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산 쇠고기를 수입하기 위해 농림부가 그간 자신의 입장마저 바꿔 온 정황을 염두에 두면 이 같은 처신은 어처구니없기까지 하다. 농림부와 농림부의 자문에 응해 온 한국가축방역협의회의 전문가들은 정말로 '미국산 쇠고기가 안전하다'고 여기는 것일까? 미국산 쇠고기 수입 재개를 둘러싸고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살펴보면 결코 그렇지 않다.
미국 소 80% 나이 확인 어렵다고 해 놓고선…
우선 2005년 11월 29일 농림부가 내놓은 가축방역협회의 회의 자료를 살펴보자. 이 회의 자료에서 농림부는 "미국 내 전체 사육두수 중 월령 감별이 가능한 것은 15~20%에 불과하다"며 "광우병이 발생했을 때 신속하고 철저한 추적 및 쇠고기의 안전성을 확보하기 위해서 미국 소의 개체식별 시스템의 조기 구축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 자료는 당시 농림부가 두 가지 사실을 인식하고 있었음을 말해준다. △미국 소의 80% 이상이 나이 확인이 불가능하고 △광우병 소가 또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것. 하지만 2005년 12월 농림부가 미국산 쇠고기 수입 재개 협상을 시작하면서 농림부는 어찌된 영문인지 계속 이해할 수 없는 처신으로 일관한다.
농림부는 우선 미국과 '1998년 4월 이전에 출생한 소에서 광우병이 발생한 경우는 쇠고기 수입 재개에 영향을 줄 수 없다'고 덥석 약속을 한다. 불과 몇 주 전에 '미국 소의 80% 이상이 나이 확인이 불가능하다'고 해놓고서 도대체 소의 나이를 어떻게 확인하겠다는 것인가? 이런 의구심이 생길 수밖에 없는 대목이었다.
유일한 근거는 치아 감별법…일본과 캐나다는 뭔가?
이런 의구심을 해소시켜주기라도 하듯 농림부는 한 술 더 떴다. 지난 3월 6일 농림부는 '미국산 쇠고기의 수입 위생 조건'을 발표하면서 "도축 소의 나이를 확인할 수 있는 서류 또는 치아 감별법에 의해 30개월 미만으로 판정된 것이어야 한다"고 고시했다. 미국 소의 80%가 나이를 확인할 수 있는 서류가 없는 것을 염두에 두고 빠져나갈 구멍을 마련해준 것이다.
이렇게 농림부가 고시를 한 지 불과 한 주일 뒤 앨라배마 주에서는 광우병 소가 발생했다. 물론 이 소 역시 대개의 미국 소가 그렇듯 출생기록 등이 전혀 없기 때문에 치아 감별법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이때부터 농림부는 현지에 전문가까지 보내 "광우병 소는 1998년 4월 이전에 태어난 소"라고 미국의 역성을 들기 시작했다.
하지만 농림부가 유일한 근거로 내세우는 치아 감별법은 과학적으로 신뢰도가 매우 낮다. 역시 광우병 소가 발생해 비상이 걸려 있는 캐나다 식품검사국(CFIA)은 "소의 나이를 확정할 때 품종 등록 문서와 같은 추가적인 문서가 제공되지 않는다면, 치아 조사만으로 소의 나이를 30개월령 미만인지 그 이상인지 증명할 수 없다"고 밝히고 있다. 품종 등록 문서에는 출생 기록, 부모, 소유자, 사육농장 등의 정보가 기록돼 있다.
박상표 '국민건강을 위한 수의사연대' 편집국장은 "소의 치열(dentition)은 품종, 지역적 위치, 유전적 특성, 먹이 등에 따라 개체 차이가 심하기 때문에 이것만으로는 소의 나이를 확정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광우병 비상이 걸린 일본에서 모든 소를 대상으로 광우병 검사를 한 것도 치열 감별만으로 나이 확인이 어려웠기 때문이다.
미국산 광우병 쇠고기는 '받아들일 수 있는 위험'?
그렇다면 과연 농림부와 농림부를 지원하는 전문가들이 포진한 가축방역협의회는 '미국산 쇠고기가 안전하다'고 여기는 것일까? 지난 4월 28일 오후 국회 의원회관 대회의실에는 가축방역협의회에 참여하는 의사, 수의사가 자신의 '전문가다운 견해'를 거침 없이 내놓았다. 당시 그들의 얘기를 가감 없이 옮겨 본다.
김용선 한림대 의과대학 교수는 "광우병에 걸린 쇠고기를 먹어도 인간 광우병에 걸리는 사람이 있고 안 걸리는 사람이 있다"며 자신의 '특별한 경험'을 털어놓았다. "내가 1985년에 연구원일 때 광우병이 들어있는 주사 바늘에 실수로 찔렸는데 아직까지 살아 있다. 그 때 담당 교수가 자기도 찔렸는데 멀쩡하다고 그랬다. 실험실에서는 인위적으로 조작한 것을 연구하기 때문에 효과가 더 크게 나타날 수도 있는데 이렇게 안전하지 않았나."
역시 가축방역협의회에 있는 안수환 경북대 수의과대학 교수도 거들었다. 그는 "'acceptable risk'라는 게 있다"며 "위험 가능성이 있는 쇠고기가 들어오면 안 되지만 받아들일 수 있는 위험이라는 게 있다"고 지적했다. 미국산 쇠고기의 위험성을 사실상 인정한 안 교수의 발언은 여러 모로 시사적이다. 지금 농림부와 농림부 자문 전문가의 인식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영국인은 누구나 '존 검머'를 기억한다
미국산 쇠고기가 수입되자마자 박홍수 농림부 장관, 이명수 농림부 차관, 김용선 교수, 안수환 교수 등은 미국산 쇠고기로 불고기 시식을 해 안전을 증명해야 할 것이다. 가능하면 가족들도 모두 대동한다면 더욱 국민들은 안심할 수 있을 것이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 재개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의 사전 협상의 일환으로 진행된다는 것을 염두에 둔다면 노무현 대통령에게도 권하면 더욱 금상첨화다.
이렇게 말을 꺼내놓고 나니 10여 년 전의 한 장면이 떠오른다. 1990년 영국의 당시 존 검머 농무부 장관은 '영국 쇠고기가 안전하다'며 자기 딸을 데리고 두꺼운 다진 쇠고기가 든 빵을 전 국민 앞에서 먹었다. 5년 뒤인 1995년 영국은 인간 광우병(변종 크로이츠펠트 야콥병, vCJD) 증상으로 19살 청년이 최초로 사망하는 일을 겪었고, 현재까지 인간 광우병에 걸린 이들 중 90% 이상이 영국인이라는 오명을 써야 했다.
인간 광우병 공포에 시달리는 영국인들은 누구나 존 검머 장관을 기억한다. 검머 장관과 그의 딸이 인간 광우병에 걸렸다는 소식이 없다는 점이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검머 장관의 딸은 아버지의 요청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쇠고기를 먹는 것을 거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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