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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십자사 '무허가' AIDSㆍ간염 검사장비 도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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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적십자사 '무허가' AIDSㆍ간염 검사장비 도입

검사 정확성도 의문시…성능 좋은 경쟁사 제품 '뒷전'

대한적십자사가 지난 1년간 정확성이 의문시 되는 검사 장비로 헌혈 혈액에 대한 AIDS, C형간염 바이러스 검사를 실시해 온 사실이 뒤늦게 확인돼 충격을 주고 있다. 이 검사 장비는 식품의약품안전청은 물론 미국, 유럽 어디서도 의료용구 허가를 받지 못 한 제품이었다.

***운영비만 200억 원 들어가는 사업…검사 정확성에 의문 제기**

이 같은 사실은 21일 〈프레시안〉이 한나라당 고경화 의원실을 통해 입수한 2003년도 적십자사의 핵산증폭검사(NAT) 장비도입 관련 자료를 검토한 결과 확인됐다. 적십자사는 기존 효소면역검사(EIA)로 잠복기의 AIDS, B형·C형간염 바이러스를 검출하지 못해 혈액 사고가 빈번하게 발생하자 2003년 10월 연간 운영비만 200억 원 가까이 들어가는 새로운 NAT 장비의 도입을 결정했었다.

문제는 이렇게 혈액 안전성에서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는 NAT 장비가 정확성이 보장되지 않은 장비라는 사실이 확인된 것이다. 적십자사는 이런 사실을 2003년 도입 당시에 이미 알고 있으면서도 전격 도입을 결정하는 무모함을 보였다. 그 당시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NAT 장비 도입을 위해 2003년 9~10월 사이에 적십자사 내·외부 인사로 구성되어 수 차례 소집된 'NAT 사업 심의위원회'의 회의록을 통해 살펴보자.

검사 장비 구입, 건물 임차 등 초기 검사 시설을 갖추는 데만 총 38억 원이 드는 이 사업을 위해 적십자사는 2003년 9월 당시 다국적 기업 C사와 R사의 NAT 장비 중에서 어떤 것을 선택할지를 고심했다. 검사 장비 가격만을 놓고 보면 C사의 것은 한 세트 당 3억6000만 원, R사의 장비는 4억2000만 원이었다. R사가 약 6000만 원 정도 비쌌던 것이다.

하지만 결국 적십자사는 전국 3곳(서울 2곳, 부산 1곳)의 검사센터 중 2곳에 좀 더 비싼 R사의 장비를, 나머지 1곳에 C사의 장비를 각각 도입하기로 최종 결정했다. 전체 270만 건이 되는 검체의 70% 수준인 189만 건의 검사를 R사의 장비에 의존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하지만 R사의 장비는 이미 심사위원회 내부에서 여러 가지 문제가 지적됐었다.

우선 R사의 장비는 2003년 10월 도입 결정 당시만 하더라도 애당초 업체 선정 참가 자격이 없었다. 2003년 9월 19일 1차 심의위원회에 고지된, 적십자사가 자체적으로 정한 업체 선정 참가 자격에는 "외국에서 제조된 경우 미국 식품의약품안전청(FDA)이나 유럽연합(EU) 인증 CE(Conformite European)를 획득한 제품"이라고 명시돼 있다. 하지만 당시 적십자사가 선정해 2곳에 도입된 R사의 장비는 어디서도 인증을 받지 못했다.

***정확도, 속도, 인건비 모든 면에서 우월한 장비가 경쟁에서 밀려**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다. 이렇게 납품된 R사의 장비는 검사의 정확성도 보장할 수 없다는 것이다. 2003년 10월 13일 2차 심의위원회 회의록을 보면 C사와 R사의 장비의 성능을 비교 시험한 결과가 첨부돼 있다.

당시 적십자사는 두 장비의 성능을 비교하기 위해 AIDS, C형간염 바이러스 등이 포함된 87개의 검체를 가지고 시험 검사를 했다. C사 장비는 총 3건의 AIDS 바이러스를 검출했지만 R사 장비는 2건의 AIDS 바이러스밖에 검출하지 못했다. C사 장비가 AIDS 바이러스 양성으로 판단한 검체를 R사 장비는 음성으로 판단한 것.

이같은 시험 검사 결과는, 도입된 장비가 100만 건 이상의 검체를 처리한다는 점에서 심각한 수준이다. 이런 검사 결과에 대해 당시 심의위원회에 참석했던 김문정 현 적십자사 혈액안전관리팀장도 "시험 검사의 검체 수량이 적은 것을 감안할 경우 무시할 수 없는 자료"라고 지적했다. 불과 87건이라는 적은 수량의 검체에서 1건의 검사 오류가 나타났다면 검체의 수량이 100만 건 이상으로 늘어날 경우 검사 오류는 훨씬 더 커질 수밖에 없다는 것.

김 팀장은 나아가 "민감도(양성을 양성으로 가릴 수 있는 능력) 비교에서도 C사 장비가 더 우수한 것으로 나타났다"며 "외국의 경우 50만 건 이상의 대량 검체를 처리하는 곳은 주로 C사의 제품을 사용하고 있다"고 부연했다. 실제로 양사 장비의 점유율은 각사의 통계마다 다소 차이를 보이지만 엇비슷한 수준이다. 하지만 실제로 속을 들여다보면 R사의 것은 연간 처리 검체 수량이 50만 건 미만인 나라에서 널리 쓰이고 우리나라처럼 100만 건 이상 되는 나라는 대개 C사의 것이 사용되고 있다.

한 가지 더 지적할 것은, 양사 장비의 검사 시간을 비교한 결과 똑같은 검사를 하는 데 있어서 C사 장비는 불과 9시간밖에 안 걸린 반면 R사 장비는 40시간이나 걸렸다는 사실이다. 더구나 적십자사는 C사 장비가 R사 장비보다 인건비가 더 싸다며 C사의 시약 단가를 200원 올려주는 '친절'까지 베풀었다. 검사 시간, 인건비 모두 C사가 훨씬 더 우월했던 것이다.

***동남아 다 하는 B형간염 바이러스 NAT, 우리는 왜 못 하나**

모든 면에서 C사의 장비가 우월한 데도 결국 주계약자는 R사로 선정됐다. 이 잘못된 선택은 두고두고 적십자사의 발목을 잡고 있다.

우선 B형간염 바이러스에 대한 NAT 장비 도입이 늦어지고 있다. C사의 장비는 추가적인 장비만 부착할 경우 B형간염 바이러스에 대해서도 검사가 가능하지만 R사의 장비는 아예 장비 자체를 교체해야 한다. 실제로 말레이시아, 인도, 인도네시아, 싱가포르, 태국 등에서는 이미 B형간염 바이러스에 대한 NAT를 실시하고 있다. 이들 나라는 모두 C사의 NAT 장비에 CE를 획득한 B형간염 바이러스 검사 관련 NAT 장비만을 보완 설치해 검사를 실시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렇게 B형간염 바이러스에 대한 NAT 검사가 늦어지면서 B형간염 혈액사고는 계속 발생하고 있다. 현재까지 알려진 B형간염 바이러스 오염 혈액이 수혈돼 일어난 혈액 사고는 모두 6건이다. 지난해만 해도 기존의 EIA 검사를 통해 2005년 B형간염 바이러스에 오염됐다는 판정을 받고 폐기된 부적격 혈액만 9888건이나 됐다. 잠복기의 B형간염 바이러스에 대해서도 검사가 가능한 NAT가 도입되면 그 숫자는 훨씬 더 늘어날 전망이다.

***식약청도 의료용구로 허가한 적 없어**

이런 지적에 대해 적십자사는 되려 큰소리다. 적십자사는 "R사의 NAT 장비도 C사와 마찬가지로 미국 FDA나 CE 인증을 받았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이는 거짓말이다. C사가 NAT 시스템 전체에 대해서 미국 FDA 인증과 CE를 받은 것과는 달리 R사의 NAT 장비는 시스템을 구성하는 개개의 기기에 대해서만 인증을 받았다. NAT는 크게 세 부분으로 구성돼 있는데 R사는 세 부분 각각에 대해서만 미국 FDA나 CE 인증을 받았지 전체에 대해서는 받지 못했던 것.

그러나 식약청은 전체 시스템에 대한 허가를 요구하고 있다. 식약청은 2005년 10월 16일 R사의 NAT 시스템을 수입해 판매하는 업체의 질의에 답하면서 "NAT 전체 시스템에 대해서 의료용구 수입품목허가를 받아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하지만 적십자사는 이런 사실을 알면서도 결국 일괄 허가를 받지 않은 채 이 장비를 구입한 것이다.

결정적인 사실은 적십자사도 우리나라처럼 검체가 100만 건 이상이 되는 경우에는 C사의 것이 적합하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있는 것이다. 20일 <프레시안>의 질의에 적십자사 관계자는 "C사의 것을 쓰는 게 맞긴 한데, R사 것도 많이 쓰이는 데에다 운영비는 더 싸서…"라며 말을 흐렸다. 하지만 적십자사는 2003년 계약 당시 C사의 인건비가 R사보다 적게 든다며 대신 C사의 시약 단가를 R사의 것보다 개당 200원이나 높게 책정했다. 이런 사정을 염두에 두면 비용을 핑계대는 것도 앞뒤가 맞지 않는다.

적십자사가 구태를 벗으려면 여전히 갈 길이 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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