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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아더, 그 핏줄 속에 흐르는 제국의 영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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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아더, 그 핏줄 속에 흐르는 제국의 영혼"

김민웅의 세상읽기 <109>

19세말 스페인은 이제 노쇠한 제국이 되었습니다. 유럽의 동과 서 경계선에서 중동의 아랍지역을 지배하고 있던 오스만 터어키 제국도 '유럽의 병자'라는 비아냥이나 받고 있는 지경이었습니다. 과거의 웅대했던 위용은 한낱 빛바랜 신화나 전설이 되어버렸고 이제 조만간 이들이 지니고 있던 것들은 새로운 강자들에 의해 찢겨나갈 운명에 처해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오스만 터어키의 해체는 아랍의 각 종족들이 독립을 할 기회를 가져다주었습니다. 이러한 역사의 격변을 유럽의 신흥 제국주의 국가들이 놓칠 리 만무했습니다. 한편으로는 오스만 터어키를 압박해 들어가고, 다른 한편으로는 이들 아랍인들의 독립투쟁을 지원해주었습니다. 물론 이러한 독립투쟁 지원이 진실로 이들의 독립을 기원했기 때문에 이루어진 일은 아니었습니다.

우선은 오스만 터어키 제국으로부터 이들을 떼어놓고 그 다음에 다시 자신의 손아귀에 넣기 위한 방책일 뿐이었습니다. 이건 마치, 청일 전쟁 당시 일본이 청과의 싸움에서 승리한 이후 이 전쟁을 조선을 청으로부터 독립시켜주기 위한 전쟁인 것처럼 선전하고, 전쟁 직후 조선은 독립국이라고 선포했던 것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무능력해져가고 있는 옛 제국에게 일격을 가하고 난 뒤, 자신이 주인 노릇을 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스페인 제국의 경우도 그와 유사한 역사적 과정을 거치게 됩니다. 스페인 제국의 식민지였던 필리핀과 쿠바에서는 치열한 독립투쟁이 벌어지게 됩니다. 당시 미국은 이러한 정세를 지나치지 않습니다. 특히 아시아로 팽창해가는 길목에서 필리핀의 존재는 홍콩이 영국에게 가졌던 전략적 가치와 다를 바 없는 위치에 놓여 있었던 것입니다.

말하자면, 필리핀의 마닐라는 중국 공략의 근거지가 된다고 보았고, 이에 따라 필리핀의 독립투쟁을 지원하는 한편, 스페인과의 전쟁을 개시하기 위한 전략을 실천에 옮기게 됩니다. 1898년 2월, 쿠바의 하바나 항구에서 미국의 전함 메인(Maine)호가 의문의 폭발사고를 당하게 되고 이를 스페인의 소행으로 몰아간 미국은 스페인 전쟁을 선포하게 됩니다. 쿠바와 필리핀 전선이 거의 동시에 구축된 것이었습니다.

맥킨리 대통령의 지휘 아래 필리핀은 스페인의 식민지에서 해방되는 과정을 밟게 됩니다. 필리핀 독립운동의 지도자들은 이러한 미국과 적극 협력하게 됩니다. 하지만, 스페인이 물러간 이후 상황은 이들의 예상과는 다른 것이었습니다. 미국의 점령체제가 들어서고 필리핀의 독립은 사실상 무산되어갔던 것입니다. 필리핀 독립군의 즉각적인 무장해제가 요구되고, 필리핀의 새로운 국가건설은 모두 미국의 지도 아래 이루어지는 현실이 펼쳐졌습니다.

당연히 이들 필리핀 독립항쟁 세력들은 저항하기 시작했습니다. 필리핀 농민들의 항쟁은 격렬했고, 미국은 이들에 대한 대대적인 토벌작전을 밀고 나갔고 잡힌 포로들에 대한 고문과 학살의 기록은 이루 말할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국제적 비난이 고조되는 등 사태가 심각해지면서 미 의회는 필리핀 청문회를 열고, 관련자들의 소환, 조사에 들어갔습니다.

이들의 대답은 "필리핀인들은 문명화되지 않았다. 이들의 개화를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조처다"라고 대답합니다. 이러한 상황을 필리핀 현지에서 총지휘하고 있었던 인물이 아더 맥아더(Arthur MacArthur) 장군이었습니다. 훗날 2차대전의 영웅으로 떠받들어진 더글라스 맥아더 장군의 아버지였던 것입니다. 그의 군정정책 시기에 필리핀인들은 무수히 희생당하고 맙니다. 6.25 전쟁 당시 초토화전략 대부분의 기초는 이 필리핀 전쟁에서 습득된 전술이라고 합니다.

우리 사회 일각에서 더글라스 맥아더 장군 동상 논란이 일고 있습니다. 여러 가지 역사적 평가가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한 가지 그의 평가에서 빠질 수 없는 것은, 그가 6.25 전쟁의 와중에 전세가 불리해지자 핵폭탄 사용에 강한 집착을 보였다는 점입니다.

인간에 대한 역사적 평가가 그리 간단한 일은 아니지만, 우리가 미처 알지 못했던, 또는 주목하지 못했던 바도 함께 생각해봐야 하는 현실이 되지 않았나 합니다. 역사에는 여전히 많은 비밀이 숨겨져 있는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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