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일 국회 농림수산위원회 강기갑 의원(민주노동당) 주최로 열린 '미국산 쇠고기 수입과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토론회는 한국의 공무원과 정부 언저리 학자의 인식 수준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자리였다.
김창섭 농림부 가축방역과장은 미국산 쇠고기 수입 재개 관련 정보를 공개하지 않은 이유를 묻자 "홈페이지에 공개할 경우 (사람들이 몰려와) 다운되는 것을 우려했다"고 답변했다. 그는 또 부적합 작업장 명단을 공개하지 않았던 이유에 대해서는 "작업장들이 이미 일본으로 쇠고기를 수출하는 업체 소속인 것을 고려했다"며 "(우리가 부적합 작업장 명단을 공개하면) 피해를 보는 업체들이 생길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답변했다.
농림부 가축방역협의회 위원인 이중복 건국대 교수(수의학과)는 한술 더 떴다. 그는 '30개월 이하에서도 광우병이 발견되고 있어 일본은 20개월 미만을 수입했는데 우리는 왜 30개월 미만으로 했느냐'라는 질문에 "21개월도 선택 가능했지만 일본이 먼저 수입을 하기로 했기 때문에 기준이 같아 21개월 이하 물량이 달려 가격이 오를 것을 우려했다"고 답했다.
심지어 이중복 교수는 "최종결정은 소비자의 가치판단에 맡겨야 한다"며 "(안전하지 않다고 생각하면) 미국산 쇠고기를 먹지 않으면 된다"고 덧붙였다. 이런 농림부 공무원과 그 언저리 전문가의 발언은 한국 민주주의의 현 주소를 적나라하게 보여줄 뿐만 아니라, 식품안전에 대해 그들이 가지고 있는 인식이 어떤지를 드러낸다.
"일본의 노력, 반이라도 따라가라"
일반적으로 위험분석(Risk Analysis)은 3가지 차원에서 진행된다. 첫째는 '위험평가(Risk Assessment)'로 전문가들이 과학적 입장에서 위험을 평가한다. 둘째는 '위험관리(Risk Management)'로 정부와 의회가 정책적 입장에서 위험을 관리한다. 셋째는 '위험정보교환(Risk Communication)'으로 정부의 각 부처 간, 정부와 국민 간에 공청회 등을 통해 위험정보를 서로 교환한다.
위험정보교환에서는 정부와 전문가들이 국민을 심리적으로 안심시키기 위해 관련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지난 7월 한국보다 먼저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재개한 일본의 예는 한 가지 시사점을 던져 준다. 일본 정부는 자국 국민들이 미국산 쇠고기에 대해 불안해하자 각종 공청회, 토론회, 설명회를 통해 안전성과 관련된 위험정보를 공개했다.
심지어 8월 15일자 일본 농림수산성의 보도자료를 보면, 미국 현지 쇠고기 수출작업장에 대한 재점검 조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캘리포니아 주 소재 내셔널 비프(National beef)', '위스콘신 주 소재 아메리칸 푸드(American foods)'라고 구체적으로 회사 이름을 명기하기도 했다.
또 농림수산성 홈페이지에 가보면, 위험정보교환(risk communication) 란이 따로 마련되어 있다. 이곳에는 식품안전에 관한 의견교환, 소비자 간담회 내용이 자세하게 기록돼 있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과 관련한 의견교환 내용을 살펴보면, 2006년에만 30차례의 정부 주최 간담회가 있었다.
특히 4월 11일부터 24일 사이에만 '미국산 쇠고기 수입 문제에 관한 간담회'가 센다이(仙台) , 오사카(大阪), 히로시마(廣島) 등 10개 도시에서 열렸다. 6월 1일부터 14일 사이에도 도쿄(東京), 삿포로(札幌) 등 10개 도시에서 같은 간담회가 열렸다. 또 7월 28일부터 8월 24일 사이에는 미국 쇠고기 수출작업장에 대한 현지조사 결과를 설명하는 행사가 후쿠오카(福岡), 히로시마(廣島), 센다이(仙台) 등 10개 도시에서 열렸다.
간담회에서는 상황파악에 도움이 되는 모든 자료가 공개된다. 4월 24일 타카마츠(高松)에서 개최된 간담회에서 배포된 자료를 보면 알 수 있다. △'일본 대상 쇠고기 수출 증명 프로그램에 관한 조사 결과ㆍ대책 보고서' △'일본 대상 쇠고기 수출 증명 프로그램에 관한 조사 결과ㆍ대책 보고서'와 관련한 조회 사항에 대한 미국의 답변 △ 미국산 쇠고기 수입 문제에 관한 일미 전문가 회의 개요 등이 간담회 참석자에게 공개됐다. 한국에서는 국회의원이 공개를 요청해도 볼 수 없는 자료들이다.
일본의 정부 측 참석자 역시 한국과는 천지차이다. 식품안전위원회의 위험정보교환(risk communication) 담당관과 같은 실무자뿐만 아니라 후생노동부의 의약식품국 식품안전부 감시안전과장, 농림수산부의 소비ㆍ안전국 소비자정보관, 소비ㆍ안전국 동물위생과 국제위생대책실장 등 관련 부처의 핵심 공무원들이 다 참석해 소비자와 대화하려고 노력했다.
"도대체 뭘 보고 정부를 믿으란 말인가"
툭하면 언론중재위원회 제소 운운하는 한국 정부의 태도와는 달리 일본에서 공개된 회의록과 설문조사 내용에는 정부에 대해 비판적인 내용도 가감 없이 들어 있다.
"수입 쇠고기는 맛이 좋지 않아 가격이 높더라도 국내산 쇠고기를 구입하고 싶다", "소비자에게 정직하게 발표해주었으면 좋겠다", "국가가 책임지고 식품안전을 지키겠다는 결의를 듣고 싶었는데 실망했다", "정부가 일방적인 방향을 정해놓고 설명회를 개최하고 있다", "국가 간의 관계도 중요하다고 생각하지만 국민의 안전과 건강이 더 중요하다" 등등.
일본 정부는 이렇게 다양한 의견을 그대로 기록해 공개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노력에도 일본 언론의 여론조사에 의하면 일본 국민의 90%는 "미국산 쇠고기가 광우병에 안전하지 않으므로 먹지 않겠다고 답변했다"고 한다.
우리나라 정부는 미국산 쇠고기의 수입 재개를 결정하면서 농림부 가축방역협의회, 전문가협의회의 회의록을 공개하지도 않았다. 또 국민을 대상으로 공청회나 설명회 역시 한 번도 개최하지 않았다. 심지어 국회가 관련 정보의 공개를 요청하자 "회의록을 작성한 적이 없다"는 거짓말까지 일삼았다.
과연 이런 정부를 믿고 국민들이 안심하고 살아갈 수 있는지, 국민들의 피 같은 세금으로 대통령부터 장차관, 공무원, 전문가들의 월급을 줄만한 가치가 있는지 의문이 든다. 이런 지경인데 정부를 믿으라고 하는 노무현 대통령이 안쓰러울 뿐이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