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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시의 '똑똑한 바보'가 되지 않으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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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시의 '똑똑한 바보'가 되지 않으려면

[밥&돈·5] '착한 펀드'에 투자해야

며칠 전 학생들과 함께 영화 <월스트리트>를 보았다. 전설적인 기업 사냥꾼 마이클 밀켄을 연상시키는 주인공 고든 게코(마이클 더글러스 분)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돈을 버는 데 눈이 먼 인물이다.

게코의 '사업'은 기업의 내부정보를 불법으로 수집해 주가를 조작하거나, 건실하지만 경영상으로는 적자인 회사를 인수합병(M&A) 한 후 알짜자산을 팔아 막대한 시세차익을 올리는 것이다. 물론 껍데기만 남은 회사는 인정사정없이 없애버린다.

이 영화는 또 다른 주인공인 버드 폭스(찰리 쉰 분)의 성장영화로 읽히기도 한다. 비행기를 정비하며 힘들게 번 돈으로 원리원칙대로 살아가는 친아버지를 버리고, 불법적으로 수집한 내부정보를 가지고 야수처럼 냉혹하게 천문학적 부를 축적해가는 또 다른 '아버지' 게코를 닮으려는 젊은이가 바로 폭스다.

정직하지만 지루한 '땀의 세계'를 뒤로 하고 비열하지만 매혹적인 '숫자의 세계'에 자신의 인생을 걸려던 이 청년은 결국 자신의 새 아버지를 법의 이름으로 고발하고, 더디지만 떳떳한 길을 선택한다.

<월스트리트>의 감독 올리버 스톤은 게코가 감옥으로 가고, 게코로 인해 공중 분해될 위기에 처했던 회사에서 다시 우렁찬 망치소리가 들려오는 '해피엔딩'으로 이 영화를 마무리한다.

'돈에 대한 사랑'은 무조건 나쁜 것인가?

이 영화에 대한 학생들의 반응은 어땠을까? 예상과 다르게, 많은 학생들은 맨 주먹으로 부와 명성을 이룬 게코에 대해 동정하거나 공감한다는 반응을 보였다.

'부자 아버지도, 좋은 학벌도 없는 게코 같은 사람이 정글과 같은 사회에서 반칙을 하지 않고 성공하는 것은 불가능하지 않느냐'는 반문도 나왔고, '기득권자들이 만든 규칙을 꼭 지켜야 하느냐'는 '근본적인' 주장도 나왔다.

실제로 게코가 했던 다음의 연설은 사기꾼의 자기변호 정도로 치부하기에는 만만치 않은 삶의 무게를 느끼게 한다.

"탐욕이 어째서 나쁜 것입니까? 그것은 궁핍을 채워주니 선한 것입니다. 탐욕은 사람들을 일하게 합니다. 돈과 지식과 삶에 대한 탐욕이 우리를 더 낫게 만듭니다."

여기에서 탐욕이란 '돈에 대한 사랑'이라고 바꿔도 될 성 싶다.

돈에 대한 사랑이 양질의 일자리를 만들고, 개인의 이기적인 동기로 인해 사람들에게 더 나은 삶을 제공할 수 있는 새로운 기술이 개발된다면, 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에 대한 사랑은 비난받기는커녕 오히려 칭송받아 마땅할 지도 모른다.

우리의 삶은 '게코'와 다른가?
▲영화 <월스트리트>의 포스터. ⓒ프레시안

하지만 이런 생각에 동의하지 않는 학생들도 있었다. 게코의 연설이 맞는 얘기라 하더라도, 그것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탐욕까지 정당화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탐욕은 나쁜 게 아니지만, 게코는 남의 눈에 피눈물을 흐르게 했으니 '넘지 않아야 할 선을 넘었다'는 비판도 있었다. 반칙과 불법에 의지하지 않고 큰돈을 벌 수 없다는 건 극단적 논리라는 주장도 나왔다. 부자가 되기보다는 타인을 배려해가면서 사는 것이 더 행복한 삶이 아니냐는 반론도 나왔다.

모든 학생들이 다 자신의 의견을 표현했던 것은 아니다. 수업시간 중 아무 얘기도 하지 않았던 학생들은 어쩌면 도덕과 계산 사이에서 계속 갈등하다가 발언 대신 침묵을 택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가슴 속 도덕은 폭스의 아버지처럼 살아야 한다고 명령하지만, 머릿속 계산은 게코처럼 살고 싶다고 속삭였던 것이 아닐까?

대부분의 평범한 사람들은 게코와는 전혀 다른 인생을 살고 있다. 회사의 내부정보를 수집해 돈을 벌지도 않고, 적대적 M&A를 통해 멀쩡한 회사를 쪼개 팔면서 천문학적인 수익을 남기지도 않으며, 경쟁자를 파멸시키는 데서 인생의 의미를 찾지도 않는다.

그렇다고 우리가 게코와 전혀 다른 삶을 살고 있다고 자신할 수 있는 것일까?

무한경쟁의 시대…'막차 탔다' 두려움 속에서도 증시 열풍

최근 우리 사회는 가족도, 직장도, 국가도 더 이상 든든한 보호막이 되지 않는 시대, 의지할 것이라고는 자신의 능력과 벌어놓은 재산밖에 없는 무한경쟁의 시대로 가고 있다. 노동시장이 유연화 되고 고용의 안정성이 크게 약화되고 있다.

이 와중에 재테크 열풍이 불면서, 줄어든 소득을 보충하고 은퇴 이후의 삶을 지탱해 줄 새로운 대안으로 주식투자에 뛰어드는 사람들도 급속도로 늘어나고 있다.

올 초 1409.35포인트로 시작한 종합주가지수가 최근 몇 달 사이에 폭등해 1700포인트를 훌쩍 뛰어 넘었다. 그러자 위험이 싫어서든 재테크 풍조가 싫어서든, 그동안 주식시장을 외면했던 사람들마저 '막차를 타는 게 아니냐'는 두려움 속에서 주식시장 입성을 저울질하고 있다.

단기적으로 주가가 어떻게 움직일지는 아무도 모른다. 또 지난 몇 달간 가파르게 오르기만 했던 만큼, 언젠가는 적지 않은 폭의 조정이 찾아올 것이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보자면, 우리 주식시장은 적어도 10년 이상은 상승 추세를 탈 가능성이 높다.

미국의 경우, 1980년대 중반 기업연금 주식투자, 뮤추얼펀드 활성화, 해외 자본유입 등에 힘입어 수십 년 간 철옹성처럼 버티던 다우존스지수 1000포인트 벽을 돌파한 후, 불과 20년 사이에 1만 포인트를 훌쩍 넘겼다.

지난 몇 년간 미국과 유사한 방식의 제도 변화가 진행된 한국의 증시도, 인구 구성에 큰 비중을 차지하는 베이비붐 세대의 은퇴가 본격화되기 전까지는, 이와 비슷한 흐름을 밟을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주식투자의 부메랑 효과

문제는 사람들이 노후의 안전판으로 삼는 주식투자가 게코의 '사업'과 크게 다르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점에 있다.

주식투자자에게 회사는 단순한 '숫자'에 불과하다. 높은 배당과 시세차익만 주면 그것으로 충분한 것이다.

높은 배당과 시세차익을 얻기 위해서라면, 주식투자자는 비용절감이라는 미명 아래 진행되는 정리해고를 환영하고, 정규직을 비정규직으로 바꿀 것을 요구하며, 국내 공장을 해외로 옮겨야 한다고 주장할지도 모른다.

기업 사냥꾼이 앞장서 기업을 해체한다면, 이들의 뒤에는 적대적 M&A에 따른 주가상승에 환호하는 수많은 단기 투자자들이 있다고 보아야 한다.

이 과정에서 주식투자로 자신의 노후를 대비하고 있다는 이유로, 한 회사에 근무하는 노동자가 다른 회사의 정리해고나 해외로의 공장 이전을 환영하는 역설적인 상황도 발생한다.

물론 이들 중에는 평생의 고된 노동을 통해 어렵게 장만한 재산을 주식에 투자한 사람들도 적지 않을 것이다. 본인도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탐욕의 차원을 뛰어넘어, 스스로 자신의 무덤을 파는 '똑똑한 바보'가 되는 셈이다.

'숫자'가 아니라 '회사'에 투자하는 '착한 투자자' 돼야

그렇다면, 주식시장을 멀리하는 것이 대안인가? <월스트리트>에 빗대 표현하자면 '게코와는 다른 방식으로' 돈을 버는 방법은 없는 것인가? 다행히, 그렇지는 않다.

주식투자를 하기는 하되 '숫자'가 아니라 '회사'에 투자하는 것이 한 가지 방법이다. 충분한 시간을 들여 평생을 함께 해도 좋다고 판단되는 회사를 선택한 후, 이 회사의 주식을 오래도록 보유하면서, 눈앞의 이익에 미혹되지 않고, 회사의 번영과 그로 인한 결실을 공유하는 것이다.

더 좋은 방법도 있다. 그것은 '사회책임투자(SRI, Socially Responsible Investment)'에 동참하는 것이다.

사회책임투자란 기업 경영을 경제적 수익성뿐 아니라 사회적 책임 또는 사회적 공헌이라는 측면에서도 평가한 후, 그 평가결과를 투자 의사결정에 반영하는 새로운 투자 행태를 뜻한다.

사회책임투자는 100년 전 윤리와 환경에 대한 관심에서 출발했지만, 최근에는 기업 안에서 이루어지는 부가가치의 생산과 분배과정 전반으로 관심영역을 넓히고 있다.

여기에는 고용조건 개선, 혁신역량 강화를 겨냥한 교육·훈련 프로그램 확대, 생산성 상승에 조응하는 임금 확보, 일자리 유지, 해외로의 생산기지 이전 억제 등이 포함된다. 기업이 다양한 이해당사자들의 이익을 고려하면서 궁극적으로는 사회와 함께 성장할 수 있도록, 투자자들이 '주주의 이름으로' 영향력을 발휘하자는 것이 사회책임투자의 목표라고 할 수 있다.

사회책임투자, '돈도 벌고 세상도 바꾸자'는 해피엔딩

최근 우리 사회에도 이 사회책임투자를 표방하는 '착한 펀드'들이 조금씩 싹을 틔우고 있다. 아무리 의도가 좋더라도 수익을 낳지 못하면 성공하기 어렵다. 다행히도 주식 선진국들의 경험을 보면, 사회책임투자 펀드는 주가지수 상승률에 버금가는 성과를 올리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세계 최대의 연기금인 캘퍼스(CalPERS, 캘리포니아주 공무원 퇴직연금)는 사회책임투자에 적지 않은 관심을 기울이면서도 높은 수익률을 거두고 있다. 또 미국 증시의 대표적인 SR지수인 '도미니 400 사회지수'가 일반적인 우량주 주가지수인 'S&P 500 지수'가 능가한 것이 보여주듯, SRI 펀드들은 해당 업종 주가수익률을 능가하고 있다.

착한 펀드에 투자를 해서 게코처럼 엄청난 부자가 될 수는 없다. 하지만 은행 예금보다는 꽤 많은 수익을 거둘 수 있는데다, 우리의 기업과 사회를 조금 더 살만한 곳으로 가꾸는 데 힘을 보탤 수 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을까?

현재 우리나라에 나와 있는 사회책임투자 펀드들이 그 이름값을 제대로 하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하지만 보다 많은 사람들이 착한 펀드를 요구하는 대열에 동참해 착한 펀드 시장이 커지면, 진짜 착한 펀드들도 우리 곁에 그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월스트리트> 영화에 대한 학생들과의 토론은, 착한 펀드에 저축을 해서 돈도 벌고 세상도 바꾸자는 '해피엔딩'으로 마무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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