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30일 공개한 '비전 2030-함께 가는 희망한국' 프로젝트에 대한 비판이 각계각층에서 쏟아지고 있다. 비판의 내용은 각각 다르지만 그 핵심은 한결같이 비전 2030은 '장밋빛 허구'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비전 2030 프로젝트는 2030년 대한민국 사회의 비전을 '성장과 복지가 조화를 이루는 동반성장의 사회'로 설정하고 이 비전을 시기별, 계층별, 연령별, 항목별로 나눠 수치화한 후 그 실현방안을 담은 국가 미래전략이다.
'한국의 미래는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가'에 대한 정부 나름의 고민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정부가 '비전 2030'이라는 국가의 미래에 대한 장기전략을 내놓았다는 사실 자체에 대해서는 후한 점수를 주고 있다.
1990년대에 문민정부의 등장과 IMF 외환위기를 거치는 과정에서 '국가 주도의 개발독재'가 사라졌지만, 이를 대신할 국가적 미래 비전은 제시되지 못하는 가운데 '갈수록 더 높은 수준의 개방'만이 국가정책을 지배했다. 이같은 비전 부재의 부작용은 고용 없는 성장과 경제 양극화의 심화로 나타났고, 그에 따른 피해는 국민들이 고스란히 떠안아야 했다.
정부는 "비전 2030을 추진하지 않을 경우 2030년 우리 사회는 교육 양극화로 인해 빈곤이 대물림되고, 연금 고갈로 인한 소득 걱정 등으로 고단한 노후생활이 예상되며, 과도한 육아 부담과 높은 사교육비 등으로 출산기피 현상이 지속돼 경제의 활력이 떨어질 뿐 아니라 일자리가 감소하고 고용의 질도 저하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비전 2030을 추진하지 않을 경우'라는 표현에는 어폐가 있지만 정부의 이같은 미래 전망에 이의를 달 사람은 별로 없어 보인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가 대한민국 사회와 경제를 아우르는 총체적인 국가 비전을 제시했다는 점은 늦었지만 분명 환영할 만한 일이라는 것이 많은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이는 비전의 실현 여부와 상관없이 '대한민국의 미래사회는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가', '선진국의 개념은 무엇인가', '그런 선진국이 되기 위해 우리는 어떤 노력을 해야 하는가' 등 우리 사회가 답해야 할 가장 시급한 질문에 대해 정부가 나름의 목소리를 낸 것에 의의를 두는 평가다.
'권력은 이미 시장에 넘어갔다'며 스스로의 역할을 폄하했던 노무현 정부가 '미래를 대비하는 것은 정부의 책임', '작지만 할 일은 하는 정부' 등과 같이 국가의 역할을 다시 강조하고 나선 것도 의미 있는 일이다. 국민경제의 관념이 갈수록 희박해지고 있는 현실에서 '개방경제 시대에 정부의 역할은 무엇이어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우리 사회에 던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사실 비전 2030과 같은 10~30년 단위의 장기적인 국가경영전략은 미국, 일본, 독일 등 대부분의 선진국은 물론이고 중국, 대만, 말레이시아 등 많은 개발도상국들도 하나씩 가지고 있다. 정부가 네덜란드의 '국가실행계획'을 모델로 해 만들었다는 비전 2030은 복지와 성장의 선순환, 모든 계층을 아우르는 성장, 작지만 효율적인 정부 등 여러 가지 면에서 미국의 해밀턴 프로젝트를 연상시킨다.
실현 불가능한 장밋빛 미래?
하지만 정부가 장기 국가경영전략을 내놓았다는 점 외에는 비전 2030에 대한 긍정적인 목소리를 찾기 힘들다. 오히려 정부가 2007년 대선을 앞두고 또 한 번 '장밋빛 미래'에 지나지 않는 시나리오를 떠들썩하게 내놓았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비전 2030에 대해 제기되는 비판의 주요 내용은 세 가지다. 하나는 '성장과 복지가 조화를 이룬 사회'라는 정부의 비전 자체가 그저 좋은 것 두 개를 이어붙인 절충일 뿐이라는 것이다. 또 하나는 이 비전을 실현하기 위해 정부가 제시한 방안들, 특히 재원조달 방법이 옳지 않다는 것이다. 아울러 정책지속성에 대한 의문, 즉 현 정권에서 세운 국가미래 장기전략이 다음 정권에서도 계속 유지되겠느냐는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도 있다.
이 가운데 '성장과 복지의 조화'를 정부가 강조한 부분에 대해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이들은 한국경제를 바라보는 정부의 시각이 문제점을 지니고 있다고 본다. 이들의 입장에서는 정부가 비전 2030에서 제시한 '성장과 분배의 조화'가 아니라 '先성장 後분배'가 향후 10~30년 간 한국경제가 지향해야 할 비전이다. 이들의 입장은 한국경제가 아직 양적으로 더 성장할 필요가 있는데 정부의 부적절한 경제정책과 대외경제여건의 도전으로 말미암아 소비와 투자가 부진한 '경제 조로화' 현상에 빠졌다고 주장하는 많은 기업인 및 경제학자들의 입장과 다른 것이다.
하지만 비전 2030을 놓고 더 큰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는 쟁점은 바로 '재원조달 방법'이다. 정부는 2010년까지는 세출구조의 조정, 비과세·감면의 축소, 세정의 합리화 등과 같은 제도개혁을 통해 추가적인 증세를 하지 않겠다고 강조하고 있지만 사회복지의 확대는 증세와 직결된다는 것이 세간의 인식이다. 여당인 열린우리당이 정부가 야심차게 내놓은 이 프로젝트에 반감을 내비친 것도 2007년 대선을 앞둔 상태에서 '증세의 가능성이 있는 정책'을 내놓으면 선거에 불리하다는 판단에서다.
이른바 '공급주의 경제학'을 신봉하는 사람들은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출자총액제한제도, 금융산업의 구조개선에 관한 법률 등과 같은 정부 규제를 폐지하는 것이 가장 시급하다면서 기업규제가 폐지돼 기업들이 더 많은 이윤을 내면 자연히 세수가 늘어나 사회복지의 확대를 위한 재원을 마련할 수 있다고 주장하기까지 한다.
한편 일각에서는 노무현 정부가 세운 장기전략이 다음 정부에서 계속되리라는 보장이 없다는 점을 지적하며 이 전략의 실효성과 지속성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여당인 열린우리당에서 마저 고개를 갸우뚱하고 있는 장기전략을 향후 25년 간 지속적으로 이끌어갈 세력이 없다는 것이 가장 근본적인 문제라는 지적이다.
장밋빛 허구의 핵심은 '좌파 신자유주의'
하지만 비전 2030이 지닌 '장밋빛 허구'의 핵심은 정부가 다시금 '좌파'와 '신자유주의'의 모순적인 결합을 시도하려고 애쓴 흔적들에 있다.
노무현 정부가 표방하고 있는 '좌파 신자유주의'는 160여 쪽에 이르는 '비전 2030-함께 가는 희망한국' 보고서의 여기저기에서 엿보인다. 특히 정부가 2대 실천방안으로 강조하고 있는 '선제적 복지투자'와 '제도혁신'부터가 그렇다. 동반성장을 위한 '선제적 투자'가 좌파적인 정책방향이라고 본다면, 이런 선제적 투자의 필요조건으로 제시된 제도혁신은 신자유주의적인 것으로 볼 수 있다.
정부는 '선제적 투자' 방안에서는 사회서비스 일자리의 창출, 연구개발(R&D) 투자의 확대, 적극적 고용전략, 지방자치단체의 교육· 복지 투자 확대, 보육서비스의 확대, 식품안전 보장의 강화, 국방개혁, 통일 인프라의 구축 등을 내세움으로써 우리 사회가 당면한 문제들을 주도적으로 해결하려는 태도를 보였다. 하지만 이를 시행하기 위한 전제조건인 '제도혁신' 방안에서는 자유무역협정(FTA)의 체결, 경제자유구역의 활성화, 혁신도시의 건설 등 우리 사회의 문제들을 심화시킬 것으로 그동안 비판받아 온 '신자유주의적' 정책들을 그대로 제시하고 있다.
정부의 모순적인 입장은 비전 2030을 실현하는 데 소요되는 비용을 어떻게 조달할 것인지와 관련된 정부 측 계획에서도 드러난다. 정부는 2010년까지는 세금을 늘리지 않겠다고 강조하며 증세가 가져올 정치적인 부담을 다음 정권으로 떠넘기는 듯한 인상을 주고 있다. 나아가 한편에서는 '할 일은 하는 정부가 되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가 다른 한편에서는 슬그머니 가능한 한 사회복지에서의 '민간의 역할'을 확대하겠다고 강조하고 있다.
건강보험 보장률을 2005년 65%에서 2030년 85%로, 친환경인증 농산물 생산 비율을 4%에서 30%로, 주택 중 공공임대주택 비율을 5.1%에서 15%로, 정규직 대비 비정규직 임금수준을 63%에서 85%로, 초등학교 학급당 학생수 32명에서 23명로, 육아서비스 수혜율을 47%에서 74%로, 장애인 편의시설 설치율을 72.7%에서 100%로, 농어촌 상수도 보급률을 40%에서 80%로 개선하겠다고 정부는 비전 2030에서 밝혔다. 우리 사회가 그렇게 변화하는 것을 마다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미래사회를 실현하기 위한 정책의 방법들이 충분히 구체적이거나 설득력을 지닌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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