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기생과 매음녀, 그리고 페티시 클럽 여종업원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기생과 매음녀, 그리고 페티시 클럽 여종업원

박노자-허동현 서신논쟁 3부 <5> 매매춘의 변천

허동현 교수님, 안녕하십니까?

사회 비판적인 발언을 할 때, 그 비판의 대상이 되는 현상에다가 '공화국'을 붙여 일언이폐지의 효과를 얻는 것은 유행이 아닙니까? '골프 공화국', '강남 공화국', '서울대 공화국'…. 비판받아야 할 대상들이 많아선지, 이러한 표현들도 수도 없이 많아 보입니다. 그런데 밤의 거리를 다녀보면 '매매춘 공화국'이라는 말이 왜 많이 쓰이지 않는지 궁금해집니다. '인육(人肉) 장사'에 사회가 이미 하도 익숙해져서 '당연지사'가 된 결과인지요?

얼마 전까지만 해도 육안으로 봐도 성(性)이 주된 거래품 중 하나라는 사실을 쉽게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정부의 통계로 봐도 노무현 정권 시절의 대대적인 단속작전 이전까지 매매춘으로 생계유지하는 여성의 수는 적어도 약 33만 명으로 추산됩니다. 실질적인 숫자가 70만~100만 명 이상 됐다는 것은 관련의 시민단체의 추정이지요. 즉 한국의 성인 여성 15 명 중에서 적어도 1명 정도 매매춘을 하고 있었다는 이야기가 됩니다. 어떤 매매춘도 여성을 "천천히 죽인다"라고 할 정도로 심신을 피폐하게 하지만 포주들이 부당하게 조작한 빚을 무기로 여성의 인신 자유를 박탈하고 상상을 초월하는 경제적 착취를 자행하는 사창가의 현실은 여성에 대한 반인륜적 범죄로 불릴 만도 하지 않았을까요? 우리로 하여금 늘 소름 끼치게 하는 것은 전체주의 국가들의 정치범 수용소 이야기지만 인권 유린의 규모로 봐서는 '노예 매매춘'을 하는 업소들을 '민영 수용소'로 부를 만도 하지 않을까요?

물론 '다원적인 시민사회'쯤을 자칭하는 후기 자본주의적 사회에서는 전체 인구의 2% 가까이 '노예'나 '준(準)노예' 일종의 '예속 노동자'로 만드는 이 제도를 가만히 둘 리가 없었습니다. 2000년에 감금당하여 성매매를 강요당한 5명 여성을 비극적 죽음으로 몰고 간 군산 대명동 쉬파리 골목 사창가 화재 사건과, 2002년 14명의 현대판 '성노예'를 희생시킨 군산 개복동 화재 참사 등이 하나의 계기가 되어서 비등한 여론에 힘입은 정부는 2004년에 성매매 방지법을 제정하고 성매매 근절 대책들을 본격적으로 실시하기 시작했습니다. 선불금 채무 등을 무기 삼아 업주들이 오랫동안 여성들을 마음대로 혹사하고 폭행했던 그 음습한 곳에 드디어 법망이 닿아 약자에게 '구조'의 기회가 생겼다는 것은, 아마도 한국사상 역사적 사건이 아닌가 싶습니다. 한국 자본주의의 '쌍둥이'로 지난 한 세기 동안 자라온 '성산업'이라는 괴물이 한국 근현대사상 최초로 그 존재에 대한 어떤 중대한 위협을 느낀 셈입니다.

그런데 청량리와 미아리, 완월동과 자갈마당, 신포동과 학성동, 이 수치스러운 이름들이 서울과 부산, 대구, 마산, 울산의 역사에서 급기야 사라진다는 것은 중도 우파 정권의 업적이라고 칩시다. 문제는 무엇입니까? 한편으로는 한국처럼 매우 강력한 중앙집권적 관료 체계를 배경으로 하는 정부는, 이익 단체들의 로비를 뿌리치고 자본 계급의 특수 부문 (예컨대 '포주' 계층)에 대한 대대적 '수술'을 강행할 만큼 '관료적 자율성' (bureaucratic autonomy : 필요할 때 자본 계급의 이익단체로부터 거리를 둘 만한 자율성 즉 공적 행정력)을 확보하고 있음에 틀림없습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은, 한국 근현대사에서 자본 계급이 정권을 탄생시켰다기보다는 특히 초기에 외세의 힘을 업은 정권이야말로 대자본을 '적산 불하', 특혜 금융 등의 방법으로 탄생시키고 관리, 감독할 만한 힘을 가졌기 때문이지요.

한국에서 사는 사람에게는 여론에 힘입은 정부가 집창촌에 경찰을 대대적으로 보내 엄격한 단속을 집행하는 광경은 별로 놀랍지 않지마는, 의식 있는 동유럽 사람에게는 놀라울 뿐만 아니라 부러울 것입니다. 업주의 상납을 '제2월급'쯤으로 아는 저쪽의 경찰 당국도, 여성의 몸으로 인한 외화벌이를 '성장 견인차'로 여기는-그리고 역시 업주와 '줄'이 닿아 있는 저쪽의 정치권도, 한나라당의 모 의원처럼 "성산업이 없으면 젊은 남자의 정력이 어떻게 분출되는가?" 수준의 의식을 가지고 여론을 왜곡시키는 저쪽의 매체도 성산업을 본격적으로 손볼 만한 '자율성'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측면에서는, 저는 집창촌의 해체가 적어도 표피적으로 성공을 거둘 것을 의심하지 않습니다. 아마도 20~30년이 지나면 반라의 여성들을 상품처럼 전시하는 그 빨간 빛의 쇼 윈도우들이 '20세기의 옛날 현상'으로 기억될 것입니다.

그런데 또 한편으로는 미아리와 청량리의 지옥에서 공권력에 의해 '구출'된 여성들은 정말 인간다운 안락한 생활을 살 것인가요? 굳이 '기분 나쁜 소리'를 하고 싶지는 않지만 솔직하게 의심이 가는 부분입니다. 왜 그런가 하면 한국의 중도 우파 정권이 비록 자본 계급의 특수 부문('포주' 계층)에게 제지를 당하지 않을 정도로 '관료적 자율성'을 향유하지만 어디까지나 자본가 계급 전체의 이익을 대표하는 것이고, 바로 그러한 의미에서 이윤율을 극대화하는 신자유주의를 신봉, 실시하기 때문입니다. 신자유주의의 조건 하에서는 '지옥에서 구출된' 탈(脫)성매매 여성뿐만 아니고 서민층 전체는 점차 중산계층으로 상승할 희망을 잃고 저소득 고(高)불안의 상황에 허덕이게 되지 않습니까?

상당수가 "취직의 길이 막막해서", "동생의 학비/부모님의 치료비가 급해서", "지방에서 마땅히 할 게 없어서 무작정 상경했는데, 쉽게 찾을 수 있는 일은 이것밖에 없어서" '포주'들에게 착취를 당하게 된, 즉 이미 자본주의 사회에서 버림 받은 이들에게 지금 정부가 구체적으로 제시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약 1년 전의 여성부의 자료에 의하면, "그래픽운용기능사, 전산회계, 피부관리, 네일아트, 플로리스트(꽃집 창업), 간호조무사, 애견관리 등 직업훈련"을 실시할 예정이고, 창업 지원을 위해 1년 예산 14억 원을 책정해놓은 것이고, 그 훈련 과정에서 소득이 없는 탈성매매 여성에게 월 50만 원까지 지원비로 지급할 예정이라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포주'의 마수를 벗어나려는 여성에게 사회가 도와주기는커녕 '포주'가 경찰에게 부탁할 경우 경찰이 '도주한 채무자'를 잡아주고 업주에게 돌려주었던 암흑의 과거보다 '지원'이 이루어진다는 그 자체가 기쁜 일입니다.

그런데 국가로부터 법률적 지원을 받는 탈성매매 여성이 선불금 채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치더라도 (업주들의 교활한 '회계' 방법들을 생각하면 쉽지 않을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솔직하게 부모님의 치료비나 동생의 학비를 고사하고 혼자 한 몸으로 한 달에 50만 원으로 서울에서 살기가 과연 쉽습니까? 영세업체들이 무더기로 도산 당하는 자본의 거대화, 독점화 시대에는, 여태까지 해당 분야에서의 경험이 없었던 탈성매매 여성이 꽃집을 차렸다고 해도 그 생존 확률이 어느 정도 될 것입니까? 간호조무사의 초봉은 수도권은 100만~120만 원이고 지방은 많아야 70~80만 원 정도인데, 가족을 책임질 입장에 있는 여성이라면 그 돈을 가지고 과연 행복한 삶이 될 겁니까?

즉 지금 정부가 계획하는 '탈성매매 지원'은 그 계획대로 잘 이루어진다 해도, 정부의 생각대로 '탈성매매에 성공한' 여성이 저임금과 지속적인 신분 불안에 노출돼 살아야 하는 신자유주의적 사회의 하층 내지 최하층에 편입되게 돼 있는 겁니다. 그러한 상황에서 자신 내지 가족의 학비, 병원비 등이 급해진 여성이 다시 한번 성산업의 착취 구조 안으로 들어가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습니다. 물론 집창촌이 점차 철거돼 가는 것이라면 그것이 주로 인터넷 등을 매개로 하는 '정보기술 시대다운' 성매매일 것이고, 그러한 종류의 성매매를 경찰이 제대로 단속할 가능성은 거의 없습니다.

결국 이번 중도 우파 정권의 성매매 관련 정책의 실제적인 내용과 영향을 냉정하게 평가하자면 그것은 식민지 시대로부터 이어받은 '집창촌형' 성매매 산업의 공간적 해체와 동시에 공권력의 영향권을 벗어난 인터넷 등을 통한 '선진국형 성매매'로의 일종의 '이행'이지 진정한 '탈성매매'는 아닙니다. 명실상부한 탈성매매가 이루어지려면 성매매의 피해자들에게 중산층으로의 신분 상승의 기회가 주어져야 하는데, 신자유주의 사회에서는 탈성매매 여성이든 하층의 어떤 구성원이든 이미 상향 사회이동이 막히고 만 것입니다. 옛날에 마을의 빈농들이 도시에 들어가서 노동자가 됐듯이, 지금 집창촌을 떠나는 여성들의 상당 부분이 탈성매매하는 대신에 '신형 성매매' 산업으로 들어갈 위험이 큽니다. 물론 법률이 엄격하게 집행되고 사회의 성적 풍경이 다양화된 만큼 이 '신형 성매매'도 과거와 달리 단순한 삽입 성교 중심주의를 떠나 '남성의 다양한 성적 판타지 실현'을–요즘의 일본 성산업처럼–지향할 확률이 큽니다. 예컨대 <스포츠한국> 2005년 5월 16일의 '변칙 성매매'에 대한 보도를 보시지요.

"서울 강남역 인근에 문을 열었다는 한 '페티쉬 클럽'이 입소문을 타고 남성들 사이에서 뜨거운 화제가 되고 있다. 인터넷 성인커뮤니티에 올라온 경험담을 보면 성매매 특별법 이후 유행처럼 번진 이른바 '대딸방'(여대생이 자위행위를 해주는 곳이란 뜻의 은어)은 아닌 듯싶다. 국내 최초의 '페티쉬 클럽'이라는 I업소는 오히려 일본의 풍속업소인 '이메쿠라'를 한국화 시킨 인상이 짙다. 거실, 자취방, 공부방 분위기로 단장된 작은 방에는 소파와 테이블, 책상 등 평범한 가구 몇 개가 있을 뿐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이곳에서는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는 것일까.

남자 손님이 방으로 안내되고 나면 정장 혹은 특정 유니폼을 입은 여성이 등장한다. 물론 이들은 대부분은 미니스커트 차림이고 스타킹을 신고 있다고 한다. 여성들 역시 페티쉬 마니아라고 하는데 확인할 길은 없다.

방에서 마주 앉은 남녀는 적당히 대화를 나누며 서로의 성 취향을 확인한다. 남성들은 대개 '치마 속을 훔쳐보고 싶다' '스타킹 신은 다리를 만지고 싶다'는 욕망을 고백한다. 여성들 역시 '발을 빨아 달라'거나 '성기부분을 짓밟고 싶다'는 색다른 성적 욕망을 드러낸다고 한다.

커플에 따라 가학과 피학적인 역할을 맡기도 한다. 서로의 욕구를 파악하고 나면 속칭 '플레이'에 들어가는데 직접적인 섹스는 없다고 한다. 치마 속을 훔쳐보고 싶은 남성이 있다면 파트너인 여성은 팬티가 보이도록 다리를 벌려주는 식이다. 대부분의 커플은 얌전한 행위에서 시작해 더 과격한 행위로 발전한다.

남성 중 상당수는 스타킹을 찢거나 스타킹 신은 여성의 발을 입으로 애무하며 성적 쾌감을 느낀다고 한다. 여성이 발로 남성의 성기를 애무해 주는 '풋잡'같은 서구의 성 행태도 이곳에서는 특별한 것이 아니라고 한다. 주목 할 만한 점은 의외로 젊은 직장인이나 전문직에 종사하는 남성들이 여기에 열광하고 있다는 것이다.

'플레이'가 절정에 이르면 서로 자위행위로 마지막 욕구를 채운다고 한다. 성매매 특별법을 교묘하게 피해 나가고 있는 것이다."

삽입 성교가 아니기에 이 '변칙 성매매 업자'들을 처벌할 길이 없지만 여기에 커다란 문제가 내재해 있다는 것이 제 느낌입니다. 물론 이러한 산업에 선두를 서고 있는 일본의 업자들처럼 한국 업자들도 "여성 종업원들도 자신들의 성적 욕망을 충족시키니 정확한 의미의 성매매라기보다 성적 교환"이라고 주장합니다. 그 여성들의 욕망의 세계야 저로서 어떻게 확인할 길은 없지만 그들이 비록 과거와 같은 선불금 채무자, 즉 '준(準)노예'가 아니더라도 남성의 성 판타지를 실현시켜주고 금전적 대가를 받는, 그리고 그 대가 중에서 상당 부분을 업주에게 빼앗기는 피(被)착취자들입니다. 비록 그들에게 애당초에 가학적, 피학적 욕망이 존재했다 하더라도 그들이 이 일을 하면서 자신들의 주체적인 욕망을 충족시키는 것보다는 남성의 욕망을 발견하고, 심화시키고 대리 충족시키는 타율적인 역할에 머물러 있는 것이지요.

그들이 교환가치가 지배하는 자본의 세계에서 자신의 가장 은밀한 부분, 즉 성적 상상의 영역을, 돈을 가진 지배자적 남성을 위해 팔아야 하는, 비주체적이며 반(反)주체적인 입장에 있는 것이지요. 제가 두려워하는 것은, 한국에서 신자유주의가 본격적으로 정착되면 될수록 이 사회가 돈이라는 무기로 자신의 가장 '엽기적인' 성적 욕구를 다 채울 수 있는 '만족 만점'의 부유하고 안정된 극소수의 고급 화이트 칼러 남성과, 돈을 받고 남의 성기를 밟아주어야 하는 하층 여성이라는 두 극단으로 갈라질 것이라는 것입니다. 지금 일본 사회의 성 풍토를 보시면 제가 걱정하는 것이 무엇인지 금방 아실 것입니다.

위의 이야기는 주로 한국 성매매 산업의 현재, 그리고 그 신자유주의적인 재편의 전망을 다룬 것이었는데, 이제부터는 그 역사적 뿌리에 대해 간단하게나마 이야기해야 할 것 같습니다. 대량 산업으로 성장된 매매춘이 대다수의 근대 국가에서 번창하지만 우리 '매매춘 공화국'의 경우에는 그 규모(국내 총생산의 4,1%)나 가시성, 일반화의 정도는 유럽이나 미국을 능가하고 '매매춘의 제국' 일본의 수준에 더 가깝습니다. 더 중요한 사실은, 우리에게 여러 형태의 매매춘의 이미지가 현대사의 여러 페이지들을 쉽게 연상시킨다는 것이겠지요.

전쟁 과부들이 대량으로 사창가로 몰렸던 1950년대, '양공주'들이 "외화 벌이의 주역", "애국자"로 당국의 칭찬을 받고 일반인으로부터 "양놈의 걸레" 소리를 들었던 1960년대, 일본인들의 '기생관광'이 '민족적' 공분을 일으켰던 1970년대, 인신매매의 문제가 신문 지상에 공개되기 시작한 1980년대, 그리고 일본인이 아닌 한국인이 동남아 '기생 관광'의 주체가 되었던 1990년대…. 현실적인 차원에서는, 한국 공업화 자체도 그랬지만 성산업의 성장도 국가가 계속 주도, 관리해 온 것이라고 봐야 할 것입니다.

한편으로는 1947년에 일제시대의 공창제가 공식적으로 폐지되고 1961년 11월에 군부 정권이 '윤락행위방지법'으로 여론을 무마시키고 자신들을 "불쌍한 윤락녀의 구제자"로 미화, 부각시켰지만, 또 한편으로는 미군이나 일본 등지 관광객들을 상대로 하는 '외화벌이'형 매춘이 늘 국가의 보호와 장려를 받았으며 국가의 관리 기능까지 전제로 했습니다. '윤락'이 불법화된 나라에서는 1970년대부터 미군 기지촌 성매매 여성들을 상대로 국가가 정기적인 성병 검사를 하기 시작한 것이 아닙니까? 청량리와 미아리의 존재도, 사실상 관할 경찰서의 '이해'와 '협조'를 전제로 하지 않고서는 공권력이 전지전능한 규율국가에서는 가능했겠습니까? 즉 2000년대 초까지의 한국의 '성산업화(性産業化)'도 어디까지나 '국가주도형'이라고 분류해야 할 듯합니다.

담론적 차원에서는, '민족'과 '국가'가 신성시되는 상황에서는 성산업에 대해 애증이 엇갈릴 수밖에 없었지요. 예컨대 '민족'의 입장에서는 일본 관광객들이 한국 성매매 여성을 "돈으로 산다"는 것이 참기 어려운 모욕이었지만, '국가'의 입장에서는 '특수 관광'은 "애국적인 외화 획득 사업"이었습니다. 또는 '양공주'나 '일본인 기생 관광'의 이야기가 "민족적 수치"가 되는 반면, '우리'도 외국 여성의 성을 매매할 수 있게 된 1990년대의 풍요에 대한 "민족적 긍지"가 느껴지는 등, 매매춘의 여러 이미지들이 '민족'이라는 근대적 '상상의 공동체'의 집단적 기억 만들기에 아주 다양하게, 그리고 크게 기여합니다. 그런데 일본인을 상대로 하는 성매매여성을 "애국자"로 보든 "민족의 수치"로 보든 남성 주도적인 거대 담론에 여성이 부차적인 일부분이 되고 예속되는 것은 마찬가지였습니다. 즉 '국가'가 중요하느냐 '민족'이 중요하냐가 다를 수 있었지만 몸을 팔아야 살아남을 수 있는 구체적인 한 여성의 아픔이 중요시되는 것보다는 그 여성에 대한 소유권을 주장하는 '우리'의 테두리가 중요시되었던 겁니다. 집창촌 해체의 하나의 중요한 배경으로 "국제적 이미지 제고", "인신매매 국가 이미지 탈피"가 작용되는 오늘날에는, 그게 과연 크게 바뀌었는가요?

성이 상품화돼도 그 상징성은 어느 상품보다 더 깊기에 성매매의 변천이 역사상의 계승과 두절을 상징하기에 충분할 것입니다. 사실, 성매매 풍토의 엄청난 변화야말로 한국 전통사와 근대사 사이의 두절을 가장 잘 나타낸다고 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두절'이라고 하면 많은 분들이 반박할 것 같습니다. 기둥서방(妓夫, 포주라고도 불렀음)에게 손님으로부터 받은 화채를 다 주어야 하고, 기둥서방으로부터 벗어나려면 '속량(贖良)'의 값으로 큰돈을 물어주어야 했던 구한말의 유부기(有夫妓)의 생활을, 그 때도 '노예 매춘'이라고 불렀지요. '포주', '유곽(遊廓)', '화류계(花柳界)' 같은 단어들을, 삼패(三牌)기생들의 매음업과 관련해서 100년 전에 이미 썼던 것이지요. 즉 성매매 여성들에 대한 인신 자유의 박탈이나 경제적 착취는–그 규모는 물론 달랐지만–이미 그 때도 행해졌습니다. 그러나 흥미롭게도 일제 시대의 지식인들의 시각으로는, 근대의 매춘과 전근대적 기생 문화는 서로 근본적으로 달랐던 것이었습니다. 예컨대 그 당시 매춘업 상태에 대한 본격적인 탐구의 시도로 불러질 만한 익명의 논설 '경성의 화류계"'(<개벽>, 제48호, 1924년06월, 95-100쪽)에서 다음과 같은 주장은 관심을 끕니다.

"어제의 기생은 귀족적이나 오늘의 기생은 평민적이다. 어제의 기생은 비록 천한 일을 할지라도 예의염치를 숭상히 여기더니 오늘의 기생은 오로지 금전을 숭배한다. 금전만 주는 이상 예의도 염치도 다 관심 없다. '노래를 팔아도 성을 팔지 않는다(賣唱 不賣淫)'는 말 자체가 이미 없어졌다. 순연히 상품화된 것이다. 속류의 노래를 들을 수 있어도 고상한 시, 시조, 가사를 알지 못하고, 장구나 꽹과리를 잘 만질지언정 거문고, 가야금 줄도 고를 줄 아는 이들은 적다. 반(半)벙어리 일본 노래를 들을 수 있어도 옛날 황진이의 시 같은 것을 볼 수 없다. (…) 어찌 기생의 타락이라 말하지 아니할까?"

이 주장을, 한성 토박이의 옛날에 대한 단순한 향수로 치부할 수 있을까요? 그런 것이라기보다는, 전통 시대의 기생의 위상과 근대 매음녀의 위치의 차이를 아주 잘 표현한 듯합니다. 속박과 착취라는 공통점이 있고 늘 남성, 그리고 남성들의 국가의 욕구가 중심에 서 있는 것은 그 때나 지금이나 똑같지만, 전통 시대의 기생 (특히 고급 연예인으로 인식됐던 일패기생)은 어디까지나 단순한 성적인 대상물이 아니라 자존심과 사회적 발언권이 있는 문화의 전수자였습니다. 황진이의 시작(詩作)을 다들 알지만, 변방 함경도 경성(鏡城) 출신이라 해도 홍랑 (洪娘, 16세기)과 같은 무명의 기생이 우리의 심금을 지금도 울리는 "묏버들 가지 가려 보내노라 님의 손대, 자시는 창밖에 심어두고 보쇼서 밤비에 새잎이 나거든 나라고 여기쇼서"와 같은 그 애절한 아름다움이 뛰어난 작품을 쓰지 않았던가요? 물론 기생과 시를 교환하고 풍류를 즐기는 것도, 결국 남성 본위의 일종의 "감정적 이용/착취"에 해당될 수밖에 없지요.

그런데도 적어도 일패 기생의 경우에는, 청량리, 미아리의 현대판 '성노예'보다는 훨씬 더 많은 자율성을 확보할 수 있었던 듯합니다. 유교 경전, 서화, 행의(行儀)에 능숙했던 전통 시대의 기생들은, 고급 문화의 체화의 수준에서 사대부 정도로 꼽히는 문화의 주체들이었지요. 그런데 일본식 공창 제도가 도입돼 일본인이나 송병준과 같은 거물 친일파들이 뒷배 봐주는 '권번(券番)' 조직들이 유곽의 주인이 된 뒤에 '귀족적이었던' 기생은 하나의 돈벌이 기계, 성욕과 위생 관리와 계몽주의자들의 규탄의 대상물로 전락되고 말았습니다. 시작(詩作), 가창, 가무의 고급 기생 문화가 사라져버리고 여성의 몸이 자본의 확대 재생산의 도구가 되고 지금도 근본적으로 그 상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지요. 어떻게 보면 봉건적인 인권 박탈이 그대로 존속된 채 고급 문화를 말살시키고 인간의 몸과 마음을 도구화시킨 근대적 유곽이, 일본과 한국이 대표하는 보수적인 권위주의적 근대화의 모습을 가장 잘 비유적으로 나타내는 것이 아닐까요?

구름이 낀 오슬로에서 박노자 드림.

***도움 받은 책들**

가와무라 미나토 (川村湊) 저/유재순 역, <기생: 말하는 꽃>, 소담출판사, 2002
박종성, <백정과 기생: 조선천민사의 두 얼굴>, 서울대출판부, 2003
문정희 편, <기생시집>, 해냄, 2000.
고미숙, <한국의 근대성, 그 기원을 찾아서 – 민족, 섹슈얼리티, 병리학>, 책세상, 2001.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