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무역구제-자동차·의약품 '빅딜'의 양상이 분명히 달라졌다. 기존의 빅딜 틀이 우리 측이 자동차 및 의약품 분야에서 양보하면 미국 측이 무역구제 분야에서 양보를 하는 것이었다면, 새로운 빅딜 틀은 우리 측이 자동차, 의약품, 무역구제 이 모든 분야에서 양보하면 미국 측이 그 양보 수준을 보아 무역구제 관련 우리 측 요구사항을 일부나마 들어주는 것으로 바뀌었다.
23일 김종훈 수석대표는 MBC 라디오 '손석희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한국 측 협상단이 무역구제 분야의 핵심 요구사항으로 꼽아 왔던 비합산(non-cumulation, 국가별 산업피해 합산 금지) 조치를 자동차 및 의약품 빅딜의 일환으로 포기했다'는 소식에 대한 확인을 요구 받고 "당초부터 그걸 염두에 두고 그런 구상을 한 건 아니다"면서 사실상 이를 인정했다.
김종훈 대표는 "그것(비합산) 말고도 여러 가지 다른 사안이 또 있고, 그것(비합산)만을 우리가 주장한 건 아니다. (…) 무역구제에서 충분히 다른 방법으로 당초 우리가 겨냥했던 그런 효과를 꺼낼 수 있는 그런 구상들도 여러 가지하고 있다"며 "앞으로도 비합산 조치를 강하게 요구하겠다"는 기존 입장에서 확연히 달라진 모습을 보였다.
김종훈 대표는 "자동차나 의약품 분야에서 미국 측에서 일정 부분의 양보가 있다면 한국 측도 무역구제 분야에서 일정 부분의 양보를 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진 것으로 확인을 한 걸로 하겠다"는 진행자 손석희 성신여대 교수의 정리 발언에 "서로 간 절충점을 찾아내 이해를 조정하는 노력을 할 필요가 있다고 하면 좋겠다. 굳이 양보라는 표현을 쓰지 않고…"라고 응했다. "내가 쓰지 않아도 다른 사람은 쓴다"며 손 교수는 맞받아쳤다.
결국 한국 측 협상단은 "반덤핑 조치를 50% 정도 줄이는 효과를 낼 것"이라고 선전했던 비합산 조치마저 포기한 것으로 확인된 셈이다. <프레시안>은 이미 지난 7차 협상 당시 고위급 관계자의 발언을 인용해 "미국 측이 미-이스라엘 FTA에서 비합산을 넣어준 사례가 있어 우리도 받아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 것이 오산이었다"고 보도한 바 있다.
<무역구제 관련 한국 측 협상단의 입장 변화>
△1~2차 협상 : "무역구제 꼭 얻어낸다"
△3차 협상 : "무역구제 관련 9가지 요구사항 제시"
△4차 협상 : "무역구제 관련 6가지 추가 요구사항 제시"
△5차 협상 : "15가지 중 요구사항 중 6가지를 마지노선으로 미국 측에 제시, 특히 비합산 조치가 핵심 요구사항"
△6차 협상 : "무역구제 받기 힘들면 다른 것 받아내기 위해 지렛대로 활용"
△7차 협상 : "비합산 조치도 받기 어려우니, 자동차 및 의약품 방어 수단으로 쓸 것"
한국 측 협상단의 주장대로 협상에서 양측이 서로 조금씩 양보하며 주고받기를 하는 것은 '유연성'으로 해석될 수 있으나, 한국 측이 자동차, 의약품은 물론 무역구제에서까지 일방적으로 후퇴하는 것까지 '유연성'이라 부르기는 힘들 것으로 보인다. 이쯤 되면 김종훈 한국 측 협상 수석대표의 말대로 '빅딜'이라고 부르기도 민망한 처지다.
하지만 한국 측이 '빅딜이 아닌 빅딜'에서 이처럼 '유연성'을 발휘해선지 협상은 순풍을 타고 있다. 웬디 커틀러 미국 측 대표는 22일(현지시간) 미 워싱턴 국제평화카네기재단에서 행한 연설에서 "한미 FTA 협상이 5주 내에 성공적으로 마무리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헨리 폴슨 미 재무장관은 한미 FTA 협상 직전인 3월 6~7일 한국을 방문해 노무현 대통령, 권오규 경제부총리,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과 함께 한미 FTA 에 대해 논의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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