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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그레이드' 주장은 '산업정책 포기론'일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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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업그레이드' 주장은 '산업정책 포기론'일 뿐

[한미FTA 뜯어보기 32] 美자본에 '국민경제' 넘기려나 (1)

  자유무역협정(FTA) 논의가 난맥상을 보이고 있다. 지난 2월 국내총생산(GDP)을 소숫점 두 자리까지 들먹이며 호기롭게 한미 FTA로 가자고 외쳤던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의 보고서들은 지금 데이터와 계산방식에 있어서, 그리고 심지어 결과 수치에 있어서까지 끝없이 터져나오는 의혹에 휘말리고 말았다. 그러자 외교통상부는 아예 "KIEP 보고서는 신뢰도가 높지 않으며 단지 참고사항일 뿐"이라며 꼬리를 자르고 빠져나갔지만, 한미 FTA를 계속 추진할 정당성의 다른 근거를 딱히 대지도 못하고 있다.
  
  사태가 이 지경에 이르자 청와대 주변의 여러 인사들과 한덕수 부총리가 일제히 "한미 FTA는 결코 졸속으로 추진된 것이 아니라 이미 2003년부터 충분한 연구와 검토를 거쳐 준비된 것"이라고 외치고 나왔다. 그런데 문제는 아직 그 연구와 검토의 구체적 내용이 제시된 바도 없고, 2004년 경에 청와대에 재직했던 한 인사는 아예 그런 일은 없었다고까지 주장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내년 3월 이전에 한미 FTA 협정을 끝내고야 말겠다는 정부의 의지는 조금도 흔들리지 않고 있다.
  
  한편 한미 FTA를 반대하는 이들 중 일부는 그 '대항마'로서 한중 FTA나 한일 FTA 같은 이야기들을 스스럼없이 꺼내고 있다. 한미 FTA는 별로 얻을 것이 없거나 더 큰 피해를 초래할 수도 있고, 이에 비해 아시아 인접 국가와의 FTA가 실제적인 이익을 더 가져다 줄 수 있다는 논리다.
  
  이러한 논의의 와중에서 은연중에 두 가지 정도의 명제가 FTA 찬반 양 진영에 걸쳐 공통의 상식처럼 되고 있다. 첫째, FTA는 반드시 해야 한다. 미국과 하지 않을 양이면 일본이든 중국이든 다른 나라들과는 서둘러 해야 한다. 이를 반대하는 자는 구한말의 '쇄국론자' 혹은 20년 전의 '종속이론가'들과 같은 시대의 퇴물이다.
  
  둘째, FTA 문제를 판단하는 데 있어서의 준거점은 구체적인 경제적 이득이며, 이는 각각의 경우에 따라 비교 가능한 수치로 정확히 측량될 수 있다는 생각이다. 어느덧 FTA는 한국 경제의 미래에 있어서 유일한 선택이자 미래의 번영을 약속해주는 마법의 주문이 되고 있다.
  
  IMF 구제금융 사태의 여파로 '시장의 신화'가 도입된 이래 우리 사회의 경제담론은 심한 혼란을 겪어 온 것이 사실이다. 실증적으로도 이론적으로 입증된 적이 없는 명제들이 무슨 외국의 '석학'이니 하는 이름을 빌어 유일의 과학적 진리인 것처럼 포장이 되고, 그러면 보수 언론이나 시중의 소위 '경제경영서'의 저자들은 이를 받아 안고서 푸닥거리 주문이나 다를 바 없는 주장들을 마구 풀어놓는 일들이 계속됐다.
  
  FTA를 놓고 지금 벌어지고 있는 논의의 난맥상은 이러한 혼란의 한 결과임이 분명하다. 아무런 논리적, 실증적 근거도 대지 않은 채 "미국의 선진 서비스업의 도움을 빌어 우리 경제도 '업그레이드'될 것"이라고 외쳐대는 정부의 태도를 보라. 이러한 혼란을 벗어나기 위해서 경제정책에 대한 판단의 준거점이 무엇인가라는 기본적인 문제를 생각하는 것이 지금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다.
  
  '국민경제'와 '산업정책'
  
  오늘날의 경제담론에서 가장 '구닥다리'가 되어버린 용어는 바로 '국민경제'다. 거시경제학 교과서 첫 장에서 정부, 기업, 가계라는 세 개의 경제주체로 구성되어 자체적 완결성을 갖는 것으로 소개되는 이 '국민경제'는 지구화된 21세기의 세계경제적 조건에서 더 이상 적절한 경제정책의 단위가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이 논리가 1980년대 이전까지의 거시경제 정책이 무력화된 현실을 지적하는 것일 수는 있겠으나, 혹시 이를 근거로 경제정책의 단위로서의 '국민경제'의 개념을 폐기하는 주장으로 쓰인다면 심한 자가당착에 부딪히게 된다. 그렇다면 경제정책의 단위는 지구경제이거나 지역경제가 되는 것인가? 그렇다면 어째서 그러한 경제정책을 '국민국가'가 행해야 하는가? 지구경제의 번영이나 특정 지역 경제의 번영을 위해서 '국민국가'가 국민의 일정한 부분에 희생을 가져올 정책을 시행하는 것이 어떻게 정당화될 수 있는가? 만약 신자유주의적 시장개방의 물결과 자유무역의 흐름이 거스를 수 없는 대세라면 그것을 거드는 정책까지를 어째서 "국민국가"가 해야 한다는 말일까?
  
  여기에서 우리는 이 국민경제라는 개념을 단순히 거시경제 정책의 단위로 이해하는 전통적인 영미식 거시경제학의 사고방식을 넘어서, 그것을 경제정책의 좋고 나쁨을 평가하는 준거를 제시해주는 하나의 규범적 틀로서 이해했던 독일 역사학파 경제학의 '국민경제(Volkswirtschaft)'의 사고방식으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
  
  갓 통일을 달성한 신생국가 독일을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에 걸쳐서 세계에서 가장 부강한 나라로 이끄는 데에 중요한 이론적, 정책적 기반을 제시했던 독일 역사학파 경제학자들은 이 말을 단순히 숫자로 측량되는 물질적 부의 문제로 이해하지 않았다. 그들은 국민경제란 "독일 국민들 모두가 문화국민으로서의 정신적, 물질적 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 조건이 충족되는 장"으로서 이해했고, 그러한 목적을 달성하는 데 도움이 되는가 아닌가라는 기준으로 경제정책을 평가했다.
  
  이러한 관점에 선다면, 지구화라는 현실이 '국민경제'라는 경제정책의 준거틀을 포기할 이유가 될 수 없다. 오히려 그렇게 새로운 환경일수록 더욱 더 우리 '국민'들이 어떻게 하면 '문화국민으로서의 정신적, 물질적 생활'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인가라는 기준은 핵심적 위치를 가지게 된다. FTA를 할 것인가, 그리고 만약 한다면 어떤 나라와 어떤 방식으로 할 것인가 등의 정책적 판단도 그 기준 아래에서 이루어지게 될 것이다.
  
  독일이나 일본 등 20세기에 가장 큰 경제적 성공을 거두었던 나라들의 경험을 볼 적에 이러한 '국민경제'의 규범적 틀이 현실화되었던 가장 중요한 계기가 바로 산업정책이었다. 20세기에 독일이나 일본이 꾀하였던 바는 결코 '폐쇄적인 자급자족 경제'가 아니었다. 오히려 여러 모로 불리한 환경에 있는 후발 산업국의 입장에서 자신들의 한정된 인적, 물적, 사회적 자원을 어떻게 활용해야 가장 성공적으로 변화하는 세계경제의 환경에 적응할 수 있을까를 고민한 결과로 채택된 지극히 공격적인 '세계화' 전략이었다.
  
  나아가 이들의 산업정책은 몇몇 대자본의 수치적 축적을 노리는 외연적인 것도 아니었다. 국내의 농업 부문, 중소기업, 노동자, 영세상인 등의 다양한 경제주체들이 최대한 유기적으로 연결되는 산업구조를 갖추고, 그 결과 경제의 성장이 어느 한 집단만 살찌우는 것이 아니라 가급적 고르게 전체 국민들의 물질적 조건 개선으로 이루어질 수 있도록 국민경제를 조직하는 계획이었다. 20세기의 성공적인 자본주의 국가들은 이러한 '국민경제'의 '산업정책'을 핵심적인 지표로 삼아 조직되었지, 결코 '시장이 해결해 줄 것이다' 따위의 무책임한 원칙에 맡겨둔 적이 없다.
  
  혹자는 이러한 '산업정책'의 경험이 독일이나 일본과 같은 소위 '국가주도형' 자본주의에서나 발견되는 것이며 미국과 같이 국가의 개입 없이 '시장기구'에 맡겨놓고도 더 잘 발전한 경제가 있지 않느냐고 할 수도 있다.
  
  챈들러(Alfred Chandler) 같은 이들이 실증적으로 밝혀 놓았고, 또 이에 근거하여 라조닉(William Lazonick)이 명시적으로 주장한 바 있듯이 20세기의 미국 경제는 시장기구의 변덕에 맡겨진 고전적인 '시장경제' 였기는커녕 국가 대신 대기업을 중심으로 한 여러 산업조직들이 나서서 자원의 배분조정을 이루었던 기업자본주의(corporate capitalism)였다. 미국의 지배층이 독일식의 '국민경제' 개념을 신봉한 것은 아닐지 몰라도 계획적인 '산업정책'이 있어야 개별 자본도 또 전체 경제성장도, 또 그로 인한 금융자본의 축적도 가능하다는 것을 철저히 의식하고 있었던 점에서는 독일이나 일본이나 큰 차이가 없었다.
  
  양극화, 신자유주의, 산업정책
  
  외환위기가 쓸고 간 지 10년이 되어가는 지금 우리가 지금 목전에 보고 있는 바는 일부 수출기업들과 주식시장은 호황을 누리는 반면 서민경제는 침체되고 경제성장은 저조해지는 악순환의 고리다. 양극화는 바로 이러한 방향으로 이루어진 외환위기 이후의 한국경제 구조조정의 산물인 것이다.
  
  이와 같은 현상을 "시장 만능주의를 앞세운 신자유주의의 횡포"라는 말로 비판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 "시장 만능주의"라는 표현을 "산업정책의 소실"이라는 말로 바꾸어서 생각해야 문제점이 좀 더 구체적으로 부각될 것이다. 외환위기 이후 도입된 시장주의적 개혁의 과정에서 방기되도록 명시적, 암묵적으로 압력이 주어졌던 것이 바로 이 산업정책이었다. 즉 어떤 경제주체들이 어떻게 수익모델을 만들고, 어떻게 다른 경제주체들과 조화를 이루게 할 것인가는 국가가 '정책'으로 풀 문제가 아니며, 오로지 '시장'의 작동과 그 채산성의 논리에 의해 저절로 이루어지도록 하는 것이 옳다는 것이 '개혁'의 요체였던 셈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기존의 대한민국 '국민경제'에 내재해 있던 산업적 질서는 근원적으로 재구조화되었지만, 이를 대체할 질서는 아직도 나타나지 않은 혼돈 상태이다.
  
  양극화는 그 속에서 안정된 수입과 생계의 방도를 확립하지 못한 여러 경제주체들, 즉 비정규직 노동자, 영세상인, 중소기업가, 청년실업자 등이 계속 주변화되는 상태를 이른다. 즉 양극화는 '파이'의 크기에서 비롯된 문제가 아니라 이 혼돈상태에서 비롯되는 진통인 것이다. 수출과 주가가 아무리 좋은 실적을 올린다 해도, 또 그리하여 경제성장률 숫자 자체가 아무리 올라갈지라도 국민경제 전체가 균형 잡힌 발전을 할 수 있도록 일관된 산업정책을 시행하지 않는 한 양극화 현상은 계속될 것이다.
  
  그렇다면 이렇게 소실되어버린 산업정책의 현실에 있어서 FTA 는 어떠한 함의를 가질 것인가? 먼저 대한민국이라는 '국민경제' 차원에서 내적 연관을 가진 산업구조를 달성할 산업정책은 포기되는 셈이다. 대외경제연구원의 보고서에서 권고되고 있는 대로 한국 내의 각 경제주제들과 산업부문들 사이에 현재 남아 있는 '생산 사슬(production chain)'은 해소되고, 미국 경제와 통합되는 가운데에 미국의 경제행위자들과의 관계 속에서 '가치 사슬(value chain)'에 따라 산업구조가 재편될 것이다. 또 농업의 예에서 가장 극명하게 드러나듯이, 그 통합 과정에서 기존에 존재하던 산업 전체가 크게 위축되는 등의 변화가 나타날 것이다.
  
  오히려 여기에서 우리는 FTA가 사실상(de facto)의 산업정책 기능을 하게 될 어이없는 가능성을 보고 있다. 한덕수 경제부총리 본인이 그러한 의견을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미국 경제와 같은 선진경제와 FTA를 맺어 "고기술 고부가가치 산업"을 도입함으로서 국내의 산업구조를 '선진화'한다는 것이다. KIEP의 보고서는 좀 더 구체적으로 그 '고기술 고부가가치 산업'의 내용으로 미국의 '선진' 서비스업을 언급하고 있다. 즉 '의료, 금융, 교육, 법률, 회계' 등의 부문에서 미국의 선진 경영기법, 기술 등을 받아들여 산업구조를 업데이트할 수 있다는 것이 그 내용이다.
  
  이러한 주장은 다음과 같은 점에서 납득하기 어려운 점을 갖고 있다. 첫째, 선진 경영기법이나 선진 기술 등이 어떻게 받아들여진다는 것인가? 미국의 양자간 자본투자협정(BIT)이나 FTA 표준협상안은 자국 내에 투자하는 미국 자본에 대해 기술과 지식 이전 등 그 어떠한 "부당한" 조건도 내걸 수 없도록 하는 것을 주요 내용으로 삼고 있다.
  
  둘째, 서비스 분야 이외의 제조업이나 농업 부문에서 양산될 우리 나라의 경제적 '패배자들'을 어떻게 할 것인가? 이러한 분야에서의 충격을 완화시키기 위해 해당 분야의 '패배자들'에게 일정한 도움을 주는 정책이야말로 바로 FTA가 원천적으로 불가능하게 만들고자 하는 것이다. '패배자들'의 양산은 양극화의 심화로 이어진다.
  
  셋째, "서비스 분야에서의 업데이트"라는 주장에 사실상 양극화 심화의 논리가 내포되어 있다. 의료, 교육, 법률, 금융, 회계 등은 한 부총리의 지적대로 미국이 경쟁력을 자랑하는 분야이다. 그렇다면 한국에 현재 존재하는 서비스 산업에서 이들과의 경쟁에서 이길 수 있는 분야는 얼마나 되는가? 그렇다면 그러한 서비스 산업의 구조 조정에서 양산될 '패배자들'은 또 어느 나라 사람들인가?
  
  반면 이러한 주장을 펴는 사람들이 언급하지 않는 것이 있다. 그것은 어쩌면 한미 FTA의 핵심일 수도 있는, 금융 분야의 통합이다. 외환위기 이후 우리 나라의 금융체제는 대폭 개방과 자유화를 겪었지만, 아직까지도 여러 가지 구획(compartment)이 존재하고 또 산업별, 부문별로 소유구조에 대한 규제(특히 외국인 소유에 대한 규제)도 남아 있다. FTA 를 통해 이러한 여러 규제들이 사라지게 되면 미국 자본에 의한 한국 기업 인수 합병(M&A)은 완전히 자유로와질 것이며, 이것이 롭 포트먼(Rob Portman) 미국 무역대표가 미 의회에 보낸 서신에 나오는 "한국 안에서도 미국 자본과 기업에게는 미국 국내법이 적용되도록 할 것"이라는 언급이 의도하는 바이기도 하다.
  
  이것이 FTA 이후의 한국의 산업정책에는 어떤 함의를 가지게 될 것인가? 비록 몇몇 분야에서 경쟁력을 갖추고 성공적으로 새로운 수익모델을 만들어나가는 업체가 있다고 하더라도 이는 미국 자본에 의한 인수합병의 덫을 피해가기 어려울 것이다. 미국 자본의 인수합병 활동이 단순한 단기적 수익성의 차원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시장구조 나아가 산업구조 전체의 재편이라는 장기적인 계획들과 닿아 있고, 그 뒤에는 투자은행 등 대금융의 작동이 연결되어 있는 구조라는 것도 잘 알려져 있는 바이다. 그렇다면 FTA 이후의 한국 경제는 의미 있는 수익을 낳는 주요 부문들이 미국 자본의 계획과 이익에 따라 재편된다고 하는 식의 방향이 현실적인 '산업정책'이 되고 말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이런 식으로 추진되고 있는 FTA는 '사실상의 산업정책'의 역할을 하게 되겠지만, 이것은 우리가 앞에서 말했던 바의 '국민경제(Volkswirtschaft)'의 관점에서 만들어지는 산업정책이라 하기 힘들 것이다. 결국 그것에는 '의사 산업정책(疑似産業政策: pseudo-industrial policy)'이 유일하게 적절하게 사용될 수 있는 용어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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