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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자 기증 운동? 너무 앞서가지 말아야"

hari-hara의 '생물학 카페' <43> 난자 기증

요즘 갑자기 주목받는 세포가 하나 늘었습니다. 이 세상 사람들의 절반에게만 있고, 절반에게는 없는 세포, 바로 난자지요. 황우석 교수의 줄기세포 연구에 쓰인 수백 개의 난자의 출처에 대한 의혹으로 인해 발생된 난자 논란은 결국 지난 21일, '연구·치료·목적의 난자 기능을 지원하기 위한 모임'이라는 단체까지 발족시키기에 이르렀습니다.

***신체 기증, 어디까지 가능한가**

의학이 발달하면서 생명이 꺼져가는 이들을 위해 신체의 일부를 기증하는 일은 아름다운 미덕으로 칭송되고 있습니다. 신체 기증 중 가장 쉽고 부담 없이 할 수 있는 것은 혈액 기증입니다. 오래 전부터 혈액은 생명을 유지하는 귀중한 액체로 인식되어, 치명적인 장기의 손상이 없더라도 출혈이 심하면 죽음에 이르게 된다는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었습니다. 따라서 혈액이 부족한 환자에게 수혈을 하여 생명을 구하는 방법에 대한 시도는 오래 전부터 있어 왔습니다.

최초의 수혈에 대한 기록은 1667년 프랑스의 장 대니스(Jean Denis)가 양의 피를 15살 소년에게 주입한 것과 1818년 제임스 블런들(James Blundell)이 출산 후 출혈이 심한 산모에게 사람의 피를 주입한 것이 남아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수혈 방식은 대부분 부작용이 심해서 널리 전파되지 못했습니다. 아직 혈액형과 면역 거부 반응의 개념이 알려지지 않은 때였기에 수혈은 어떠한 과학적 근거가 없이 시도되어 환자들이 종종 수혈 부작용으로 사망하곤 했기 때문입니다.

본격적으로 수혈이 시도된 것은 1901년 란트슈나이더가 ABO식 혈액형을 알아내고, 미리 뽑아놓은 피를 굳지 않게 보관할 수 있는 '혈액 응고 방지제'가 개발되면서부터입니다. 이에 1936년 미국에서는 최초로 수혈용 혈액 교환소가 만들어졌고, 우리나라에서도 전쟁 중이던 1952년 부산에서 해군혈액은행이 문을 연 것을 시작으로 본격적으로 수혈의 시대가 열렸습니다.

수혈이 도입된 초기에는 헌혈과 수혈의 대한 인식이 부족했기에 헌혈자가 많지 않아, 매혈에 의존해야 했지요. 그러나 매혈자들 중에는 매혈 외에는 뾰족한 수입원이 없는 극빈층들이 많았기에, 이에 따른 문제가 심해 결국 1974년부터는 대한적십자사가 매혈 제도를 금지하고 전적으로 기증에 의한 헌혈로 방침을 바꾸게 됩니다. 현재 헌혈을 비롯한 골수, 간, 신장, 각막 등 이식할 수 있는 모든 생체 장기의 매매는 법적으로 금지되어 있으며, 순수한 선의에 의한 기증만이 가능하고, 이는 국립장기이식센터(http://www.konos.go.kr)를 통해 이루어집니다. (장기 기증에 관심이 있으신 분들은 홈페이지를 방문해보세요.)

***난자 기증 재단의 발족을 바라보며**

이렇듯 이제 우리는 도움이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금전적, 심적 도움만을 주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신체 일부까지도 떼어줄 수 있는 시점에 와 있습니다. 남의 눈 속에 들보보다는 내 손톱 밑의 가시가 더 아픈 것이 인지상정인데, 누군가를 위해 자신의 몸을 떼어주는 것만큼 숭고한 일은 없을 것입니다.

우리는 이제 정자은행이 보편화된 시대에 살고 있고, 아기를 간절히 기다리는 사람들을 위해 난자를 기증하는 것 역시 좋은 취지에서 행해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난자 기증에 대한 운동은 우리가 너무 앞서나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게 합니다. 단지 연구를 위해서 생식세포인 난자를 기증하는 것은 불임부부를 위해 난자를 기증하는 것과도, 인공혈액을 만들기 위해 혈액을 기증하는 것과도 차원이 전혀 다른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난자 기증 자체를 반대하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난자 기증과 관련해 일어나고 있는 과열 양상을 잠재우고 사실을 정확하게 파악한 뒤, 성숙한 판단을 내려달라는 것입니다. 스스로 자신의 신체를 기증하겠다는데 말릴 방법은 없지만, 난자 기증에 대해서는 알려진 사실이 너무 부족합니다.

여성의 난자를 채취하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고 시술시 부작용이 있을 가능성도 존재합니다. 그러나 민간 차원의 난자 기증 운동은 이에 대한 철저한 대비가 부족한 듯 보입니다. 난자의 기증은 불임부부를 위한 시험관 아기 시술에서 사용하는 방법과 비슷합니다. 즉 인공수정 때 하는 '배란억제-과배란-난자채취-체외수정 후 나팔관에 배아 이식' 과정 중 '배란억제에서 난자채취'까지의 과정을 겪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정상적인 여성이라면 매 생리주기마다 양쪽 난소가 번갈아 단 한 개의 난자만을 배란합니다. 그러나 난자를 인공적으로 채취하는 경우에는 한 번의 시술로 많은 난자를 채취하기 위해 배란을 인공적으로 억제시켰다가 한꺼번에 많은 난자를 얻기 위해 호르몬 주사를 이용해 과배란을 유도합니다. 그리고 질식 초음파를 통해 난자의 성숙 과정을 지켜보다가 난자가 성숙되어 배란이 가까워오면 마취를 하고 체내에 바늘을 넣어 과배란된 난자를 회수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 과정은 약 2~3주 정도 걸리며, 그간 여성은 매일 호르몬 주사를 맞아야 하고 마취와 약간의 출혈과 통증을 감수해야 합니다. 때로는 과배란 유도의 부작용으로 인해 난소 비대, 복통, 복부팽창, 복수 등 난소 과자극 증후군 등이 발생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난자 기증 운동에 대한 보도에서는 이런 점은 전혀 언급되어 있지 않습니다. 부작용이 발생할 경우 이후 병원 치료를 책임진다든가 혹시나 이후 난소 과자극으로 인한 월경증후만군이나 불임 등의 후유증에 시달릴 경우 이에 대한 보상과 책임을 지겠다는 언급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언론에서는 40대의 엄마와 20대 딸들이 모두 난자를 기증하겠다는 기사를 마치 훈훈한 미담처럼 보도할 뿐, 그에 대한 대비를 얼마나 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나와 있지 않기 때문에 걱정이 되는 것입니다. 만약 좋은 취지로 인해 여러 가지 위험을 무릅쓰고 난자를 기증했는데, 부작용과 후유증에 시달리게 된다면 좋은 취지도 빛이 바래고 말 것입니다.

또한 지금 일어나는 난자 기능 운동의 취지는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신체 기증의 취지와는 다릅니다. 아마도 이 글을 쓰게 되면 저는 '난자 기증'을 문제 삼으면서 혈액이나 기타 장기 기증은 왜 문제 삼지 않느냐, 라는 질문을 받을 것 같습니다. 그 점에 대해서 제 의견을 이야기한다면, 혈액이나 장기 기증과 난자 기증은 격이 다른 것이라고 대답하겠습니다. 혈액이나 장기 기증은 당장 누군가에게 필요한 것이며, 혈액형이나 조직 적합성 등에서 내 것이 아니면 절대로 안 되는 당위성이 존재합니다.

혈액형은 ABO와 RH 타입이 맞아야 수혈할 수 있고, 장기는 그보다 더해서 조직 적합성이 일치하는 사람은 극히 드물기 때문에 내가 아니면 그는 살 수 없습니다. 그리고 수혈과 장기이식은 내가 준 것이 그의 몸으로 들어가 경각에 달린 사람의 목숨을 구하는 일에 직접적이고 절대적인 역할을 하게 되기 때문에, 생명을 살린다는 거룩한 봉사를 직접적으로 실천할 수 있는 일입니다.

그러나 지금 펼쳐지고 있는 난자 기증 운동은 직접 시술이 아니라, 연구 수준의 기증입니다. 난자 기증을 통해 당장 생명을 구할 수는 없다는 것이죠. 황우석 교수의 연구를 통해 우리는 인간의 난자를 이용해 핵 치환 복제배아를 만들 수 있고, 여기서 줄기세포를 만들어낼 수 있으며 일부를 특정 세포로 분화시킬 수 있다는 것까지 알았습니다.

지금 분위기는 이를 이용하면 모든 난치병을 고칠 수 있을 것이라는 흥분을 자아내고 있지만, 우리는 지금 아무런 연구결과도 손에 쥔 것이 없습니다. 아직까지 아무도 복제된 인간배아를 이용해 성공적인 치료를 받은 사람은 없습니다. 단지 가능성만을 위해 연구과정에 난자를 기증해야 한다는 운동을 벌이는 것은 조금 과열되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난자를 기증하지 않으면 연구를 더 이상 진전할 수 없는데 무슨 결과를 바라냐고요? 이 점에 대해서는 이런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우리는 난자를 타인에게서 기증받을 것이 아니라, 연구를 통해 만들어 내야 한다고요. 황우석 교수는 인간의 줄기세포는 모든 세포로 분화되는 것이 가능한 세포라고 한 바 있습니다.

난자를 수정시켜 만들어낸 줄기세포가 다시 모든 세포로 분화가능하다는 것은 결국 그 줄기세포를 이용해 다시 난자를 만들어내는 것도 결코 불가능한 것은 아니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됩니다. 연구에 쓸 난자가 부족하다면 줄기세포를 이용해 난자의 분화를 유도해 내는 연구를 선행하고, 민간에서는 이에 대한 연구자금을 지원하는 것이 순리에 맞는다는 생각이 듭니다.

줄기세포의 인공적 배양에 성공한 것은 불과 1997년이었고, 돌리와 스너피의 탄생, 그리고 인간의 난자를 이용한 복제 배아와 줄기세포 생성 등 우리는 지난 10여 년 동안 너무나도 급격한 변화를 겪었습니다. 이제 우리는 시험관 아기나 줄기세포라는 단어가 낯설지 않은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왜 우리가 이런 급격한 변화를 그대로 용인하고 받아들이는지를 생각해봐야 합니다.

이렇게 세상이 변화하는 것은 우리가 좀 더 행복한 삶을 누리기 위해 우리가 가진 지력과 자원을 총동원해 만들어낸 결과입니다. 그러나 그 과정 속에서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실수를 하고 시행착오를 겪어야 했습니다.

줄기세포 연구도 마찬가지입니다. 줄기세포 연구가 성공할 경우에는 인류에게 많은 도움이 되겠지만, 우리는 지금껏 한번도 해보지 않은 연구를 하고 있기 때문에 이에 대한 발걸음은 항상 조심스러워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한시라도 시간이 아까운 분들께는 야속한 말이 되겠지만, 우리는 시행착오를 가능하면 줄여야 하고 선의의 취지로 행한 일이 부작용으로 인해 빛이 바래는 것을 최소로 만들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때로는 과열된 관심이 과도한 중압감이 되어 부작용을 일으킬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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