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미국 양측의 협상대표들의 면면을 살펴보자.
***롭 포트먼 미국 무역대표**
한미 FTA 협상의 미국 측 총책임자는 무역대표부를 맡고 있는 롭 포트먼 대사다. 그는 1955년생으로 미국 아이비리그 소속인 다트머스대학교를 나오고 미시간대학 로스쿨을 1984년에 졸업했다. 그는 변호사 자격을 따고 워싱턴과 고향인 신시내티의 로펌, 백악관에서 변호사로 모두 8년을 근무했다. 신시내티의 로펌에서 파트너로 일하고 있던 1993년에 그는 보궐선거에 공화당 후보로 출마했다. 그는 이 보궐선거에서 승리해 제103대 하원의원에 당선됐고, 2005년에 무역대표로 임명되면서 제109대 하원의원 직을 사임할 때까지 연속 7대에 걸쳐 하원의원에 당선됐다(미국 하원의원의 임기는 2년이다).
아들 부시 행정부의 첫 4년 동안에 그는 하원의 공화당 의원들과 부시 대통령 사이를 중개하는 역할을 했다. 이때 포트먼이 다리 역할을 하면서 보여준 협상능력이 나중에 부시 대통령이 그를 무역대표부의 책임자로 임명하는 데 바탕이 된 것 같다. 부시 대통령은 2005년에 그를 무역대표에 지명하면서 "나의 좋은 친구이며 탁월한 협상가"라고 소개했다. 미국 무역대표부는 홈페이지에서 그를 친화력이 대단한 사람으로 자신이 발의한 법을 통과시키기 위해서는 반대당 소속 의원들도 설득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김한길 의원보다 더 설득력이 좋은 모양이다.
워싱턴에서 많은 사람을 초청해 놓고 협상 상대자인 김현종 본부장까지 불러서 들러리로 세우고는 협상개시 선언이라는 행사를 성대하게 벌이는 것을 보면 그가 반대 정당 의원들까지 내 편으로 만드는 설득력과 수완을 소유하고 있다는 말이 맞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와 '맞짱'을 떠야 하는 한국의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은 어떤 사람인가?
***김현종 대한민국 외교통상부 통상교섭본부장**
한국에서 이번 협상의 총책임을 지고 있는 분은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이다. 1959년생인 이 분은 미국에서 고등학교를 나왔다. 컬럼비아대학교라고 하는, 뉴욕에 있는 아이비리그 소속의 명문대학에서 국제정치학 전공으로 학부와 대학원 과정을 마쳤다. 그리고 같은 대학교의 로스쿨을 졸업하고는 1985년에 미국 뉴욕주의 변호사 자격을 취득했다. 그는 1985년부터 미국의 로펌에서 4년 간 근무한 뒤 1989년에 김신&유라고 하는 한국의 법률사무소로 옮겼다.
외교통상부와 인연을 맺기 시작한 것은 그로부터 약 6년 뒤인 1995년이었다. 그가 처음에 맡은 역할은 통상자문 변호사였다. 이어 1998년에 통상전문관이 됐다가 2003년 3월에 통상교섭조정관(1급), 그리고 2004년 3월에 장관급인 통상교섭본부장으로 승진했다. 한국에서의 공식 직함은 통상교섭본부장인데 영어로는 '통상장관(Minister of Trade)'으로 불린다. 2월 2일의 협상개시 선언에서 미국 측 대표인 포트먼이 그렇게 불렀고, 바로 이어서 연설을 한 본인도 그 호칭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장관급이라서 그렇게 부르는 것 같다. 본인이 국정리포트에 기고한 글에도 '양국의 통상장관 회의'라고 언급하고 있다.
협상가로서의 그의 경험과 능력을 보여줄 수 있는 자료는 찾지 못했다. 그 분의 경력을 가지고 유추해보는 수밖에 없다. 미국 로펌에서 4년 동안 일을 한 기간에는 중요한 협상을 맡아서 할 기회가 없었을 것이다. 미국 로펌에서 4년차 변호사라고 해봐야 주니어 레벨이다, 아주 작은 규모의 로펌이 아니라면 그 기간에는 중요한 협상을 직접 맡아서 하기는커녕 그런 자리에 참석할 기회도 거의 없다. 혹시 한국인 기업체가 그를 통해 그 로펌에 업무를 의뢰했으면 협상이 진행되는 상황을 의뢰인에게 보고할 필요에서 배석을 했을 가능성은 없지 않지만, 한국 기업체들은 미국에서도 대형 로펌들만 이용한다. 로펌에서 의뢰인을 대신해 진행하는 중요한 협상은 파트너 급에서 감당한다.
김현종 미국 변호사가 경제학을 공부했다는 이야기는 없다. 지면에 실린 그의 기고 글이나 워싱턴에서 협상개시 선언을 할 때 그가 한 발언으로 미루어보면 그 나이에 한국에서 문과 계열의 대학을 다녔으면 전공과 상관없이 누구나 익혔을 정도의 경제학 지식을 넘어서지 못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는 한미 FTA가 태평양을 가로질러 한국과 미국을 잇는 경제고속도로를 건설하는 일이고, 그 결과로 한국의 소비자들이 이익을 볼 것이라고 믿고 있다. 경제적으로 차이가 있는 두 개의 도시 사이에 고속도로가 건설되면 도로의 반대편 도시에 우세한 업체가 있는 산업은 이쪽의 열세도시에서는 사라진다. 예전에 웬만한 지방도시에 한두 개씩 있던 아이스케이크 공장들이 지금 어떻게 되었는지를 생각해보면 쉽게 이해가 갈 것이다.
그는 또 한미 FTA를 추진하는 목적이 관세를 낮추어 한국의 소비자들에게 싼 가격에 미국의 소비재와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게 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관세를 낮춰서 미국산 소비재 가격을 낮추는 것이 목적이라면 한미 FTA를 체결할 필요가 없다. 미국이 반대해서 한국이 미국산 소비재 관세를 낮추지 못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관세는 한국의 소비재 산업을 보호하기 위해 한국이 부과하고 있는 것이다. 미국산 소비재가 싼 값에 들어오면 동종의 한국 업체에 근무하던 한국 소비자들은 실직으로 인해 그 소비재를 구매할 능력도 잃어버리게 될 것이다. 한국의 관세를 내리는 것은 한국의 국세 수입이 줄어드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사실들은 쏙 빼고 협정 체결로 수입품에 대한 한국 관세가 낮아지면 가격이 내려가서 한국 소비자에게 이득이 될 것이라고는 하는 말을 미국 대표가 했다면 또 모르겠다. 그런데 그 말을 한 사람은 협상의 한국 측 총책임자다. 본인이 그렇게 믿고 말을 한 건지, 믿지 않으면서도 그렇게 말한 건지는 모르지만, 두 경우 다 걱정이다.
두 사람의 경력을 비교해 보고난 뒤의 느낌은 협상 선수로서 포트먼 무역대표와 김현종 본부장의 실력차이가 천하장사와 고등학생 씨름선수의 실력차이와 같은 정도 혹은 그 이상이겠다 하는 것이다.
***김현종 본부장의 워싱턴 발언**
협상개시를 선언하던 날 김현종 본부장이 미국에서 미국의 의원들과 비즈니스 대표들, 그리고 각국 기자들을 상대로 한국협상단을 대표해 발언한 요지는 이렇다.
"오늘 저녁 시작을 알리는 한미 FTA는 한미 두 나라가 1953년 군사동맹을 체결한 이래 가장 중요한 사건이다. 1950년대에 우리의 국민소득은 일인당 50달러 정도였다. 이제는 국민소득이 1만4600달러에 달하고, 올해 말에는 2만 달러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은 국내총생산의 70%를 교역에 의존하고 있다. 일본의 25%보다 훨씬 높다. 교역은 우리나라 경제에 아주 중요하다.
한미 FTA가 체결되면 소비자들이 혜택을 본다. 우리 쪽 연구에 의하면 한미 FTA가 체결되면 우리나라 국내총생산이 135억 달러 늘어난다고 한다. 이것은 1인당 290달러이고, 4인 가족으로는 연간 1200달러의 소득증가를 의미한다. 미국은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파트너다. 모든 자유무역협정은 긍정적 효과와 부정적 효과를 가져온다. 피해를 보는 분야도 있다. 우리의 경우에는 간단하게 말하면 농업이 피해를 보는 분야다. 그러나 우리는 향후 10년에 걸쳐 우리나라 농민들을 지원하기 위해 1190억 달러를 사용할 계획이다. 그렇게 해서 그들이 적응을 하고 경쟁력을 강화시킬 수 있도록 할 것이다. 이밖에도 더 많은 지원 계획이 있다.
내가 처음 미국과 자유무역협정을 체결하자고 할 때 많은 사람들이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고, 우리 부서의 직원들은 미친 생각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모든 좋은 아이디어는 처음에는 미친 생각으로부터 시작한다고 나는 덧붙이고 싶다. 우리는 이 협상을 아주 빨리 끝내야 한다. 앞으로 장애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와 포트먼 대사는 호흡이 잘 맞으니 우리는 어떤 장애도 극복할 수 있을 것이고, 이 일은 우리가 끝까지 마무리지을 생각이다."
김현종 본부장은 자신의 연설이 듣는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을 끼치기를 바라고 위와 같은 연설을 했을까?
김현종 본부장의 워싱턴 연설은 그가 포트먼의 배후에 있는 사람들에게 직접 이야기할 수 있는 처음이자 마지막 기회였다. 포트먼은 협상을 할 때 그날 참석한 사람들의 의견을 가장 먼저 염두에 두게 돼 있다. 그런 사람들에게 김현종 본부장은 이렇게 이야기했어야 하지 않을까?
"지난 50년 간 미국은 한국을 도와주었다고 생각하는데, 한국에는 미국 때문에 농업이 피폐해지고 식량자급 기반이 무너졌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최근에는 주한미군 주둔 부담금과 미군기지 이전비용을 한국 국민이 모두 내야 한다는 사실 때문에 미국에 불만을 가진 사람들의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한미 자유무역협정을 통해서 미국은 한국의 농업기반을 완전히 파괴할 것이고 금융, 통신, 서비스, 제약업 등에서 국내 산업을 엄청나게 위협하는 조건을 요구할 것이라는 의구심을 가진 사람들이 많이 있다. 한미 자유무역협정이 한국의 국내 정책결정에 미국의 기업체가 간섭할 도구를 제공한다고 보는 사람들도 상당하다.
그런 반대를 무릅쓰고 여기까지 왔다. 내가 여기까지 온 것은 오로지 노무현 대통령이 의지로 밀어붙인 덕분이다. 우리는 국내의 반대를 무릅쓰고 협상에 성의를 보이기 위해 이미 스크린쿼터도 축소했고, 미국산 쇠고기의 수입도 재개했고, 의약품 가격 재평가도 보류했다. 칸 영화제에서 상을 탄 한국의 유명한 배우들이 길거리에서 시위를 하고 사람들이 구름떼같이 몰려들어 반대하는 상황 속에서도 그런 조치를 취한 것이다. 이로 인해 대통령의 지도력이 많이 손상됐다. 미국이 앞으로 본협상에서 한국 국민이 받아들이기 어려운 조건을 강요한다면 협상이 성사되기 어렵다. 아무리 강력한 의지를 가진 대통령이라도 국민이 반대하는 협정을 강요할 수는 없다. 한국은 이제 군사독재 국가가 아니다. 여러분의 대통령이 국민여론에 신경 쓰듯이 우리나라의 대통령도 국민여론에 신경 쓰지 않을 수 없다.
우리나라 대통령이 감당할 수 없는 조건을 강요해서 이 협상이 깨진다면 그것은 여러분의 손해다. 아시다시피 한국은 세계 10위의 경제대국이고 미국의 7대 교역상대국일 뿐 아니라 비약적으로 성장하는 중국과 동남아시아, 그리고 구소련 지역에까지 미국 기업이 진출할 수 있는 교두보다. 우리는 다른 나라들과도 동시에 자유무역협정 체결을 추진하고 있다. 만약 미국이 무리한 조건을 요구해서 이 협정이 결렬되면 한국시장에 진출하고 싶어 하는 다른 나라 기업들에게 선수를 빼앗기게 될 것이다. 포트먼 대사가 재량권을 가지고 협정에 임할 수 있도록 여러분이 전폭적으로 지원하는 것이 미국의 이익에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정확하게 인식하시기를 바란다."
***협상결과가 선수 본인에게 미치는 영향**
변호사 출신인 포트먼 대사의 지금 직업은 정치인이다. 7선의 노련한 하원의원이자 대통령과 다수당 의원단을 연결하는 중요한 위치에 있었다. 이제 51세이니 앞으로도 정치인으로서 얼마든지 더 올라갈 여지가 있다. 그런 그가 자신에게 7선을 안겨준 안정된 선거구를 내던지고 맡은 것이 무역대표부의 책임자 자리다. 무역대표부의 책임자 자리가 정치적 도약의 발판이 될 것이라고 판단을 했다는 이야기다.
그는 워싱턴에서 행한 연설에서 한미 FTA는 자신이 무역대표부의 책임자가 된 뒤 첫 작품이며, 자신의 첫 상대역으로 대한민국 이상 가는 나라가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한미 FTA가 자신의 정치경력에 커다란 자산을 안겨줄 것이라고 믿고 있는 게 틀림없다. 그는 한미 FTA를 성공적으로 체결해 무역대표의 업무를 성공으로 장식하고 다음 단계의 정치적 진출을 모색할 것이다. 그렇다면 한미 FTA가 미국의 노동자, 농민, 서비스 제공자, 기업가들이 만족할 만한 내용으로 체결되느냐 여부가 그에게 개인적으로도 매주 중요한 사안이다. 그래서 그는 이번 협상이 미국의 정치가 기업가, 농업자본가, 서비스 제공자들에게 만족스런 결과를 가져오도록 하기 위해 모든 노력을 기울일 것이다.
김현종 본부장은 유권자의 반응을 살피며 살아온 정치인이 아니다. 자신이 입안하거나 시행한 정책의 결과에 따라 진급 여부가 결정되는 공무원으로 일하며 그 자리까지 올라간 분도 아니다. 정부에 특채되기 전까지는 변호사로 살아 온 분이다. 자기가 대행한 일의 결과가 좋으면 좋지만, 결과가 좋지 않아도 수임료를 받는 것이 변호사다.
한미 자유무역협정의 체결로 우리나라 경제가 악화되어도 그에게 개인적인 피해가 돌아갈 일은 없다. 협정의 결과로 경제에 악영향이 미치면 비판을 받을 것을 대통령이고, 자신은 변호사로 돌아가면 그만이다. 어떤 내용으로든 협정이 신속하게 체결되기만 하면 본인은 성공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신속한 체결을 위해 필요하다고 생각하면 미국의 양보를 받아내는 것보다 한국 측이 양보하도록 설득하는 데 더 많은 노력을 기울일 가능성도 얼마든지 있다.
***김종훈 한국 수석대표와 웬디 커틀러 미국 수석대표**
이왕에 선수들을 살펴보는 김에 다른 주전 선수들의 경력도 잠깐 살펴보자.
국정리포트에 보면 3월 6일 서울 예비회담에서 마주앉은 양측 대표단의 사진이 있다. 그 중에서 한가운데 앉은 사람들이 양쪽 수석대표다. 미국 측은 웬디 커틀러 무역대표부 부대표이고, 한국 측은 김종훈 APEC 회의 의장이다. 두 사람의 경력을 한번 알아보자.
먼저 한국의 김종훈 수석대표는 정통 외무관료 출신이다. 1974년에 외무부에 입부한 이래 재외공관의 서기관, 참사관, 공사, 총영사 직을 거쳤고, 서울올림픽 조직위원회에서도 근무했으며, 외무부의 특전(특별의전의 줄임말인 듯함)담당관, 의전담당관, 그리고 의전심의관 등의 직책을 거쳤다. 2004년부터 APEC 의장직을 맡고 계신다. 그러나 이 분이 통상관련 부서에서 근무한 경력은 1997년부터 1년 간, 그리고 2000년부터 2년 간 외교통상부 통상교섭본부 지역통상국장으로 근무한 것으로 모두 합쳐서 3년 간이다.
미국 측 수석대표인 웬디 커틀러 부대표는 결혼해서 아들 한 명을 두고 있는 아주머니다. 이 아주머니는 조지워싱턴대학에서 학사를 하고 조지타운대학에서 석사를 했다. 처음 사회생활을 한 곳은 미국 상무부. 거기서 1983년부터 1988년까지 근무하다가 1998년에 무역대표부로 자리를 옮겼다. 무역대표부에서 근무한 기간에는 일본과 한국을 포함한 동북아시아와 APEC 담당관으로만 일했다. 통상교섭 업무만 20년 넘게 한 여성이다. 나이는 40대 중반이나 후반쯤 되겠다.
웬디 커틀러 수석대표와 김종훈 수석대표가 협상을 해서 김종훈 대표가 웬디를 꺾고 양보를 받아낼 가능성이 얼마나 될까? 웬디는 20년 이상을 통상교섭 업무만 해 온 사람이고, 김종훈 수석대표는 외교관으로 30년 가까이 지낸 분이다. 매너가 깍듯하고 상대의 기분을 먼저 배려하는 사람을 가리켜 "외교관 같다"고들 한다. 외교관 중에서도 특히 의전분야 일을 맡은 분들은 이런 묘사가 더욱 적절하도록 행동한다. 의전담당 외교관이 주재국이나 상대국 외교관과 이해관계가 대립되는 일을 놓고 협상을 벌이는 일은 드물다.
김종훈 수석대표의 30년 넘는 외교관 경력 중 통상관련 분야에서 근무한 기간은 모두 3년이다. 그 3년 동안에 통상협상에 얼마나 직접 참여했는지를 모르지만 웬디 커틀러의 20년 경력을 이길 만한 경험을 쌓았을까? 김 대표는 1952년생이니 쉰을 넘긴 중년신사다. 이런 분은 대개 자기 물건을 살 때도 깎거나 따지는 일을 잘 하지 못한다. 더구나 상대가 중년의 아주머니인데.
사진을 보면 웬디와 김 수석대표가 통역 없이 직접 대화를 하는 것으로 보인다. 웬디가 한국말을 할 것 같지는 않고 김 수석대표께서 영어를 하실 텐데, 김 대표가 한 마디 하면 웬디가 열 마디 스무 마디를 할 것이다.
김현종 장관이 이끄는 한국 협상대표단이 롭 포트먼과 웬디 커틀러가 포진하고 있는 미국 협상대표단을 상대로 우리에게 유리한 협정을 이끌어낼 가능성은 부산상고 야구팀이 뉴욕 양키즈와 시합해서 승리할 가능성만큼도 될 것 같지 않다. 이 협상팀을 데리고 노무현 대통령은 미국과 '맞짱'을 뜨겠다고 말하고 있다. 만약 맞짱을 떴다가 깨지면 그 결과는 어떻게 되나? 피해를 보는 사람은 누구이고, 피해 정도는 얼마나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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