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처럼 프랑스와 독일은 똘레랑스, 사회민주주의 등의 '기표'를 통해 적어도 진보적 지식인 사회 속에서는 한국사회가 지향할 새로운 모델의 지위를 획득했다. 일각에서는 서유럽 국가들이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의 광풍을 성공적으로 극복하기를 희망하며 이 나라들의 사회 제도를 소개하기도 했다. 그러나 서유럽 국가들은 과연 한국의 모델이, 혹은 신자유주의 극복의 모델이 될 만했는가. 사실은 그렇지 않다. 한국인들이 1997년 IMF 사태 이후 경험한 사건들을 독일인들은 7~8년 전 먼저 겪었고 이에 무릎을 꿇다시피 했다.
아래에서 필자는 정말로 하고 싶지 않은 이야기를 하고, 쓰고 싶지 않은 글을 쓸 것이다. 그 이유는 '사실'과 '당위'를 섞어 버무리는 행위가 얼마나 많은 해악을 낳는지, 필자가 철든 이후(사실은 아직 철이 안 들었다고 욕하는 사람들이 더 많다)부터 최근까지 물리도록 봐왔기 때문이다. 조금 긴 이야기지만 참고 읽어 주시기 바란다.
독일 복지국가에 대한 신자유주의의 공습
1999년 말 독일 경제계에서는 놀라운 사건들이 한꺼번에 일어난다. 그해 11월 영국의 휴대폰 업체인 '보다폰'이 독일의 대형 이동통신사인 '마네스만'을 인수한 것이다. 비슷한 시기, 경영 위기에 처한 독일의 최대 건설사 '필립 홀즈먼'이 주거래은행의 구제조치 거부로 경영위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파산을 선언한다.
2007년 한국의 시각에서 볼 때 외국 기업이 국내 기업을 인수하고, 은행이 위태로운 기업에 대출을 거부하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1999년 현재 독일에서 이런 사태는 종전 이후 처음으로 벌어지는 파천황의 사건이었다. 그 이전엔 독일 기업에 대한 인수합병(M&A) 자체가, 국내든 국경간이든, 거의 불가능했고, 은행이 거래 기업의 파산을 방관하는 일도 좀처럼 발생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독일의 이같은 변화는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의 효과였다. 영국과 미국에서 시작된 금융세계화가 유럽연합(EU)을 경유해서 독일의 금융 시스템을 바꿔 놓았고, 이는 독일 기업의 소유지배구조와 운영형태, 은행-기업 간 관계까지 변화시킨 것이다.
그렇다면 '라인 모델'로 불리는 기존의 독일 시스템은 어떠했는가. 우선 기업과 은행이 대단히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었다. 독일 기업엔 경영진을 임명하거나 해임하는 등 강력한 권한을 가진 감독이사회라는 기구가 있다. 그런데 이 기구의 실권을 장악해 기업에 엄청난 영향을 미치던 주체가 보통 그 기업의 주거래은행이었던 것이다. 이는 물론 주거래은행이 고객 기업의 소유권을 장악하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예컨대 독일 기업 A사의 주거래은행인 B은행은 A사의 대주주였다. 동시에 A기업의 일반 주주들도 B은행을 통해 A기업의 주식을 인수한 후 이 주식을 그대로 B은행에 위탁하는 경우가 많았다. 독일의 기업은 은행과 은행 고객들의 공동 소유였던 셈이다. 1992년 통계에 따르면, 독일 24개 대기업 주주총회에서 행사된 의결권 중 무려 84%가 은행의 수중에 있었다. 한편, 같은 해, 독일 닥스 지수(DAX Index)에 포함된 30대 기업 중 11개 기업의 감독이사회 의장 역시 은행가였다.
A기업의 주주총회가 다가오면 B은행은 A기업의 주주인 자행 고객들에게 '대리의결 위탁서'를 발송해 동의를 받아냈다. B은행은 이렇게 고객들로부터 위탁받은 지분과 자체 지분을 대표해서, 경영진 임명, 해임 등 주요 사안에 대한 의결권을 행사했다. 이를 '대리의결권 제도'라고 하는데, 독일의 은행들은 이를 통해 기업을 '실효적'으로 지배한 셈이다. (독일 복지국가의 하부구조 중 하나인 이 제도의 창안자가 히틀러라는 사실은 정말 아이러니하다.)
이런 은행-기업 간 관계는 독일 복지국가의 기관차로 평가되고 있다. 은행은 고객 기업과의 장기적이고 밀접한 관계를 통해 그 기업의 상황을 누구보다 잘 파악하고 있었으며, 이에 따라 양질의 대출 프로그램을 기업에 제공했다. 1960년대 이후 30여 년간 독일 기업들이 동원한 자금 중 60%가 국내 은행에서 빌린 것이었다. 적어도 1990년대 말 이전까지는 독일의 은행들이 위기에 처한 고객 기업을 외면하는 일은 좀처럼 발생하지 않았던 것이다.
독일의 자본시장이 발전하지 못했던 이유
독일의 은행들이 기업의 주식을 보유했던 목적은 그 주식을 팔아 수익을 얻는 것이 아니라 해당 기업의 감독이사회를 지배하는 것이었다. 외부 투자자의 입장에서는 독일 기업의 인수합병은 물론 주식을 살 수 있는 기회 자체가 원천 봉쇄돼 있었던 것이다.
이에 더해 독일은 '차등주식제'까지 실시하고 있었다. 그 내용은 대충 다음과 같다. 첫째, 특정 주주가 아무리 많은 주식을 가지고 있더라도, 경영진은 그 주주의 의결권을 5~10%로 제한할 수 있었다. 둘째, 의결권 없는 주식의 비중이 컸다. 이 덕분에 독일의 '재벌'인 콴트 가문은 산하 그룹에 대한 소유지분이 3.6%에 불과했으나 45.6%에 달하는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었다. 이런 점은 한국의 재벌과 크게 다르지 않다. 셋째, 주식의 거래가 제한됐다. 주식을 남에게 넘기거나 인수하려면 발행회사의 허가를 얻어야 했다.
이런 모든 장애를 뚫고 주식을 판매하는 데 용케 '성공'한다고 치자. 그래봤자 '자본이득세'가 40%를 웃돌았다. 주식을 사고팔아 돈을 벌 수 있는 구조가 아니었던 것이다. 이처럼 독일 기업의 주식은 자유롭게 사고팔 수 있는 상품이 아니었다. 자본시장과 자본주의의 기본권인 '1주 1표', '1원 1표'는 물론 소유권도 독일에서는 무시당했다.
독일의 기업(은행)들은 이처럼 자본시장에서 사고팔 수 없는 다른 기업의 주식을 보유하면서 은행-기업 간, 기업-기업 간 네트워크를 형성했다. 예컨대, 초대형 보험사인 알리안츠 역시 대형 상업은행인 도이체방크, 드레스드너방크와 주식을 상호 보유했다. 또 이 금융회사들은 독일 최대 기업들과 지분을 나눠가지며 이중 삼중으로 복잡한 네트워크를 이루고 있었다.
이런 네트워크가 포괄하는 주식회사가 70%를 웃도는 정도였으니, 자본시장은 당연히 발전할 수 없었다. 자본시장에서 거래 가능한 물량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던 셈이다.
1999년 마네스만의 해외 매각과 필립 홀즈먼의 파산은 이처럼 강고한 시스템이 사실상 파산했음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라인모델의 해체
독일 시스템이 파괴되기 시작한 것은 1990년대 초부터이다.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는 독일의 금융시스템은 물론 그 기반 위에 존재하던 '금융과 산업 간의 관계'를 혁명적으로 변화시켰다.
종전엔 주로 은행을 이용하던 기업들이 자본시장 상장을 통해 자금을 조달하기 시작했다. 심지어 일부 대기업들은 해외 자본시장에 주식을 매각해서 자금을 만들기도 했다. 은행을 벗어나지 못했던 독일 기업들의 자금조달 방식이 '증권화', '국제화'된 것이다. 외국기업의 마네스만 인수도 이 회사가 독일 밖의 주요 증권거래소들에 주식을 내다팔아 자금을 조달하던 끝에 발생한 사건이었다.
한편 도이체방크 등 상업은행들 역시 예대마진에 기반을 둔 전통적 은행업을 쩨쩨한 고비용-저수익 사업으로 인식하게 됐다. 그리하여 이들은 리스크는 크지만 큰돈을 벌 수 있는 자본시장 관련 비즈니스, 즉 증권업, 자산운용업, 투자은행업 등에 눈독을 들이게 됐다.
이와 함께 2000년 독일 정부는 40%에 이르던 자본이득세를 대폭 내렸다. 주식거래로 돈을 벌 수 있는 가능성이 생긴 것이다. 이에 따라 독일의 전형적인 회사 형태인 유한회사들이 대대적으로 주식회사로의 전환에 나섰으며, 주식시장이 호황을 누리기 시작했다.
또한 은행의 대리의결권도 공격받게 되었다. 주주들은 은행에 위탁하던 의결권을 직접 행사하기 시작했다. 대기업들은 은행대출에 덜 의존하게 되면서 자사에 대한 은행의 영향력을 줄였다. 이같은 움직임을 확고히 한 법률이 1998년 제정된 KonTrag법(기업경영과 투명성에 관한 법률)이다.
독일 라인모델 해체의 법적 표현이라고 부를 수 있는 KonTrag법에 따르면, 은행은 5% 이상의 주식을 보유한 기업의 주주총회에서 위임장으로 의결권을 행사할 수 없게 됐다. 대리의결권제가 사실상 붕괴한 것이다. 이와 함께 독일 정부는 차등주식제와 의결권 제한을 폐지하고 '1주1표제'를 실효화 함으로써, 독일 기업들의 주식을 '거래 가능한 매력적인 상품'으로 변화시켰다.
독일의 신자유주의 비판
독일 기업들의 주식이 매력적인 상품이 되었다는 것은, 독일 기업들의 소유지배권 그 자체가 잠재적인 인수합병의 대상으로 자본시장의 도마 위에 올라왔다는 이야기와 같다. 기존의 독일 시스템을 받쳐주던 주거래은행, 상호지분보유 등의 제도들은 위기에 처했다. 또한 KonTrag법은 자사주매입, 스톡옵션 등 미국식 주주자본주의 제도를 대폭 수입했으며, 독일 노동계의 반발을 무릅쓰고 감독위원회의 기능을 축소하려고 시도하다가 실패하기도 했다.
1990년대 이후 독일 사회가 겪은 변화는 IMF 사태 이후 한국이 경험한 것과 대동소이하다. 한국의 신자유주의자들이 '독재정부와 재벌 비판'을 이데올로기적 무기로 기존 시스템을 개혁했다면, 독일의 신자유주의자들은 기존 라인 모델을 나치의 유산으로 몰아 세웠다. (실제로 감독이사회, 대리의결권제 등은 히틀러 시대에 만들어졌다.) 다만 독일 경제는 한국처럼 외환위기라는 '외부 충격' 없이 비교적 자발적인 조정을 거쳤을 뿐이다.
독일 대기업들도 한국 대기업들과 마찬가지로 주주가치의 극대화, 자기자본이익률(ROE), 가치기반경영 등 신자유주의 슬로건을 내걸고 있다. 독일 역시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가 마련한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춰 금융시장을 중심으로 경제 시스템을 바꿔왔다는 점은 한국과 같다. 또한 지난 몇 년 간 한국에서 진행된 '주주자본주의 논쟁' 역시 독일에서도 이뤄지고 있다.
2000년 당시 독일노조연합의 의장인 디터 슐테 씨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주주가치를 강조하면서 사회적 시장경제를 무시해서는 안 된다. 몇 년 동안 주가지수는 올랐지만 동시에 실업률도 오르고 있다. 호황과 일자리 창출 간에 존재하던 고리가 끊어진 것이다. 주주가치 극대화 때문에 사회발전에 대한 기업의 책임이 무시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독일엔 다음과 같은 사려 깊은 경영자도 있는 모양이다.
"이 배타적으로 이윤극대화에 집중하는, 차가운 자본주의는 우리 경제 시스템의 위기와 사회적 시장경제의 기둥을 허무는 것으로 귀결될 것이다. 기업은 이윤을 얻기 위한 조직인 것만은 아니다. 기업은 복지에 대한 사회적 책임을 져야 한다. 공격적인 주주가치 전략은 이 의무를 허물고 무효화시킨다."
금융화의 딜레마
필자는 지난 4월 <프레시안>에 발표한 글에서 '한미 FTA는 IMF 사태 이후 추진돼온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의 일환으로 해석할 수 있으며, 김대중·노무현 정부는 이런 추세에 자신의 국가를 가장 잘 적응시킨 정부'라고 주장한 바 있다. 또한 이런 '추세'와 '적응'이 고실업 등 '서민의 실패'로 나타났다고 설명한 바 있다. (☞관련기사 보기)
그렇다면 이런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 추세를 민주적으로 또는 노동 친화적으로 잘 극복한 국가가 있다면 정말 바람직했을 터이다. 그 경험을 배울 수 있으니까 말이다. 그러나 (하기 싫은 이야기지만) 실제로는 이같은 모델을 찾기가 결코 쉽지 않았다. 심지어 믿어 마지않던 '독일 복지국가'마저 위와 같은 소용돌이에 빠져들고 있었던 것이다. 오히려 1980년대 미국 경제 시스템을 변혁한 '금융화' 현상이 중반 영국의 '금융 빅뱅'으로 이어지고, 독일, 프랑스 등 서유럽을 휩쓴 뒤, 1980년대 말~1990년대 초반 일본과 호주의 빅뱅을 짚고 한국으로 건너왔다고 할 수밖에 없다.
이같은 '세계적 추세'는 자본시장통합법 제정과 한미 FTA 비준 등 앞으로 예정된 사건들을 통해 한국에도 완강한 외부제약으로 다가올 것이다. 그동안 한국을 '제조업 왕국'으로 불리게 했던 재벌 그룹들이 이런 흐름을 본격적으로 타게 되면, 제조업 부문으로 투자돼 그나마의 일자리를 만들던 자금이 금융 부문으로 쏠릴 가능성도 크다. 이런 현상은 자본시장통합법과 금산분리 철폐 등으로 현실화될 것이다. 한국인들이, 그리고 독일인들이 (미국인, 일본인, 프랑스인들은 물론이고) 경험한 바, 일자리 창출 산업이 저임금 국가로 이동하고, 주가지수와 실업률이 동반 상승하며, 호황 중에도 서민·중소기업은 더욱 빈곤해지는 현상이 더욱 심화될 가능성이 크다.
결국 IMF 사태 이후 우리가 겪어온 10년간의 변화보다 더 큰 규모의 변화, 생산-소비-분배 측면의 변화가 향후 10년 간 일어날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다. 지금은 정부·자본 측이든 민중·시민운동 측이든, 지금까지의 편 가르기와 선입견, 자본/노동 편집증, 이미 낡아버린 사회경제 인식 틀에서 벗어나 '변화의 수익과 비용'을 계산하고, 시급하게 대안과 사회적 합의를 추구할 시기이다. 이에 실패하면 단기적으로 정부·자본 측이 승리하든 민중·시민운동 측이 이기든, 결국엔 모두가 패배자로 전락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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