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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FTA 협정, '겉'만 봐도 '내용'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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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FTA 협정, '겉'만 봐도 '내용' 알 수 있다

[협정문 따라읽기·1] 협정문 구성을 보면 '한미FTA'가 보인다

'말 많고 탈 많던'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정문이 25일 오전 정부 웹사이트를 통해 공개됐다. 국문본 1200쪽과 영문본 1200쪽을 합쳐 총 2400쪽의 방대한 분량이다. 여기에는 협정문 분문과 부속서, 부록, 서한 등이 '모두' 포함돼 있다고 한다.

정부는 이 협정문에 280쪽의 해설서와 30쪽의 용어 설명서를 첨부했다. 하지만 한미 FTA 정보 공개와 관련해 그동안 정부가 보여준 태도를 감안하면, 이들 첨부자료의 내용 역시 객관적인 설명이라기보다는 '아전인수 격 해석'이나 '일방적인 선전'에 그칠 가능성이 높다.

이에 <프레시안>은 한미 FTA 협정문은 어떻게 구성돼 있는지, 어떤 관심사항을 어디서 어떻게 확인할 수 있는지, 그 중에서 특히 논란이 되고 있는 쟁점이 협정문에서 어떻게 기술됐는지를 소개함으로써 독자들이 적극적으로 한미 FTA 협정문을 해독하는 데 도움이 되고자 한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프레시안> 나름대로 한미 FTA 협정문을 검토하고 분석하는 일을 게을리 하지는 않을 것이다.

독자들이 협정문의 기본 구성을 파악함으로써 한미 FTA의 본질을 이해할 수 있게 되기 바란다. 나아가 독자들이 스스로, 때로는 <프레시안>과 함께, 협정문 곳곳에 도사리고 있는 독소조항들을 찾아냄으로써 "한미 FTA 협상 너무 잘했다"는 정부의 선전 뒤에 감춰진 한미 FTA의 본 모습을 볼 수 있게 되기를 희망한다.

협정문은 외교통상부(http://www.mofat.go.kr)와 재정경제부(http://www.mofe.go.kr), 그리고 한미FTA체결지원위원회(http://fta.korea.kr) 등의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편집자>

협정문은 어떻게 구성돼 있나?

일반적으로 FTA 협정문은 전문(Preamble), 장(Chapter), 부속서(Annex), 부록(Appendix) 및 부속서한(Letter)로 구성돼 있다. 한미 FTA 협정문 역시 일반적인 FTA 협정문과 비슷한 형태로, 1개의 전문, 24개의 장, 수십 여 개의 부속서, 부록, 서한들로 이뤄져 있다.

전문에는 한미 양국이 한미 FTA 협상에서 약속한 협정의 목적이나 대원칙, 이를테면 '한미 양국의 우호적 유대 관계를 의식한다'든지 "무역 자유화와 무역 및 투자에 대한 전향적인 접근방식을 보장한다는 양국의 약속을 재확인한다'는 등의 문구들이 들어간다.

각 장(Chapter)에는 한미 양국이 합의한 협상 분야별 일반원칙이 들어가는데, 편의상 상품 분야, 투자·서비스 분야, 기타 분야 등 3개의 협상 분야로 구분된다. 한미 FTA 협정문에서는 상품 분야와 투자·서비스 분야가 각각 2~10장(총 9장)과 11~15장(총 5장)으로 이뤄져 있다. 16~24장(총 9장)은 기타 분야에 관한 것이다.

전문과 각 장이 한미 FTA의 '대원칙'과 '분야별 일반원칙'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다면, 부속서, 부록, 서한에는 전문이나 각 장에 담기지 못한 특정 통상 사안들에 대한 한미 양국 간 약속이나 합의사항이 담겨 있다.

이 중 가장 핵심적인 부속서는 '상품 양허안(Tariff Elimination Schedules, 각 상품 품목별 관세철폐율 및 관세철폐 이행기간)'과 '서비스·투자 유보안(Reservations List, 개방에서 제외되는 서비스의 목록 및 그 내용)'이다. 각 품목별 원산지 기준도 핵심 부속서로 꼽힌다.

이밖에 한미 FTA에서 눈여겨봐야 할 중요 부속서로는 농업 긴급수입제한조치(세이프가드)나 자동차 관련 분쟁해결절차 등 민감 사안에 대한 양국 간 합의사항이 꼽힌다. 또 금융서비스위원회나 자동차작업반 같은 각종 위원회나 작업반에 관한 양국 간 약속도 주요 부속서로 꼽힌다.
▲ 외교통상부 웹사이트에 게재된 한미 FTA 협정문의 모습. ⓒ프레시안

협정문의 겉모습을 훑어보니…

협정문의 구성을 파악하는 것은 일반 국민들에게는 일견 불필요한 일로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간단하게나마 협정문의 겉모습을 훑어보면 한미 FTA가 단순한 '무역자유화'나 '시장 개방'이 아니라는 점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바꿔 말해, 한미 FTA 협정문의 구성을 훑어보는 것만으로도, 정부가 한미 FTA를 선전하는 데 사용하고 있는 '한미 FTA=시장 개방, 한미 FTA 반대=쇄국'이라는 공식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 알 수 있게 된다.

◇ 상품 시장의 개방 협정으로서의 한미 FTA

지난 4월 2일 한미 FTA 협상이 체결된 후 정부와 언론매체들은 앞 다퉈 한미 FTA 발효 후 무엇이 얼마나 싸질 것인지, 그래서 소비자들이 얼마나 이득을 볼 것인지에 대해 선전했다.

가령, 한미 FTA가 발효되면 미국산 와인에 붙는 한국 측 관세가 즉시 없어져 한국인은 값싼 캘리포니아산 와인을 즐길 수 있게 되고, 한국산 차에 붙는 미국 측 관세도 줄어들어 미국인은 더 많은 현대차를 살 것이라는 식이다. 생산자 측면에서 보자면, 이제 한국은 미국에 싼 값에 자동차를 팔 수 있게 됐고, 미국은 한국에 더 많은 와인을 팔 수 있게 됐다는 것이다.

물론 이런 관세 협정은 한미 FTA의 중요한 부분이다. 그래서 이를 '자유무역협정(FTA)의 꽃'이라고도 부르기도 한다. 다만 정부는 한미 FTA의 관세 협정 측면만 지나치게 과장해 홍보해 왔다. 미국의 평균 관세율이 2%에 불과한데도, 한미 FTA만 발효되면 당장 미국 시장에 한국산 상품을 더 많이 수출할 수 있는 것처럼 선전해 왔다는 말이다.

어쨌든, 이제 한미 FTA 협정문이 공개됐으므로 소비자들과 생산자들은 각각 자신이 관심 있는 상품이 한미 FTA 발효 후 얼마나 개방될지, 그 개방에 얼마만큼의 기간이 소요될지, 그 상품이 어떤 보호장치를 통해 얼마만큼이나 보호될 수 있는지 등을 직접 확인할 수 있다.

◇ 상품 시장의 제도 협정으로서의 한미 FTA

하지만 이같은 상품 시장의 개방이 FTA의 전부라고 보는 전문가는 아무도 없다. 관세 협정이 그토록 중요하다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라는 이름 대신 한미 관세협정이라고 불러야 마땅하다. 한미 FTA는 상품 관세에 대한 협정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상품 수출입과 관련된 한국의 각종 제도와 법, 규범들에 대한 협정이기도 하다.

그래서 한미 FTA 협정문에는 이 글로벌 경제 시대에 어떤 상품을 메이드인코리아(한국산)라고 인정해 줄 것인지[원산지], 어떻게 하면 세관에서의 통관절차를 미국산 상품에 유리하게 바꿔줄지[통관절차]와 같은 내용이 들어간다. 또 협정문에는 농수산물의 위생검역[위생검역, SPS]이나 공산품의 기술표준[무역관련기술장벽, TBT]을 어떻게 국제적 기준에 맞춰 완화할 것이냐는 등의 내용도 담긴다.

이뿐만이 아니다. 정부가 국내 산업 보호를 위해 시행하는 다양한 무역 보호 장치들, 대표적으로는 반덤핑 관세, 보복관세, 세이프가드 등을 어떻게 시행할지도[무역구제, Trade Remedy] 한미 FTA 협정문에 들어가는 핵심 내용이다.

즉, 미국과의 무역에 영향을 미치는 한국의 모든 제도와 법과 규범들이 모두 한미 FTA 협정문 안에서 다뤄진다는 뜻이다. 한미 양국 간 통상에 영향을 미치는 한국의 제도나 법을 미국 쪽에서는 '비관세 장벽(NTB)'이라고 표현한다.

◇ 서비스·투자 시장의 개방 협정으로서의 한미 FTA

이처럼 한미 FTA 협정문을 보는 한 틀이 상품 분야의 '개방 협정'과 '제도 협정'이라면, 이에 상응하는 자유무역협정의 또 다른 중요한 틀이 있다. 바로 서비스·투자 분야의 '개방 협정'과 '제도 협정'이다.

서비스·투자 시장의 개방을 이해하는 것은 상품 시장의 개방을 이해하는 것보다 훨씬 더 어렵다. 상품은 국경을 넘어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지만, 서비스는 그렇지 않은 경우가 훨씬 많기 때문이다.

이 서비스·투자의 미국인 생산자와 한국인 소비자가 만날 수 있는 방법은 크게 4가지로 나눌 수 있다. 미국인 생산자와 한국이 소비자가 각각 자국에서 서비스 거래를 하는 경우(국경 간 공급, Cross-border supply), 한국인 소비자가 직접 미국인 생산자가 있는 미국으로 가는 경우(해외 소비, Consumption abroad), 미국인 생산자가 한국에 '기업'을 차리고 직접 서비스를 공급하는 경우(상업적 주재, Commercial presence), 그리고 미국인 생산자가 '개인' 자격으로 한국에서 직접 서비스를 공급하는 경우(인력 이동, Presence of Natural Person) 등이다. [이것을 WTO(세계무역기구) 용어로 하자면 순서대로 모드 1, 모드 2, 모드 3, 모드 4다.]

한미 FTA 서비스·투자 분야의 협정문은 금융, 건설, 교육, 법률, 방송·시청각, 통신, 유통, 의료 등 12개의 서비스 분야, 155개 세부 업종 각각에 대해 개방을 할 것인지 아닌지, 개방을 하기로 한다면 이 4가지 개방형태 중 어떤 형태를 허용할 것인지에 대한 한미 양국 간 합의 내용이 담겨 있다.

단, 한미 FTA에서는 4가지 개방형태 중 상업적 주재에 관한 협상 내용을 따로 떼어내 '투자' 장에서 다루고 있다. 또 여러 서비스들 중 금융서비스는 '금융서비스' 장에서 별도로 취급하고 있다.

◇ 서비스·투자 시장의 제도 협정으로서의 한미 FTA

상품 시장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서비스·투자 시장도 이같은 '개방 협정'이 전부는 아니다. 개방 협정보다는 서비스·투자 시장과 관련된 제도와 규범을 정하는 '제도 협정'이 훨씬 더 큰 비중을 차지한다. 바로 이것이 우리 정부가 '한미 FTA는 우리 제도의 선진화 계기가 될 것'이라고 선전하는 부분이다.

서비스·투자 분야의 제도 협정과 관련된 양대 원칙으로는 미국인과 한국인을 똑같이 대우해야 한다는 '내국민 대우(NT, National Treatment)'와 미국인과 제3국적의 국민을 똑같이 대우해야 한다는 '최혜국 대우(MFNT, Most favored Nation Treatment)'가 있다.

이 원칙에 예외가 되는 서비스 분야가 무엇인지를 규정하는 것이 이 제도 협정의 핵심이다. 한미 FTA 협정문에서는 '서비스·투자 유보안'에 이 내용이 담겨 있다.

이밖에도 수용과 보상, 투자자의 이행의무, 투자 관련 분쟁 등 외국인 서비스·투자에 대한 국내의 규범이나 제도가 유지될지 혹은 변경·폐지될지가 모두 협정문 안에서 다뤄진다.

이처럼 한미 FTA는 상품 분야와 서비스·투자 분야 각각의 개방 협정과 제도 협정이라는, 2×2 틀에서 봐야 한다. 한미 FTA가 단순히 캘리포니아산 와인이 싸지는 효과만 낳는 무역 자유화나 시장 개방이 아니라 대한민국의 시장과 대한민국의 법·제도를 송두리째 바꾸는 협정이라는 소리는 이래서 나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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