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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강국 코리아'의 꿈, 한미FTA가 이뤄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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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강국 코리아'의 꿈, 한미FTA가 이뤄줄까?

[한미FTA 뜯어보기 515 : 인터뷰] 게리 딤스키 캘리포니아대 교수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 대한 시각은 실로 다양하다. 그 중 하나는 한미 FTA를 노무현 정부의 금융허브론 구상과 연결시켜 보는 것이다. 미국에서도 한미 FTA로 인한 무역증대 효과만큼이나, 혹은 그 이상으로 한국의 금융시장에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프레시안>은 최근 리츠메이칸 대학 코리아연구센터(원장 서승)가 주최한 한국경제 관련 컨퍼런스 참석 차 일본 교토를 방문한 게리 딤스키 캘리포니아 리버사이드대 교수(경제학)를 지난 15일 교토 시내의 한 사원에서 만났다.

진보 성향의 지한파 학자인 게리 딤스키 교수는 한국 금융구조 분야의 전문가로 유명하다. 그는 지난해 한미 FTA의 선결조건이었던 '스크린쿼터 축소' 문제와 관련해 '문화 다양성을 위해 한국에 스크린쿼터를 축소하라는 요구를 하지 말라'는 서한을 미 의회에 보낸 것으로 더욱 유명해졌다.

약 3시간 동안 열띤 분위기에서 진행된 이날 인터뷰는, 그 이후 여러 차례에 걸친 딤스키 교수와 기자 간의 이메일 교환으로 내용이 더욱 풍부해졌다. <프레시안>은 이 인터뷰 내용을 딤스키 교수의 전문 분야인 금융 분야를 중심으로 소개한다. <편집자>


프레시안: 최근 협상이 타결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 대해 총평을 한다면….

딤스키: 한미 양국 정부는 한미 FTA를 통해 각자가 얻고자 했던 소기의 목적을 성공적으로 달성했다고 본다. 한미 FTA는 일차적으로는 정치적인 목적을 위한 것이었고, 경제적인 목적은 그 다음이었다.

한미 FTA는 노무현의 '업적주의'에서

프레시안: 한미 양국 정부가 한미 FTA에서 추구한 정치적·경제적 목적에 대해 나름의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구체적으로 이야기해 달라.

딤스키: 노무현 정부의 입장에서 한미 FTA는 '위기 후 한국(post-crisis Korea)'의 리더로서 자신이 얼마나 유능한지 보여주기 위한 '정치적' 노력이었다.

한미 FTA는 노 대통령이 추구한 경제 정책, 즉 인천국제공항 주위에 자유무역·자유투자 지대를 만들어 한국을 동북아의 금융허브로 육성하려는 정책을 성공시키기 위해 고안된 것이었다.

노 대통령의 임기는 사실상 2007년 말로 끝나는데, 그는 한미 FTA와 금융허브 정책이 그의 '유산(legacy)'으로 남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노무현의 유산'을 남기고자 하는 분투는 노 대통령이 임기 초부터 추진했던 금융허브 정책으로부터 시작됐다. 실제로 노 정부는 재임기간 중 금융허브 프로젝트에 많은 투자를 해 왔다. 이 프로젝트가 현실화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노력도 계속됐다. 2003년 1차 금융 박람회가 열렸고, 오는 5월 3차 박람회가 열릴 예정이다.

그러나 이 같은 노 정부의 경제 정책은 곤경에 빠져 있다. 가령, 중국 상해 등에서 수로교통을 주도하겠다는 노 정부의 계획은 애초 계획과 달리 잘 되지 않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한미 FTA는 그의 금융허브 정책이 실현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노 대통령의 마지막 분투다.

한미 FTA가 발효되면 이 협정으로 인해 무역 및 투자가 늘어날 것이고, 그러면 이를 뒷받침하기 위한 금융허브가 자연히 형성될 것이라는 게 그의 논리다. 이런 논리는 경제적으로는 그 근거가 희박하지만, 정치적 선전 효과는 클 것이다.

프레시안: 노무현 정부가 정치적 선전을 필요로 한다면, 그런 선전이 필요한 경제적 배경이 있을 것이다.

딤스키: 노무현 대통령이 집권한 후 한국은 평균 경제성장률보다 상대적으로 낮은 성장률을 보여 왔다. 사실, 최근 한국의 성장률은 1997~99년 경제위기로부터 회복된 후의 평균 성장률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다. 게다가, 한국의 성장률은 중국과 인도의 성장률에도 따라 잡혔다. 노무현 집권기 동안 실업률은 안정화됐지만, 경기가 좋을 때보다는 실업률이 훨씬 높다.

그래서 한국은 세계경제에서 '잊혀진 자(forgotten man)'가 됐다. 한국은 '부자들의 클럽'인 OECD(경제협력개발기구)에 가입했고, 세계에서 11번째로 큰 경제를 자랑하게 됐지만, 지난 3~4년 간 세계경제에 대한 논의에서는 거의 완전히 무시돼 왔다.

바로 이런 사정이 한미 FTA의 배경으로 작용했다. 한미 FTA에 대해 생각할 때는 한국의 금융허브 정책과의 연관성을 염두에 둬야 한다.

'초국적 기업이 일자리 준다'는 환상

프레시안: 국내에서도 한미 FTA와 금융허브 정책의 연관성에 대한 지적이 나오고 있다. 하지만 노무현 정부 스스로는 이런 연관성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지는 않다.

딤스키: 흥미로운 부분이다. 노무현 정부의 FTA 정책과 금융허브 정책은 경제위기 전후 한국 정부의 경제 정책에 대한 접근법에 있어 핵심적인 요소들이었다.

금융허브 육성론은 큰 정부, 강력한 계획경제 그리고 정책금융 등 위기 전 한국 경제의 특징을 보여준다.

다른 한편으로는, 이런 강력한 정부 개입 정책은 현재의 신자유주의적 세계질서의 현실에 기반을 둔 일자리 창출에 발맞춰 가고 있다. 즉, 정부가 시장 친화적인 자세로 인프라 투자에 돈을 대면, 초국적 기업들이 한국에 들어와 일자리를 창출해줄 것이라는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한국의 금융허브 정책은, 1970년대 한국의 5개년 경제개발 계획보다는, 1990년대 타이와 말레이시아의 자유무역지대(free trade zone) 정책에 더 가깝다.

그런데 이런 접근법이 유효할 것인지는 의심스럽다. 초국적 기업들이 한국인들에게 일자리가 제공할 수도 있지만, 그러기 위해 한국은 어떤 대가를 치러야 할까?

세계의 '자유무역지대 게임'을 지휘하는 것은 마진(margin)이다. 그리고 이 마진은 아주 적다. 어쩌면, 한미 FTA는 한국의 자유경제지대에 미국 기업들을 유치하기 위해 한계비용(marginal cost)을 낮춰주려는 노력의 일환으로도 보인다.

결국, 한미 FTA는 '모든 무역은 금융 지원을 필요로 한다는 점'과 '한국은 중국과 미국 사이에 위치하고 있다는 점'에 착안해 한국 정부가 고안해낸 아이디어일 것이다.

문제는 대부분의 무역 흐름이 한국 정부가 생각하는 것과 반대 방향, 즉 중국에서 미국으로 흘러간다는 것이다. 그래서 보다 중요한 질문은 '미국 기업들에 어떤 인센티브를 제공해야 그들이 자유경제지대에 생산기지를 세울 것인가'가 아니라 '중국 기업들이 그럴 수 있냐'는 것이다.

적어도 현재 시점에서, 답은 '아니다'이다. 모든 지표들은 중국 정부가 인프라 투자에 있어 중국 본토의 장기적인 투자 잠재력을 늘리는 데 주력하고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중국은 한국과 합작을 하기보다는 본토에 인프라 시설을 갖추는데 힘쓸 것이다.

물론 중국의 수출이 대만, 홍콩 등 다른 아시아 국가의 생산업체들과 긴밀히 연관돼 있기는 하다. 하지만 최종 생산라인은 노동 비용이 엄청나게 낮은 중국 본토에 그대로 남아 있을 것이다. 한국의 경제자유지대는 대만이나 홍콩의 투자를 기대하기도 힘든 것이다.

결국, (경제자유지대에서) 일자리 하나를 만드는데 들어가는 사회적 비용은 높을 것이다. 경제자유지대에 대한 논의에서 항상 제기되는 문제지만, 그 지역에서 창출되는 새로운 일자리는 그런 지대를 굳이 만들지 않더라도 그 지역의 특성상 자연스럽게 생겨나게 돼 있는 것들이 태반이다.

한국의 금융시장과 한미 FTA

프레시안: 한미 FTA를 추인하는 숨은 세력은 보다 많은 이윤을 낼 수 있는 시장을 찾아다니는 '초국적 금융자본 블록'이라고 보는 시각도 있다. 이런 시각에 동의하나?

딤스키: 그 질문에 대답하려면, 먼저 한미 FTA가 한국 금융시장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에 대해 생각해봐야 한다.

한국 금융시장은 19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정부의 강한 통제를 받았다. 하지만 이런 상황은 두 가지 사건을 겪으며 변했다. 먼저, 한국은 1990년대 중반 OECD(경제개발협력기구)에 가입하기 위한 조건으로 금융시장에 대한 규제를 일부 완화했다.

두 번째 변화의 계기는 1997~98년 금융위기였다. 당시 IMF(국제통화기금)는 한국 금융시장이 완전히 개방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특히, IMF는 외국 금융기관이 한국 은행의 소유지분을 사는 것을 허용하라고, 즉 외국 금융자본이 한국 금융시장에 보다 자유롭게 들어갈 수 있도록 금융 시스템을 재편하라고 강요했다.

한미 FTA 협상의 타결된 내용은 아직 공개되지 않았다. 다만, 미 무역대표부(USTR)는 4월초 공개한 '한미 FTA 요약(Summary of the KORUS FTA)'에서 다음과 같은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이 협정 아래서, 미국 금융기관들은 △한국에 금융기관을 설립 또는 인수해 모든 종류의 금융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완전한 권한을 가진다 △미국 은행, 보험사, 자산운용사 등의 한국에 지사를 설립할 수 있다 △포트폴리오 매니지먼트 서비스 등 특정 금융서비스를 '국경 간(cross-border)' 서비스 형태로 제공할 수 있다.

한국은 금융서비스 부문에 대한 규제 개혁을 실시하기로 약속했다. 여기에는 외환보유고의 한도 증액, 방카슈랑스 개혁, 규제 절차의 투명성 강화, 데이터 처리의 지역적 통합, 한국 우체국과 민간 보험사에 대한 동등한 규제 적용 등이 포함된다. "


한미 FTA는 미국 금융기관에 두 가지 새로운 힘을 불어넣어 줄 것이다. 먼저, 미국 은행은 한국 은행을 보다 자유롭게 인수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그 다음으로, 미국 은행은 한국 국민들과 기업에 보다 광범위한 금융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런데, 미국 은행들이 정말 그렇게 할 것인가?

미국 내의 금융 자본은 3개의 그룹으로 분류할 수 있다. 한 그룹은 국제적인 포트폴리오를 다루며 활발한 금융서비스 영업을 하고 있는, 미국인 소유의 초대형 은행들이다. 시티그룹과 JP모건이 이 그룹에 속한다. 골드만삭스, 모건 스탠리 등 다른 투자은행들도 이에 속한다.

두 번째 그룹은 외국인 소유의 대형은행으로서 미국 내에서 광범위한 영업을 하고 있다. 도이체방크, HSBC, ABN암로 등 3개 은행이 이 그룹에 속한다.

세 번째 그룹은 포괄적인 포트폴리오 서비스를 제공하거나 상업은행 기능을 충실히 수행하는 큰 은행들이다. 뱅크오브아메리카(BOA), 와초비아, 웰스 파고 등이 여기 속한다. 이런 은행들은 국적이 있기도 하고 초국적이기도 한데, 모두 2000억 달러 이상의 자산을 가지고 있다.
▲ 게리 딤스키 미 캘리포니아 대학 교수(경제학). ⓒ프레시안

프레시안: 그렇다면 핵심적인 질문은 이들 은행이 한미 FTA 체결 후 한국에서 영업을 하는데 관심을 보일 것인가가 되겠다.

딤스키: 그렇다. 역사적으로, 많은 미국의 대형 상업은행(commercial bank)들과 투자은행(investment bank)들이 한국에서 영업을 해 왔다.

먼저 상업은행들의 경우, MF 위기 전에 한국에서 활발한 영업을 하던 은행으로는 시티뱅크와 뱅크오브아메리카(BOA)가 있었다. 시티뱅크는 1967년 한국에서 영업을 시작한 최초의 미국 은행이었다. BOA는 금융위기 전까지만 해도 한미은행의 대주주였다.

금융위기가 발발한 후, BOA는 한국에서 철수했다. BOA의 지분은 사모펀드인 칼라일과 JP모건의 컨소시엄으로 넘어갔다. 반면 시티뱅크는 오히려 한국에 대한 투자를 늘렸다. 왜 그랬을까?

BOA가 한국에서 철수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이는 '미국 내 금융서비스 공급자로서의 특화'라는 BOA의 전략과 관계가 깊다. BOA는 1998년 내이션뱅크와 합병한 후, 미국 서부에서 상업은행으로서의 입지를 강화시켜 왔다. 적어도 단기간에는 이런 BOA의 전략이 바뀔 것 같지 않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시티뱅크는 2004년 11월 당시 한국의 대형은행이던 한미은행을 인수하면서 한국의 금융 시장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게 됐다. 이는 시티뱅크 나름의 선택적인 확장 전략에 따른 것이었다. 시티뱅크는 1994~95년 멕시코에서 이른바 '데낄라 위기'가 발발한 직후에도 멕시코에서 이런 전략을 구사한 바 있다. 그 결과, 시티뱅크는 멕시코의 금융 시스템에서 주요한 역할을 하게 됐다.

시티뱅크가 추구하는 것은 '슈퍼마켓' 접근법이다. 한미 FTA가 발효되면, 시티뱅크는 한국의 지점을 다양한 금융서비스를 팔기 위한 네트워크로 사용할 것이다.

하지만 다른 미국 은행들도 시티은행의 전략을 따라할까? 별로 그럴 것 같지 않다.

한국은 인구 4000여만 명의, 미국보다 소득 수준이 낮은 나라라는 점을 기억하라. 이런 인구 규모는 캘리포니아 한 주의 인구 규모와 비슷한 수준이다(한국의 인구 규모는 캘리포니아보다 약 15% 크다 - 편집자). 현재 캘리포니아에서는 BOA 등 4개의 주요은행들이 영업 중이다.

그런데 이 지역보다 1인당 소득이 낮은 한국에는 이미 국민은행, 우리은행, 신한은행, 하나은행 등 4개의 은행들이 있다. 이미 포화 상태인 시장에 뛰어들려는 미국 은행이 있을까? 게다가, 시티뱅크나 체이스 등 2개의 은행을 제외하고는, 지금 미국 밖에서 시장을 확장하려는 미국 상업은행(commercial bank)은 없다.

반면, 현재 대부분의 대형 투자은행들은 한국에서 사무실을 운영하고 있다. 한미 FTA가 발효되면, 이들 투자은행이 한국에서 그들의 투자를 유지하거나 증가시킬 것이라는 점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한미 FTA는 이들 은행이 한국 상류층과 중대형 기업들에게 제공할 수 있는 금융서비스의 종류를 다양화할 수 있도록 허용할 것이다.

그렇다면, 한미 FTA로 인한 금융서비스의 자유화는 한국의 상류층과 한국의 주요 기업들에 금융서비스를 제공하고자 하는 투자은행(investment bank) 경쟁자들이 증가하는 효과만 낳을 것이다. 이런 현상은 한국 사회의 특징인 '소득과 부의 불평등'의 심화와 함께 진행될 것이다.

금융시장의 양극화 깊어질 것

프레시안: 그렇다면, 한국의 은행과 금융 시스템은 어떻게 되나?

딤스키: 한국의 은행들은 두 갈래로 양분될 것이다. 즉, 상류층 소비자에게 고급 금융서비스를 제공하는 금융기관들과 나머지 금융시장을 전부 떠맡는 금융기관들로 나뉠 것이다. 이는 많은 한국인들이 적절한 금융서비스를 제공받지 못하거나 대출시장에서 체계적으로 착취되는 현상을 강화할 것이다.

사실 한국의 금융 시스템은 이미 이런 경로로 가고 있다. 다만, 한미 FTA는 이런 방향으로 한국 금융 시스템이 재편되는 것을 가속화할 뿐이다.

한미 FTA의 '금융 래칫' 효과

프레시안: 이미 그런 경로로 가고 있어서 그런지, 한국의 경제 관료들은 한미 FTA에서의 금융시장 개방 수준이 '예상했던 것보다는 낮다'고 한다.

그러나 한미 FTA는 한국의 금융시장을 개방시키는 직접적인 역할을 하기보다는 한국 스스로의 자발적인 금융시장 자유화 정책에 쐐기를 박는, 이른바 래칫(ratchet, 역진방지) 역할을 할 것이라는 지적도 있다. 어떻게 보나?

딤스키: 시장 자유화에서의 래칫 효과는 1980년 이래로 전 지구적으로 작동하고 있다. 이런 래칫은 근본적으로 금융기관, 특히 상업은행에 대한 규제를 더욱 느슨하게 만들기 위해 등장한 것이다.

금융위기가 발발했을 때, 이런 위기는 부적절한 규제나 감독 그리고/혹은 '정실 자본주의(crony capitalism)', 또는 '도덕적 해이(moral hazard)'에 빠진 대출자-대부자 관계 때문이라고 여겨졌다.

그런데 이에 대한 해결은 금융기관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는 것과는 다른 방향으로 갔다. 가령, 금융기관의 자기자본비율을 높인다거나, 대출자와 대부자 사이의 '밀접한' 관계를 '거리를 두는(arms length)' 관계로 대체하는 것 등과 같은 조치가 시행됐다.

따라서 금융시장에서의 래칫 효과는 '법적 구속력' 때문이 아니라 시장 개방에 대한 국내 규제당국의 '자발적인 헌신(pre-commiment)'에서 기인한다고 봐야 한다. 물론 IMF의 개입도 한 몫을 하지만.

기자가 지적한 대로, 한미 FTA는 이 협정이 정한 것보다 더 높은 수준의 국내 규제를 금지하는 새로운 래칫 역할을 할 것이다. 한미 FTA에 대한 정보가 제한돼 있지만, 이런 래칫이 한미 FTA에 들어간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덧붙이자면,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에는 이런 종류의 금융 래칫은 포함되지 않았다. 멕시코 은행들이 그들만의 과점 체제를 유지하고자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국 은행들은 아시아 금융위기 이후 이런 요구를 할 수 있는 입장에서 아예 멀어져 버렸다.

정부의 샌드위치 극복론, 말이 되나?

프레시안: 그런 '자발적인 금융시장 개방'과 별도로, 노무현 정부는 한국 은행가들과 사업가들이 세계 톱 수준인 미국의 금융 테크닉에 노출되기만 하면 그들 역시 이런 테크닉을 배워 금융 선진화를 이룰 것이라고 주장한다.

나아가 노 정부는 저투자의 덫에 빠진 한국 경제를 회생시키고, 앞서나가는 일본경제와 추격하는 중국경제 사이의 '샌드위치' 신세에서 벗어나려면 이 길만이 살 길이라고 주장한다. 이런 주장에 개연성(feasibility)이 있다고 보나?

딤스키: 무엇보다, 나는 기자가 암묵적으로 제기한 질문의 내용이 옳다고 생각한다. 즉, 한국에는 '한국 금융시장을 일단 초국적 기업들과의 무한 경쟁에 던져놓기만 하면 한국 기업들이 자연스럽게 재생할 것'이라는 기대가 있는 것처럼 보인다.

나는 또 기자가 암묵적으로 제시한 답도 옳다고 생각한다. 한국을 미국 자본의 침투에 더욱 노출시킨다고 해서, 한국이 일본이나 중국과의 경쟁에서 이길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은 어불성설이다.

월스트리트의 투자은행들은 화려한 금융 테크닉으로 가치(돈)를 뽑아내는 일을 정말 잘 한다. 그리고 그 가치를 나누지 않기를 원한다. 그들은 아마도 동북아시아에서 영업을 하기 위해 일부 한국인 인력을 키울 수도 있겠지만, 자신들의 금융 테크닉을 공유하지는 않을 것이다.

가까운 미래에 한국의 금융기관이 미국 수준에 도달할 수 있을 것 같지는 않다. 현재 한국 은행들 가운데 오직 1개사만이 1%대의 연간 자산 수익률을 올리고 있을 뿐이다.

한국의 은행들이 금융시장에서 상당한 몫을 차지할 수 있을 정도로 금융 테크닉과 서비스를 발전시키는 단계에 이른다고 쳐도, 그 쯤에는 중국의 금융 시스템 역시 현재의 문제점들을 모두 극복하고 아시아 역내에서 '사자의 몫'을 챙기려 들 가능성이 매우 높다.

정리하자면, 앞으로 얼마간 한국이 '국경 간 거래(cross-border transaction) 형태의 유가증권 판매 등 몇몇 특정 금융서비스를 제공하는 중요한 장소가 될 수는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중국이 추격이 늦춰지지는 않을 것이며, 일본과의 경쟁도 줄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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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쌍둥이 적자와 글로벌 불균형, 그리고 한미FTA

프레시안: 조금 다른 시각에서 이야기해 보자. 여기저기서 미국의 '쌍둥이 적자(twin deficit)와 세계 경제의 불균형(global imbalance)에 대한 우려가 나오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한미 FTA는 한미 간 경제 관계와 세계경제에 어떤 변수 역할을 할까?

딤스키: 한미 FTA가 한미 간 무역수지에 미치는 영향은 미미할 것이다. 아마 미국에 약간 유리할 것이다. 하지만 한국에는 큰 이득이 없을 것이다. 한국은 이미 대미무역에서 엄청난 흑자를 보고 있는 국가들 중 하나다.

게다가 한국 기업들은 이미 한국 국내보다는 해외에 더 큰 비중을 두고 투자를 해 왔다. 한국 기업들도 한국산 상품에 기반을 둔 양자 간 무역(한국 기업이 한국산 상품을 미국에 수출하는 것)보다는 3중 무역(한국 기업이 제3국에서 생산한 상품을 미국에 수출하는 것)에 더 초점을 맞추고 있다.

한미 FTA는 일미 FTA처럼 보다 큰 규모의 양자 간 협정을 향한 첫 걸음이 될 수도 있다. 일미 FTA가 현실화되면, 이는 일본과 미국 그리고 세계경제 전체의 경제 활동을 변화시킬 것이다. 그러나 이런 FTA가 현실화될 가능성은 높지 않다고 본다.

프레시안: 일미 FTA의 가능성을 낮게 보는 이유는?

딤스키: 그 이유는 바로 한미 FTA에 대한 지정학적 측면과 연관이 있다. 단순화시켜 이야기하자. 미국이 양자 간 통상 협정을 맺으려고 할 때마다, 이는 세계경제 리더로서의 미국의 지위를 깎아 내릴 것이다.

미국이 리더십은 1998년 이후 엄청난 수준의 무역적자와 함께 이미 위험에 빠져 있다. 미국의 무역적자는 세계경제에, 특히 무역흑자 국가들의 외환보유고에 달러(greenbacks)를 쏟아 붓고 있는 것이다.

이런 달러 과잉은 달러 기반 유동성에 대한 세계적 필요성을 축소시키는 측면이 있다. 그래서 생기는 문제는 '이 넘치는 달러로 도대체 무엇을 할 것인가'이다. 그 답은 '미국 정부의 빚을 사라(Buy US government debt)'는 것이다. 이는 최근 한국경제와 세계경제의 뚜렷한 특징이 됐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이런 '글로벌 불균형(global imbalance)'이 일어나는 글로벌 드라마에서 한국 경제가 맡은 역할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는 통화 붕괴의 시점이 임박했다는 것을 뜻하는 건 아니다. 통화 붕괴의 여부는 중국과 일본 그리고 유럽 국가들이 달러 표시의 채권을 얼마나 살 것인지에 달려 있다. 그런데 현 시점에서 이들 국가는 '빼도 박도 못하는(locked-in)' 투자자들이다.

오히려 주목해야 할 점은, 미국이 자국 기업들과 월 스트리트의 금융자본을 위해 이런 통상 협정을 맺으면 맺을수록, 세계 경제에서의 미국의 리더십이 위태롭게 된다는 것이다.

찰스 킨들버거(Charles Kindleberger)가 '글로벌 헤게모니의 역할(role of global hegemony)'이라고 불렀던 미국의 리더십은 FTA로 더 큰 위기에 처할 것이다. 부시 정부가 지금처럼 FTA에 심대한 관심을 보이지 않아도, 현재 미국 경제가 처한 구조적 왜곡과 약점은 이미 충분히 미국 경제의 헤게모니를 약화시키고 있다.

말할 필요도 없이, 한국이 이처럼 구조적으로 위기에 처한 글로벌 경제에 자국 경제를 퐁당 던지는 것은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러나 바로 그것이 우리가 지금 보고 있는 상황, 즉 한미 FTA가 보여주는 상황이다.

위기에 처한 미국은 지금 친구를 필요로 한다. 한국은 한미 FTA를 통해 이런 위태로운 미국의 친구가 되기로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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