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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전한 사랑과 믿음이 또 한 생명을 앗아가려 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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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전한 사랑과 믿음이 또 한 생명을 앗아가려 하니…

[기고] 스러져가는 지율 스님을 보며

천성산을 지키기 위한 지율 스님의 '치명적인 단식'이 계속되고 있다. 지율 스님은 왜 죽음을 불사하고 저토록 외로운 싸움을 계속하는 것일까?

상지대 홍성태 교수의 글에 이어 이번엔 소설가 김곰치 씨가 보내온 글을 싣는다. 이 글에서 김곰치 씨는 지율 스님과의 개인적 인연을 바탕으로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기에 지율 스님이 단식을 다시 하게 된 건지, 왜 단식을 중단하지 않는 건지, 그리고 그의 단식이 이 시대 우리에게 무슨 의미를 담고 있는지를 이야기한다. 〈편집자〉

이야기를 작년 6월 며칠로 돌려야 할 것 같다. 어찌 연락이 되어 만났는데, 지율 스님은 하소연부터 했다. "어제 MBC 기자를 만났는데, 이 책이 MBC 기자들 한 사람 앞에 하나씩 거의 다 왔다고 해요. 엄청 많이 뿌렸어요. 국회에도 보냈다고 하고."

한국철도시설공단 측과 환경영향공동조사의 세부사항을 놓고 협의를 하고 있던 무렵, 〈고속철도 천성산 공사 관련 자료집〉이란 책자가 대량 배포되었다는 것이다. 한국철도시설공단도 하나의 국가기관인데, 사업에 관해 알릴 것이 있다면 널리 알리는 것은 당연하지 않은가.

***도대체 누가 문제인가?**

옆에 앉은 이동준 변호사가 말했다. "대법원에 가 있으니 결론이 난 것이 아닌 재판 중인 사건입니다. 법원 바깥의 오피니언 그룹한테 이런 책자를 보낸 것은 재판부에 대한 압력이라고 할 수 있어요. 책의 내용도, 자기들 주장이 다 맞는 것처럼 우리 주장은 한 줄로 쓰고 자기들은 한 페이지씩 적어놓았어요. 재판 쟁점을 놓고 재판 중일 때는 이런 걸 못하도록 법에 명시돼 있습니다. 공동조사를 하기로 했고, 합의된 결론이 나오지 않으면 대법원에 보고서를 제출하기로 했지 않습니까. 결국 대법원이 판단할 문제입니다. 사건 당사자가 미리 판단하고 그것을 널리 알린 것인데, 이건 사법부에 대한 정면도전이에요."

나는 "지율 스님도 재판 중인 사건을 두고 공개강연을 다니시지 않나요? 그쪽에서 똑같이 이야기할 수 있겠네요"라고 물어보았다. "저는 고속철도 문제는 거의 언급을 안 합니다. 공단 측에서 조사에 영향을 미칠 말을 하지 말라고 해서, 일반적인 환경이나 생명 문제를 이야기하는 것으로 끝내요."

"설사 스님이 고속철도 문제를 말한다 해도, 개인이 혼자 그러는 것과 권력과 돈을 다 가지고 있는 국가기관이 조직적이고 체계적으로 하는 것, 누가 그것을 대등하다고 하겠어요." 이 변호사가 말했다.

"이번 일을 보고 변호사들은 다 욕합니다. 꼭 말하고 싶은 게 있으면 법적 절차에 따라 정정당당하게 준비서면을 내든가, 그런 게 재판입니다. 법원에는 아무 소리 안 하고 밖에다 자기들 주장을 홍보하는데, 마치 객관성이 있다는 듯이 편집도 교묘하게 하고요. 차라리 자기 주장만 담았으면 말 안 합니다. 우리 주장과 대비를 해놓았어요. 국가기관의 행태치곤 참 야비하다고 해야 하나."

지율 스님은 '안티 지율' 사건에 대해서도 내게 말했다. "제가 조사를 해봤어요. 포털사이트에 오른 기사에 약 40여 명이 40여 개씩 댓글을 올리고 있었어요. 부당하게 반대여론을 동원하고 있는 것인데, 제가 개인적으로 아는 〈경향신문〉 김택근 님께 문의를 했어요. 당신도 깜짝 놀라시더라고요. 그 댓글들이 시중의 여론인 줄 아셨다는 거예요."

"민주사회이기 때문에 안티가 있을 수 있습니다. 자연스러운 안티라면 겸허하게 받아들여야 합니다. 반대의견을 가진 국민이 있기 때문에 소송을 하고 법적 판단을 기다리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사건 당사자들이 조직적으로 안티 활동을 했다는 게 이해가 안 가고, 재판 중인 사건을 두고 그랬기에 더 그렇습니다. 공동조사 결론이 어긋났을 때를 대비하고 대법원에 갔을 때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미치겠다는 의도라고 할 수밖에 없어요. 솔직히 말해, 이런 큰 소송을 하는데 이런 식으로 나오는 당사자가 어디 있습니까. 지금 공단은 피고가 돼 있습니다. 피고가 혹시라도 소송에 질까봐 1, 2심에서 다 이겨놓고 대법원 결정 기다리면서 확인사살을 하고 있는 것 아닙니까?"

이 변호사가 계속 말했다. "공사가 중단되면 몇 조 손해가 난다는 보도가 나오게 된 과정도 그렇고, 지율 스님이 제주도에 가서 한 말을 가지고도 그러고 있어요. 아니, 군사기지 건설 문제를 주민들과 협의해야 하지 않겠는가, 이런 말은 지율 스님이 아니라 누구든 환경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할 수 있는 소리 아닙니까. 더 이상의 말은 지율 스님도 하지 않았어요. 그런데 아르바이트생을 시켜 왜곡된 기사에 댓글을 달도록 하고, 마치 스님이 천성산과 동등하게 군사기지를 결사반대하는 것으로 오해하도록 해서 국민들로 하여금 분노를 느끼게 하고…."

지율 스님은 나름의 증거자료도 만들었다고 했다.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아이디들을 정리했어요. 40여 개 아이디가 동시에 나오기에 몇 페이지 단위로 보지 않으면 조직적인 움직임을 알기 힘들어요. 그 사람들은 작업하는 시간이 있어요. 오전 9시부터 오후 3시까지…. 3시 되니까 딱 멈추데요."

"변호사 입장에서 저는 공동조사를 하기로 했으니, 그것까지 포함해 공정한 플레이를 하기를 바랐습니다. 그런데 공동조사 합의 이후 지금까지 과정을 보면 공단에서 참 '페어'하지 못한 짓을 한다는 생각입니다. 결국 자기들이 굉장히 조바심이 난다는 거예요. 만에 하나 틈을 보이다가 혹시라도…, 하는 두려움이 있어요. 자기들 쪽으로 백이면 백 다 가져가겠다는 겁니다. 자기들도 사실 공동조사가 자기들 쪽 결론으로 갈 거라는 객관적인 현실의 추이를 알고 있을 거예요. 그렇게 방향을 잡아놓아도, 또 로비를 다 해놓아도 권력의 속성상 불안한 거예요. 그래서 끈질기게 확인사살을 하고 있는 겁니다. 한 단계 한 단계, 확실하게 확실하게, 조금이라도, 단 하나라도 허점이 안 보이게, 완전무결하게 자기 쪽으로 가져가려고 상대방을 완전히 죽여버리려 합니다. 그러니 이런 무리수가 나오는 겁니다."

이 변호사는 판사로 재직했던 경험에 비추어 나름의 심리분석까지 해보였다. "이런 행태에는 국가는 무결해야 한다, 자기 결론이 100% 타당해야 한다, 이런 사고가 깔려 있습니다. 독재적인 사고방식이죠. 바로 이런 사고가 공무원의 전형적인 사고예요. 저도 판사로 있을 때는 공무원이었지만, 판사도 리버럴하면서 사실은 그런 게 좀 있습니다. 근데 행정부 공무원이라는 사람들은, 자기들이 공사 계획을 오래 전부터 했고, 또 시행을 했고 벌써 몇 년쨉니까. 들어간 돈이 얼맙니까. 관련된 사람들이 고관대작만 해도 얼마나 많겠습니까. 여기 관여한 고관대작들이 다 보고 있는 거예요. 너희들 확실히 해라, 하나라도 터지면 다 죽는다, 아마 이런 소리를 자기들끼리도 할 겁니다. 현직에 있는 사람들은, 위에서 자꾸 그러니까 자기 딴에는 확실하게 한다고 이러는 겁니다. 그러나 이 재판을 조금 멀리 두고 객관적으로 보고 겸허한 마음으로 보면, 이럴 수는 없는 거예요."

재작년 가을, 2심 판결을 앞두고 스님이 단식할 때 여러 사람들과 함께 식당에 갔었다. 다른 이들은 다 숟가락을 움직였지만 이 변호사만은 식사를 물리치던 것이 생각난다. 스님을 앞에 놓고 차마 밥을 먹을 수 없었던 것이다. 이 변호사는 천상 변호사인지 모른다. 그는 아름다운 법의 세계를 꿈꾸고 있는 것 같았다.

"공단이 정신 나간 짓을 한다, 아무튼 우리 법인의 변호사들은 다 이럽니다. 대법원까지 간 상황에서, 개인적으로 저는 이 소송 져도 좋다는 마음까지 가지려 해요. '자연의 권리'를 바로 세우는 입장에서 소송에 나섰지만, 대법원에서 냉정하게 '이건 안 됩니다' 하면 받아들여야 합니다. 물론 그런 판결이 나와도, 장기적인 관점에서 '자연의 권리'를 실현하기 위한 또 다른 방법론이 있을 것이고 또 당연히 있어야 하지만, 그건 차후의 문제고, 암튼 대법원 결정을 수긍해야 해요. 그렇게 겸허한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는데, 공단은 이런 책자를 돌렸습니다. 참 이해가 안 가는 게, 정말 이 사람들이 재판에서 이기기 위해 이랬다면, 이기는 데 이게 상당한 도움이 된다, 실제로 그렇다면, 나도, 아, 이 사람들이 이기기 위해 이랬구나, 하고 이해할 수 있어요. 그런데 대법원이 어떤 곳입니까. 이런 것이 통하겠습니까. 공단의 이번 행태는 진짜 쓸데없는 일이고, 쓸데없는 비용을 쓰는 것이고, 국민들 혈세를 낭비하는 짓입니다. 자기들이 정정당당하게 이기면 그게 진정한 법적 정당성을 가지는 일이고, 재판이라는 절차가 그래서 있는 건데, 국민들 혈세를 낭비하며 왜 이런 것을 만듭니까. 이럴 돈이 있으면 KTX에 국민 서비스나 하나 더 추가하지. 책 보세요, 색깔 많이 쓰고, 책마다 시디까지 넣었습니다. 우리는 돈이 없어 시디 제작하는 데도 쩔쩔매는데, 서로 이렇게 차이가 나는데, 인터넷 포털에까지 조직적으로 여론 동원하면서 잔인하게 확인사살해서야 되겠습니까. '페어'하게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익숙한 너무나 익숙한 '그 관행'**

반년 전의 대화이지만, 곰곰이 새겨보니 그렇다. 법원이 심리할 가치가 없다고 '자연의 권리' 소송을 기각했다면 재판이 시작되지도 않았을 것이다. 권리와 정의를 다툴 여지가 있다고 봤던 것이다. 1, 2심도 그렇지만 특히 대법원은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의 마지막 판단력의 준거이자 상징이다. 최후의 공적 판단은 대법원이 한다. 이동준 변호사가 한 비판의 요지는 이 현실을 한국철도시설공단도 인정하고 제발 앞뒤 가리고 행동하라는 것이었다.

"공단에서 계속 이렇게 나올 바에야 공동조사를 하는 것도 의미가 없고, 공동조사 약속을 파기하는 것이 지율 스님이 더 책임 있게 행동하는 것 아니겠어요"라고까지 이 변호사는 말했다. 나는 그 말에 가슴이 다 철렁했다. 법조계 사람들의 판단력을 존중하고 싶지만, 보통사람들의 지식과 현실감각에서 '어떻게 해서 얻는 공동조사 합의인데 그 정도 일로…' 하고 스님의 약속 파기에 크게 실망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 변호사의 말은 일일이 맞았고, 그 자리에서는 나도 공분이 일었다. 그러나 집으로 돌아와 혼자가 되자, 말이 한 나라의 국가기관이지 기관들의 숱한 편법과 주먹구구와, 또 로비와 협잡 등이 비일비재한 것이 현실임을 누가 모르랴 싶었다. 마루에 뒹구는 신문의 아무 쪽이나 펼쳐 보아도 금방 알 수 있는 일이다. 이해관계가 첨예한 문제를 두고 인터넷에서 벌어지는 여론조작도 그렇다. '또 알바들 나섰군…'하고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무시했던 적이 한두 번의 일이었나.

이런 조의 말을 지율 스님한테도 했었다. 그런데 스님은 말한다. "맞아요, 바로 관행인데요…. 이 사회가 원래 그런 곳이라고, 저는 그런 관행에 문제제기를 해야 했어요. 관행이라고 용납되는 것을 저는 용납하기가 힘들어요."

작년 6월의 대화를 뒤늦게 정리해 이리 공개하게 된 것도, 나 역시 그런 관행에 이미 낙담해버렸던 사람이기 때문이리라. 아무도 모르게 시작되었던 지율 스님의 이번 단식과 그 후 병원 입원, 치료 거부 등 최근 상황을 보도하는 언론도 '왜 단식을 결행하였나'하고 설명하는 기사에서 회고조로 이런저런 일이 있긴 있었다고 말하는 형편이다. 그간 사이버 테러와 자료집 배포 등의 일을 기자들도 알고 있었다. 그러나 기사화할 정도는 아니라고 판단했던 것이다. 그들 역시 관행의 힘에 눌려 있었다고 할지. 아니, 그보다, 어쨌든 환경공동조사를 마무리지어 공사가 천성산에 치명적인 훼손을 안긴다는 결론이 나오면, 몇 가지 관행의 문제는 사소할 뿐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또 다른 관행의 문제라고 할까, 가장 최근의 비슷한 예는 작년 11월 말 〈조선일보〉 보도에서 나왔다. 공동조사 보고서 작성을 시작하지도 않았는데 공단 관계자의 말을 옮기는 형태로 '공동조사 결과 공사가 환경에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보도했던 것이다. 지율 스님 측 조사단은 공정성이 훼손됐다며 바로 항의했고, 이튿날 〈조선일보〉는 정정기사를 실었다. 그러나 한 귀퉁이의 조그만 정정 고지로, 무책임하게 세상으로 이미 나가버린, 비중 있는 기사의 여론 파급효과를 되돌리기는 힘들다. 이 역시 익숙한 관행인지, 조사단 전체회의를 앞두고 하는 김 빼기 작전인지, 이 변호사의 말처럼 지금도 계속되는 공단의 '확인사살' 행위의 일환인지….

아무튼 지율 스님 측 조사단은 그 일로 공동조사 보고서 작성을 중단하기로 했는데, 그 논란은 마무리가 된 모양이다. 새해 1월 13일 천성산 대책위 홈페이지에 가보니 "일부 언론보도로 불거진 공정성 시비와 관련해 공단 측이 공식 사과하는 것"으로 "50여 일째 중단되었던 공동조사보고서 작성작업을 재개하기로 했다"는 것이다.

보고서의 작성은 머잖아 완료될 것이다. 그리고 대법원은 그것을 가지고 마지막 판단을 할 것이다. 1월 5일 동국대 일산불교병원에 입원하기 전날 밤 지율 스님은 "도롱뇽 소송이 승리한다면 우리나라에서 30년 동안은 개발을 함부로 말하지 않을 것이다. 그만큼 중요한 의미가 있는 소송이다. '그까짓 도롱뇽이냐'고 했던 소송이 지금 대법관 전체회의에서 다루어질 정도가 되었으니 얼마나 다행이냐"라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스님은 지금도 대법원에 기대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스님의 단식은 그녀가 대법원에 가할 수 있는 유일한 '압력행위'로 선택된 면도 있는 것 같다. 공단이 치졸한 방법을 동원해 압력행위에 나섰다고 그녀는 믿고 있고, 반면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은 또 목숨을 걸고 나서는 단식뿐이었지 싶다.

***지율 스님은 왜 또 '단식'을 선택했는가**

지난해 '100일 단식'이 끝나고 지율 스님은 "참회하는 마음으로 일어나겠다"고 말했다. 그 말에 나는 이상하게 감동했다. 스님이 죽니 사니 하고 3개 방송국 저녁뉴스의 톱기사로 나올 때도 '지금 지율 스님을 부러워하는 사람도 있을 거야'하고 나는 생각했다.

'쎄빠지게' 고생만 했거나 욕망의 노리개가 되어 방황만 하며 인생의 귀한 시간을 다 흘려보낸 것을 후회할지 모를 사람들, 일부 말기 암환자들, 죽을병에 걸린 사람들은 아, 나도 저 스님처럼 뜻이 있는 죽음이라도 맞을 수 있다면…, 하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세상에는 참으로 아프고 불쌍한 마음들이 있다. 스님의 '참회하는 마음'은 어쩌면 스님보다 더 아프고 불쌍한 세상의 그런 마음까지 챙긴 말씀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어쨌든 '100일 단식'으로 공동조사 합의가 나왔을 때 누군가 '87년 민주항쟁 이후 처음 보는 승리'라고 평하는 것을 듣기도 했다. '기운(氣運)'이란 말은 웬만하면 쓰고 싶지 않지만, 수많은 명사들이 정토회관을 방문하고 어떻게든 스님을 살려놓고 보자고 마음을 모을 때, 나는 인터넷 뉴스에 붙어살다시피 했는데, '아, 이게 바로 국민의 마음, 기운이라는 것이구나' 싶었다. 정토회관으로 사람들의 눈빛과 관심이 가고 있었고, 그 기운이 사태의 흐름을 정리하고 스님을 결정적으로 살려냈다고 나는 믿는다. 합의안이 나오기 전에도 정토회관이 온통 훈훈해 보였다. 이 나라 백성이 아직 시퍼렇게 살아 있구나, 그 발견이 내게는 큰 감동이자 새로운 희망이었다. 설사 공동조사가 파행을 겪거나 대법원에서 공사를 계획대로 하라!고 결정하더라도, 이 희망의 엄연한 존재가 사라지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런데 이 이야기를 사석에서 〈녹색평론〉 김종철 선생한테 했던 적이 있다. " 그런 기운이 있지. 근데 정토회관을 향해 일시에 쫙 몰렸다가 합의안이 나오는 순간 또 일시에 쫙 흩어지는 거거든. 언제 그런 게 있었냐는 듯이…. 그 허무한 노릇을 모든 사람이 아는데, 스님 혼자 아직 그 기운 속에 있거든"하고 걱정하셨다. 수긍이 되면서도, 나는 그런 대대적인 기운의 결집을 사실 내 인생에서 처음 보았다. 아직도 내게는 그때가 감동적이다.

'스님 혼자 아직 그 기운 속에 있다'는 말이 그럼에도 내내 마음에 걸렸다. 단식이 끝나고 얼마 후, 지인들과 회복기에 있는 스님을 보러 정토회관에 갔을 때다. 목의 힘줄이 선연히 나타나 있었지만, 스님의 얼굴에 화색이 있었고 이야기도 화기애애했다. 스님이 병원에서 검사를 받는 것을 거부했을 때 법륜 스님이 '분명 뒷말이 나올 것이다. 단식의 검증을 회피한다고 언론이 주장할지 모른다. 병원 입원을 거부하는 뜻은 잘 알겠다. 대신 증거자료를 남겨놓자'고 했다고 하고, 그런데 법륜 스님이 제안한 증거자료라는 것이 정토회관의 여신도 한 분이 백일 단식 끝난 후의 지율 스님 알몸 사진을 찍는 것이었다고 하고, 실제 사진을 찍어두었다는 말에 법륜 스님의 아주 현실적인 꼼꼼함에 놀라면서도 박장대소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때만 해도 아무튼 우리는 희망에 차 있었다.

그러나 그 후 상황은 어떻게 흘러갔는가. 석 달이라는 기간이나마 환경조사를 하기로 한 약속은, 한국철도시설공단과 지율 스님 간의 약속이면서도 공단과 지율 스님과 국민 간의 3자 약속이었다. 그 약속의 조문은 헌법에도 없고 하위법에도 없지만, '국민과의 약속'이라고 할 만큼 공공의 무게가 있었다. 공단은 그 약속을 무겁게 받아들여야 했다! 스님이 한 개인일망정, 현실에 대해 문제제기를 했고 목숨을 건 실천의 진정성에 국민은 감복하였다. 뭔가 문제가 있구나, 다시 조사를 하고 세세하게 따져 제대로 좀 잘 해라, 하고 국민이 명령하다시피 해 한 약속이었다고 나는 지금도 믿는다. 그런데 공단은, 약속에 임하긴 임하되, 철저히 빈정거리고 야유하면서 상대의 인간적 자존심까지 뭉개려고 했다. 자료집과 사이버 테러 말고도 사사건건 어쩌지 못해 억지로 한다는 듯이 나왔다. 환경공동조사의 부속 합의서를 작성하고도 13억 원의 총경비를 감당하기 힘들다며 모자라는 경비를 건설사에 알아보라고 하기도 했다. 자료집 배포 문제는 개인적으로 유감이되 공개적으로 사과할 수는 없다고 끝까지 버텼다. 국가기관의 자존심이 상한다고 생각한 때문일까. 공단의 자존심과 권위가 그토록 중요하다면, 목숨을 바쳐 산을 지키고자 하는 지율 스님의 자존심은 중요하지 않나! 공단이 자기들 돈으로 공사를 하는가. 국민의 피로 공사를 하는 것이지 않은가. 결국 국민 위에 군림하는 그들의 아주 질 나쁜 교만을 증거한다.

아무튼 우여곡절 끝에 지율 스님은 주변의 지인들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고 단식을 시작했다. 오랫동안 그 사실이 알려지지 않았다. 왜 숨어서 했을까. 백일 단식이 끝나고, '다시는 절대! 단식을 하지 말라'고 그녀를 사랑하는 모든 지인들이 이구동성으로 말했다. 연이은 단식으로 몸 이곳저곳이 탈이 나 있기 때문에 행여나 앞으로 다른 누군가 항의단식을 하면 몰라도 스님이 다시는 절대 단식을 해선 안 된다는 것은 확인할 것도 없이 완벽한 의견일치가 있었다. 그러니 자신의 단식 결정을 지인들조차 누구 하나 반기지 않을 테니, 거의 90여 일 동안 스님은 자신에게 너무도 가혹하게, 외롭게 단식을 할 수밖에 없었으리라. 언론을 피해 신륵사에서 빠져나와 스님은 택시를 탔다고 한다. 뼈만 남은 유명 인사를 보고 택시기사는 얼마나 놀랐을까. 지율 스님은 기사의 호기심 어린 시선을 어떻게 견뎠을까!

정말 다른 선택은 없는 것이었을까, 스님에게 묻고 싶다. 이동준 변호사를 만났을 때 대법원 승소 확률을 묻고 싶었지만, 차마 그러지 못했다. 하지만 "공단 측도 공동조사가 자기들쪽 결론으로 갈 거라는 객관적인 현실의 추이를 알고 있을 거다"라고 말하던 것을 기억한다. 상황은 지지부진하고 공단은 사사건건 태클을 걸어오고 지율 스님에겐 다시 천성산을 살릴 길이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 형편에 처하게 된 것 같다. 천성산을 살려야 한다, 살리고야 말겠다고 거의 완전한 사명감으로 이 일을 의식하고 있는 사람이 이 세상에 자기 혼자뿐이라는 절절한 외로움으로 괴로워했으리라.

다시 한번, 지율 스님이란 사람이 나는 참 불가해하다. 왜 우리는 스님과 다른 것일까. 왜 우리는 천성산에서 이 세계의 운명을 보는 절체절명의 위기의식에는 이르지 못할까. '도롱뇽 소송이 승리한다면 우리나라에서 30년 동안은 개발을 함부로 말하지 않을 것이다'라는 그녀의 말이 개인적으로 공감이 가는데, 그 말은 천성산을 지키는 일에 실패한다면 앞으로 30년은 무차별적이라 할 개발행위가 계속되리라는 진단이기도 하다.

지율 스님의 끈질긴 문제제기로 천성산을 지키는 싸움이 아직도 계속되고 있지만, 이 기회를 놓쳐버리고 다시 그와 같은 문제제기를 하고 실천을 할 사람이 과연 있을까. 국가가 자신의 정책방향을 크게 바꿀 수 있는, 이번과 같은 기회가 다시 올 수 있을까.

어쩌면 지율 스님이 애초부터 틀린 생각을 가진 사람은 아니었을까? 그녀는 오래 전부터 다른 세상을 살고 있었던 수도승이고, 지금 실제의 대한민국, 기세등등한 개인의식으로 무장한, 셈속만 아주 밝은 인간사를 바로 보지 못한, 오직 자기의 주관적인 기대로만 사물을 보는, 구제불능의 외눈박이는 아닐까. 그녀는 '오래된 미래'에서 훌쩍 건너온, 아주 먼 과거에서 혹은 저 미래에서 타임머신이라도 타고 온, 의사소통이 불가능한 존재는 아닐까.

하지만 그간 스님의 호소에 우리가 적지 않은 시간, 꽤 많은 순간 공명할 수 있었던 것은 대체 어인 일일까. 백무산 시인의 어느 글이 생각난다. 이런 빼어난 대목이 있었다. "시간이 엔트로피가 증가하는 방향으로 진행한다는 데 아무 이설이 없다고 할 때, 나무는 엔트로피가 감소하는 방향으로 운동하므로 분명 인간의 시간과 다르다고 해야 할 것입니다. 다른 정도가 아니라 정반대의 시간일 수도 있습니다. 만약 그렇다면, 나무는 미래를 기억으로 성장하는 것일까요? 나무는 미래에서 온 것일까요? 나무는 '가이아의 심장'은 아닐까요? 그렇다면 나무는 미래에서 지구를 구하러 온 터미네이터는 아닐까요?" 나는 그 대목을 읽고 바로 지율 스님이 떠올랐다. 스님은 미래에서 지구를 구하러 온 나무 같은 존재가 아닐까. 우리는 그녀가 하는 실천의 의미를 아직도 제대로 몰라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세상 사람 모두가 포기할 때…**

다시 말하지만, '스님 혼자 아직 그 기운 속에 있다'던 김종철 선생의 말이 마음에 자꾸만 걸렸다. 김 선생은 어느 강연에서 "100일 단식으로 공동조사 합의안이 나왔지만, 그리고 공동조사를 하게 되겠지만, 그렇다고 조사가 제대로 돼서 대법원에서 옳은 판결이 나올 거라고 세상 사람 어느 누가 진심으로 믿겠습니까. 세상 일이 다 그렇고 그런 거라고 일이 어찌 될지 약삭빠르게 짐작들 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지율 스님 혼자 그 합의안을 진심으로 믿고 있으니…"하고 안타까워하기도 했다.

100일 단식 후 어느 거처에서 몸을 추스리고, 지율 스님이 활동을 재개한 날이 생각난다. 봄날이었다. 그때 스님과 환경단체 사람 한 분, 기자 한 분과 함께 부산의 어느 컴퓨터 상가에 갔었다. 노트북을 구입하기 위해서였다. 뭔가 그럴싸한 출발인 것 같았다. 그런데 나는 좀 짜증이 났었다. 공동조사 합의까지 하게 됐으니, 이제 조사단에 모든 걸 일임하고 스님은 천성산 문제에서 빠져나왔으면 싶었다. 그렇게 한들 '왜 천성산을 끝까지 지키지 못했나'하고 그녀를 비난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스님은 정말 할 만큼 다 하셨기 때문이다.

그날 스님은 여러 재미난 일화도 들려주셨지만, 그 후의 여러 상황에 대해 또 깐깐하게 따졌다. 뭘 모르셔서 하는 말씀이었겠지만, '〈조선일보〉를 저대로 놔둘 수 없다. 신문이 나쁜 짓을 아주 많이 한다. 두고 봐라, 반드시 혼을 내놓겠다'라고 할 때, 어이가 없었다. '안티 조선일보' 단체가 몇 년째 활동 중이지만, 〈조선일보〉는 거의 끄덕도 없다. 그런데 지율 스님 한 분이 거대 언론에 대해 벼르고 있는 것이 좀 과도한 자신감이 아닌가 싶었다. 김종철 선생이 우려한 것이 바로 이런 게 아닐는지.

나는 갈등했다. 당분간 스님을 좀 피해야 하나. 아무튼 현실의 냉정함에 대해 그날 이야기를 많이 하려고 애썼다. 대개의 경우 스님은 순하게 내 생각을 받아들였다. 그럼에도 밖으로만 받아들이는 표를 하는 것은 아닌지 의심했다.

그런데 우리가 저녁을 먹으러 거리의 어느 음식점에 들어갔을 때, 고깃집이었지만 된장찌개를 팔고 있어 갔는데, 음식점 여주인이 스님을 보고 "아이고, 지율 스님 아니십니까!"하고 열광적인 환호를 하는 것이다. 마치 생불을 본다는 감격에 차 있는 것 같았다. "스님, 이렇게 건강하게 다시 사회로 오셔서 정말 기쁩니다." 여주인은 고깃집을 경영하고 있지만 독실한 불자였고, 그녀의 기쁨은 진심 어린 것이었다.

과한 환대에 스님은 어색해 했지만, 식탁이 놓인 방으로 들어가며 혼잣말처럼 말했다. "저 보살님이 나보다 더 마음고생을 하신 것 같아." 그 말에 애잔한 물기가 어려 있었다. 참으로 귀에 곱게 들리는, 아름다운 말씀이었다.

우리는 방의 식탁에 좌정을 하고 주문받으러 오기를 기다렸다. 그런데 또 일이 벌어졌다. 여주인이 메뉴판을 가져오더니 "스님, 이러실 게 아닙니다. 제가 그냥 못 있겠습니다. 제 절 좀 받으세요"하더니 넙죽 엎드리는 것이다. 여주인이 다짜고짜 하는 큰절에 스님은 기겁을 했다. "우리 맞절 해요"하더니 스님도 아주 재빠르게 절을 했다. 두 사람의 맞절 삼배, 나는 그것을 찡한 마음으로 보았다.

지율 스님의 불가식 큰절은 장판 바닥에 완전히 몸을 붙이고 하는 아주 정성 어린 절이었다. 그날 하루의 내 의심은 눈 녹듯이 녹아버렸다. 하심(下心)이 스님의 몸에 배어 있었다. 두 사람이 서로 절하는 모습이 내게는 그림처럼 아름다웠다.

너무 집요하게 행동하는 사람을 의심하는 마음이 내게 있다. 스님을 생각하면서 때로 그렇다. 그러나 그날 그 모습을 지금 떠올리며, 비약일지 모르나, 나는 스님이 하는 이번의 단식도 정말 어쩔 수 없어, 이 방법밖에 없어서 하는 것이라고 거의 절대적으로 믿고 싶은 기분이 된다.

***"반갑기야 하지. 그런데 말 할 힘이 없어서…"**

지율 스님은 천성산에서 이 세계의 운명을 보았다. 그래서 정말 천성산을 살려야 한다고 당신 스스로 완전히 믿고 있다. 그 완전한 믿음이 나에게는 있지 않다. 어젯밤 지율 스님께 전화를 했다. 전화를 하면서도 받으리라고는 믿지 않았는데, 스님이 받으셨다. 스님은 '업'을 말씀하셨다. 업인데, 애달아할 것 없다고 하셨다. '완전한 믿음'이 스님의 '업'이라는 걸까. 1분도 채 통화하지 않고 힘들다고 해 통화는 끝났다. 그런데 30분 뒤 나는 다시 전화를 했다. 오랜만에 제 목소리 들었는데, 반갑지도 않으세요? 투정을 부렸다. '반갑기야 하지. 그런데 말할 힘이 없어…'하고 또 통화가 끝났다.

그리고 이튿날 정오 나는 〈연합뉴스〉와 인터넷 언론에 나온 몇 장의 사진을 보았다. 사진 속의 스님은, 차마 눈 뜨고 보기 힘든 모습이었다. 나는 이렇게 아픈데, 당신도 아프세요? 하고 내게 가만히 묻고 있는 것 같았다. 그래도 당신은 나에 대해 글을 몇 번 썼는데, 나 빼고 가장 아파하고 있는 사람이 바로 당신일 테죠? 하고 저승사자처럼 말하시는 것 같았다. '반갑기야 하지, 그런데 말할 힘이 없어' 하시던 바로 어젯밤 스님과의 통화가 꿈만 같다. 이 지경으로 있으면서도 세상을 향한 가녀린 소통의 통로를 열어두고 계셨다니….

사진이 다시 나에게 준엄하게 말한다. 스님이 가진 믿음은, 스님의 생명을 깨끗이 삼켜버리려 하고 있다. 천성산에서 이 세상의 운명을 보았다는 그녀의 믿음은, 인간이 가질 수 있는 거의 완전한 사랑에 다름 아니라고 나는 믿고 싶다. 사랑과 믿음이, 믿기지 않지만, 이 세상에 있다. 사랑과 믿음이 이 세상에 있기 때문에 저 1970년 11월 13일에 '전태일'이란 우리 민족의 은인을 낳을 수도 있었다. 그런데 사랑과 믿음이 또 한 명의 은인을 세상에서 앗아가려 하고 있다.

아직 우리의 은인은 살아 계시다. 이제 우리는, 나는, 당신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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