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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쓰디쓴 중얼거림 "저들이 돈을 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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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한국의 쓰디쓴 중얼거림 "저들이 돈을 낼까?"

[공무원을 위한 FTA 해설·8] 외환위기와 국가의 역할(上)

한 세대 후를 내다봤다는 정부 보고서 <비전 2030>은 읽어볼만 합니다. 아마 공무원 여러분이라면 다 읽어 봤을 것입니다만, 혹시 업무에 바빠 미처 보지 못했다면 일독을 권합니다.

2030년까지 세계 일류국가가 되는 것이 그 목표로 돼 있습니다. 2030년 대한민국을 지난 2005년 스위스 수준으로는 끌어 올리겠다는 것입니다.

저는 이 보고서에서 공감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앞에서 IMF(국제통화기금) 외환위기를 우리 시대의 가장 큰 경제적 사변이라고 했는데, 이 보고서 역시 외환위기 이전과 이후를 구분해 한국을 서술하고 있습니다. 또 이 보고서도 외환위기 이후 양극화 문제가 '급격히' 악화됐다고 진단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보고서는 우리의 전진을 가로막고 있는 것을 '낡은 제도와 관행'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이 보고서는 총 26개의 '제도혁신'을 제시했습니다.

이 보고서가 제시한 첫 번째 제도혁신은 '서비스 산업의 경쟁력 강화'로서, 이를 위한 실천과제로 정부는 '규제 개선 및 개방 확대', '산업적 접근을 통한 교육·의료 서비스 발전' 등을 선정했습니다. 이 보고서가 비판하는 '낡은 제도와 관행'은 결국 국가의 규제와 '소극적 개방'이라는 것입니다.

저도 앞서 '욕망의 해방'에 대해 이야기한 바 있는데, 이 보고서 역시 해방을 원하고 있습니다. <비전 2030>은 경제 규제로부터의 해방을 꿈꿉니다. 그리고 정부에게 역할을 바꾸라고 요구합니다.

이 보고서의 용어를 빌면, 국가는 '국가 계획자'에서 '비전 제공자'로 바뀌어야 합니다. 좀 더 단순하게 말한다면, 국가는 이제 길을 비켜 달라는 것입니다.

IMF 사태는 왜 일어났나?

이 보고서와 제가 공통적으로 그 시대적 중요성에서 공감하는 IMF 사태를 놓고 국가의 역할에 대해 생각해 보겠습니다. 이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정문이 외국인 투자자에게 제공하는 '송금보장 대우' 조항을 해설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제가 지금도 놀랍게 여기는 것 가운데 하나는 한국이 왜 IMF 사태를 당해야 했는지에 대한 우리 사회의 공통된 인식이 없다는 것입니다. 어떤 획일적이고 교조적인 인식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많은 사람들이 일정하게 공감하는 상식 말입니다.

어쨌든 IMF 사태가 달러(외환) 부족과 밀접히 관련돼 발생했다는 데에는 큰 이견이 없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 사태를 외환위기라고도 부릅니다.

한국이 달러를 취득하는 방법 가운데 하나로 한국인이 상품이나 서비스를 외국에 팔아 그 대가로 달러를 받는 것이 있습니다. 이렇게 해서 발생하는 달러의 이동은 무역 및 서비스 거래의 반영으로, 자기 혼자서 급변한다든지 하는 일은 없습니다.

또 하나의 달러 획득 방법은 외국인이 한국에서 사업을 하기 위해 달러를 가지고 들어오는 것입니다. 자동차 회사 르노-삼성이 그 예입니다. 이 경우도 경제 분야의 사업 활동과 연계돼 있기 때문에 달러 수급이 안정적입니다.

그런데 또 다른 범주의 달러는 그렇지 않습니다. 이들은 무역이나 회사 설립과 연계돼 있지 않습니다. 이들은 이미 존재하고 있는 한국 회사의 주식을 매집해 경영권을 장악한 후 회사를 비싸게 되팔고 떠납니다. 혹은 주가가 오르기를 기대하며 주식을 사거나, 이자 수익을 바라고 한국 회사의 채권을 매입합니다.

이들은 실물경제와 대칭적으로 움직일 필요가 없어, 그 양이 언제든지 엄청나게 늘어날 수도 있고 크게 줄어들 수도 있습니다.

물론 이들도 필요합니다. 하지만 '먹튀'라는 별명처럼, 이들은 치고 빠지는 데에 재간이 뛰어납니다. 무역이나 회사와 연계돼 있지 않기 때문에, 이들은 언제든지 자유로이 들어오고 자유로이 빠져나갈 수 있습니다. 이들은 투기적 성격을 띠고 있습니다.

이들의 움직임에 주의해야 합니다. 이들은 한국의 경제상황이 나빠질 징후가 보이면, 가장 먼저 신속히 달러를 빼가려 할 것입니다. 만일 이들이 일제히 달러를 회수하거나 상환을 독촉하면, 외환부족 사태가 발생하고 한국의 경제 상황은 더 악화됩니다.

바로 이 외환부족 사태 때문에 한국은 IMF로부터 달러를 빌려야 했습니다. 그래서 이 위기를 IMF 사태 또는 외환위기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공무원의 일은 '비전 제공'이 아니라 '경제 규제'

국가는, 최소한의 안전장치로, 투기자금의 이동만큼은 적절하게 규제할 수 있어야 합니다. 즉, 국가는 경제에 비상이 걸렸을 때 달러가 일시에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송금을 규제하는 권한을 가져야 합니다.

보다 구체적으로, 국가는 송금하려는 달러의 일정 비율은 은행에 예치하도록 한다든지, 송금 허가제를 운용한다든지, 송금에 중과세를 한다든지, 긴급 시 송금을 전면 금지한다든지 하는 등의 규제권한을 가져야 합니다.

국가의 이런 규제권한은 굳이 한국 헌법의 근거 조항을 보지 않더라도, 국민통합의 필수적 전제이자 국민경제의 최소한의 안전장치입니다.

그런데 비전 2030은 이런 규제권한을 가져야 할 국가에게 '비전 제공자'로 변화하라고 요구합니다. 저는 이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국가는 필요한 경제 규제권한을 행사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입니다. 국민은 결코 공무원 여러분으로부터 '비전 제공'을 받기 위해 세금을 내는 게 아닙니다.

한미 FTA, 투기자본의 자유로운 이동 보장해

아마 이런 반론을 제기하실 수도 있을 것입니다. '국가가 지금도 투기자본의 이동에 대한 규제를 하고 있지 않느냐'고요. 물론 그렇습니다.

하지만 한미 FTA 협정문에 나온 '송금자유보장 대우'를 보시기 바랍니다(<표 19>).
<표 19>
국가는 원금, 이윤, 배당금, 이자, 청산금 등 협정문의 투자의 모든 송금이 국외로 자유롭고 지체 없이 이루어지도록 허용해야 한다. (11.7조)

이 조항을 이해하려면 협정문의 '투자' 개념을 다시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주식투자가 표 19의 '투자'에 해당한다는 것은 이미 <표 5>의 투자의 개념에서 살펴봤습니다.

그런데 이 '투자'에는 투기성 자본이 매입한 채권이나 어음도 해당됩니다. 협정문은 이 점을 명확히 하기 위해 다음과 같은 주석까지 달아두었습니다.
<표 20>
채권, 회사채, 장기어음과 같은 일부 형태의 부채는 투자의 특징을 가질 가능성이 보다 높은 반면, 그 밖에 다른 형태의 부채는 그럴 가능성이 보다 낮다. (11장 주석 10)

이처럼 한미 FTA 협정문은 주식이나 채권을 사고파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투기성 자본도
'투자'로 보호합니다. 따라서 <표 19>에 따라 원칙적으로 투기성 자본의 대외 송금은 자유롭게 허용돼야 합니다.

투기성 자본의 송금을 제한하는 것은 원칙적으로 협정문 위반입니다. 한국은 국제중재에 회부될 수 있습니다. 이처럼 협정문은 외환위기 방지를 위한 국가의 규제권한을 제약하고 있습니다.

이 협정문이 있기 전에는, 한국에서 활동하는 투기성 자본은 한국의 법령에 따라야만 했습니다. 한국 정부는 <표 21>에 나온 외국환거래법 조항에 따라 상당히 포괄적인 범위에서 투기자본의 송금을 규제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표 21>
재정경제부장관은 국내외 경제사정의 중대하고도 급격한 변동 기타 이에 준하는 사태의 발생으로 인하여 부득이하다고 인정되는 경우에는 외환의 대외 지급과 거래를 일시 정지할 수 있다. 장관은 국제자본이동이 통화정책이나 환율정책 등을 수행하는 데에 심각한 지장을 초래할 경우 자본거래 허가제 혹은 그 외환 일부를 한국의 은행 등에 예치하도록 하는 조치를 취할 수 있다. 이 조치들은 특별한 사유가 있는 경우에는 6개월의 기간을 넘어 행할 수 있다. (6조)

그러나 한국 법령에서 보장된 국가의 이러한 규제권한은 <표 19>의 협정문에 의해 제약을 받게 됩니다.

그래도 외환 세이프가드는 지키지 않았냐고요?

어떤 사람들은 한미 FTA 협정문에 <표 22>와 같은 조항이 들어가 있으므로 한국의 규제권한이 큰 손상을 입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표 22>
투자자 보호 조항에도 불구하고, 한국은 외환거래법에 따른 송금 제한 조치를 취할 수 있다고 한미 양국은 합의한다. 다만 ①이 합의는 외국인 직접 투자와 연계된 대외 송금에 대해서는 적용되지 않는다. ②미국과 사전 조율하지 않은 경우, 경상거래를 위한 송금에 대해서도 적용되지 않는다. ③한국이 이 합의가 적용되는 경우의 송금에 대해 제한 조치를 하려면 다음의 요건을 갖추어야 한다. 조치의 기간은 1년 이하의 기간으로 하되 극히 예외적인 상황에서 한국이 이 기간을 연장하려 할 경우 미국과 사전에 조율할 것, 몰수적이지 않을 것, 제한을 당하는 자산을 투자자가 한국에서 운용하여 시장 수익률 상당의 수익을 올릴 능력에 지장을 주지 말 것, 미국의 상업적 · 경제적 또는 재정상의 이익에 대해 불필요한 손해가 생기지 않도록 할 것, 내국민 대우를 할 것 등. (부속서 11-사)

이 난해한 부속서를 해설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외국인 직접투자'와 연계된 대외 송금에 대해선 한국이 외국환거래법에 따른 제한조치를 취할 수 없습니다. 협정문은 외국인 직접투자의 개념을 따로 정의하지는 않았는데, 이것이 회사를 설립하고 공장을 짓는 그런 건전한 유형의 직접투자만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것만은 분명합니다.

IMF의 <국제수지 매뉴얼 5판>에 따르면, 외국인 직접투자의 판단 기준은 '기업에서의 지속적 이해관계의 획득'입니다(359항). 따라서 주식투자도 원칙적으로 이 직접투자에 해당합니다.

협정문은 최소한 몇 %의 지분을 확보해야만 직접투자로 본다는 판단기준조차 정해두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투기성 자본이 '지속적 관점에서 주식을 취득한 것'이라고 주장한다면, 한국이 여기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어렵습니다.

결국 한국이 위기가 발생했을 때 외국환거래법에 따라 미국인 주식 투자자의 송금을 제한할 경우, 미국인 투자자는 이로 인해 생긴 손실을 보상하라며 한국을 국제중재에 회부할 수 있습니다.

둘째, 한국은, 미국과 사전 '조율'을 하지 않는 경우, '경상거래'와 관련된 대외 송금에 대해서도 국내법에 따른 제한 조치를 취할 수 없습니다. 엄격히 말하면 보상을 해야만 조치를 취할 수 있습니다.

이 경상거래에는 무역 및 서비스 거래에서 발생한 청구권이라도, 이 청구권이 투자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면, 포함됩니다. 단기성 은행여신과 신용공여의 만기상환, 대출이자의 만기상환이나 투자 순이익의 정기 송금, 대출 적정분할 상환, 그리고 직접투자 적정 감가상각액 등도 모두 경상거래에 포함됩니다.

협정문은 이와 관련해 대출이나 채권의 이자 송금이 경상거래에 포함된다고 주석을 달았습니다.

문제는 이러한 광범위한 영역의 송금에 대한 한국의 조치가 미국과 사전 '조율'된 것이 아니라면, 한국이 그로 인해 외국인 투자자가 입었다고 주장하는 손실을 보상해 줘야 한다는 것입니다.

한미 FTA 협정문에서 사용된 '조율'이라는 용어는 한-싱가포르 FTA 협정문에서 사용된 '협의'라는 용어와 그 의미가 다릅니다. 사전 '조율'이란 용어는 한국이 미국의 동의를 얻어야만 송금 규제를 할 수 있다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셋째, 기타 투자 영역의 자본 거래 분야, 예컨대 장기 회사채의 일시 상환 송금과 같은 거래와 관련된 송금을 제한하려고 할 경우에는, <표 22>의 요건을 모두 갖춰야 합니다. 미국의 상업적·경제적 또는 재정상의 이익에 대해 불필요한 손해가 생기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이는 지나치게 광범위한 단서 조항입니다.
▲ 달러는 '국가의 규제'를 넘어 한국과 미국을 자유로이 오갈 수 있게 됐다. ⓒ연합뉴스

이상을 요약하면, 한국은 외환위기 재발이 염려되는 상황에서 한국의 외국환거래법에 따라 미국인 투자자의 송금을 제한한 경우 ①미국인 직접투자 관련 송금 제한으로 발생한 손실을 보상해야 하며 ② 미국과 사전 조율하지 않았을 경우, 투자성 경상거래 관련 송금 제한에서 발생한 손실을 보상해야 하며, ③그 밖의 투자 관련 송금에 대한 제한이 위 부속서의 여러 가지 요건을 어겼을 경우, 이를 보상해야 합니다. 보상하지 않으면 한국은 국제중재에 회부됩니다.

한국이 보장해야 하는 송금의 자유는 단지 투자뿐 아니라, 금융서비스를 포함한 국경 간 서비스 제공에서도 적용됩니다(12.10조, 13.1조).

이런 상황을 현재 한국이 외환거래법에 따라 가지고 있는 <표 21>의 자율적 권한과 비교해 보십시오. 한미 FTA 협정문이 아니라면, 미국의 투기자본이 한국의 송금 규제를 국제중재에 회부한다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입니다.

'국가의 정책 권한'보다 '외국인의 송금 자유 보장'이 우선해

어떤 사람들은 '금융기관의 안전성과 건전성을 유지하기 위해, 금융기관이 그 계열사나 혹은 자신과 관련된 사람들에게 또는 그들을 위해 송금하는 것을 금지하거나 제한할 수 있다'는 조항(13.10조)이 있으니 안심하자고 말합니다.

그러나 이 조항은 외환위기나 투지자본 규제와는 직접적인 관련이 없습니다. 차원이 다릅니다. 예를 들어, 은행이 파산 위기에 처할 경우, 그 건전성 악화를 막기 위해 송금 금지 조치 등을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한미 FTA 협정문의 또 다른 조항은 국가의 환율정책 추진 권한 조항보다 송금 자유 보장 조항이 더 우선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13.10조 2항).

저는 한미 FTA 협정문을 투기자본에 대한 국가 규제권한을 퇴각시키는 명령이라고 봅니다. <비전 2030>이 말하는 '비전 제공자'로서의 국가론의 실체가 바로 이런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국가는 국민경제의 안정을 위해 필요한 규제권한을 자율적으로 행사할 수 있어야 합니다. 경제의 흐름이 국제화되는 경향은 국민경제의 중요 변수이지만, 그것 때문에 국민경제의 틀을 깨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IMF 사태 이전과 이후, 대한민국은 완전히 다른 나라

저는 변호사가 되기 전에 한 은행의 국제부에서 근무했고, 1997년 IMF 사태가 발발했을 당시에는 변호사가 되기 위한 시험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그 당시 주변에서 평생직장이라는 개념이 사라지는 것을 보았습니다. 가정이 붕괴한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렇게 많은 수의 노숙자들은 처음 봤습니다. '구조조정', '명예퇴직'이라는 말이 우리 사회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그러더니 '비정규직'이 일상의 언어가 되었습니다.

IMF 사태가 일어나기 전과 후의 대한민국은, 제가 볼 때는, 같은 나라가 아닙니다.

제가 은행에서 근무할 때 창구 여직원들은 정규직이었습니다. 그런데 IMF 사태 뒤에 옛 직장에 들러보니 모두 비정규직으로 바뀌어 있었습니다. '수출입국'이 국가적 표어였던 나라에서, 최근 4년 동안에 수출이 두 배로 늘었는데도, 쓸 만한 일자리는 쉽게 늘지 않았습니다.

<비전 2030>은 이것이 '선(先)성장 후(後)복지'라는 '기존 패러다임'의 한계이며, '소극적 개방과 규제'의 산물이라고 봅니다.

은행의 의사결정은 '주주 욕망 충족'에 좌우

저는 이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IMF 사태 이전과 이후에 가장 크게 달라진 것 중 하나는 은행의 주주 구성에서 외국인 지분이 차지하는 비율이 매우 높아졌다는 것입니다. 제가 근무하였던 은행도 현재 외국인이 주식의 84%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이는 IMF가 한국에 달러를 빌려주는 대가로 금융 산업에 대한 규제 등을 폐지시키라고 요구한 것과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금융기관의 의사결정은 국민경제의 자원 배분에 매우 중대하면서도 직접적인 영향을 줍니다. 외국인 주주들의 경제관과 가치관이 금융기관의 의사결정을 주도할 때, 국민경제적 필요에 따른 장기적 투자에 금융이 제공되기는 어렵습니다. 단기 실적 위주로 금융이 이뤄집니다. 그래야 은행은 주주의 욕망을 충족할 수 있습니다.

이제 한국 경제의 성장 동력이었던 장기적 투자에로의 자원 배분 대신 단기 실적 위주로 금융기관의 의사가 결정됩니다. 숙련공의 장기적 가치에 투자하는 대신, 비정규직을 더 씁니다. 국내에 공장을 지어 일자리를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외국에 나가 공장을 짓습니다.

패퇴하는 국가의 모습

사정이 이런데도 <비전 2030>은 새로운 성장 전략으로 '인적 자원의 고도화'를 내세웁니다. 정부도 지금과 같은 경제 구조에서는 이런 전략을 구사하는 게 어렵다는 것을 알고 있을 것입니다.

결국 <비전 2030>은 '사회복지의 선진화'를 위한 사회투자를 주창합니다. 그러면서 2010년까지는 세금 증가 없이 사회투자를 추진하되, 그 이후에는 증세를 위한 국민적 논의가 필요하다는 결론을 내립니다.

<비전 2030>에서 저는 패퇴하는 국가의 모습을 봅니다. 국가는 국민경제에 필요한 일차적 규제권한을 행사하는 1차 저지선입니다. 그런데 <비전 2030>의 국가는 국민경제에 심대한 부담을 주고 있는 IMF 사태의 결과에 대해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를 외면합니다.

자신이 서 있어야 할 곳을 떠나 시장을 기웃거리다가, 자신이 1차 저지선을 붕괴시킴으로써 얼마나 엄청난 희생이 발생했는지 깨닫습니다.

국가는 뒤늦게 깨닫습니다. '맞아! 이들을 선진국 수준으로 돌보아 주는 것이 바로 국가의 역할이야!' 하지만 국가는 자신의 호주머니에 돈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혼자 중얼거립니다. '돈을 더 내려는지 물어봐야겠네!' <계속>

☞ 1회 보기 "프랑케슈타인과의 동거"-한미FTA로 공무원 업무지침 사라져

☞ 2회 보기 "공무원 여러분, 각별히 조심하십시오"-'최소기준대우'에 내던져진 한국

☞ 3회 보기 "재벌총수 여러분, '멋진 신세계'에 주목하세요"-국민기업의 경영권

☞ 4회 보기 "미국인은 선제적으로 배려하세요"-헌법 위에 놓인 내국민 대우

☞ 5회 보기 "한미FTA는 우리의 탐욕이 만들어 냈습니다"-간접수용(上)

☞ 6회 보기 "한미FTA는 대한한국 헌법의 개정"

☞ 7회 보기 "땅의 욕망 앞에 고개 숙이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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