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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노체트 사망으로 칠레 과거청산 급물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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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노체트 사망으로 칠레 과거청산 급물살

김영길의 '남미리포트'<223> 군부숙청, 은닉재산 몰수…

독재자 아우구스또 피노체트가 사망하면서 칠레의 과거청산 작업이 급물살을 타고 있다.

지난 10일 오후 2시 15분(현지시간) 91세로 사망한 피노체트의 장례식은 국가 최고통치자의 예우 대신 칠레군 최고사령관의 자격만 인정한 채 치러졌다. 칠레 국민들이 민주적 절차를 거친 합법적인 선거를 통해 그를 국가원수로 선택하지 않았다는 이유에서다.

피노체트는 1973년 9월 11일 육군 총사령관으로 임명된 지 18일만에 쿠데타를 일으켜 살바도르 아옌데 당시 대통령을 살해하고 17년 동안 철권통치를 휘둘렀다.

피노체트는 칠레 국민들의 민주화 요구로 1990년 3월 11일 권좌에서 물러난 뒤에도 민주화된 칠레의 정치계를 사실상 자신의 의도대로 주물러왔다. 군부는 물론 정치, 사회 전반에 걸쳐 막강한 권력과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자신의 추종자들을 통해서였다 (2005년 11월 15일자 '아직도 피노체트는 언터처블' 참조).
▲ 피노체트의 장례식(12월 12일 칠레 산티아고). ⓒ 로이터=뉴시스

막강한 칠레 군부도 과거청산 대세 인정

하지만 그가 고령과 심장마비 등 합병증으로 사망하면서 칠레 군부에도 과거청산 바람이 불고 있다.

칠레 군부는 최근 피노체트 집권 당시 언론탄압에 앞장섰던 리카르도 부톤 소장의 사임을 공개적으로 요구했다. 또한 칠레 군부는 군정 당시 민간인을 상대로 인권유린을 자행한 고위급 군 인사들에게도 책임을 물을 계획이다.

칠레 군부는 지난 18일 오스까르 이수리에따 총사령관 주재로 전군 지휘관회의를 소집해, 피노체트 사망 이후 강하게 일고 있는 칠레 국민들의 과거사 청산 의지를 지켜보며 군정 관련 고위급 장교들에 대한 인책 범위의 수위조절에 들어갔다.

이에 앞서 칠레 군부는 민간인 고문과 인권유린에 관련된 고위급 장교 2명에게 강제퇴역 조치를 내리기도 했다.

국내외 사법부의 움직임도 단호하다. 1998년 신병치료 차 영국 런던을 방문했던 피노체트를 전격 체포하여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스페인의 발타사르 가르손 판사는 "피노체트가 죽었다고 해서 독재와 천인공노할 인권유린 범죄에 면죄부가 찍힌 것은 아니다"라면서 재판을 계속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칠레 법원 역시 군정 당시 납치, 실종, 고문치사, 탈세 등의 혐의로 재판을 받던 중 사망한 피노체트에게 면죄부를 주지 않을 전망이다.

정계에서는 아옌데 전 대통령의 딸 이사벨 아옌데 칠레 사회당 의원이 과거청산 움직임에 앞장서고 있다.

그는 "자신을 군 통수권자로 임명한 국가원수를 배반하고 살해한 피노체트는 배신자이자 살인자"라면서 "피노체트의 전 재산을 몰수해 군정 피해자 지원에 사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피노체트는 생전에 "청렴결백한 정치를 폈다"고 말해 왔으나, 상당한 재산을 은닉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최근 미국 등 해외은행에 예치된 것으로 드러난 피노체트의 은닉자금은 빙산의 일각이며, 칠레 내에 있는 피노체트 재단의 자산도 사실상 피노체트의 재산이라는 것이다. 이 때문에 칠레 사법부가 피노체트의 재산에 대해 철저하게 조사해 모두 환수해야 한다는 여론이 일고 있다.

피노체트는 1974년 '어머니들을 위한 센터(CEMA)'라는 재단을 설립해 부인 루시아 이리아르트를 이사장에 앉히고 4만5000여 명에 달하는 추종자들이 그 운영을 맡도록 했다. CEMA 재단은 사회사업보다 복권사업 도입 등 이권사업에 주력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사실상 피노체트의 사유재산 관리기관인 CEMA 재단은 한때 산티아고 시내 요지와 칠레 전역에 348개의 부동산을 보유할 정도였으나, 피노체트가 영국에서 체포된 후부터 자산 정리에 들어가 현재 이 재단 소유 부동산은 15개 정도만 남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피노체트의 유가족들은 현재 사정당국의 조사를 집중적으로 받고 있다. 부인과 5명의 자녀들 가운데 이미 4명이 탈세 혐의로 입건됐다.

"친피노체트파 언론인들 자숙해야"

칠레의 과거청산 대상에서 언론계도 예외는 아니다.

미첼 바첼렛 칠레 대통령은 피노체트의 장례식장에 몇몇 유명 언론인들이 조화를 보냈다는 소식을 접하고 "군정 당시 진실을 전하고자 했던 언론인들 전체가 엄청난 박해와 고통을 받았던 것을 생각하면 신중치 못한 행동"이라며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군정의 실질적인 피해자이기도 한 미첼 바첼렛 대통령의 이같은 발언은 군부와 정치계는 물론 언론계까지 포괄하는 과거청산 작업에 나서겠다는 의지를 표현한 것이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칠레 언론들은 피노체트의 사망 관련 뉴스를 보도하면서 확연하게 대비되는 양면적 모습을 보였다.

친피노체트계 언론들은 '피노체트 전 대통령 사망'이라는 제목으로 그의 가족들과 친피노체트계 인사들이 애도하는 모습을 주로 다루었다. 반면 반피노체트계 언론들은 '독재자 피노체트 사망'이라는 제목으로 거리로 뛰쳐나와 축배를 드는 칠레 국민들의 환호하는 모습과 군정 관련 피해자들의 인터뷰로 지면을 채웠다.

그러나 군부의 압력에 굴복해 전직 대통령들에게 내린 사면령을 무효화시키고 군정 관련자 전원을 사법처리하기 위해 재판을 진행 중인 아르헨티나에 이어, 칠레에서도 과거청산 작업이 본격화되면서 군부, 정치권은 물론 언론계에서도 이런 대세에 순응하는 변화가 일어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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