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해당 정유회사들은 이같은 공정위의 주장이 사실무근이라면서 법적 대응에 나서겠다고 밝혀 공정위와 정유업계 간의 전면전 기류가 확산되는 분위기다.
<프레시안>은 지난 2004년 8월부터 2년이 넘는 장기 추적 끝에 이번 가격담합 사실을 밝혀낸 송상민 공정위 서비스카르텔팀장을 과천 정부청사에서 만났다.
그는 이 가격담합을 밝혀내는 작업이 1500조각의 복잡한 퍼즐을 맞추는 것과 같았다고 소회를 피력하며 이 사건이 법정에 가더라도 공정위가 승소할 것임을 확신했다. 아울러 그는 이번 사건을 계기로 시장경제 질서를 어지럽히는 불공정거래를 근절해 나가기 위한 공정위의 발걸음이 더욱 빨라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편집자>
"딥 스로트?…철저히 비협조로 일관한 정유업계"
프레시안: 석유업계의 반발이 거세다. 공정위가 가격담합의 산실로 지목한 정유사들의 '공익 모임'은 유사석유제품에 대한 대책회의였고, 공정위가 국내가격과 국제가격을 비교할 때 비교방식이 틀렸다고 반박하고 있다. 또 담합을 한 것으로 지적된 2004년 4~6월 국내 마진율이 오히려 떨어졌다는 주장도 하고 있다.
송상민: 석유업계의 그같은 반박은 문제의 본질과 전혀 관계가 없다. 설사 (담합의 결과) 석유값이 내렸다 하더라도 사업자들이 합의, 즉 담합을 통해 경쟁을 소멸시킨 행위는 사라지지 않는다. 바로 그것이 본질이다. 석유업계의 반발은 이런 본질을 호도하기 위해 단편적인 사실들만 부각시키려는 것이다. 숲(담합)을 보지 못하게 하기 위해 나무(반박)를 강조하는 식이다. 이런 행태는 도덕적으로 문제가 있다.
프레시안: 소비자들의 입장에서는 526억 원의 과징금이 너무 적은 것 아니냐, 혹은 가격담합을 지적당한 기간이 너무 짧은 것 아니냐는 불만도 나오고 있다. 이번 건 하나로 석유업계에 면죄부를 주려는 것 아니냐는 소리도 나왔다.
송상민: 경제학 교과서에도 나오지만, 거의 동일한 제품을 거의 유사한 판로로 판매하는 경우 과점 체제가 형성되는 것은 경제주체들의 합리적인 선택이라고도 할 수 있다. 이런 과점 체제 자체를 놓고 공정위가 시비를 걸 수는 없다. 공정위의 역할은 소비자들의 일반적인 의심 수준을 넘어, 기술적·법률적 요건을 엄격히 따져 시장경제 질서를 저해하는 담함 행위를 찾아내고 이를 시정하도록 하는 것이다.
프레시안: 이번 건은 법률적 요건을 다 갖췄다는 자신감의 표현으로 해석해도 되나?
송상민: 그렇다. 퍼즐에 비유하자면, 이번 담합 건의 난이도는 1500조각의 퍼즐에 해당한다. 우리는 이 1500조각의 퍼즐을 한 조각도 빠짐없이 모두 짜 맞췄다고 할 수 있다. 해당 석유회사들이 소송을 걸 것에 대비해 완벽하게 가격담합의 증거를 준비했다. 이를 위해 수만 쪽의 회사 내부문건들을 입수해 분석하고 또 분석했다.
프레시안: 내부문건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 어떤 경로로 입수했나? 혹시 딥스로트(deep throat, 내부 고발자)가 있었나?
송상민: 내부 고발자는 없었다. 오히려 그 반대로, 석유업체들은 지극히 비협조적이었다. 한 회사는 공정위가 조사에 들어가자 회사 컴퓨터를 전부 교체하기도 했다. 또 회사 직원이 컴퓨터를 가지고 도주한 일도 있었다. 다른 회사들도, 우열을 가리기 힘들 정도로, 하나같이 비협조적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끼리끼리 잘 만난 것 같다. 우리는 현장을 급거 덮치는 방식 등으로 해당 문건들을 입수했다.
이번 건은 '첫 제품', 다음부턴 '대량생산' 가능할 것"
프레시안: 시민단체들은 이같은 정유업체들의 횡포를 막기 위해서라도 이번 기회에 '고시가'와 '실거래가'로 운영되는 이원적인 가격결정구조를 바꿔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정유업체들이 상대적으로 높은 고시가는 그대로 유지하고 주유소를 상대로 한 실거래가를 계속 높여가는 방식으로 부당이익을 취한다는 비판이다. 이런 주장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송상민: 이원적인 가격결정구조가 문제가 되는 것은 맞지만, 이는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는 문제와 같다. 가격담합을 하기 위해 가격 이원화란 수단이 생겨난 것이고, 그렇게 생겨난 가격 이원화가 가격담합을 낳는 악순환이 일어나는 것이다. 이원적인 가격결정구조를 없앤다고 해도 문제의 근원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프레시안: 한국의 연간 에너지 수입액은 전체 수입액의 25%에 해당하는 670억 달러 규모다. 이중 원유 수입액만 560억 달러다.이처럼 국민경제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재화의 경우, 정부가 더 적극적으로 가격 결정에 참여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이야기도 나온다. 실제로 아시아에서는 한국과 일본을 제외한 대부분의 나라들이 에너지 가격을 통제하고 있다.
송상민: 오죽하면 정부가 가격을 통제해야 한다는 그런 이야기까지 나오겠나. 우리의 경우, 지난 1997년 '석유 가격 자율화'라는 원칙이 세워졌고, 그 원칙을 뒤집을 수는 없다. 정부의 역할은 가격을 직접적으로 통제하는 것보다 시장에서 기업들이 활발한 시장경쟁을, 즉 '경주'를 하도록 하는 것이다.
프레시안: 공정위는 이번에 발표한 2004년이 아니라 2003년의 경우에도 이들 정유사가 가격담합을 한 것으로 추정된다며 관련 문건의 내용을 일부 공개한 바 있다. 이와 관련해 공정위가 앞으로 어떤 계획을 가지고 있는지 말해 달라.
송상민: 2003년의 가격담합의 경우에도 사실 확신에 가까운 판단을 하고 있다. 하지만 모든 퍼즐을 다 맞춘 상태는 아니다. 아직 빈 곳과 다 짜 맞추지 못한 퍼즐 조각이 남아 있다. 그 빈 곳을 다 채워야 기술적, 법률적 요건을 충족하는 것이다.
이처럼 가격담합 행위를 구체적으로 입증하는 건 어렵다. 그래서 한 건의 가격담합 행위를 밝혀내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린다. 공정위가 이번 한 건에 대해서만 정유업체들을 처벌함으로써 면죄부를 주려는 것 아니냐는 소리가 나오는 것을 안다. 공정위가 뭔가 해 줄 것이라고 너무 오래 기다렸는데 겨우 이 정도냐는 실망의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번 건은 '첫 제품'에 해당한다고 봐 줬으면 좋겠다. 일단 한 개의 시제품이 나오면 다음 제품을 대량생산할 수 있는 길도 열린다. 앞으로 그런 여건이 형성되리라 본다. 공정위에 대한 기대가 많은 것을 잘 알고 어깨가 무겁다. 지켜봐달라. 열심히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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