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이 지난해 5월께 우리나라 정부에 한중 간 자유무역협정(FTA) 체결을 제안하며 농산물 시장에서의 양보라는 파격적 조건까지 내놓았으나 정부는 우리에게 불리한 스크린쿼터 축소 등 '4대 선결조건'을 수용하면서까지 미국과의 협정 체결을 강행한 것으로 밝혀졌다고 <한겨레>가 10일 보도했다.
<한겨레>가 이날 단독 입수했다면서 공개한 2005년 9월 12일치 '제5차 대외경제위원회 안건' 자료의 내용을 보면, 중국은 지난해 5월 이후 "양국 간 경제통상 협력을 획기적으로 증대시키기 위해서는 자유무역협정이 필요한데, 한국 쪽 입장이 불분명하므로 조기에 분명한 입장표명을 기대한다"고 알려왔다. 대외경제위는 관계부처 장관 등이 참석해 자유무역협정 등 대외 경제전략을 논의·점검하는 회의체로, 대통령이나 경제부총리가 직접 주재한다.
이샤오준 중국 상무부 차관보는 같은 해 8월 "쌀 등 우리 쪽 민감품목에 대해서는 예외인정 등 유연한 처리가 가능하다"며 한중 협정의 최대 걸림돌인 농산물 문제에서 큰 폭으로 양보할 뜻까지 전달했다.
정부는 2004년 말까지만 해도 한중 협정이 한일, 한미 협정이 비해 경제적 득이 더 크다고 보고 협정추진 순위에서 중국을 1위로 두고 있었으나 농산물 문제 등으로 인해 중국과의 협상을 미루고 있는 상태였다.
정부에서는 중국의 제안에 대한 미국의 의중을 알아보기 위해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이 지난해 7월 25일 직접 미국을 방문했는데, 이때 미국 측으로부터 강한 우려가 제기됐다고 대경위 안건 자료는 밝히고 있다.
마커스 놀런드 국제경제연구소(IIE) 연구위원은 "미국에 앞서 중국과 자유무역협정을 추진할 때, 워싱턴에서는 충격으로 받아들일 것이며 엄청난 실수(enormous mistake)가 될 것"이라고 강경하게 말했다. 또 1994년 제네바 회담의 미국 쪽 수석대표였던 로버트 갈루치 조지타운대 외교대학원장은 "미국 조야에서 불만의 소리(some unhappiness)가 들릴 것"이라는 우려를 전했다.
5차 대경위 안건자료에 따르면, 정부는 중국의 제안과 미국의 강한 우려를 감안해 "한중 협상을 조기에 추진하는 1안과 '국내외 정치적 민감성 등을 고려해 한미 협상 출범 뒤 한중 협정 추진'이라는 2안 등 두 가지 안을 상정해 논의했다.
노무현 대통령이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아펙) 정상회의 직전인 지난해 11월 17일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과 경주에서 단독 정상회담을 벌여 한미 자유무역협정 협상 개시에 합의한 것으로 알려진 것을 감안하면, 바로 이 5차 대경위에서 정부는 한중 협정 대신 한미 협정을 추진한다는 선택을 한 것으로 추정된다. 정부가 공식적으로 한미 협정 협상개시를 선언한 것은 올해 2월이다.
이와 관련해 심상정 민주노동당 의원은 "동아시아 주도권 경쟁 과정에서 중국이 한국에 적극적으로 접근하자 미국 쪽이 이를 막고 나선 것으로 보인다"며 "미국 쪽의 협박에 가까운 반대도 문제지만 정부가 한중 협정 카드를 제대로 활용하지도 못하고 4대 선결조건까지 수용하면서 한미 협상을 시작한 것은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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