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삼성>과 <중앙일보>의 사과는 '닮은 꼴' 협박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삼성>과 <중앙일보>의 사과는 '닮은 꼴' 협박

[기자의눈] "국민을 협박하면 언젠가 똑같이 당할 것"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과 홍석현 전 중앙일보 회장(주미 대사)이 연루된 이른바 'X 파일' 파문과 관련해 공교롭게도 25일 삼성그룹과 중앙일보가 일제히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했다.

하지만 그 사과가 사태를 한 단계 매듭짓는 것으로 받아들여지기 보다는 이 중복 더위에 국민을 더욱 짜증스럽게 만드는 것 같다. 도대체 '사과 같지 않은 사과'라는 점에서 두 사과문이 닮은꼴이기 때문이다.

***중앙일보, '끝까지 가면 다 죽는다?'**

먼저 사과의 말문을 연 것은 중앙일보였다. 이 신문은 경쟁지인 동아일보와 조선일보가 각각 20일, 21일 'X 파일' 관련 보도를 한 뒤 온 나라가 이 문제로 떠들썩한데도 보는 사람들이 안쓰러울 정도로 입을 굳게 닫고 있었다. 이런 모습은 "중앙일보가 국민의 알 권리가 아닌 사주를 위해 봉사하는 신문이라는 사실이 노골적으로 드러났다"는 개탄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이렇게 실망을 거듭하던 독자들 앞에 중앙일보는 25일자 1면에 '다시 한번 뼈를 깎는 자기반성 하겠습니다'라는 사설 형태의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했다. 하지만 사설을 쭉 읽어 나가는 동안 대다수 국민은 실소할 수밖에 없었다. 이 글은 사과라기보다는 '끝까지 가면 다 죽는다'는 사실상의 협박성 항변이었기 때문이다.

이 사설을 통해 중앙일보는 1999년 홍석현 대사가 당시 언론사주라는 위치만 믿고 자신이 대주주로 있던 보광그룹을 탈세 창고로 악용하다 덜미가 잡힌 사건을 '선거에서 정권의 상대 진영을 도운 데 대한 괘씸죄'라고 주장하는가 하면, 이미 그 건으로 감옥까지 갔다 왔으니 대가는 이미 치렀다는 식의 궤변을 늘어놓았다.

심지어 이 신문은 첫 판에서 홍 대사의 거취에 대해 언급했다 마지막 판에서 이 대목을 삭제하는 해프닝까지 국민 앞에 보여 쓴웃음을 자아내게 했다. 탈세 사건으로 구속되는 사주에게 '사장님 힘내세요'를 외친 지 5년 만에 확실하게 또 한번 중앙일보의 주인이 누구인지 만천하에 확인시켜준 셈이다.

중앙일보의 행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중앙일보는 사설이 실린 1면 오른쪽 가득 '중앙일보는 물론 다른 언론사 임원들도 도청 : 입 열면 안 다칠 언론사 없다'는 제목의 기사를 싣고, 사설에서는 "도청 당사자들은 중앙일보를 매도하고 있는 일부 방송ㆍ신문사들을 거명하며 '그들도 떳떳하지 못하다. 자기들은 정도를 걸어온 것처럼 하는데 정말 역겹다'고 증언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끝까지 가면 다 다치니 이 정도에서 덮자'는 일종의 협박을 한 셈이다.

중앙일보와 홍 대사를 둘러싼 각종 의혹에 대한 해명(그것이 시인이든 부인이든!)은 전혀 없이 사주를 감싸고 심지어 협박까지 해대는 이런 글을 누가 '뼈를 깎는 자기반성'으로 받아들일 것인가? 실제로 중앙일보의 사과문이 나온 뒤 각종 인터넷 게시판에는 국민들이 분통을 터뜨리는 목소리가 연이어 올라오고 있다.

***삼성 사과는 형식적, 인권과 민주주의 위해 대국민 협박?**

불과 5년 전까지 중앙일보와 한 몸이었던 탓일까? '사과 같지 않은 사과'를 내놓은 것은 삼성 역시 마찬가지였다.

삼성은 이번 파문이 계속되는 내내 법적 대응을 비롯한 온갖 강경 대응 방침을 고수해 왔다. 실제로 삼성의 이런 '반(半)협박'은 삼성의 위력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많은 언론사에게 적지 않은 부담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하지만 삼성도 따가운 국민 여론을 무시할 수 없었던지 이날 전격적으로 대국민 사과문을 내놓았다.

하지만 이건희 회장이 직접 고개를 숙이는 '쇼'도 없이 배포된 이 사과문을 받아본 국민들은 또 한번 실망하지 않을 수 없었다. "사회적 물의를 빚은 데 대해 국민 여러분께 사과한다"는 내용으로 시작하는 이 짧은 사과문은 논란이 되고 있는 1997년 대선 당시 불법 정치자금 제공 문제, 기아자동차 인수 공작 등에 대한 해명은 비켜간 채 언론 보도에 대한 불만으로 가득차 있었다.

국민의 알 권리는 뒷전에 둔 채 자사의 이익만 내세우며 '사실상의 협박'으로 해석될 수밖에 없는 문구로 가득찬 사과문은 이날 아침 중앙일보의 그것을 쏙 빼닮았다. 삼성은 이미 김대중 정부 때 이번에 문제가 된 테이프의 존재를 알았지만 예상되는 피해에도 불구하고 국가기관에 신고한 사실을 적시하며 이를 공개하고 유포한 언론사들의 보도 태도를 비판했다. 그리고 "인권 확보와 우리 사회의 민주 발전을 위해서 이를 근절시켜야 한다"며 법적 대응 등을 계속할 뜻을 시사했다.

이렇게 삼성의 공식 문건에서 '인권 확보'와 '민주 발전'라는 말을 듣는 국민들 중에는 착잡해 할 사람들이 많을 수밖에 없다. 참여연대가 밝혔듯이 삼성은 창업자 이병철 회장으로부터 현재 이건희 회장에 이르기까지 대를 이어 역대 정권에 수백억 원의 규모의 불법 정치자금을 제공해 왔다. 이 액수는 정경유착이 극에 달했던 박정희 시대를 제외한 것이니 그 실제 규모는 상상을 초월할 것이다. 이런 삼성의 검은 돈이 우리나라의 '민주 발전'을 얼마나 저해해 왔는지, 그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국민들이 고통에 신음했는지는 두 말할 필요가 없다.

삼성이 인권 운운하는 것도 민망한 일이다. 지난 수십 년 간 견지해 온 '무노조 경영'은 과연 인권 신장을 위한 것이었는지 한번 묻고 싶다. 최근 국내 기업들의 윤리경영 수준을 평가하는 한 발표에서 삼성 계열사 상당수가 50점도 못 받은 것은 삼성이 말하는 '세계 일류 경영'의 실상을 말해주는 한 가지 실례일 뿐이다. 수치상으로는 국민 경제에 기여하는 바가 분명히 높은 데에도 불구하고 삼성이 국민의 신망을 얻지 못하는 근본적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이건희 회장과 홍석현 대사가 국민 앞에 무릎 꿇어라**

이런 식으로 삼성과 중앙일보는 분명히 사과를 한다고 했지만 이를 지켜보는 국민들은 아직 '진정한 사과'를 받지 못했다는 분위기다. 국민들은 삼성의 이건희 회장과 중앙일보의 홍석현 전 회장이 직접 나서서 모든 의혹을 해명하고 책임질 일이 있으면 떳떳이 법에 따라 책임질 것을 원한다.

그것이 '사과'보다 더 중요한 대목이다. 공연히 '사과 같지도 않은 사과'를 내놓고 이 염천 하에 국민들 불쾌지수만 높이는 것은 피차 현명한 일이 아닌 것 같다.

그리고 삼성과 중앙일보가 한 가지 더 알아두어야 할 일이 있다. 국민들은 더 이상 쉽게 망각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삼성과 중앙일보가 이번에 실추된 신뢰를 회복하지 못한다면 앞으로 그들이 무슨 일을 하든지 국민의 지지를 얻기 쉽지 않을 것이다.

'별 것도 아닌 옛날 일' 때문에 들고 일어난 국민들이 야속한가. 본사를 다른 나라로 옮기고 싶은가. 다른 국민을 선택하고 싶은가. 가는 것은 마음대로지만 한 가지만 당부하고 싶다. 지금과 같은 행태는 삼성과 중앙일보가 금과옥조처럼 떠받드는 '글로벌 스탠더드'에도 맞지 않는다.

나중에 이른바 불법자금의 실상이 드러나 망신 사지 말고 미리미리 그 실상을 국민 앞에 공개하는 것이 지금 당장 두 회사가 할 일이다. 그것이 지극히 상식적인 동시에 글로벌 스탠더드도 충족시키는 행동일 것이다. 오늘 국민 앞에 내놓았던 '협박'이 부메랑이 되어 스스로에게 돌아오기 전에 말이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