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학교에 이어 이번엔 서울대학교병원이 논란에 휩싸이고 있다. 이 논란의 귀추에 따라 서울대병원을 포함한 국립대학교병원들의 위상과 성격이 달라지는 것은 물론 우리사회 공공의료의 진로도 큰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최근 노무현 정부는 '병원 영리법인 허용'과 같은 보건의료 산업화 정책의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한 방안으로 '보건의료 공공성 확충'을 중요한 정책 과제로 제시했다. 하지만 정부의 이 방안은 4조 원이 넘는 예산 확보부터 구체적인 계획안까지 허점투성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특히 최근엔 보건의료 공공성 강화의 일환으로 서울대병원의 변화를 놓고 정부, 서울대병원 등이 대립하며 갈팡질팡하는 상황이다. 서울대병원은 어떻게 바뀌어야 하는가? <프레시안>은 이미 '태풍의 눈'에 들어가 있으면서도 사회적으로 내실 있는 토론이 이뤄지지 않고 있는 서울대병원 논란을 지켜보면서 건강하고도 합리적인 보건의료 공공성 강화 정책을 도출하기 위해 각계의 목소리를 듣는 자리를 마련한다.
<프레시안>은 7월11일 총론 성격의 문제제기에 이어 첫 번째 기고문으로 서울대병원의 공공성 강화 문제를 오랫동안 고민해 온 '건강권 실현을 위한 보건의료단체연합' 우석균 정책국장의 글을 싣는다. 앞으로 보다 활발한 토론을 기대한다.<편집인>
***지금은 서울대병원이 자기방어나 변명이 아니라 반성해야 할 때**
지난 11일 서울대학교병원은 '서울대병원 발전 심포지엄'을 열었다. 이 심포지엄은 서울대병원이 교육인적자원부에서 보건복지부 산하기관으로 위치가 변화되는 문제, 또 한편 국회 교육위원회에서 서울대병원설치법을 폐지하고 서울대병원에 다른 국립대병원과 동등한 위치를 부여하자는 법안의 발의 등 최근 서울대병원을 둘러싼 논란에 대한 대응의 성격이 짙었다.
이 자리에서는 국회 교육위원회 위원장과 의사이자 동문인 한나라당 신상진 의원이 축사를 하고 교육부, 복지부, 기획예산처, 재정경제부, 과학기술부의 다섯 개 부처의 국·과장들이 패널로 참가했다. 이런 참가 인사들의 면면은 '서울대병원의 막강 파워'를 여러 사람에게 실감케 했다. 그러나 서울대병원이 대국민적 설득력을 얻는 데 성공했다고 보는 사람은 별로 없는 것 같다. 한마디로 서울대병원의 반성이 없었기 때문이다.
우선 서울대병원이 스스로 말하는 그 역할을 제대로 하고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서울대병원은 국가 중앙병원으로 중증, 난치성 환자들을 치료하는 것이 자신의 역할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2003년 사스(SARS)가 전 세계적으로 문제가 되고 한국도 그 공포에서 벗어나지 못할 때 서울대병원이 보여준 행태는 무엇이었나? 서울대병원은 사스 지정 병원이 되기를 거부했다. 상황이 다 정리되고 나서야 환자 몇 명을 받는 시늉만 보였을 뿐이다.
서울대병원은 2003년 9월 서울 강남구 역삼동에 초호화판 건강검진센터를 개설했다. '서울대학교병원 헬스케어시스템 강남센터'가 그것이다. 이 센터의 주력 상품인 '50대 헬스케어 건강검진'의 비용이 88만~140만 원이다. 여기에 일류 호텔에서 숙식을 제공하는 '프리미엄 건강검진'은 2003년 60대 남성의 경우 320만 원이고 여성은 350만 원이었다. 암의 조기 발견에 도움이 되지 못하는 종양표지검사는 물론이고, 가족 중에 뇌졸중 환자가 있다고 뇌 자기공명영상(MRI)을 찍고, 암 조기발견을 위해 건강한 사람을 대상으로 '대장/복부/흉부/골반 컴퓨터 단층촬영(CT)을 한다. 이러한 검사들은 의학적 근거가 희박할 뿐더러 더욱이 여러 부위의 단층 촬영은 질병의 조기 발견에 도움이 될 가능성은 적은 반면 과다 방사선 노출로 암 발생에 기여할 수도 있다. 이러한 돈벌이 진료와 중증 난치병치료 및 연구가 무슨 상관이 있는가?
***서울대병원이 과연 국가 중앙병원을 이야기할 수 있는가?**
서울대병원이 변명보다 반성부터 해야 할 때라는 지적의 근거는 매우 많다. 많은 사람들은 서울대병원을 또 하나의 큰 대형병원으로 생각하고 있을 뿐 국민에게 도움이 되는 공공병원으로 생각하고 있지 않다. 돈벌이에 치중하는 것에서 다른 병원과 다를 바 없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몇 가지 예를 들어보자. 서울대병원은 이른바 '단기 병상제'를 운영해 왔다. 2주 이상 입원하는 환자는 6인실 이상의 다인실 병상을 이용하지 못하게 만들어 상급 병실 이용료라는, 건강보험 적용이 안되는 병실료를 더 부담하게 했다. 2인실의 경우 하루 입원실 이용비만 12만원이다. 두 달간 입원하면 입원비만 600만 원이 넘는다. 작년까지만 해도 서울대병원은 법정 다인실 병상 비율인 50%를 채우지 못했고 올해에는 50%를 겨우 넘겼다. 이 비율은 국립대병원 중 최하위임은 물론 대부분의 사립대병원보다 낮은 비율이다.
또 서울대병원은 현재까지도 산재 지정 병원이 아니다. 노동부 장관이 직접 병원장에게 산재병원 지정을 부탁했는데도 서울대병원이 거절했다고 하니 서울대병원의 특권이 세기는 센 모양이다. 산재 환자는 돈이 안 되는 까닭이다.
그것뿐인가? 서울대병원은 2003년 호화판 암검진센터를 짓고 있던 그해에 연 1000만 원의 운영비밖에 안 드는 환자들을 위한 무료 간병인 소개소를 폐쇄했다. 월요일부터 일요일까지 병원에서 종일 24시간 일하고 일요일 오후에 퇴근해서 집에 잠깐 들러 아이들 일주일 반찬거리를 해주고 나오는 50~60대 아주머니들이 파견업체에 가기 싫다는 이유로 항의하다가 모두 길거리로 내몰렸다. 이렇게 해서 초로의 여성 가장들이 서울대병원의 찬 바닥에서 추위에 떨며 항의 농성을 하게 만들었던 병원이 바로 서울대병원이다.
열거하자면 길지만 한 가지 예만 더 들자. 올해 서울대병원은 삼성생명의 민간의료보험상담창구를 병원 로비에 열어주면서 환자들의 편의를 위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런데 막상 건강보험공단이 건강보험 상담창구 설치를 서울대병원에 요청하자 이에 대해선 거절했다. 서울대병원 의료진들이 패스트푸드를 먹지 말라고 진료실에서 환자들에게 설명하고 있을 때 서울대병원에 있는 유명 햄버거 체인점은 입원 환자들에게 햄버거를 배달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서울대병원이 국가 중앙병원이고 한국을 대표하는 공공병원이라고 누가 인식할 수 있겠는가? 국민들의 입장에서 서울대병원은 좋게 봐주어도 '선택할 수 있는 여러 대형병원 중의 하나'일 뿐이다.
***서울대병원의 공공의료에 대한 잘못된 인식**
이런 상황에서 서울대병원이 '우리는 잘하고 있다'고 아무리 주장한들 국민들에게는 설득력을 갖기 힘들다. 그런데도 서울대병원 당국을 보면 서울대병원이 공공의료 병원으로서의 역할을 잘하고 있다고 진심으로 믿는 것처럼 보인다.
서울대병원 당국의 공공의료에 대한 인식은 들어주기 민망할 정도다. 서울대병원의 한 교수는 "교육부와 지금까지 결혼 생활을 해 왔는데 공공의료 예산이 4조3000억에 달하는 재혼(복지부) 상대가 나타났다. 팔자를 고쳐볼까 생각하는데 상대방에 부인(국립의료원)이 있어 신중하게 뒷조사 해보니 부부 생활이 원만한 것 같지 않았다"고 말했다. 비유의 부적절함은 제쳐두더라도 국립의료원이 무슨 역할을 하는지 서울대병원은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음을 드러낸 것이다. 예를 하나만 들자면 SARS 시기에 국립의료원은 모범적으로 표준 SARS 대응 지침을 만들어 시행했고 전국의 공립 의료기관에 지침을 하달했다.
서울대병원은 '거대한 보건소'가 되는 것을 공공의료의 상으로 이해하는 것 같다. 최근의 공공의료 논의 과정에서 그 누구도 서울대병원이 보건소 역할을 하라고 하지 않는다. 서울대병원이 자신의 주장대로 국가 중앙병원이 되려면 서울대병원은 전국의 보건의료 문제를 자신의 과제로 인식하고 보건소나 지역 거점 병원으로서의 공공 병원, 광역 거점 병원으로서의 국립대 병원, 또한 각급 민간 의료기관들이 어떠한 역할을 해야 하는지를 전체적으로 파악해야 한다. 이러한 인식 위에서 각급 병·의원에 대해 진료 및 연구, 교육기관으로서의 역할 등을 분담해 부여하고 표준 진료지침을 제시하며 의료 인력을 교육해야 한다. 서울대병원이 이러한 역할을 자임한다면 그것이 국가 중앙병원이 되는 길이며 그 과정에서 필요한 예산이나 필요한 인력이 있을 때 이를 정부에 요구하는 것이 올바른 순서일 것이다.
그러나 서울대병원은 공공의료를 적극적으로 사고하는 것이 아니라 아무도 주장하지 않는 '보건소화'나 '하향 평준화' 등의 내세우며 공공의료의 상을 왜곡하고 있다. 그러면서 자신들의 돈벌이 진료나 왜곡된 현상황을 합리화하고 변명하려 한다. 구논회 의원의 서울대설치법폐지 및 국립대병원통합법안이 현재 복지부 이관 및 공공의료 확충 방안과 다소 맥락이 맞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서울대병원의 이러한 대응은 '서울대특권 폐지론'에 무게를 더욱 실어줄 뿐이다.
***정부가 비전을 보여주고 나서야 할 때**
서울대병원은 그렇다고 치자. 더욱 큰 문제는 정부의 태도다. 교육부와 복지부는 지금까지 무엇을 했고 또 어떤 계획을 세우고 있는가? 지방공사 의료원을 복지부 산하로 옮기면서 국립대병원도 복지부로 옮기도록 정부와 여당이 방침을 정했다고 한다.
국립대병원-지방공사 의료원 또는 보건소-보건지소로 이어지는 공공의료 확충 방안이 복지부 방안으로 제시됐다. 그러나 각각 무슨 일을 할 것인지, 또 그 일이 국민에게 무슨 혜택을 주는 것인지 등의 내용이 아직 구체적으로 제시되지 못했다. 사업 예산도 4조3000억 원이라는 숫자만 제시됐을 뿐 구체적 항목이 아직 제시되지 않았다. OECD 국가의 공립 의료기관 비율은 평균 80%인데 비해 우리나라는 8%에 불과하다(OECD Health Data 2005). 이를 30%까지 끌어올리겠다는 것이 정부의 발표 내용이지만 이를 뒷받침할 만한 예산은 어림잡아 최소 20조가 넘지만 정부는 4조3000억 원을 제시했을 뿐으며 그 내용도 지금까지 공공의료 예산으로 매년 집행되던 것 외에 새로 잡힌 것은 앞으로 4년간 1조원이나 될까 말까한 상태다.
더욱 가관인 것은 재경부 등의 입장이다. 재경부 조원동 경제정책국장은 11일 심포지엄에서 국립대병원의 확충 방안을 말하면서 "민간자본을 유치하는 방안을 복지부와 협의 중"이라며 "서울대병원설치법 폐지가 민간자본 유치에 도움이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공립 의료기관을 확충하면서 자본을 유치한다는 발상은 전형적인 신자유주의적인 발상으로 민자 역사나 민자 고속도로 건설에서 보듯 공공성의 훼손, 수익성의 추구, 정부자산 잠식 등으로 나타난다.
이는 한국에서나 외국에서 공히 나타나는 현상이다. 공공성과 자본 유치는 공존하기 힘들다. 가장 우려되는 것은 정부의 이러한 '의료 서비스 산업화' 정책이다. 최근 정부는 건강보험 보장성의 일부 강화, 공공 의료기관의 일부 강화 등을 이야기하면서 한편으로는 의료 서비스 산업화라는 이름으로 의료기관의 주식회사화 등의 영리법인 허용, 민간 의료보험 활성화 등을 추진하고 있다. 여기에 얼마 되지도 않는 공립 의료기관을 민간자본 유치를 통해 '겉모습만의 공공 의료기관'으로 떨어뜨리는 결과가 된다면 이것은 공공의료 확충 방안일 수 없다.
국민이 원하는 공공의료와 서울대병원은 현재 서울대병원 그대로의 모습, '우리가 최고' 식의 주장에 머무는 것일 수 없다. 또 교육부나 복지부의 비전 없는 공공의료, 또는 재경부가 제시하는 '겉모양만의 공공의료'도 아니다. 우리는 서울대병원이 환자를 위해 가장 적절한 진료를 하는 병원이 되고, 그러한 진료를 위해 공공적인 목적에서 연구와 교육이 행해지기를 원한다. 국민들은 돈이 있건 없건 그 환자의 상태에 따라 필요하다면 국립대병원에서, 그리고 서울대병원에서 치료받을 수 있는 권리를 원한다.
서울대병원은 물론이고 정부도 그러한 비전과 이를 실행할 예산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서울대병원은 뼈를 깍는 자기반성에서 출발해 공공의료 기관으로서의 스스로의 역할을 적극적으로 제시해 국민적 설득력을 얻어가야 할 때다. 물론 무엇보다도 정부가 나서서 제대로 된 공공의료의 비전을 보여주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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