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우리당이 당정협의를 통해 출자총액제한제도(출총제) 폐지를 촉구하고 대체 규제의 시행시기를 앞당길 것을 요구하고 나서자 시민단체들이 잇따라 성명을 내고 반발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은 7일 "열린우리당은 재벌비호당으로 전락하려는가"라면서 당정의 연이은 '출총제 폐지' 주장을 규탄하는 성명을 내놓았다.
"출총제 폐지 기정사실화는 반국민적 행태"
경실련은 "정부여당이 재벌개혁을 위한 지속적 노력을 포기하고 선진국의 소비자와 투자자를 위한 '사후적 규제수단'인 일반적 집단소송제와 불법행위에 대한 처벌제도인 징벌적 손해배상제 등은 도입하지 않으면서, 제대로 된 평가와 대책도 없이 출총제 폐지만을 기정사실화하려는 태도는 반국민적인 행태이며, 이는 즉각 중단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참여연대도 전날 성명을 내고 "재벌 총수일가의 과도한 지배력 집중 및 남용을 견제할 그 어떠한 정책적 대안도 마련되지 않은 상태에서 출총제 때문에 일자리 창출을 위한 투자를 못한다는 재계의 기만적 주장을 그대로 되풀이하는 여당은 지방선거 참패를 계기로 재벌의 나팔수로 나서기로 한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고 맹성토했다.
시민단체들은 특히 최근 당과 정부의 고위 인사들이 출총제 폐지를 기정사실화하는 발언을 쏟아내는 데 격앙된 반응을 보이고 있다.
강봉균 정책위의장은 지난 5일 하반기 경제운용방향을 논의하는 당정협의에서 출총제에 대해 "연내 법 개정을 끝내고 내년부터 시행하도록 해야 한다"면서"출총제 폐지를 이유로 더 많은 규제를 만들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강 의장은 출총제 폐지의 대안으로 지주회사를 거론하기도 했다.
7일에는 박병원 재정경제부 제1차관이 "출총제처럼 대기업의 투자에 대한 걸림돌이 될 수 있는 제도는 하루빨리 개선을 하는 주문도 있었다"면서 "출총제 폐지가 정부의 공식 입장"이라고 거들고 나섰다.
"열린우리당, 각계 참여한 TF 구성 무색하게 만들어"
이에 대해 경실련은 "강 의장의 발언은 출총제와 재벌개혁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각계가 참여한 시장개혁 선진화 태스크포스(TF)의 공정하고 자유로운 토의를 제한한다는 점에서 매우 부적절한 행위"라고 지적했다. 공정위가 주관하는 TF팀은 6일에 첫 회의를 가졌으나 출총제의 구체적 대안 마련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공정위는 출총제가 지닌 여러가지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뽀족한 대안이 나오지 않는다면 폐지는 어렵다는 입장이다.
게다가 출총제 대안 마련이 연내에는 어렵다던 공정위가 정치권의 압력에 못이겨 대안 마련 시한을 10월로 앞당겼으나, 공정위 내부에서조차 기한 내에 대안 마련이 쉽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이 때문에 경실련은 "그간의 정책성과에 대한 냉정하고도 정확한 평가 및 논의를 통해 반복되는 재벌폐해에 대한 대안을 만들어 가야 함에도 불구 '정치논리'를 앞세워 TF팀이 본격적으로 가동되기도 전 공정위에 출총제 폐지와 기업규제 완화에 대한 압력을 행사하는 것은 지탄받아 마땅하다"고 주장했다.
나아가 경실련은 "가공자본에 의한 총수일가의 경영권 지배의 폐해를 방지할 대책도 없는 출총제 폐지 발언은 재벌의 이익만을 대변하는 것에 다름아니다"면서 "경제력 집중과 가공자본을 통한 계열사 지배 등 재벌의 폐해가 시정되지 않는 한 출총제는 유지되어야 하며, 각종 예외규정은 축소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참여연대도 "이미 공정위 산하에 '시장경제 선진화 TF'가 꾸려져 출총제 폐지 여부와 폐지될 경우의 대안에 대한 논의가 예정되어 있는 상황에서 여당이 섣불리 출총제 폐지를 언급하는 것은 TF의 구성을 무색하게 만드는 일"이라면서 "TF에서 도출된 방안이 결국 당정협의를 거쳐야 한다는 점에서 논의의 폭을 제약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지주회사 규제완화는 위험한 발상"
강 의장이 출총제 폐지의 대안으로 제시한 지주회사 방안에 대해서도 경실련은 "현 단계에서는 지주회사에 대한 규제를 통해 순기능을 활용하고 역기능을 방지하는 것이 최선책"이라면서 "반대로 지주회사에 대한 규제완화는 매우 위험한 발상"이라고 지적했다.
경실련은 "만약 지주회사 규제가 완화되면 한국의 재벌은 2차 세계대전 이전의 일본재벌인 혼샤(本社)처럼 흘러가 사실상 재벌체제를 강화하는 부작용만을 초래할 가능성이 농후하다"고 경고했다.
참여연대도 "지주회사 제도는 계열사간 출자구조를 단순화함으로써 지배구조의 투명성과 사업구조조정의 유연성을 제고하기 위해 도입한 것"이라면서 "현행 공정거래법상의 지주회사 요건은 이러한 제도 도입의 취지를 달성하기에는 너무나 허술하며, 따라서 그 요건을 강화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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