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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면도, 굴업도, 부안으로도 부족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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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면도, 굴업도, 부안으로도 부족한가"

[기자의눈] 실패에서 배운 벨기에, 스위스를 보라

방사성 폐기물 처분장의 유치 경쟁이 경주, 포항, 영덕, 군산 4파전으로 압축됐다.

산업자원부는 이들 4곳을 대상으로 문화재ㆍ상수도 보호구역 존재 여부 등과 방사성 폐기물 수송 용이성, 사업 추진 여건 등을 복합적으로 검토한 뒤 오는 15일까지 주민투표를 요구할 방침이다. 주민투표 발의가 이뤄지면 이들 지역은 오는 11월 22일까지 투표를 끝내야 한다. 주민투표에서는 유권자의 3분의 1 이상이 투표에 참가해 유효투표 수의 과반을 얻어야 하며 두 곳 이상이 과반수를 넘길 경우 찬성률이 높은 곳이 후보지로 선정된다.

이미 이들 4곳은 "부지 안정성 하자 검토 결과 특별한 문제가 없다"는 결론도 내려진 상태다. 산자부도 "이번만은…" 하면서 내심 기대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여러 언론들도 이런 기대감을 부채질하며 환경단체도 이번 방폐장 건설에 동참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모든 일이 일사천리로 진행되고 있어서 도대체 왜 지난 20여 년 가까이 방폐장을 짓기 위해 그토록 온갖 갈등을 겪었는지 의아할 정도다.

***중·저준위 방폐장, 과연 안전한 시설인가?**

이번에 4곳이나 되는 지역이 유치 신청을 하게 된 데에는 "고준위 방폐장보다는 중ㆍ저준위 방폐장이 안전하다"는 통상적인 인식 때문이다. 여기에는 정부와 원자력계의 적극적인 홍보도 한몫 했다. 과연 중ㆍ저준위 방폐장은 아주 안전한 시설일까?

물론 최소 1만 년 이상의 자연과의 격리를 요구하는 '사용후 핵연료'와 같은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을 처리하는 것과 비교할 때 중ㆍ저준위 방사성 폐기물의 관리ㆍ처분이 상대적으로 용이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중ㆍ저준위 방사성 폐기물 역시 최대 200~300년 이상 자연과의 격리를 요구한다. 중ㆍ저준위 방폐장 역시 고도의 안전성이 최우선으로 고려돼야 할 시설이라는 것이다.

중ㆍ저준위 방폐장을 고준위 방폐장과 별도로 짓기로 하면서 이 정부와 원자력계가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을 처리할 부담을 후대로 넘긴 것도 큰 문제다. 정부는 고준위 방폐장 부지를 선정하고 그곳에 함께 중ㆍ저준위 방사성 폐기물을 처리하는 '어려운 방법' 대신 우선 중ㆍ저준위 방사성 폐기물을 처리할 곳부터 막대한 지원금을 미끼로 선정하는 '쉬운 방법'을 택한 것이다.

결국 다음 정부 또는 다음 세대는 지금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양의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을 처분할 고준위 방폐장 부지를 찾기 위해 온갖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그 과정에서 지난 20여 년 동안 반복했던 것과 똑같은 식으로 온갖 갈등이 불거질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물론 그 과정에서 올해 선정돼 추진될 중ㆍ저준위 방폐장이 들어선 지역이 유력한 후보지로 꼽힐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공교롭게도 이번에 방폐장을 유치한 지역 4곳 모두 기존의 원자력발전소 밀집지역 인근이라는 것을 염두에 두면 더욱더 그렇다. 고준위 방폐장이 들어서는 지역이 갖춰야 할 고도의 안전성을 생각하면 '기우'일지 모르지만 그 동안 정부와 원자력계가 보여 온 처신을 생각해 보면 이런 우려가 전혀 근거 없는 일은 아닐 것이다.

***벨기에와 스위스, 실패 끝에 방향 근본적으로 틀어**

그렇다면 외국의 경우는 어떨까? 정부와 원자력계는 일본, 프랑스 등에서 중ㆍ저준위 방폐장이 이미 수십 년 전부터 안전하게 운영돼 왔음을 홍보해 왔다. 실제로 전 세계에는 현재 운영되고 있거나 용량 포화로 폐쇄된 처분장이 100곳 이상에 달한다. 하지만 그 속사정을 들여다보면 이들 중ㆍ저준위 방폐장의 선정과 운영 과정 역시 결코 순탄치 않았다.

우선 기존의 중ㆍ저준위 방폐장의 상당수가 원자력에 대한 거부감이 널리 퍼지지 않았던 1960~70년대에 지어진 것이라는 것을 염두에 둬야 한다. 국내외에서 여러 가지 원자력 관련 사고를 접하고 또 환경 의식의 수준도 당시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높아진 현재의 우리나라와 비교할 처지가 못 되는 것이다. 실제로 외국에서도 1990년대 이후 중ㆍ저준위 방폐장의 신규 건설은 거의 없었고 시도된 몇몇 경우에도 부지 선정에서 큰 어려움을 겪었다.

벨기에는 1990년부터 1993년 사이에 중ㆍ저준위 방폐장을 설치할 장소를 물색했다. 최종적으로 98곳의 후보지가 선정됐으나 이 지역 모두 후보지로 지정되는 것을 거부했다. 결국 벨기에 정부는 (우리나라와 유사하게) 이미 원자력 관련 시설이 있는 지역을 중심으로 새로운 부지를 물색하는 작업에 들어갔다. 특히 이 과정에서 벨기에는 정부 주도의 부지 선정을 포기하고 지방자치단체, 대학, 지역 주민이 지역적 파트너십을 형성해 방폐장 부지를 찾는 과정에 공동으로 참여하는 방식을 택했다. 현재 벨기에는 10여 년 이상 부지 선정 과정이 계속되고 있다.

우리나라처럼 국토가 좁고 인구 밀집도가 높은 스위스의 경우는 더욱 시사하는 바가 크다. 스위스는 애초 1993년 중ㆍ저준위 방폐장 후보지로 한 지역을 후보 부지로 선정하고 사업 승인을 신청했으나 해당 지역 주민의 찬성(1994년)에도 불구하고 주 단위 주민투표에서 52%(1995년), 57%(2002년)의 반대로 거부당했다. 그 후 스위스 정부는 정부가 주도하는 또 다른 추진 일정을 제시하기보다는 중ㆍ저준위 방사성 폐기물의 '저장고'를 추가로 건설해 시간적 여유를 확보하는 방법을 택했고, 방폐장 건설 계획을 근본에서부터 재검토하고 있는 실정이다.

***'부안 사태'로부터 하나도 배우지 못 한 정부와 원자력계**

우리 정부가 벨기에, 스위스 정부와 가장 크게 다른 점은 도무지 실패로부터 배우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미 2003년 '부안 사태'라는 홍역을 치렀음에도 불구하고 우리 정부는 여전히 막대한 금전 지원을 '미끼'로 한 정부의 일방적인 추진이라는 기본 틀을 고수하고 있다.

2004년에는 시민단체와 방폐장 건설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추진하기로 거의 합의했다가 이를 거부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지난 2004년 10월에는 원자력과 전혀 이해관계를 맺고 있지 않은 '일반' 시민들이 모여 3박4일 동안 머리를 맞대고 숙의한 끝에 원자력 중심의 전력 정책에 대한 근본적인 제고가 필요하다는 결론을 내놓고 이를 발표했으나 정작 정부와 원자력계는 콧방귀만 뀔 뿐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추진되는, 사실상 노무현 정부로서는 마지막 기회가 될 이번 방폐장 추진 일정이 순조롭게 끝날 수 있을까? 이 정부와 원자력계의 바람과는 달리 벌써부터 잡음이 들린다. 해당 지역의 반대 운동이 거세질 조짐이 보이고 있을 뿐만 아니라 스위스처럼 방폐장 유치 지역과 가까운 타 시ㆍ군 지자체와 주민들이 크게 반발하고 있기 때문이다.

도대체 안면도, 굴업도, 부안에서 있었던 일이 몇 번이나 더 반복돼야 이 정부와 원자력계가 정신을 차릴지 갑갑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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