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선 이 장비로 혈액검사 못해…기기 결함으로 '리콜'도
<프레시안>이 미국 식품의약품안전청(FDA)에 확인한 결과, 적십자사가 연간 수백억 원의 지출을 감수하면서 도입하려고 하는 미국 소재 다국적 기업 A사의 '검사 자동화 시스템'은 FDA로부터 검사 시약에 대한 승인을 받지 못해 원산지인 미국 현지에서는 사용조차 되지 않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A사는 이 때문에 본국인 미국에서는 이 시스템의 판로를 개척하지 못한 채 수출에만 의존하고 있다. 검사 시약의 수출은 전량 독일을 경유하고 있다. 해당 장비에 대한 유럽연합(EU) 인증 CE(Conformite European)를 받는 데는 성공했기 때문이다.
A사의 장비는 또 일부 수입국으로부터 품질에 대한 불만이 끊이지 않아 FDA로부터 기기 결함으로 리콜(recall) 조치를 받은 적도 있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FDA는 2003년 11월 21일 A사 장비의 일부 부품에 대한 교체를 명령하면서 "A사 장비를 수입해 혈액검사에 사용하는 국가로부터 빈번한 항의가 접수돼 조사한 결과 최초로 '양성' 결과가 나왔으나 재검사를 하면 '음성' 결과로 바뀌는 경우 등의 문제가 있었다"며 "원인 조사 결과 기기의 결함 때문인 것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1년 검토하고서 '리콜' 사실도 몰라…정식평가 때는 A사만 '특혜'
적십자사는 이런 중요한 사실을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적십자사는 최근인 6월 초에야 A사와 경쟁했던 타사의 질의를 받고서야 이런 사실을 인지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그러나 이때는 이미 4월 17일 "A사의 장비가 가장 우수하다"는 결론을 내리고 사실상 A사의 장비를 '검사 자동화 시스템'으로 도입하기로 잠정 확정한 뒤였다. 2005년 3월부터 2006년 2월까지 1년간에 걸쳐 '검사 자동화 시스템'에 대한 검증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FDA로부터 리콜을 받은 사실'조차 알지 못했던 것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적십자사는 2005년 6월 1일 정식으로 '검사 자동화 시스템' 도입 공고를 낸 후 A사 외에도 2개 업체가 참여해오자 10월 17일부터 약 한 달에 걸쳐 3개 업체 장비에 대한 평가를 실시했다. 그런데 정작 이 공식 평가에서 A사의 경우에는 B형 간염검사 평가를 면제해 타 업체들의 반발을 사기도 했다.
이미 2004년 11월부터 1만8000명의 헌혈 혈액으로 임상시험을 한 적이 있으니 A사 장비의 B형 간염 검사의 경우에는 과거 임상시험 결과를 그대로 평가에 반영하겠다는 것이었다. 검체의 양, 검사 조건 등 모든 것이 다르다는 타 업체들의 반발을 무시했다. "A사 장비가 B형 간염 검사에 우수하다"는 적십자사의 검토 결과는 이런 이해할 수 없는 과정을 거쳐 나온 것이었다.
새로운 장비로는 말라리아 검사도 못해
또 다른 문제도 있다. A사의 장비로는 말라리아 검사도 하지 못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법정 전염병으로 규정된 말라리아는 치료 후에도 3년간 헌혈이 금지돼 있는 등 각별한 관리가 요구되는데도 적십자사는 이에 대한 대비를 하지 않은 것이다.
1998~2001년 4명(이 중 3건은 만 1세 이하의 유아)이 수혈 때문에 말라리아에 감염된 사례가 있다. 또 적십자가 2000년 9월부터 헌혈 혈액에 대한 말라리아 검사를 실시하는데도 2003~2005년 6월 기간 중에 감염자 38명의 혈액이 22명의 환자에게 수혈되는 등 현행 검사 체계 내에서도 허점이 한두 가지가 아닌 상황이다.
이 때문에 적십자사도 2000년 9월부터 헌혈 혈액에 대한 말라리아 검사를 실시해 오고 있다. 국내에서 유행하는 '삼일열 말라리아'의 위험성이 후천성면역결핍증(AIDS), B형·C형 간염과 비교했을 때 크지 않다고 하더라도 수혈로 인한 말라리아 감염을 막는 것은 혈액 안전관리에 대한 법적 책임을 지고 있는 적십자사로서는 당연한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적십자사는 A사 장비의 도입을 검토할 때는 이런 점에 대한 논의를 생략했다. A사는 지금까지 말라리아 검사 시약을 개발한 적도 없을 뿐만 아니라, 앞으로도 말라리아 검사 시약을 개발할 계획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선정위원 80%를 내부 인사로…복지부 '퇴짜' 맞고 위부 인사 위촉
A사의 장비 도입과 관련해서는 보건복지부조차 의구심을 제기한다. 복지부 혈액장기팀 관계자는 "지난 2월 '검사 자동화 시스템'을 선정하기 위한 위원회 명단을 적십자사가 보고해 왔다"며 "그런데 명단의 80%가 적십자사 내부 인사로 채워져 있어서 '이런 식이면 곤란하다'며 외부 인사를 적절히 넣을 것을 권고한 적이 있다"고 토로했다.
이와 관련해 적십자사는 지난 23일 <프레시안>의 보도에 대한 '앞뒤 안 맞는' 해명 자료에서 "적십자사는 공정성을 기하기 위해 2006년 2월 복지부의 지시 하에 외부 인사가 포함된 위원회를 구성했다"고 밝혔다. 애초에 내부 인사로만 채워진 위원회를 꾸렸다고 복지부로부터 '퇴짜'를 맞은 대목은 쏙 빼놓은 것이다.
더구나 이 위원회조차 제대로 운영됐는지 의심스러운 상황이다. 위원으로 참석한 한 관계자는 "1년간에 걸친 검증 과정에서 A사의 장비가 우수하다는 적십자사 내부 결론이 내려진 마당에 2개월도 채 안 되는 위원회에서 어떻게 제대로 된 검증이 이뤄질 수 있었겠느냐"며 "<프레시안> 기사를 보고서야 '어이쿠…' 했다"고 당시의 상황을 설명했다.
적십자사 "헌혈자 허락 없이 무단으로 혈액 사용한 것 인정"
한편 적십자사는 <프레시안>이 22일 보도한 내용에 대해서 핵심 사실을 모두 인정했다. 적십자사는 "A사가 검사 자동화 시스템의 임상시험을 2004년 8월 제안해 와 (3개월에 걸쳐 1만8000여 명의 시민의 헌혈 혈액을 대상으로) 평가를 실시했다"며 "이 과정에서 헌혈자들에게 동의를 구하지 않은 것도 사실"이라고 기사 내용을 인정했다.
하지만 적십자사는 변명도 잊지 않았다. 적십자사는 "새로운 장비나 시약이 나오면 병원, 연구소에서 사용 가능성 및 성능 평가를 의뢰하는 것은 일상적인 절차"라며 "평가에 사용된 양도 샘플당 5㎖ 미만이기 때문에 문제될 게 없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현행 혈액관리법 어떤 조항에서도 적십자사가 헌혈자의 혈액을 임의로 사용할 수 있다고 규정한 조항은 없다. 더구나 장비 도입을 위한 공정한 경쟁 과정이 아니라 특정 다국적기업 장비의 성능 시험을 위해 헌혈자의 혈액을 무단 사용한 것은 더욱 큰 문제다. 이와 관련해 적십자사는 현재까지 시민들에게 '사과' 한 마디 없다.
거짓말 또 거짓말… 적십자사가 <프레시안> 보도에 대한 대응으로 6월 23일 낸 해명자료는 앞뒤가 안 맞는 내용으로 가득하다. 진실은 이렇다. 해명 1 : "적십자사는 2005년도 하반기부터 (장비 등의) 평가에 헌혈 혈액을 사용할 때 헌혈자의 동의를 구하고 있다." 확인 결과 이 동의는 '구두'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실제로 '구두'로 동의를 받는 절차가 이뤄지고 있는지 '확인'할 방법은 없다. 또 설사 '구두'로 동의를 받는다 하더라도 현행 혈액관리법상으로는 적십자사가 수혈이나 혈액제제 제조 목적 외에 헌혈자의 혈액을 검사장비 성능시험과 같은 데 사용할 근거가 없다. 해명 2 : "B형 간염에 대한 핵산증폭검사(NAT)를 도입하는 데는 시약 비용이 한 건당 약 9000원이나 들어서 현재 구체적인 도입 계획이 없다." 이 해명은 거짓말이다. 관련업계에 확인한 결과 AIDS, B형 간염, C형 간염 모두 NAT를 할 때 드는 검사 시약의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비용은 2006년 6월 현재 약 12달러(1만2000원). 세 가지에 대한 검사 시약 비용이 1만2000원인데 어떻게 B형 간염 시약 비용이 9000원이라고 우길 수 있는지 이해할 수 없다. 더구나 국내에 도입할 경우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가격보다 통상 더 싸게 들여온다. 적십자사는 이미 2003년 국제적으로 10~12달러에 통용되는 C형 간염, AIDS NAT 검사 시약을 5달러 수준에 계약해 도입하고 있다. 왜 B형 간염에 대한 NAT 검사에는 이런 논리가 적용되지 않는지 궁금하다. 더구나 일본의 한 연구는, NAT로 B형 간염에 대한 검사를 해서 '양성' 판정을 받은 181건에 대해 A사의 장비와 동일한 검사법에서 76건(42%)을 '음성'으로 판정한 사실을 보고한 바 있다. 국내의 많은 수혈학자들이 B형 간염에 대한 NAT 도입을 주장하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해명 3 : "A사의 장비만을 (독점적으로) 사용해도 시약 공급 문제로 혼란을 겪을 우려는 없다." 지난 4월 적십자사는 최저가 낙찰 방식으로 NAT 장비를 도입한다고 해놓고서 2개 업체와 7:3의 비율로 계약한 데 대해서 다음과 같이 해명했었다. 왜 이번에는 말이 달라졌는지 해명해야 할 것이다. "(1개 업체와만 계약할 경우) 독과점에 의한 피해, 즉 추가 장비 구입 및 시약 단가 재조정시 업체의 요구에 일방적으로 끌려 다닐 수밖에 없을 것이며 이로 인해 국민들의 부담은 더욱 가중됐을 것입니다. 실제로 유럽에서는 업체의 무리한 시약 가격 인상 요구 등으로 혈액 사업 기관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적십자사는 이 해명 자료를 "대한적십자사는 비영리 봉사기관으로 혈액사업을 통해 어떠한 이득이나 수익도 취할 수 없는 기관입니다"라는 말로 끝맺고 있다. 이 말을 정말 믿고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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