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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 FTA, 제약산업-건강보험 붕괴 신호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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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 FTA, 제약산업-건강보험 붕괴 신호탄"

[한미FTA 뜯어보기 316 : 한미FTA의 사법충격·4] 한미 FTA와 보건의료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이 2006년 2월 3일 미국에서 기습적으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체결을 위한 협상 개시 선언을 한 지 1년이 지난 지금 한미 당국은 8차 협상을 마치고 아직 타결되지 않은 쟁점 현안에 대해 고위급 회담을 진행하고 있다. 지금까지 정부는 그 협상 내용을 거의 공개하지 않았다.

그간의 언론 보도로 확인되듯이, 미국 측은 무역 구제 분야 등 한국 측의 요구 사항을 협상 대상에서 제외하는 당당한 모습을 보여 왔다. 그러나 정작 한국 측은 협상 개시를 위해 내줄 것은 먼저 다 내준다고 약속한 뒤, 정작 자기 것은 변변히 챙기지도 못하는 상태다. 국내 법률 160여 개의 전면 개정이 불가피한 항목을 속속 타결하는 것이 그 예다.

미국 협상 대표는 의회의 입법 사항이라는 이유로 자신에게 불리하다 싶은 사항은 협상 테이블에 올리는 것조차 거부하는데, 한국 협상 대표는 자신의 권한도 아닌 사항들을 용감하고 시원하게 타결해 왔다. 이젠 '빅딜'을 시도한다며 마치 도박장에서 마지막 '카드 돌리기'를 하는 모습이다. 이런 모습을 보면 분노를 넘어 서글프기까지 하다.

한미 FTA, 국내 제약산업 붕괴 신호탄

이제 본격적으로 보건의료 분야에 대한 한미 FTA의 영향을 살펴보자. 지금까지 진행된 한미 FTA의 해당 내용을 살펴보면, 한국 측은 신약의 특허 기간을 연장하자는 미국 측 안을 일부 수용했다. 또 약가 산정 때 미국 업계의 의견을 수렴하는 기구를 두는 데도 원칙적으로 합의했다.

이런 한국 측의 양보에도 고위급 회담에서 미국은 의약품 허가와 특허의 연계를 법제화하고 약가 최저가격보장제 및 관세장벽을 철폐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이 중 관세장벽 철폐에는 한국 측도 사실상 동의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식의 양보는 한국 사회에 충격을 줄 가능성이 크다.

먼저 제약산업 및 의료시장의 변화를 예상해 보자. 2005년 국내 의약품 시장은 7조8890억 원으로 전년에 비해 14.6% 성장했다. 2005년 국내 의약품 시장은 다국적 제약회사가 50% 정도를 차지했다. 관세장벽이 철폐되면 2010년경 다국적 제약회사의 시장 점유율은 70%를 넘을 전망이다.

국내 제약회사 대부분은 특허가 만료된 다국적 제약회사 제품의 복제약(제네릭)의 생산과 판매를 기반으로 운영된다. 한미 FTA를 통해 의약품의 특허가 연장돼 복제약의 시장 진출이 저해되면 국내 제약산업은 심각한 타격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 국내 제약회사는 신약 연구개발 수준이나 이를 가능케 하는 투자를 할 만한 자본 축적이 미진한 상태다.

더욱이 한미 간 복제약의 상호 인정이 합의되지 않을 경우, 한미 FTA를 통한 수출의 확대를 크게 기대하기도 어렵다. 즉, 구매력이 있는 국내 시장은 다국적 제약회사에 내주고 미국 시장 진출은 가로막히는 상황이 발생하는 것이다. 그 결과가 국내 제약산업의 위축으로 이어질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다국적 제약회사 수입 보장하는 특허 연장

정부가 동의한 특허 연장의 핵심은 신약 허가 기간과 특허 심사 기간에 해당하는 기간만큼 특허 기간을 연장한다는 것이다. 한국이 가입한 TRIPS(무역 관련 지적 재산권 협정)에서는 의약품 특허를 출원할 때부터 20년으로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현재와 같은 상황에서 미국 측의 요구를 받아들일 경우 미국의 다국적 제약회사의 특허는 3~5년 정도 연장될 것이다.

보건복지부에서는 신약 허가 기간과 특허 심사 기간을 대폭 단축해 기간 연장을 축소할 수 있다고 한다. 그러나 이것은 국민의 건강을 볼모로 부실한 특허 심사 및 신약 허가를 하겠다는 것에 다름 아니다. 덧붙여 다국적 제약회사가 일정 기간 신약에 대한 자료를 독점하는 권한을 더 확대할 줄 태세여서 국내 제약회사의 복제약 생산 등은 더욱더 위축될 전망이다.

미국이 주장하는 식약청-특허청 업무 연계는 더 심각한 문제를 야기한다. 이것은 다국적 제약회사가 걸어놓은 의약품의 제법, 용법 등 수많은 특허 중 단 하나만 남아 있어도 복제약의 허가를 내주지 않는 제도다. 미국에서는 다국적 제약회사들이 이 제도를 악용해 복제약 제조를 저지하기 위한 소송이 급증했다.

결국 피해는 소비자의 몫이었다. 보통 평균 30개월 가량이 소요되는 이 소송으로 신약의 복제약 생산이 그만큼 늦어지기 때문이다. 전체 소송 중 80%가 복제약 제약회사의 승소로 끝났다는 것은 이 제도가 사실상 다국적 제약회사의 특허 기간 연장을 보장하는 제도로 전락했음을 방증한다.

위기에 직면한 국민건강보험제도

앞에서 열거한 이런 제도가 한미 FTA를 통해 도입되면 결국 현재와 같은 다양한 복제약은 점차 사라질 것이다. 그렇다면 결과적으로 약효가 검증된 복제약 중심의 현행 국민건강보험공단의 약가 결정 시스템도 구조적 위기를 맞게 될 수밖에 없다. 이는 대다수 국민에게는 국민건강보험 재정 부담과, 값비싼 약을 먹는 것으로 귀결될 것이다.

이것만이 아니다. 한국 정부는 미국 측의 의약품ㆍ의료기기의 가격 등 결정과 관련한 독립적 이의 제기 기구 설립 요구를 받아들였다. 이것은 결국 국민건강보험공단이 다국적 제약회사를 상대로 경제성을 평가할 때, 그 협상력을 약화시키는 수단으로 작용할 것이다. 이것은 앞으로 심각한 문제로 비화할 가능성이 크다.

한미 FTA 협상 어디서도 국민건강보험공단이 독점 지위 남용 금지의 예외 대상으로 분류됐다는 얘기를 들어보지 못했다. 만약 다국적 제약회사가 공단의 약값 결정이나 보험 적용 여부를 놓고 공단의 결정에 대해 이의 제기 기구를 통해 불만을 제기했다 받아들여지지 않을 때, 반독점 조항을 근거로 투자자-국가 소송이라도 하면 어떡할 것인가?

국내 국민건강보험 재정 중 약값으로 지출되는 돈은 약 7조2000억 원으로 알려져 있다. 관련 전문가의 추정에 의하면 현재와 같은 내용대로 FTA가 체결될 경우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 약값 항목에서만 매년 2조 원이 추가될 것이라고 한다. 여기에 미 측이 집요하게 요구하고 있는 처방 의약품 광고까지 전면 허용되면 약값의 비중은 더욱 커질 것이다.

가뜩이나 양극화가 심화돼 가는 한국의 현실에서 비록 그 보장성이 부족하다는 비판에 직면하였지만 국민건강보험제도는 그나마 국민 일반에게 든든한 버팀 몫이 돼 왔고, 앞으로도 그 공공성과 보장성을 강화해야 한다. 그러나 뜻하지 않게 한미 FTA는 우리 건강보험제도에 대해 현존하는 가장 명백한 위험으로 다가 오고 있는 것이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노무현 정부는 지금이라도 국민들로 하여금 그들의 운명을 그들이 결정할 수 있도록 참여 민주주의의 대의를 실천해야 한다. 이제 한미 FTA 체결은 입법기관인 국회와 주권자인 국민의 손으로 판단하게 해야 한다. 이를 위해선 무엇보다도 먼저, 정부는 한미 FTA 협상 과정의 모든 정보를 공개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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