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헨티나 유력언론사의 현직기자 다비드 콕스와 다미안 나보트는 최근 <페론의 부관참시(La Segunda Muerte)>라는 책을 펴내 페론의 시체훼손 사건을 주도한 조직과 인물들의 실명을 공개하고 이 사건의 전모를 파헤쳤다.
필자는 다비드 콕스와 다미안 나보트를 이 책을 펴낸 '쁠라네따' 출판사 사무실에서 지난 7일 만나 이 책을 펴낸 동기와 과정, 당시의 상황 등을 직접 들었다.
또한 당시의 정치상황을 이해하기 위해 아르헨티나 민주화의 상징이던 라울 알폰신 전 대통령을 따로 만나 그의 견해도 들었다.
공동 저자 다비드 콕스는 '페론의 손목절단 사건'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이 사건은 아르헨티나뿐만 아니라 세계를 충격에 빠뜨린 역사적 사건이었다. 그러나 지금까지 각종 의혹만 무성한 채 미제사건으로 남아 있다. 페론의 숨겨진 비자금을 노린 사건이라는 설도 널리 퍼졌는데, 이는 페론을 두 번 죽이는 모욕이며, 이러한 설을 퍼뜨리는 세력의 배경에는 정치적인 동기가 작동하고 있다고 판단된다."
사건 당시 육중한 철문과 12개의 자물통으로 4중 차단된 페론의 가족묘지가 정체불명의 괴한들에 의해 파손되고 페론의 손목이 수술용 전기 톱으로 절단되어 사라졌다.
이 와중에 페론의 반지와 장군도 역시 도난 당했다(페론의 사체는 부패를 막기 위한 특수 방부제 처리로 인해 썩지 않고 미라 상태로 남아 있다).
아르헨티나 전체를 발칵 뒤집어 놓은 이 사건 발생 직후 페론당 의원회관으로 한 통의 편지가 배달된다. "페론의 손목과 유물들을 회수하려면 800만 달러를 지불해야 한다"는 내용이 담긴 편지였다.
페론당 지도부와 당원들은 이 사건을 현금을 노린 단순 절도범들의 소행이라고 판단, "페론을 편히 쉬도록 해주자"면서 도난 당한 페론의 손목과 돈을 맞바꿀 계획을 세우기도 했다.
사건 담당판사 의문의 교통사고 이후 미제사건으로 남아
그러나 시중에는 이 사건을 놓고 페론의 천문학적인 비자금이 숨겨진 비밀금고를 열기 위해 페론의 지문이 필요했을 것이라는 루머가 급속도로 확산됐다. 심지어 "페론이 1944년 독일 나치 수뇌부로부터 전범들의 아르헨 망명을 허용하는 조건으로 천문학적인 자금을 받았는데 이 돈이 그 금고 안에 있을 것"이라고 언급될 정도였다.
또한 "이 금고에는 나치들이 유럽 각국에서 강탈한 국보급의 각종 희귀한 보물과 골동품들이 가득 들어 있을 것"이라는 말이 나도는가 하면, 시중에는 "이 강도들은 '20세기 판 보물섬'을 발견했다"는 농담까지 나도는 등 각종 추측과 유언비어가 난무했다.
아르헨 사법당국은 특별수사팀을 구성하고 범인 색출에 나섰다. 하지만 당시 담당 판사였던 하이메 수아우는 이 사건이 정치계는 물론 경제계, 군 수뇌부까지 개입된 조직적인 정치범죄라는 심증을 굳히고 수사망을 좁혀나갔다.
이 때부터 수아우 판사는 각종 협박과 회유를 받았고 죽을 고비를 수 차례나 넘기기도 했다. 그러나 생명의 위협을 무릅쓰고 수사를 강행하던 그가 갑자기 의문의 교통사고로 사망하면서 여러가지 의혹과 추측들만 난무한 채 이 사건은 19년이 지난 오늘날까지 영구미제사건으로 남아 있었다.
그런데 <페론의 부관참시>를 쓴 저자들은 이 사건이 반페론주의자들인 군부세력과 P-2로 불린 사조직에 의해 저질러졌으며 페론의 부관참시 자체에 그 목적이 있었다고 폭로하면서 사법기관이 재수사에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페론의 부관참시>는 당시 수사기록과 수사에 참여했던 수사관들과 그 가족들의 증언을 위주로 사건의 실체를 파헤치는 가운데 P-2의 계보와 그들의 활동도 추적했다. 그 가운데 당시 수사전담 판사였던 하이메 수아우의 수사기록과 범인 추적활동을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다.
저자들에 따르면, P-2는 아르헨 군 정보국 수뇌부와 정치권, 경제계는 물론 이탈리아계 출신인사들을 망라한 거대한 사조직으로 반공산주의, 반페론주의를 설립 목표로 한 친군부세력이다.
이 조직은 또한 군정 당시 페론당 말살정책과 유아납치 등 '더러운 전쟁'을 실질적으로 이끈 사조직이기도 하다. 특히 정보당국 책임자들과는 의형제를 맺는 등 지난 70년대 아르헨 군부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한 국제적 조직이었다는 것이다.
저자들은 "지난 1982년 영국과 무리한 전쟁을 일으킨 군부는 전쟁의 실패로 권좌에서 물러난 후 P-2를 사조직화 했다"면서 "이들은 보수 우익단체라는 기치를 내걸고 지속적으로 알폰신과 메넴 정부를 흔들어 사회불안을 야기했다"고 주장했다.
이 조직은 페론의 집권기간 동안 아르헨티나 곡물의 유럽수출독점권을 요구했고 이를 위해 800만 달러의 정치자금을 헌납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페론은 이들에게 특혜를 베풀지 않았다. 따라서 이들은 이 돈을 돌려받기 위해 페론의 손목을 잘랐다는 명분을 내세웠다.
"페론 손목 절단 사건은 알폰신 정부에 대한 위협"
그렇지만 저자들은 "P-2가 이 사건을 저지른 실제 목적은 페론의 이미지를 깎아 내리는 동시에 사법부와 알폰신 정부을 위협해 당시 정치계의 이슈였던 군 수뇌부의 사법처리를 막고 사면을 받아내려는 것이었다"고 주장한다.
특히 P-2가 페론의 손을 절단한 것은 그의 손을 극빈노동자들과 소외계층들을 이끄는 페론주의의 상징으로 보고 아르헨티나에서 페론주의의 멸절을 시도하려는 의도였다는 것이다.
자신들 따르던 군부에게 두 번씩이나 축출되어 감옥과 해외망명 등의 수모를 겪었던 페론이 죽어서까지 군부에게 부관참시라는수모를 당한 것이다.
콕스는 "P-2는 민주주의를 말살하기 위해 해당 정치인들을 제거하고 군사정권을 계속적으로 이어가기 위해 조직된 비밀결사대 성격을 띠고 있었다"면서 "페론을 축출한 쿠데타에도 이들이 깊이 개입했다"고 주장했다.
사건 발생 당시 군정의 과거청산을 위해 진실위원회를 발족시킨 알폰신 정부는 공포정치를 편 군 수뇌부와 민간인들의 상대로 '더러운 전쟁'을 벌인 인권유린 관련자 전원을 사법 처리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었다.
그러나 군부는 무력을 앞세운 시위를 주도하는 한편 페론의 시체를 훼손함으로써 알폰신 당시 대통령에게 "당신도 조심하라"는 무언의 경고를 보냈다는 것이다.
알폰신은 페론의 시체훼손 사건 이후 곧바로 '명령복종법'을 공포해 군정 관계자들을 실질적으로 사면함으로써, 이 사건이 정치적인 압력으로 작용했음을 시사했다.
알폰신 "군정 관련자 사면은 당시로선 불가피한 선택"
알폰신 전 대통령은 이에 대해 "당시 나로서는 최선의 선택이었다. 더 이상 군부와 정부가 대립구도로 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생각이었고 과거사 정리에 '마침표'를 찍음으로써 민생과 경제를 살릴 계획이었다"고 주장했다.
집권 당시 군부의 의견을 대다수 그대로 수용한 것에 대해서는 "사회화합 차원에서 불가피한 조치였다"며 군부의 압력을 사실상 인정하는 태도를 보였다.
'현 키르츠네르 대통령은 과거 당신이 내린 사면령이 위헌이라며 군정관련자 전원을 사법 처리할 방침인데 이를 어떻게 보느냐'는 질문에 알폰신 전 대통령은 "백수의 왕인 사자들이 밀림에서 날뛸 때는 이를 길들일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러나 이 사자들이 우리 안에 갇힌 상태가 된다면 누구나가 마음대로 이 사자를 때려서 길들일 수 있을 것"이라는 말로 자신과 현 대통령의 정치여건 사이에 큰 차이가 있음을 내비쳤다.
비록 민간정부에 권력을 이양했으나 군 실세들이 정치 사회 경제 전반에 걸쳐 막강한 권력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었던 80년대 초와 지금은 상황이 전혀 다르다는 얘기다.
"민주화가 완전하게 뿌리내린 지금에 와서 힘을 전혀 쓰지 못하는 군부를 향해 누구인들 무슨 일을 못하겠느냐" 고 주장한 알폰신 전대통령은 당시 자신의 임무는 "과거청산보다 민주화 정착이 가장 시급한 사안"이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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