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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맥 팔아 돈버는 세상' DJ가 열고 盧가 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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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맥 팔아 돈버는 세상' DJ가 열고 盧가 끌고

[한미FTA 뜯어보기 507 : FTA 현미경&망원경(7)] '금융화'와 한미FTA(上)

아직 잘 알려지지 않은 '일반 상식'이 있다. '자유시장의 상징'이라는 미국. 투자자는 '국경을 넘어, 규제의 어둠을 넘어' 자유로워야 한다는 '사상의 조국' 미국. 그런데 이 나라의 은행이나 대기업에 '자유롭게' 투자하는 것이 얼마나 험난한 일인지 당신은 혹시 알고 있는가?

잘 알려지지 않은 상식은 또 있다. 당신이 미국인이 아니라면 아무리 좋은 학력과 경력, 금융 테크닉, 바다처럼 넓은 인적 네트워크를 가졌다고 해도 미국 은행의 이사가 되기는 힘들다. 도대체 왜?

한국엔 없고 미국엔 있는 것

미국 은행법이 그렇게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당신이 미국 상장은행의 주식을 10% 이상 소유한 대주주가 되려면 감독기관인 FRB(연방준비제도이사회)에 미리 주식매수 계획을 제출해야 한다. FRB가 거부하면? 그걸로 끝이다.

미국의 상장은행들은 워낙 매머드 급이라서 그 주식 10%를 구입할 자금을 동원할 수 있는 사람은 지구상에 손으로 꼽을 정도일 것이다. 그래도 이런 식으로 규제한다.

미국 은행의 이사가 되기는 더 어렵다. 미국 은행법 72조를 보라.

"모든 은행 이사는 재직 중 미국 시민이어야 한다. 또한 이사 가운데 3분의 2는 취임 1년 전부터 은행이 소재한 주(州), 혹은 그 은행으로부터 100마일 내에 거주했어야 한다. 그 은행이 외국은행에 합병되었거나 자회사인 경우에도 미국 시민이 이사회에서 다수를 차지해야 한다."

여기까지 이 글을 읽은 독자들 중엔 필자가 왜 이런 이야기를 늘어놓는지 미심쩍은 분들이 있을 것이다. 이는 미국에서든 다른 나라에서든 어쩌면 지극히 당연한 조치가 아닐까. '국민경제의 혈맥'이라는 은행의 소유권과 경영권을 함부로 외국인에게 넘길 수는 없는 것 아닌가.

그래서 미국뿐 아니라 캐나다, 싱가포르, 필리핀, 독일, 영국 등 여러 나라들이 법률적으로 '내국인 이사 과반수' 규정을 명문화하거나 금융감독 당국이 규제하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이같은 당연한 일에서 한국은 예외라는 것이다. 한국의 은행법에 따르면, 은행 이사의 자격요건은 다음과 같이 매우 '단순'명쾌하다.

"금융에 대한 경험과 지식을 갖춘 자로서 금융기관의 공익성 및 건전 경영과 신용질서를 해할 우려가 없는 자."

이처럼 한국은 은행의 이사 자격에 관한 한 만국평등의 박애정신을 자랑한다. 오대양 육대주의 누구나, 미국인이든, 프랑스인이든, 모잠비크인이든, 아르헨티나인이든 국적과 관계 없이 누구나 능력(?)만 있으면 한국 시중은행의 이사 자리를 차지할 수 있다.

더욱이 외국인에게 경영권을 넘겨주지 않기 위한 일종의 안전장치인 외국인 투자 지분 제한 제도(은행의 전체 주식 중 외국인의 몫을 제한하는 제도)도 IMF(국제통화기금) 금융위기 이후 폐지됐다.

그 결과, 2006년 현재 국내 최대 은행인 국민은행의 외국인 지분율이 84.57%, 그 다음 순위 2~3위를 다투는 하나금융지주와 신한금융지주가 각각 79.93%와 63.4%를 기록하고 있다.

미국을 포함해 많은 나라들이 '자유 시장', '자유 투자'의 아름다운 정신을 내던지고 은행의 소유경영권에 집착하는 이유는 국민경제에서 은행이 차지하는 비중이 필설로 헤아릴 수 없을 정도이기 때문이다.

예컨대 제조업 부문의 웬만한 대기업 하나가 망하더라도 국민경제 전체가 흔들리지는 않는다. 그러나 시중은행 가운데 한 곳이라도 문을 닫는다면?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그만큼 은행은 사회에 엄청난 영향을 미치는 기관이고, 이 때문에 한국에서도 IMF 사태 당시 은행의 부실을 공적자금, 즉 국민의 세금으로 메워줬던 것이다. 여기서 알 수 있는 은행의 사회적 성격을 일단 '은행의 공공성'이라고 부르자.

그렇다면 국민경제의 공공성을 지킨다는 관점에서 지금이라도 은행법을 수정하면 어떨까? 외국인 이사의 수를 제한한다거나, 외국인 이사의 자격 조건으로 한국 영토 이내 혹은 해당 은행으로부터 200km 이내에 1년 전부터 거주해야 한다는 규정을 집어넣을 수 있을까.

정답은 '몹시 어렵다'이다. 그 이유는 한국이 다자간 협정인 우루과이라운드(UR)의 은행서비스 부문 협상에서 '외국인도 내국민과 동일한 대우를 한다(NT, 내국민대우)'는 내용을 이미 양허해 버렸기 때문이다.

이 규정을 변경하려면, 한국은 다시 여러 나라들과 재협상을 벌여야 한다. 국가 간 협상은 이토록 되돌리기 어려운 것이다. 우루과이라운드엔 '역진불가(Ratchet, 래칫)' 조항이 없는데도 그렇다.

지난 4월 초 협상이 타결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의 핵심 조항 중 하나는 바로 이 '역진불가'이다. 국민경제의 공공성을 위해 은행법을 수정하는 것이 '몹시 어렵다'에서 '사실상 불가능하다'로 바뀌는 것이다.

기업과 은행을 상품으로

사실 국민경제의 핵심 부문 중 핵심인 은행 소유경영권을 이 정도로 통 크게 외국인에게 넘겨주는 '개방적'인 나라는 전 세계적으로도 결코 흔치 않다.

이런 비상한 사태가 한국에서 발생한 계기는 물론 10년 전의 IMF 위기였다. 당시 김대중 정권은 IMF가 구제금융의 조건으로 한국의 기업과 금융기관에 요구한 것보다 훨씬 큰 범위의 '변혁'을 '자발적'으로 수행했다. 그래서 당시 김대중 정부의 개방은 'IMF 플러스'라고 불리기도 한다.

이 변혁의 기본적 내용은 아주 간단한 하나의 문장으로 표현될 수 있다. 바로 '금융개혁을 통해 한국의 기업과 은행을 주식시장에서 사고팔 수 있는 상품으로 바꾼 것'이었다.

그렇다면 IMF 사태 이전의 한국에서는 대기업과 은행을 사고팔 수 없었단 말인가. 그랬다. 대기업과 은행에 대한 거래는 거의 원천적으로 봉쇄돼 있었다.

당시 대기업들은 피라미드 형태로 그룹을 이뤄 재벌 가문의 손아귀에 장악돼 있었다. 재벌들 역시 주식(기업의 소유권)을 팔아 얼마간의 사업 자금을 조달하긴 했으나, 그룹에 대한 자신의 지배 권력을 위협할 수 있는 규모의 주식을 시장에 내놓는 일은 없었다.

은행은 사실상 국가의 소유였다. 기업은 대부분의 사업자금을 바로 이 국가 소유의 은행으로부터 조달해 투자했고, 이 과정을 국가가 감독했다. 한국의 기업들은 사업자금을 소유권, 즉 주식 판매의 형태로 조달한 것이 아니라 은행 대출로 마련했다는 이야기다. 당연히 기업의 부채비율은 높을 수밖에 없고, 이와 반대로 은행의 BIS(국제결제은행) 비율은 낮을 수밖에 없었다.

한국의 기업과 은행은 부채, 즉 은행 대출을 통해 서로 밀착해 있는, 쌍두사(雙頭蛇)의 두 대가리로 서로의 몸을 칭칭 얽으며 세계시장의 틈새로 파고들었다.

기업과 은행의 이같은 밀착관계를 끊어낸 수단이 바로 김대중 정부의 금융개혁이었다. 이는 기업의 경우 부채비율 200%, 은행의 경우 BIS 비율 8%로 나타났다. 즉, 기업은 은행 부채를 줄이는 대신 주식(소유권)을 팔아 자금을 조달하고, 은행 역시 기업대출을 대폭 줄이라는 이야기다.

이런 과정을 거쳐 기업과 은행은 강제 이혼을 당했고, 각각 주식시장에서 사고팔 수 있는 상품이 되었다.

변혁의 코드 '금융화'

그러나 한국의 기업과 은행이 단지 거래 가능한 상품이 되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았다. 세계화의 시대, 기왕 상품이 되는 바에야 국제적 상품이 되어야 했다. 즉, 외국자본도 주식시장(자본시장)에서 한국의 기업을 사고팔 수 있게 해야 하고, 이를 위해 외환의 유출입도 자유로워져야 했다.

이를 위해 김대중 정부는 기업 주식에 대한 외국인의 소유한도를 철폐하고, 대기업의 주식을 취득할 때 시행되던 여러 규제들을 폐지했다.

국내 주식·채권에 대한 외국인 투자 자유화 등 경천동지할 규모의 '금융개방'이 믿을 수 없을 만큼 짧은 시기에 강행되었다. 적대적 인수합병(M&A)이 허용돼, 외국인들은 한국 기업 주식의 50% 이상을 취득해서 경영권을 장악할 수 있게 되었다.
▲ 2003년 11월 노무현 대통령이 김대중 전 대통령과 함께 '김대중 도서관' 개관식장으로 들어서고 있다. ⓒ연합뉴스

이쯤에서 우리는 초국적 자본이 사고팔 수 있게 되기를 간절히 바랐던 것은 단지 한국 기업의 주식이 아니라 '50% 이상의 주식', 즉 경영권이었다는 것을 확실히 할 필요가 있다. 글의 서두에서 언급했던, 은행의 소유경영권이 현재의 형태를 갖추게 된 것도 김대중 정부 당시의 사건이다.

그렇다면 왜 경영권인가. 그냥 주식을 사두고 그것이 오르기만 기다려도, 즉 포트폴리오 투자로도 충분하지 않은가? 아니다. 결코 충분하지 않다! 그런 '구식'의 금융 테크닉으로는 '리스크'도 '헤지(hedge, 분산)'할 수 없고, 큰 수익을 기대할 수도 없다.

그러나 재벌에 장악된, '나쁜 소유지배구조' 때문에 한국 기업의 주식가치가 저평가되고 있다면(코리아 디스카운트), 그 기업의 경영권을 획득해서 비(非)핵심 사업 부문을 매각하고 노동자들을 잘라 주가를 올린 다음 되팔면 된다(바이아웃 투자).

이는 자본을 조달하고 노동력을 관리해 어렵게 생산한 재화를 판매하는 것보다 훨씬 높은 수익률을 올릴 수 있는 방법이다.

김대중 정부가 노동자들의 지지에 정리해고제로 보답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이같은 초국적 자본의 돈벌이와 무관하지 않다. 기업 경영권의 매매로 돈을 벌겠다는데, 여기에 노동자들이 '엉겨 붙는 바람에' 매매 자체가 불가능하게 되면 정말 곤란하지 않겠는가.

물론, 초국적 자본의 입장에서는 경영권을 장악하지 못한다 해도 다른 차선의 길이 있다. 의미 있는 주주로서 '경영권 불안정'의 상황을 유지하기만 하면, 재벌 가문은 제 발 저린 강아지처럼 고배당과 자사주 매입으로 보답한다. (기업이 자사주를 매입·폐기하면 총 주식 수의 저하로 주가가 상승한다.)

이렇게 '기업(은행) 매매를 이용한 돈벌이'가 사회경제 시스템 전체를 지배하는 현상을 '금융화'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예컨대 이런 질서 속에서 한국 기업과 은행의 으뜸 목표는 종전의 성장(매출량)에서 수익률(ROA, ROE)로 변모했다. 주식가치를 지배하는 것이 수익률이고, 주식가치를 올려야 퇴출되거나 다른 기업에 인수합병(M&A) 되지 않기 때문이다(자본시장의 징계 메커니즘).

금융화 현상 속에서 기업은 이제 주식시장, 즉 금융투자자들의 '인기투표'에서 이겨야 생존할 수 있게 되었다.

금융투자자에겐 1000원을 투자해서 100원을 버는 수익률 10%의 기업 A보다, 100원을 투자해서 50원을 벌어들이는 수익률 50%의 기업 B가 훨씬 사랑스러운 법이다. 비록 고용이나 산업 전후방 효과에서는 A가 훨씬 우수하겠지만 말이다.

이처럼 금융투자자의 권력이 지배하는 사회경제 시스템은 내적으로 '저투자-저성장-고실업' 경향을 지니고 있는 셈이다.

그러므로 김대중 정부 이후 한국경제의 저투자-저성장 패턴이 정착되어 온 것은 사실 이상한 일이 아니다. 김대중 정권은 "좌파 빨갱이 어쩌고" 하는 사회 일각의 정신분열증적인 마타도어와 반대로 지구적인 신자유주의 금융 세계화 추세에 자신의 국가를 가장 잘 적응시킨 정부이다. 노무현 정권도 마찬가지다.

다만 이같은 '성공'의 결과가 사회 한편에서는 '세계적으로 가장 우수한 기업들 및 한 해 수천 억 원 규모의 순이익을 올리는 대형은행', 다른 한편에서는 '100만 원 이하의 저임금 노동자와 청년 실업자들'이 병존하는 형태로 나타나고 있을 뿐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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