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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공무원 여러분, 각별히 조심하십시오"

[공무원을 위한 FTA 해설·2] '최소기준대우'에 내던져진 한국

이번 회부터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정문(이하 '협정문')에 따라서 공무원 여러분이 미국인 투자자를 대우할 때 염두에 둬야 할 여러 가지 기준이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하나하나 해설합니다.

공무원 여러분, 이제 대한민국 헌법과 법령은 잊으셔야 합니다

이 연재의 첫 회에서는 공무원의 민원 처리 과정에서 투자자가 여러 대우 기준에 걸맞는 대우를 받지 못했다는 이유로 한국을 국제중재에 회부할 권한을 미리 부여받았다는 조항(제11.17조)과 이 국제중재에는 한국의 국내법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조항(제11.22조 1항)을 소개하고 해설했습니다. (☞연재 1회 보기)

이들 조항이 없다면, 한국과 미국이 현재 가입해 있는 세계은행(World Bank) 산하 국제투자분쟁처리센터(ICSID) 조약에 따라, 국제투자분쟁처리센터의 국제중재는 한국의 동의가 없이는 개시조차 되지 않는다는 점을 밝혔습니다. 또 이들 조항이 없다면, 국제중재에서는 국제법과 함께 한국의 국내법도 적용됐을 것이라는 점도 밝혔습니다.

즉, 이들 조항은 '한국의 국제중재 개시 동의권'과 '국제중재에 있어서 한국법의 적용'을 원천적으로 차단하고 있습니다. 이 점을 공무원 여러분은 잘 이해해야 합니다. 그렇지 못하면 여러분의 신변에 불편한 일이 생길 수도 있습니다.

이제는 미국인 투자자가 공무원 여러분이 수행한 민원 처리에 만족하지 못할 경우, 여러분의 민원 처리가 한미 FTA 상의 여러 대우 기준을 충족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한국을 국제중재에 회부할 권한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국제중재의 판정은 한국의 헌법이나 국내법령을 근거로 하지 않습니다.

'국제관습법상 최소기준대우'란 존재하지도 않습니다

결국 미국인 투자자의 민원과 관련된 여러분의 업무 처리에서는 한국의 헌법보다도 한미 FTA에서 정한 여러 투자자 대우 기준이 더 중요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번 회부터는 국제관습법상 최소기준대우(minimum standard treatment)를 비롯한 여러 투자자 대우 기준을 설명합니다.

협정문은 다음과 같이 공무원 여러분의 업무가 국제관습법상 최소기준대우에 따른 투자자 대우를 충족할 것을 규정하고 있습니다.
<표 3>
각 당사국은 공정하고 공평한 대우와 충분한 보호 및 안전을 포함하여, 국제관습법에 따른 대우를 적용대상 투자에 부여한다. 외국인의 대우에 대한 국제관습법상 최소기준을 적용대상 투자에게 부여하여야 할 대우의 최소기준으로 규정한다. 이 최소기준은 외국인의 경제적 권리와 이익을 보호하는 모든 국제관습법상 원칙을 지칭한다. (11.5조, 부속서 11-가)

공무원 여러분은 이들 조항의 의미에 대한 해설을 듣거나 관련 교육을 받으셨습니까?

저는 이제부터 <표 3>의 '국제관습법상 최소기준대우'라는 게 과연 실제로 존재하는 것인지를 설명하려고 합니다. 또 한국이 이 최소기준대우에 법적으로 구속돼야 한다는 점이 공무원 여러분의 민원 처리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도 설명하려고 합니다.

<표 3>은 얼핏 봐서는 '지당한 말씀들'의 목록입니다. 하지만 이들 조항은 세계사를 관통하고 있습니다.

만일 이 조항처럼 재산권 보호의 최소기준대우가 각 국가가 지켜야 할 규범인 국제관습법으로 존재했다면, 미국 땅은 여전히 '아메리칸 인디언'의 공유지여야 할 것입니다. 유럽인들이 미국 땅에 첫 발을 내디뎠을 때, 이미 그 땅은 인디언이 점유하고 관리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만일 그 당시에 재산권 보호의 국제관습법상 최소기준이 있었다면, 미국 원주민들은 자신들의 땅을 강탈당하지도 않았을 것이며, 일부 지역의 땅을 헐값으로 강매당하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옛날 얘기라고요? 그렇지 않습니다. 제가 '오늘날 재산권 보호의 국제관습법상 최소기준대우가 무엇인지에 대해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공통 인식이 존재하지 않는다'라고 공무원 여러분들에게 말하면, 여러분은 '설마 그럴까'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외국인의 재산을 수용하면 보상을 해줘야 한다는 원칙은 불문법으로 있는 것이 아닌가'라고 반문할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공무원 여러분이 꼭 기억해야 하는 것이 있는데, 바로 수용 보상 조항은 협정문에 따로 들어가 있다는 사실입니다. (연재 다음 회에서 살펴보겠지만, 수용의 정확한 개념에 대해서도 국제관습법상 공통된 규범이란 것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만일 <표 3>에서 언급되는 재산권 보호에 관한 국제관습법상 최소기준대우라는 것이 이미 존재한다면, 다시 말해 오늘날 국가들이 이미 그 규범력을 인정하고 있다면, <표 3>의 조항은 굳이 협정문에 넣을 필요도 없다는 것입니다.

'공정하고 공평한 대우'란 무엇인가요?

<표 3>은 국제관습법의 하나로 투자자의 재산에 대한 '공정하고 공평한 대우'를 먼저 꼽고 있습니다. 그런데 과연 '공정·공평 대우'란 무엇일까요?

2000년 '메탈클래드 사건'에서는 멕시코가 투자자의 경제활동과 관련된 법규에 대한 정보를 투명하게 제공하지 않았다는 것이 공정·공평 대우 조항을 위반한 것으로 판정됐습니다.

국가가 외국인 투자자가 어떤 오해나 혼동 상태에 있는 것을 알고 있는 경우에는, 국가는 그 상황에 적용될 정확한 법규에 대한 입장을 결정해서 이를 투자자에게 명료하게 밝힘으로써, 투자자가 자신의 투자가 모든 관련법에 따라 적법하게 진행되고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적절한 속도로 사업을 할 수 있게 해 주어야 하는 것이 공정·공평 대우의 한 내용이라는 것입니다.(판정문 76항)

공무원 여러분은 이에 동의하십니까? 여러분에게는 투자자의 법적 불안정성을 투명하게 제거해 주어야 할 법적 의무가 있습니까?

이 '메탈클래드 사건'에 대한 재심을 담당한 캐나다의 브리티시콜롬비아 법원은 투명성 요구는 공정·공평 대우의 개념에 포함될 수 없다면서 이같은 중재판정의 법리를 파기했습니다.

결국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의 당사국들인 미국, 캐나다, 멕시코는 2001년 '공정·공평 대우' 조항이 국제법상의 최소기준대우 이상의 추가적인 뜻을 가지지 않는다는 해석 합의문을 발표했습니다.

순전히 이런 연유로 다음의 <표 4> 조항이 한미 FTA 협정문에 들어가게 됐습니다.
<표 4>
공정·공평 대우라는 개념은 그러한 기준이 요구되는 것에 추가적인 또는 이를 초과한 대우를 요구하지 아니하며, 추가적인 실질적인 권리를 창설하지 아니한다. (11.5조 2항)

공정·공평 대우의 내용에 대한 국제관습법이 실제로 존재하느냐는 문제 자체가 오랜 논란거리였습니다. 이는 국제중재부도 인정하는 현실입니다.

은행 인가권 취소를 둘러싼 분쟁인 2002년 '제닌 사건'의 국제중재부도 공정·공평 대우의 내용이 정확하지 않다고 했습니다.(판정문 50항) 그리고 고의적인 의무 소홀, 행동의 불충분성, 악의적 고의 등을 공정·공평 대우에 대한 위반으로 해석했습니다.

2003년 '로웬 사건'의 국제중재부는 불성실하거나 악의가 있는 경우를 공정·공평 대우 위반으로 봅니다.(판정문 132항)

이처럼 그 내용조차 불확실한 것이 어떻게 국제관습법이 될 수 있습니까. 국제관습법이란 그 법에 대한 조약이 공식 문서로 존재하거나 국가가 그 조약을 정식으로 체결하지 않아도, 그 국제법적 구속력을 인정받는 것입니다. 오늘날 국제관습법으로는 '포로에 관한 제네바 협정'이나 '민족 자결의 원칙', '기본적 인권 보호' 등이 있을 뿐입니다.

이와 달리 재산권 보호 정도는 각 나라마다 자국의 상황에 따라, 그리고 자국의 헌법에 따라 달리 정하고 있습니다. 가령 한국의 헌법은 경제민주화 조항과 재산권에 대한 사회적 의무성 조항(119조, 23조 2항)을 두고 있지만, 미국 헌법에는 이런 조항이 아예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개인의 재산권에 대한 국제관습법상의 최소기준대우가 존재한다는 주장 자체가 논란이 됐던 것입니다.

장승화 서울대 법과대학 교수의 한 연구는 개발도상국들이 국제법상 최소기준대우 개념에 거세게 반발했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장승화, <양자 간 투자협정 연구>)

사실 최소기준대우라는 개념 자체가 미국이 해외에 투자한 미국인의 재산권이 현지 국가의 국내법에 구속되는 것을 무력화하기 위해 나온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이런 저런 논란이 끊이질 않는 것입니다. 바로 이런 혼동 상태에서, 메탈클래드 사건처럼 하나의 사건에 대한 중재에서도 최소기준대우에 대해 각각 다른 해석이 나오는 것입니다.

그런 예는 또 있습니다. 연재 다음 회에서 자세히 살펴볼 2003년 '씨엠이 사건'에서 국제중재부는 체코 방송위원회의 행위가 방송에 투자한 투자자의 재산을 수용했다면서 체코에 3억5000만 달러를 보상하라고 판정했습니다. 이 중재판정은 스톡홀름에서 진행됐습니다.

그런데 사실 이 사건은 이미 위 회사의 대주주인 라우더 개인이 2001년 체코 방송위원회의 행위를 국제중재에 회부했다가 런던에서 패소 판정을 받은 것과 동일한 사건이었습니다. 라우더는 자신이 패소하자 회사를 내세워 동일한 소송을 다시 제기한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동일한 사건에 대해 각각 다른 판결이 나온 것입니다.

결국 공무원 여러분의 민원처리 기준은 '투자자 이익'입니다
▲ 한미 FTA 협정문에 들어간, 투자자에 대한 '국제관습법상 최소기준대우'는 국제관습법에 존재하지 않는다. 이 조항의 판단기준은 결국 '투자자의 이익'이 될 것이다. ⓒ연합뉴스

이처럼 국제관습법상 최소기준대우라는 것의 규범력 자체가 매우 불확실한 것입니다. 그러나 <표 3>의 조항 때문에 이제 이 기준은 한국 정부를 법률적으로 구속합니다.

<표 3>과 <표 4>에 들어간 조항들은 '존재 자체가 모호한 국제관습법상의 최소기준대우를 한국이 인정하고 그 국제법적 구속을 받겠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들 조항은 이미 존재하는 최소기준대우라는 국제관습법을 새삼스레 확인하는 조항이 전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공무원 여러분께 묻고 싶습니다. 여러분이 지키지 않으면 한국이 국제중재에 회부 당하게 될, 그런 국제관습법상의 최소기준대우는 어디에 있습니까? 누가 그 기준을 결정합니까? 오로지 3명의 국제중재인들이 결정합니다.

한국의 통상교섭본부장도 미국의 무역대표부 대표의 동의 없이는 그 개념을 해석할 수 없습니다. 물론 한국의 헌법재판소와 대법원에도 사실상 해석권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미국인 투자자들이 그들을 선택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국제중재인들은 과연 무엇을 기준으로 이 불확실한 최소기준대우에 대한 판정을 내릴까요? 그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국가가 투자협정이나 자유무역협정을 체결한 동기는 개인의 재산권을 더 강하게 보호함으로써 투자를 촉진하는 데 있다. 그러므로 협정에서 정한 기준의 불확실성은 투자자의 이익을 위하는 방향으로 해결할 수밖에 없다. 투자자에게 호의적으로 행동하라는 것이 기준이다." ('지멘스 사건' 판정문 290항)

'외국인 차별 안 하면 되겠지'라고만 생각했다간 큰일 납니다

이제 얘기를 정리하겠습니다. 공무원 여러분이 창구에서 미국인 투자자가 제기한 민원을 처리할 때는 각별히 조심하십시오. 그들의 욕구를 가능한 한 최대한 충족시켜 주십시오.

'외국인을 차별하지만 않으면 되겠지'라고 막연하게 생각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의 신상에 해롭습니다. 왜냐하면 여러분의 국가, 성문헌법을 가지고 있는 대한민국은 국제관습법상 최소기준대우에 구속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기준이 무엇인지 여러분의 국가에는 묻지 마십시오. 왜냐하면 여러분의 국가도 그 기준을 알 수 없으며, 자신의 힘으로 정할 수도 없기 때문입니다. 특히, 미국인 투자자에게 한국의 국내법령을 절대 들이대지 마십시오.

참고로, 앞에서 언급한 2002년 '제닌 사건'에서 중재판정부는 이렇게 판정했습니다.

"이 기준의 정확한 내용은 분명하지 않지만, 우리 중재부가 이해하기로는 국내법과는 분리된 국제법상의 최소기준대우를 하라는 것이 이 기준이다." (판정문 50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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