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쇄된 라차프라송, "내전"에 가까운 상황
시위대가 2달 전부터 무단 점거해 온 방콕의 쇼핑 중심가인 라차프라송 거리에서는 16일에도 전쟁터를 방불케 하는 상황이 연출됐다. 외신들은 라차프라송 일대에서 불붙은 폐타이어 위로 연기가 피어오르고 군경이 쏘아 올린 공포탄 총성이 들려오는 등 긴장이 고조됐다고 전했다.
UDD의 지도자인 자투포른 프롬판은 15일 영국 <BBC>방송에 "현 상황은 거의 완전한 내전이다"라며 "이 분쟁이 끝날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다"고 말했다. 또 다른 지도자인 나타웃 사이쿠아 역시 "아피싯 정권은 이미 내전을 시작한 것처럼 보인다"면서 "정부가 군부대를 철수하고 폭력행위를 즉각 중단하지 않으면 희생자는 더 많아질 것이다"라고 우려했다.
▲ 태국 정부군이 '레드 셔츠' 시위대가 점거한 라차프라송 거리 일대를 봉쇄한 가운데, 시위대와 군경 간의 산발적인 충돌이 계속되고 있다. ⓒ로이터=뉴시스 |
지난달 10일을 전후로 한차례 심각한 유혈 사태를 겪었던 라차프라송 거리에서 다시 충돌이 잇따르기 시작한 것은 정부가 이 일대를 봉쇄하기 시작한 지난 13일부터다.
이날 UDD의 지도부이자 강경파로 알려진 카티야 사와스디폰이 외국 기자와의 인터뷰 도중 저격을 당해 병원으로 후송된 것을 포함해, 15일까지 사흘 동안 24명이 숨지고 200명 이상이 다쳤다. 16일에도 시위대 주변에 있던 한 여성이 피격을 당한 것으로 알려져 사상자 수는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태국 정부는 지난 12일 "시위대가 정부측의 타협안에도 불구하고 시위를 중단하지 않고 있어 기존의 타협안을 철회키로 했다"고 밝힌 뒤 13일 즉시 봉쇄작전에 들어갔다.
시위대가 오는 11월 14일에 조기 총선을 실시하자는 아피싯 웨차치와 총리의 타협안에 대해 수용의 뜻을 밝히면서도 시위를 계속하자 정부는 타협안 철회와 봉쇄작전이라는 강수로 나선 것이다.
▲ 시위대가 태운 폐타이어 연기로 자욱한 거리를 한 시민이 가로지르고 있다. ⓒ로이터=뉴시스 |
태국 정부는 봉쇄작전이 시위대 지도부를 협상장으로 불러오기 위해 불가피하다고 봉쇄를 계속할 것이라고 밝혔다.
아피싯 웨차치와 태국 총리는 15일 TV 연설에서 "시위대가 농성 장소인 라차프라송 거리를 떠나야만 시위 정국이 해결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시민들은 시위대열에 참여해선 안 되며, 이를 어길 경우 처벌을 받는다"고 경고하기도 했다.
또한 정부군이 곧 시위대 강제 진압에 들어간다는 징조도 포착되고 있다. 산선 캐우캄넛 태국 군 대변인은 15일 시위대가 자진 해산하지 않을 시 그 진영에 들어가는 진압 계획을 세우고 있다고 경고했다.
그는 또 "테러범과 일반 시민을 구분하기 위해 방콕내의 일부 지역과 도로에 대해 통행금지 조치를 내릴 것"이라며 "16일 오후에 통행금지 구역에 해당되는 지역을 발표할 것"이라고 밝혔다.
방콕 현지의 한 교민은 "태국 군이 방콕 내 모든 학교가 개학하는 17일 오후 3시 시위대 강제 해산을 경고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며 "먼저 여자와 아이들을 피신하게 하라는 메시지가 전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 교민은 "정부군은 물론 레드셔츠 일원이 다른 지방에서 올라오고 있다는 소문도 들린다"고 덧붙였다.
▲ 무장한 태국 정부군이 라차프라송 거리 일대에 주둔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
아피싯 총리 "정정 불안은 태국 내부의 문제"
의회 해산과 조기 총선 등을 주장하며 지난 3월14일부터 거리로 나온 시위대는 두 달이 넘는 시위 기간 동안 50여 명의 희생을 치러야 했다. 같은 기간 부상자는 1600여 명이 넘는 것으로 집계됐다. 사상자 가운데는 <로이터>통신의 일본인 영상 기자 무라모토 히로유키(村本博之)씨를 포함해 외국인도 다수 포함돼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처럼 대치 상황이 심각함에도 태국인들로부터 '살아있는 부처'로 추앙받고 있는 푸미폰 아둔야뎃 국왕은 어떤 발언도 하고 있지 않은 상태다.
일부 시위대 지도자들은 그가 유일한 희망이라며 조속히 폭력 사태에 개입해 주길 촉구하고 있지만, <뉴욕타임스>는 15일 인터넷판 기사에서 태국 시민들 사이에서 태국 왕의 영향력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는 반론을 제기했다. 이 신문은 태국 시민들 사이에서 군주제 자체가 사라져야 한다는 이야기가 오가고 있다고 전했다.
한편 태국의 심각한 폭력 사태에 대해 국제사회는 일제히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지만 아피싯 총리는 '간섭은 노(no)'라는 입장을 밝혔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15일 태국 폭력 사태를 우려하는 성명을 내자 아피싯 총리는 반 총장에게 이메일을 보내 "현재의 정정불안은 태국 내부의 문제이고 외국과 국제기구들이 개입하는 것은 사태해결에 도움이 안된다"고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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