전횡을 통제한다'든가 '자본주의를 혁명적으로 변혁한다'는 수준을 벗어나지 못한다.

이렇게 전통적인 개념들로는 현실을 파악하기 힘들 때에는, "사건 그 자체로!"라는 한 위대한 철학자의 외침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그렇다면, 우리가 지난 10년간 겪어 온 신자유주의의 현실에서 뚜렷하게 나타난 중요한 현상은 무엇일까? 바로 끊임없는 '자본축적'이다. '축적'이란 사회적 구조 변화 그 자체가 아니라 구조 변화의 결과만을 수치상으로 보여주는 '사후적인 것'이 아닐까. 그렇지 않다. 마르크스가 갈파했듯, 자본은 "사회적 관계"다. 자본과 지배 세력은 사회적 관계라는 '외생적 조건'을 순순히 받아들이면서 축적의 게임을 진행하지 않는다. 주어진 조건에서의 축적 게임이 한계에 부닥치면 이들은 새로운 게임의 룰을 찾아낸다. 이들은 이 새로운 룰이 작동할 수 있도록, 기업, 금융, 노사관계 등은 물론이고 정치, 사회, 문화 전반에 이르는 광범위한 사회적 관계의 재구조화하려고 한다.

특정 시기, 특정 지역의 자본과 지배 세력이 어떤 새로운 게임의 룰을 염두에 두고서 어떤 특정 방향으로 사회 전체를 재구조화하려는 '정치적' 프로젝트가 바로 '축적 기획'인 것이다. 신자유주의는 20세기 말부터 자본과 지배 세력이 지구적 규모와 일국적 규모에서 착상하고 추진해 온 하나의 '축적 기획(accumulation project)'으로 이해될 필요가 있다.

금융화: 신자유주의 축적 기획의 게임법칙

그렇다면 신자유주의라고 하는 새로운 '축적 기획"의 내용은 무엇일까? 무엇보다도 신자유주의적 상황에서 금융의 중요성이 커졌다는 점, 즉 금융화(financialization)가 일어났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나는 신자유주의적 상황에서 새롭게 나타난 축적 기획의 성격으로 '금융화'를 포착하고자 한다.

◇ 축적의 지표: 시장 자산 가치의 극대화

전후 자본주의는 흔히 포디즘(Fordism) 시대의 자본주의라고 일컬어진다. 포디즘의 주요한 특징은 생산설비의 확장과 고도화, 고용과 임금의 지속적인 상승을 통한 시장의 창출 등이다. 이런 포디즘식 순환이 이뤄지려면, 국가는 잘 정돈된 금융 체제를 갖춰야 했고, 기업은 경영자들의 자율재량을 통해 시장 점유율의 상승, 기업 규모의 거대화 등을 경영 목표로 해야 했다.

이같은 어제의 축적 방식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할까? 폴 스위지(Paul Sweezy)는 1966년 폴 바란(Paul Baran)과 함께 미국 자본주의에서 나타났던 이같은 경향을 '독점자본(Monopoly Capital)'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한 바 있다. 하지만 그는 1991년 이 기업이론으로는 "설명은커녕 실마리조차 찾을 수 없는" 중대한 변화가 나타났음을 고백했다. 그것은 바로 "미국과 여러 지구적 자본주의 나라들에서 지난 25년간 금융 부문이 엄청나게 확장되고 갈수록 복잡해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또, 이런 발전은"기업이 지배하는 '실물' 경제의 구조와 작동에 중대한 방식으로 반작용을 가해 왔다"는 것이었다. 그는 특히 1980년대에 일어났던 기업 매수(buyout) 광란을 주목했다. 실제 '생산'에 대해서 아무런 관심도 지식도 없었던 초기의 금융 거래자들이 금융 거래를 통해 기업의 통제권을 쥐고서 기업과 생산 자체에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오는 존재로 발전했다는 것이다. 이 변화는 기업 경영 방식의 변화나 금융 부문의 질적·양적 팽창뿐 아니라, 민간 부문의 산업구조까지 바꾸어 놓는 광범위한 것이었다. 스위지는 이 변화는 자본축적의 이론 그 자체, 특히 '실물' 부문과 '금융' 부문의 관계에 대한 이론을 전면 재구성하지 않으면 다룰 수 없는 근본적인 것이라고 강조했다.

여기서 우리는 자본과 축적에 대한 이론과 관련해 가장 근본적인 질문 하나에 부닥치게 된다. 축적이란 '양이 불어나고 있는 상태'이니, 양이 불어난다는 것은 정확히 무엇이며 또 그것은 어떻게 측정할 수 있는가? 1960년대 '케임브리지 논쟁'은 자본이 단순히 '실물'의 자본재이며 자본의 양은 이 실물 자본재의 총량을 합산하면 된다는 전통적인 이론을 이미 무너뜨렸다. 그렇다면, 대안적인 자본과 축적 이론은 어떻게 마련되어야 할 것인가?

일찍이 100년 전 베블런(Thorstein Veblen)은 이러한 주류의 전통과는 정반대의 자본과 축적 이론을 제시한 바 있다. 그는 자본이란 철저하게 "금융적(pecuniary)" 개념이며, 자본축적도 철저히 금융 부문과 비즈니스 부문의 논리로 운동하게 돼 있다고 주장했다. 물론 금융 부문에서의 자본축적은 실물의 '산업" 부문과 긴밀하게 연결돼 있다. 하지만, 금융 부문에서의 자본 축적이라는 논리가 현실의 실물적 관계를 재구조화한다.

닛잔과 비클러(Jonathan Nitzan and Shimshon Bichler)는 이런 베블런의 관점을 더욱 발전시켰다. 그들에 따르면, 자본이란 보유하고 있는 생산재의 크기와 같은 '실물'적인 것들로 측량되고 축적되는 것이 아니다. 자본이란 유형·무형의 '자산(asset)'이며, 자산의 크기는 소수의 개인이나 집단이 주어진 역사적·사회적 맥락 속에서, 생산과 일반적 사회관계에 걸쳐서, 소유권이라는 형태를 통해 쟁취하는 권력의 크기다. 따라서 자본의 크기는 자산의 현재가치(present value), 즉 '내 자산을 지금 당장 여기에서 다른 사람에게 매각할 때 받는 대가의 크기'라는 지극히 금융적인 개념이다.

◇ 주주 자본주의: GE의 경우

1970년대 초반까지 미국 대기업들의 자본축적 방식은 주로 기업 확장을 통해 영업이익을 늘이고, 이를 사내에 보유하든지 아니면 신규 투자를 해서 기업의 내적·외적 성장과 팽창을 계속하는 사이클이었다. 그런데 이같은 기업 행태는 효율성과 통제력에 있어서 많은 문제를 낳았다. 그러자 경영학계에서는 '대리인 이론(agency theory)'을 신봉하는 학자들이 나타나 기업 경영의 지표를 '주주 이익의 극대화'로 놓고 이것을 목표로 기업 경영과 구성에 일대 혁신을 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1970년대 급격히 팽창한 동시에 극적인 탈규제를 겪었던 미국 금융시장은 이런 이론을 현실에 집행할 주체인 기관 투자가들을 등장시켰다.

원래 미국 금융시장은 질서정연하게 구획돼 있었고 각각의 금융기관들이 활동할 수 있는 범위도 엄격하게 제한돼 있었다. 그런데 70년대 초 석유위기 이후 초 인플레라는 예측불능의 금융적 환경이 도래하자, 금융기관들은 기존보다 더 높은 수익률로 생존하기 위해 이를 가로막는 기존 규제를 풀 것을 강력하게 요구했다. 이에 따라 보험과 연기금 등에 대한 주식 소유 제한 규제가 풀렸고, 은행 이자율에 대한 규제도 철회됐다. 증권시장의 주요 행위자로 가계 대신 뮤추얼펀드, 보험, 연기금, 은행 등 대규모 기관 투자자들이 등장한 것이다.

이런 덩치 큰 선수들이 유입되자, 미국에서는 1980년대 '정크본드' 붐을 시작으로 기업 경영권이 거래되는 엄청난 규모의 금융시장이 형성됐다. 그러자 적대적 인수의 위험에 고스란히 노출된 기업들은 주식 가치의 제고를 최고의 경영 목표로 삼지 않을 수 없었고, 이 목표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대규모 해고와 자산 매매도 서슴지 않는 새로운 경영 행태를 보이게 됐다. 그 대표 주자가 잭 웰치(Jack Welch) 아래에서의 제너럴 일렉트릭(GE, General Electric)이었다. GE는 1980~1990년대 전통적인 대규모 "제조업체"로서는 시장 가치를 가장 높게 제고했다. 1980년과 1998년을 비교했을 때 수입(revenue)은 300% 증가했고, 순소득(net earnings)도 520% 증가했다. 시장 가치의 폭등과 배당금 증가 등으로 주주들에게 돌아간 몫도 1200% 이상이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러한 GE의 성공은 같은 기간의 미국 경제의 호황 때문만이 아니라, 잭 웰치만의 적극적인 "주주 가치 극대화를 통한 시장 가치 경영"의 산물로 보아야 한다. 실제로 GE의 성공 요인으로 꼽히는 전략들은 대부분 "실물적 생산"에의 투자와는 거리가 멀거나 오히려 역행하는 것이었다. 여기에는 △기업 인수와 기존의 사업 부문 양수도를 통한 재구조화(restructuring) △대규모 정리 해고와 연구개발(R&D) 투자 감소를 통한 '산업적' 비용 절감 △서비스, 특히 금융서비스 부문으로의 진출(GE 금융서비스) △대규모 자사주 매각(stock buybacks)을 통한 주가 부양 등이 있다.

곧 다른 대기업들도 GE와 동일한 경영 노선으로 전환하기 시작했다. 한 경영평론가에 따르면, 미국의 100대 기업 중 약 3분의 1이 GE 의 뒤를 따르고 있다. 여기에는 제너럴 모터스, 아이비엠(IBM), 시어스, 케이마트(K-Mart), 보잉, 휴렛-패커드 등 거의 전 산업에 걸친 대기업들이 포함돼 있다.

◇ "시장 가치 자본주의"의 결과들

이러한 "시장 가치 경영"은 1980년대 이후 자본 축적이라는 자본주의 경제의 핵심 운영 준칙(rule of the game)이 '기업의 현재 시장 가치의 극대화'로 바꾸어 놓았다. 이런 변화는 기업 경영은 물론 금융시장의 구조, 산업, 노동시장 모두를 근본적으로 재구조화하는 것이었다.

△ 현금 흐름: 경영 시간 지평의 단축

기업의 장기적인 성장이나 자산총액의 증가와 같은 지표들은 뒷전으로 물러난다. 그 대신 '일정한 시간 내에 얼마만큼의 현금이 창출될 수 있는가'에 초점을 두는 소위 '캐시 플로우(cash-flow)'가 핵심 경영 지표로 등장한다. 이는 기업 경영의 시간 지평(time horizon)을 단축시키는 결과를 낳았으며, 이는 소위 "영미식 자본주의의 단기적 성과주의"라고 비판받는다. R&D 투자, 직원들의 교육과 장기적 생활복지, 기업 조직 내의 사회관계, 기업을 둘러싼 사회적 환경의 개선 등 기업의 장기적 성장에 필요한 것들은 일단 뒷전이 되고 심지어 희생당한다.

△ 제조업체의 '금융 자본화'

금융화의 가장 중요한 귀결 중 하나는 금융 기관과 비금융 기업들의 행태가 통일되는 것이다. '현재 시장 가치의 극대화', 이를 평가할 주주들이 가장 중요시하는 현금 흐름을 강화한다는 단일한 원칙 아래에서는 산업 자본이니 금융 자본이니 하는 전통적인 구별이 의의를 가질 수 없게 되는 것이다. 크립너(Greta Krippner)는 최근 '금융화'를 자본주의 체제 내에서의 이윤 증가가 상품 생산과 교역보다는 주로 금융적인 채널을 통해 이루어지는 '축적 패턴'의 변화로 정의하자고 주장한 바 있다. 그의 연구에 따르면, 1980년대 중반부터 미국 법인의 이윤 중 제조업과 서비스 부문이 차지하는 비중은 줄어든 반면 금융, 보험, 부동산 등 금융 부문의 몫이 급격하게 증가했다.

△ 금융 체제

1970년대 이후 대형 기관투자가들이 규제가 풀린 금융시장을 넘나들면서 거의 모든 종류의 금융증서들을 거래하기 시작했다. 또 가계에서 은행, 보험, 연기금 등의 형태로 나오던 엄청난 자금이 모두 구획이 사라진 자본시장으로 밀려들었다. 경영자들은 스톡옵션 등의 보상체제를 통해 주주들의 이익과 밀착한 경영을 하게 됐고, 이는 '주주 이익의 극대화'라는 명분으로 이들의 기업 경영권을 더욱 강화시켰다.

프로우드(Julie Froud) 등 영국의 회계학자들은 미국과 영국의 이런 주주 자본주의적 환경 아래에서 국민경제 차원에서의 금융 체제의 구성과 의미가 근본적으로 달라졌음을 지적했다. 새 금융 체제는 자본시장이 가계와 기업 부문을 잇는 매개자(intermediary)가 아니라 양쪽의 행동을 제어하는 규제자(regulator)가 되는, 이른바 '쿠폰-풀 체제(Coupon-pool System)'라는 것이다. 프로우드는 금융 시장 전체가 주식, 채권, 그 밖의 온갖 금융 증서들이 차별 없이 거래되는 쿠폰-풀의 틀로 통일된다고 본다. 이를 중심으로, 오른쪽에는 가계로부터 나오는 자금의 공급과 회수, 왼쪽으로는 국가와 기업에 의한 자금 융통이 이루어지는 두 개의 순환 구조가 생겨난다. 오른쪽에서는 가계 자금이 금융 빅뱅 등의 규제 완화를 통해 은행, 뮤추얼 펀드, 보험, 연기금, 부동산 등 기관 투자에 집중 유입돼 결국 모두 이 통일된 쿠폰-풀로 들어오게 된다. 한편 국가와 대기업은 자기 금융이나 조세에의 의존도를 줄이고 이 쿠폰-풀에서의 자금 융통 비중을 높인다. 이런 상황에서 쿠폰-풀은 기업 및 국가 부문은 물론 가계의 개인들의 경제적 행동을 결정하는 규제자가 된다.

아직 이 왼쪽과 오른쪽의 구조를 모두 갖춘 나라는 그다지 많지 않다. 하지만 영국, 미국의 대금융 자본을 선두로 지구적 자본의 공세는 날로 강화되고 있으며, 대부분의 나라들은 이같은 방향으로 국내의 기업 및 금융 체제를 재구조화하고 있다. 한국도 IMF 체제 10년을 거치며 신자유주의적 경향을 국가와 기업 운영의 원리로 확립해가고 있으며, 최근에는 자본시장통합법(그야말로 "쿠폰-풀"이다)이나 금산분리 폐지 등을 통해 "빅뱅"까지 추구하고 있다.

△ 기업 형태

기존의 주요 자본주의 국가는 자국의 조건을 고려해 적극적인 산업 정책과 이를 뒷받침할 금융 정책을 편다. 대기업 등은 이같은 국가적 차원에서의 조절(regulation) 아래에서 각자 목표에 따라 대기업 부문과 중소기업의 하청 부문에 이르는 일련의 산업구조와의 연쇄 관계를 맺어나간다. 하지만 이러한 축적 체제는 자본 축적을 평가하는 기준과 시간적 지평이 단기적인 "현재의 시장 가치와 현금 흐름"이라고 하는 원칙으로 바뀌면서 근본적인 변화를 겪게 된다. 먼저 상호 주식 보유(cross-share-holding)나 은행과의 장기적 관계 등을 매개로 했던 기업집단(corporate groups)이 해체된다. 기술적 생산성의 안정화와 향상 등과 같은 장기적인 기업 경영의 시간 지평에서 의미를 가질 수 있었던 중소기업 부문과의 연결 고리도 끊어지게 된다. 대신 기업을 주식시장에서의 평가에 가장 유리한 형태로 "날씬하고 옹골차게(lean and mean)" 만든다는 원칙이 세워진다.

대기업, 나아가 산업 구조 전체를 주주 자본주의의 원칙에 맞게 재구조화하는 강력한 틀로 각광받는 것이 바로 '지주회사'다. 지주회사는 정점에 선 모기업이 '주식 가치'라는 단일한 원리에 따라 산하 기업들의 기업 통치(corporate governance)를 이룰 수 있는 이상적인 모습이다. 모회사는 산하 기업들 내에서 발생하는 복잡한 노사 문제를 간단히 회피할 수 있다. 또, 모회사는 산하 기업들의 주식 발행을 통해 자본을 조달할 수 있다. 게다가 기업 인수의 경우와 달리, 모회사는 산하 기업의 주식을 '50%+1만 보유하면 되기 때문에 기업 인수합병(M&A) 비용도 절감할 수 있다.

2007년 한국, 기업과 금융 부문의 변모

IMF 위기 이후 10년 동안 한국 사회에서 '금융 부문'이 엄청나게 확장되고 복잡해졌다는 것을 부인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금융화(financialization)'란 단지 '금융 부문의 확장'을 가리키는 용어가 아니다. 오히려 금융화는 예전엔 '실물 경제'의 작동을 지원하는 역할에 그쳤던 금융 부문이 기업의 통제권을 장악하면서 실물 생산 그 자체를 근본적으로 변혁하는 것을 의미한다.

◇ 한국의 금융화 10년

금융화란 기업, 노후 생계 등 우리의 삶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이러저러한 사회경제적 요소들을 금융적 이익의 추구가 가능한 형태'로 바꾸는 것이다. IMF 사태 이전엔 기업, 특히 국민경제와 고용에 엄청난 영향을 미치는 대기업을 자유롭게 사고파는 것이 거의 불가능했다. 그러나 IMF와 김대중 전 대통령은 기업 경영권 시장의 형성, 소유지배구조 개혁, 주식시장 자유화 등을 통해 기업과 은행을 주식시장에서 거래할 수 있는 상품으로 전환시켰다. 또 주식시장을 개방해 이런 거래가 한국인이나 국내에서뿐 아니라 외국인과 국외에서도 이뤄질 수 있도록 했다. 결국 기업이 생산하는 상품을 사고파는 것이 아니라 '기업 그 자체'를 상품화하고 국내외적으로 자유롭게 거래할 수 있도록 만드는 조치가 지난 10년간 한국에서 진행돼 왔던 것이다.

'기업 그 자체'를 거래하는 주체, 즉 주주나 금융투자자들이 기업 운영을 좌지우지하는 권력으로 부상했다. 이런 과정을 촉진하기 위해 나타난 금융투자의 형태 중 하나가 바로 '자본주의의 왕'이라고 불리는 사모펀드다. 사모펀드는 주식시장에서 저평가돼 있다고 판단되는 기업의 경영권을 사들인 뒤, 비핵심 부문의 매각, 정리해고 등으로 기업 가치를 높인 뒤 되파는 것이다. 사모펀드는 유통과 생산 영역에 모두 개입해서 금융적 이익을 추구하는, 발전된 형태의 금융투자 형태다. 한국의 장하성 펀드, 보고펀드가 바로 이런 사모펀드다.

사모펀드와 같은 금융투자자들이 기업 가치를 올리려면 구조조정을 통해 비핵심 부문과 노동자들을 해당 기업 밖으로 자유롭게 축출할 수 있어야 한다. 이를 국가는 비정규직, 정리해고 등의 법률로 지원한다. 또한 투자자들이 세계 어디서나 자유롭게 이익을 추구하고 그 과실을 본국으로 송금할 수 있으려면 외환시장이 자유화돼야 한다. 이렇게 투자자의 이익을 지키기 위한 움직임이 바로 '소액주주운동'이고, 이같은 투자자 보호는 한미 FTA 등에서의 '투자자-국가 소송제(ISD)'로 절정에 달한다. '금융화'라는 시각에서 보면, 세계 자본주의를 주도하는 세력이 그토록 민영화를 재촉하는 이유도 알 수 있다. 대다수 공기업들은 생활 필수재를 생산하므로 시장이 넓고 현금흐름도 양호하다. 이런 '맛있는' 기업들을 민영화해서 사고파는 머니게임을 벌일 수만 있다면, 얼마나 많은 금융적 이익을 누릴 수 있겠는가.

금융화는 국가 거시경제정책의 기조까지 바꿔 놓는다. 세금, 사회보장 등에 관련된 재정정책을 억제하고 통화정책의 궁극적 목표를 물가안정에 두는 것이다. 금융투자자 입장에서는 물가가 오르는 만큼 투자손해를 감수해야 하기 때문이다. 금융화는 서민들의 라이프-사이클을 금융시장에 연관시키기도 한다. 국가는 연기금, 실업보험금 등 공자금을 국내외 증권시장에 투자할 수 있도록 했고, 이 결과 한국인들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국제금융시장과 직간접적인 관계를 맺게 됐다. 한편, 이런 경제 환경에서는 저성장과 이에 따른 고용불안이 불가피하므로, 복지제도가 사회적인 의제로 떠오를 수밖에 없다. 문화적 측면에서는 탈민족주의와 반집단주의, '웰빙'을 강조하는 문화상품들이 부상한다. 고실업-저성장 사회에 의욕적인 시민들이 '지나치게' 많은 경우, 그 사회는 지탱될 수 없다.

이처럼, IMF 사태 이후 한국에서 벌어진 일은 '자본시장(주식시장)의 활성화'라는 가치를 중심으로 사회, 경제, 문화 부문이 재조정되는 것이었다.
▲ IMF는 이제 '전 세계 거시경제의 수호자'가 아니라 '초국적 기업들의 세계화 도구'로 인식되고 있다. 지난 1월 24일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는 로드리고 라토 IMF 총재의 인도네시아 방문에 항의하는 대규모 시위가 일어났다. ⓒ연합뉴스

◇ 김대중 시대 : 신자유주의의 원시적 축적기

김대중 전 대통령의 기업·금융 개혁은 결국 미국 월스트리트의 금융자본이 한국의 기업과 은행을 재료로 머니게임을 벌일 수 있도록 '기업 경영권 시장'을 개방한 조치라고 볼 수 있다. 기존의 한국경제 시스템은 앙시앵레짐(구체제)의 '악의 축'이며 청산 대상으로 낙인찍혔고, 특히 재벌은 기존엔 불가능했던 M&A의 대상이 됐다.

IMF는 국회로 하여금 한국은행법을 개정하도록 해, 국가의 경제 개입을 원천봉쇄했다. 재벌에 대해서는 상호지급보증을 금지해 다른 계열사에 대한 지원을 차단하는 한편 부채비율 200%를 내세워 재무구조를 획기적으로 개선하라고 명령했다. 이와 동시에 은행에는 BIS(국제결제은행) 자기자본비율 8% 달성 및 대기업 여신 축소를 강요했다. 이는 기업과 기업의 자금줄인 은행의 목을 동시에 죄는 조치였다.

이런 IMF의 명령에 따라, 한국 기업들은 은행 대출이 아니라 주식 발행을 통해 자금을 조달해야 했다. 이는 기업의 소유권과 경영권을 쪼개 주식시장에서 거래 가능한 상품으로 전환하는 것을 의미했다. 은행 역시 BIS 비율을 맞추기 위해 주식시장에서 자금을 조달해야 했는데, 이는 은행 역시 거래 가능한 상품이 된다는 것을 의미했다. △외국환 취급 은행의 스왑, 옵션, 선물거래 전면 허용 △상업은행에 대한 외국인 지분소유 제한의 철폐 등이 바로 1997년에 실시됐다.

이렇게 기업과 은행이 결별하고 각각 '상품'이 되었다. 이렇게 기업과 은행이 상품이 되자 외국인 투자자들이 몰려와 이 '상품'을 사들였다. 김대중 개혁이 진행됐던, 1998년 이후 3~4년은 기업과 은행이 국가와 재벌 가문, 상호 간의 속박에서 벗어나 주식상품으로 전화되기 시작한 '신자유주의의 원시적 축적기'라고 명명할 수 있겠다.

이같은 기업·금융 구조조정과 함께 IMF가 강력히 요구했던 것이 바로 자본시장의 개방이다. 외국인들도 한국 기업을 자본시장에서 자유롭게 사고팔 수 있게 하라는 것이다. 이를 위해 1998년 정부는 지배 지분을 획득하려면 주식의 상당 부분을 공개 매수하도록 했던 '의무공개매수제'를 폐지하고, 국내 기업과 은행에 대한 외국인의 적대적 인수합병(M&A)을 허용했다. 같은 시기 외국인에 대한 주식한도가 폐지됐고, 2조 원 이상 자산을 가진 국내 기업의 주식을 취득할 때 정부로부터 사전 허가를 받아야 하는 규정도 사라졌다. 국내 주식에 대한 외국인 투자제한도 철폐됐고, 국내 채권 및 단기 자본시장이 외국인에게 개방됐으며, 외국인들이 10% 이상 투자할 때 대상 기업 이사회의 사전 동의를 받도록 했던 규정도 폐지했다.

그 결과, 해외자본은 국내 대표 기업과 금융기관을 보유하게 됐다. 해외자본은 외환은행, 국민은행, 하나은행, SC제일은행, 신한은행에서 1대 주주거나 50%를 상회하는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또한 해외자본은 삼성전자, SK텔레콤, LG화학, 포스코 등 국내 대표기업에서도 의미 있는 지분을 가지고 있다. 자동차와 조선, 석유화학 등 한국경제의 '등뼈'에 해당하는 산업들도 해외투자자들에게 넘어갔다.

이렇게 해서 은행에서 많은 돈을 빌려 전략산업에 과감히 투자하는 고부채-고성장 모델은 역사의 피안으로 넘어가고, 저부채-저성장 시대가 왔다. 은행의 영업 형태가 수익성 극대화 일변도로 흐르면서 '위험이 낮은' 가계대출이 '위험한' 기업대출을 능가하게 됐다. 이는 기업의 자금사정을 압박하는 요인이 돼, 결국 국민경제 전체적인 총투자율의 저하로 이어졌다. 산업은행에 따르면 2005년 국내 설비투자 금액은 모두 78조 원으로, 1996년의 77조 원에서 1조 원(1.3%)밖에 늘어나지 않았다. 이같은 투자부진은 낮은 경제성장의 원인일 뿐 아니라 장기적으로 성장 잠재력을 훼손한다는 측면에서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 노무현 개혁 : 금융시장 중심 사회의 심화

한국은 '독재정권이나 재벌가문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자본시장이 전 사회의 소득-분배-소비를 결정하는 사회'로 이행하고 있다. 그렇다면 한국정부는 이같은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에 어떻게 대응해 왔을까. 김대중-노무현 '자유주의 2대 정부'의 대응은 '적극적'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적극적 적응'을 '대안 전략'으로 축약한 것이 바로 노무현 정부의 '동북아 금융허브론'이다. 2003년 초 세상에 선보인 동북아 금융허브론은 단순한 '금융산업 발전방안'이 아니라 일종의 국가발전 모델(즉 '고부가가치 서비스업을 주력산업으로 하는 통상국가')로 제시된 것이다.

IMF 사태 이전에는 국내 예금자나 투자자의 돈이 국내 은행이나 증권사를 통해 국내 산업에서 운용된 뒤 다시 일정한 수익(이자)과 함께 국내 예금자나 투자자의 손으로 회귀하는 식으로 돈의 흐름이 형성됐다. 이에 비해 금융허브에서는 국내는 물론 해외의 돈까지 국내외 은행, 증권사, 자산운용사, 투자은행 등 금융회사를 통해 다양한 금융상품으로 운영된 뒤 다시 국내외의 투자자에게 회귀하는 방식으로 자금이 흐른다. 금융허브(financial hub), 즉 금융거래(financial)의 축(hub)이라는 용어 자체에 이미 '돈이 국경을 벗어나 세계적으로 순환한다'는 의미가 내포돼 있다. 결국 '금융허브 정책'이란 '돈의 세계적 순환'이라는 가능성을 기반으로, 국내외의 부유한 개인들이 자산을 투자하고 싶은 국내적 조건을 조성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국내외의 투자자들을 유치하려면 그들의 투자가 안전하게 수익을 낼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져야 한다. 한국 정부의 부당한(?) 시장 외적인 간섭으로 이들의 투자가 손해를 볼 위험이 없다는 것을 확실히 보장해야 한다. FTA의 기본정신 중 하나가 '투자자 보호'라는 점을 상기하면, 금융허브론과 FTA가 같은 전제를 공유하고 있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이런 시각에서 볼 때 동북아 금융허브론은 '박정희 모델 파산론'과 '김대중(DJ) 개혁'에서 한미 FTA(자유무역협정)로 가는 징검다리 역할을 한다고 볼 수 있다.

결국, 노무현 정부의 금융허브론은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의 다른 표현이다.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의 물결은 세계경제 내에서 국민경제 간 서열을 변화시킬 것인데, 정부는 이 수직적 서열 체계에서 가급적 높은 자리에 한국경제를 세우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것이다. 예컨대 중국에서 IMF 사태와 비슷한 경제위기가 발생해 기업가치가 현저히 낮게 평가될 회사가 있다면, 이 중국 회사를 인수해 구조조정 한 후 되팔아 막대한 수익을 얻는 '금융 연금술'의 주인이 반드시 미국이나 유럽의 금융업자일 필요는 없다는 이야기다.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 시대의 금융강국! 이것이 참여정부의 꿈이다.

이 꿈을 이루기 위해 노무현 정부는 법률적으로 치밀한 준비를 해 왔다. 우선 한국을 '자산운용업 중심의 금융허브'로 육성하겠다는 계획 하에 지난 2003년 한국투자공사(KIC)를 설립했으며, 간접투자자산운용업법을 제정했다. 2005년엔 금융기관의 아웃소싱을 활성화할 목적으로 '금융기관의 업무위탁 등에 관한 규정'의 개정안 원안인 '금융기관의 업무위탁 등에 관한 규정'을 냈다. 2008년부터는 자본시장통합법을 시행할 예정이다.

◇ 한국사회 금융화의 전망

김대중 정부가 추진한 금융화는 노무현 집권기에 한 단계 도약했다. IMF 금융위기 이후 한국에 강요된 신(新)금융 질서를 적극적으로 내재화하고 '우리의 역량'으로 바꿔, 다른 개발도상국에서 '한국이 당했던 그 방식'으로 금융적 이익을 추구하는 구상을 갈고 닦았던 시기가 지난 4년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와 함께, '한국경제의 성격'을 다시 한 번 송두리째 바꿀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2008년 시행될 예정인 자본시장통합법, 오는 정기국회나 대통령 선거 이후에 시도될 한미 FTA의 비준, 금산분리 철폐 및 한국판 엑슨 플로리오법 추진, 생명보험사 상장, 재벌그룹들의 지주회사 전환 움직임 등이 그것이다. 이런 움직임들은 결국 재벌을 '금융화의 완료'에 동력으로 활용하겠다는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금융화의 동력으로 활용된 이후 재벌들의 고용창출 능력 및 산업연관 효과는 지금보다 훨씬 더 열악해질 가능성이 높다.

맺으며

신자유주의를 축적 기획으로 이해한다면 지난 10년간 김대중 노무현 두 정권을 거치면서 진행돼 온 한국 사회의 변화, 특히 기업과 금융 부문의 변화는 '금융화'라는 방향을 꾸준히 지향하는 일관성을 보여 왔음을 알 수 있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한미 FTA는 결코 정치권과 한미 간의 정치적 관계에 의해 벌어진 일탈적인 사건이 아니다. 오히려 '축적 기획'이라는 경제적 관점과 '국내 자본과 지배 세력의 기획'이라는 정치적 관점에서, 한미 FTA는 지난 10년간의 구조 변화가 가져온 자연스러운 귀결임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과연 이러한 신자유주의적인 사회 구조 변화는 소위 지구화된 세계경제에서 누구도 거스를 수 없는 운명이자 지상 명령일까. 만약 신자유주의를 "보이지 않는 손"이라든가 "역사의 운동 법칙"과 같은 초월적인 개념들로 파악한다면 그렇게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신자유주의를 자본과 지배 세력의 축적 기획으로 파악할 경우, 이 기획이 지닌 적나라한 정치적 성격이 드러나게 된다. 우리는 이러한 지배 세력의 기획을 저지시키는 투쟁을 조직해야 한다. 국가 기구를 통한 시장 독재의 저지 등과 같은 소극적인 방향이 아니라, 이런 기획 자체를 대체할 수 있는 진보 세력의 독자적인 기획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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