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미관계가 다시 대결국면으로 치닫기 시작했다. 그러나 북한을 제외한 6자회담 관련 국가들은 모두 중국만 쳐다보고 있다. 북한에 대한 중국의 '영향력'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 문제에 대해 의문을 가져봐야 할 것이다. 과연 북한에 대한 중국의 영향력이, 부시 행정부가 판단하고 있는 만큼 절대적인 것인지, 그리고 북중관계가 과거와 같은 그런 순망치한의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것인지에 대해 보다 내밀한 분석을 해 볼 필요가 있다.
***중국의 입장, "중국의 대북 영향력은 극히 제한적"**
이 문제와 관련하여 최근 북측과 중국측 외교 사정에 밝은 인사들을 두루 만났다. 중국 외교부 산하의 국제문제 관련 씽크탱크에서 미중관계를 연구하는 한 전문가는 “북한에 대해 중국이 과연 어느 정도의 영향력을 갖고 있는가하는 질문을 받고 비교적 솔직한 답변을 내 놓았다. 조금 길더라도 인용해보자.
“북한은 자급자족 체제이다. 분명히 말하지만, 북한에 대한 중국의 영향력은 한계가 있다. 북한에 대해 중국이 미칠 수 있는 영향력의 범주가 있고, 미칠 수 없는 범주가 있다. 북한의 핵문제에 관한 한 중국의 영향력에는 한계가 있다. 왜냐하면, 북한은 외부의 위협으로부터 자국의 안보와 체제를 보호할 목적으로 핵을 보유해야겠다고 주장하고 있는데, 중국이 외부의 위협으로부터 북한의 체제와 안보를 김정일 정권 주체세력들만큼 확실히 보장해 줄 수 없는 상태라면, 어떻게 북한이 생존전략의 일환으로 꺼내들고 있는 북핵문제에 중국이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겠는가? 그래서 중국은 지금 북한을 설득중에 있는 것이지, 외부에서 평가하고 있는 것처럼 일종의 압력을 행사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이런 엄밀한 중-북관계의 상황을 부시행정부가 놓치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다. 아니 어이없게도, 부시행정부는 중국 정부에게 북한 핵문제에 대해 보다 직접적인 개입을 요구하고 있는 것 같은데, 중국은 역대 어떤 나라의 주권도 침해하거나 공격한 적이 없었던 정부로 기록된다. 단지 중국은 동북아의 평화상태를 원하기 때문에 중재자 역할을 자의반 타의반 자임하고 있는 것일 뿐이다.
설령, 중국이 외부의 모든 공격으로부터 북한체제를 보호해 줄 수 있다고 보장하면서까지 북한에게 핵개발을 포기하라고 요구한다면, 이는 곧 미국을 향한 중국의 군사적 적대관계를 표출한 것이나 다름없게 된다. 그렇게 되면 대미관계의 안정화를 일차적 목적으로 하는 중국의 대외전략은 물거품이 될 것이고, 중국은 자국의 대외정책과는 반대 방향으로 외교정책을 집행하는 형국을 맞게 된다. 이는 결코 중국이 의도한 결과가 아니다. 그리고 아무리 중국이 북한의 체제안정과 경제보장을 약속하더라도, 이것이 김정일 정권 자신들만큼 신뢰할 수 있겠는가? 지금의 중-북관계라면 더욱 그렇지 못할 것이다. 오늘의 중-북관계는 양국간 현재의 실리보다는 과거의 명분 때문에 유지되는 측면이 많다.
이웃국가(Neighborhood State)로서 오랫동안 북한을 관찰해 온 결론 가운데 하나는, 북한은 '체면'을 매우 중요시한 나라라는 사실이다. 그렇기 때문에 자존심이 아주 강한 나라이다. 만일 외부의 어떤 한 국가가 북한의 체면을 무시하고 일방적인 외교를 펼친다면 이는 어김없이 실패하게 될 것이다. 우리 중국도 북한의 이런 민족적 특성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북한의 체 면과 자존심을 손상시키지 않으려 매우 조심스럽게 관계 교류를 해 오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북한이 경제적, 심리적, 체제적으로 얼마나 어려운 입장에 놓여 있는가를 잘 살펴볼 필요가 있다. 중국을 제외한 모든 공산주의 국가가 붕괴된 현시점에서 전 세계는 자본주의화와 민주주의화로 세계화된 상태나 다름없게 되었다. 그나마 중국도 시장사회주의 경제방식으로 돌입한 이래 정치, 경제적으로 완전한 공산주의 이데올로기를 유지하고 있는 유일한 나라는 북한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북한은 지금 극도로 외부에 대한 경계심이 높을 뿐만 아니라 주변에 대한 의심이 많은 상태이다. 그런데 얼마 전 미국에서는 북한의 체제변형을 주장했었다. 이는 부시 2기 행정부의 대북외교정책이 시작도 하기 전에 실패의 포문을 연 것이나 다름없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북한은 지금 미국이 자신들의 체제를 붕괴시키기 위한 하나의 수단으로 대화라는 카드를 꺼내든 것으로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결국 북한을 튀게 만들고 북한으로 하여금 6자회담틀을 헝클도록 구실을 제공해 준 나라는 미국이면서, 이를 수습하는 일은 모두 우리 중국에게 맡아 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지금 우리 중국에서는 왜 미국이 이런 과도한 짐을 중국에게 떠넘기고 있는가 하는 문제에 의문을 갖고 있다. 미국은 우리 중국에게 더 많은 압력을 북한에 넣어 달라고 요구하고 있지만, 문제는 중국이 북한에 더 많은 압력을 넣고 넣지 않고 하는 것에 있지 않다. 설령 중국이 미국의 요구대로 북한에 있는 압력, 없는 압력 모두 넣는다고 가정해 보자. 압력을 받는 주체가 북한인데 북한이 중국의 압력을 거절해 버리면 그만 아니냐? 이는 마치 한국과 미국과의 관계에서도 잘 비교될 수 있는 부분이다. 아무리 미국이 한국에 많은 압력을 넣는다 하더라도, 이를 한국정부가 거절해 버리면 그만 아니냐? 한국이 미국의 압력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미국이 한국에 대해서 할 수 있는 수단이 뭐가 있느냐? 이러한 사실은 중-북관계에서도 똑같이 적용될 수 있는 것이다.
현재 중국에는 북한의 핵개발을 이해하는 세대와 그렇지 못한 세대로 나뉘어지고 있다. 비교적 젊은 세대들은 북한의 핵문제를 비판적인 입장에서 토로하지만, 한국전쟁을 경험한 과거 원로 세대들은 아직도 북한을 동지적 혈맹관계로 생각하고 있다. 이것은 북한도 마찬가지이다. 중국과 북한은 비록 구세대들이 정치의 현장에서는 물러나 있지만, 여전히 일정 정도의 제한적인 권력을 유지하고 있다. 다른 나라와는 달리 중국과 북한은 공통적으로 '원로 중심의 사회'이다. 중국의 경우, 경제 문제는 대체로 젊은 세대들이 주도해 가고 있지만, 정치, 군사적인 측면에서는 여전히 원로세대들의 영향력이 적지 않게 미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외교도 원로들의 일정한 조언을 참고한다.
그러나 한국전쟁을 경험하지 못한 중국의 젊은 세대들은 분명 북한 핵문제에 대해 동정적인 입장을 취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미국을 좋아하는 것도 아니다. 미국을 좋아하지 않은 점에서는 중국의 원로세대와 젊은 세대가 공통적이다. 특히 중국의 젊은 세대들은 미국의 압력에 대해서는 매우 저항적인 생각을 갖고 있을 만큼 자존심들이 강한 편이다. 이들은 북한을 이해하거나 북한을 혈맹으로 생각할 만큼 좋아하지는 않지만, 미국에 강력히 저항하는 북한의 태도와 모습에 대해서는 오히려 중국 정부가 배워야 할 좋은 모델과 귀감으로 생각하고 있다. '왜 중국은 북한처럼 미국에 강력히 저항하지 못할까'라는 생각을 가질 만큼, 중국의 젊은 세대들 또한 정치적인 사고가 깊어져 가고 있다.
지금 미국이 중국정부의 관료들에게 북한에 보다 많은 압력을 넣어 달라고 요구를 해와도 미국의 요구를 액면 그대로 받아들여 소화해 내기에는 현 후진타오 정부도 한계가 있을 것이다. 그 한계의 단계는 이렇다. 우선 후진타오 총서기는 중국의 신세대를 대변한다는 점에서 분명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좋아하는 스타일은 아니다. 그리고 김정일과 특별한 관계를 형성해 온 것도 아니다. 개인적 친분관계도 그다지 깊지 않다. 그러나 강택민 전주석은 김정일위원장과의 관계가 아주 강한 편이다. 그리고 강 전주석은 일정 정도 원로로서 중국의 구세대를 대변한다고 볼 수 있다. 후진타오 총서기가 부시대통령의 요구를 1백퍼센트 받아들여 전권을 갖고서 북핵문제를 해결해 나간다 하더라도, 북한을 여전히 혈맹관계로 믿고 있는 중국의 원로세대들의 영향력을 완전히 벗어날 수는 없는 일이며, 설령 벗어났다 하더라도 북한이 중국에게 외교적 자존심을 굽혀본 선례가 단 한차례도 없었던 기록으로 보아, 북한에 미칠 수 있는 중국의 영향력은 매우 제한적일 수밖에 없을 것이란 점이다.”
***북한의 입장: "북한은 중국의 중재를 원치 않는다"**
반면에 북측 외교 사정에 밝은 한 인사는 최근 북한이 중국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가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솔직히 말씀드려, 중국에 대한 북한의 섭섭한 마음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그러나 어떻게 이 모든 속내를 털어놓을 수가 있겠습니까? 남측과의 국교정상화 문제까지 거슬러 올라가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지난 96년 북한이 큰 수해를 당했을 때, 중국은 북한이 기대한 만큼의 커다란 도움을 주지 않았습니다. 당시 만영상(萬永祥) 북한 주재 중국대사가 김영남 북한 부총리겸 외교부장에게 인민폐 3천만위안(元) 정도의 수재구호물자와 약 10만톤 정도의 식량만을 북한에 보내겠다고 했을 때, 그 이후 중국측의 약속 이행여부와는 상관없이, 당시 김영남 부총리가 '조-중(朝-中)간의 우의를 위해 매우 감사하게 받겠다'는 말은 전달했지만, 이때 북측 내부에서는 중국을 보는 시각이 많이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매우 냉정한 입장에서 중국의 속셈을 들여다보기 시작했고, 북중관계는 서서히 냉각되기 시작했습니다.
이런 일이 있은 후 97년에 다시 북한이 수해를 당하게 되자, 중국은 마지못해 북측에 트럭 단위의 밀가루등을 포함하여 약 7만톤 가량의 식량을 무상원조해 왔습니다. 그런데 중국이 보내온 이 밀가루는 모두 곰팡이가 끼어 먹기가 여간 힘든 것이 아니어서 중국이 북한을 어떻게 이용하고 있는지 확인하게 되었습니다. 불쾌하기 이루 말할 수 없었지만, 북측이 중국 변방에 위치한 까닭에 그리고 경제적으로 성장하려면 중국이 필요하니까 어쩔 수 없이 견디고 나가자는 것이 북측 내부의 입장 정리였습니다.
최근 들어 중국의 고위 관리들이 이런저런 일로 북측을 자주 드나들고 있는데, 자기들(중국측)의 주장에 의하면 '전방관리(前方管理, 완충지대 관리)를 잘 하기 위해서 부지런히 드나들고 있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최근 들어 북측 내부의 심기가 매우 좋지 않을 만큼의 불쾌한 소식들이 북경에서 떠돌아다니고 있습니다. 중국 공안요원들 사이에서 퍼져 나오고 있다고 하는데, 내용인즉 만일 북측 내부에서 쿠테타가 발생할 경우 김정일 위원장이 안정된 피신을 위해 중국쪽에 피신처를 물색하고 다닌다는 소문입니다. 정말 어이없는 소문이지만, 이 소문의 진원지가 중국 공안요원들로부터 나오고 있다는 말이 북측에까지 전해 들어가 북측에선 지금 이 소문의 진원을 파악하느라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습니다. 북측은 심지어 이런 불미스런 발언의 배경으로 미국 측에서 중국 공안요원들을 돈 주고 매수하여 북쪽 체제를 흔들기 위한 전술이 아닌가 하는 의심까지 갖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의심의 폭은 어쩌면 이런 일에 중국이 직접 개입했을 수도 있다고 보면서, 차마 아직까지는 북중관계를 고려하여 중국 측에 이에 대한 직접 불만을 제기할 수 없어서 일부러 미국에 대한 비난 강도를 높이고 있는 측면이 없지 않습니다.
바로 이 문제와 관련하여, 이번 중국의 대명절이라는 춘절(春節)을 맞이하여 북측이 핵 보유 선언을 공개적으로 한 사실은 매우 큰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외향적으로는 이 발언의 충격이 미국을 향해 퍼져 갔겠지만, 내향적으로는 중국이 보다 큰 충격을 받았을 것입니다. 북측은 북미간 대화를 원하고 있기 때문에 미국이 자꾸 중국을 통해서 북측에 메시지를 들여보낼 필요가 없다는 것을 미국에 알렸고 동시에 중국에게도 과도하게 개입할 필요가 없음을 알렸습니다. 현재 북핵 문제는 어디까지나 북한과 미국이란 당사자들간의 문제이기 때문에 양국이 서로 직접 마주 앉아 풀어야 할 문제이지, 제3국, 제4국, 제5국, 제6국이 나서서 간섭하고 중재할 문제가 아닙니다. 핵 문제를 누가 중간에서 중재하고 간섭한다 해서 이 문제가 또한 풀릴 가능성이 있는 것도 아닙니다. 북한과 미국이 풀어야 할 사항을 갖고 뭣들 한다고 그리 숱하게 많은 재판관들이 필요합니까? 재차 거듭 말합니다만, 핵문제가 가장 빨리 풀릴 수 있는 방법은 북미 직접 담판입니다.”
***지금이 남한에서 대북특사 파견할 시점**
이상의 발언을 통해 우리는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릴 수 있을 것 같다.
첫째, 북한은 분명히 중국의 중재역할을 원치 않고 있다는 사실이다.
둘째, 북중간의 관계는 외부에서 평가한 만큼의 순망치한의 관계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셋째, 중국의 북한에 대한 영향력과 경제적 지원은 미국이 평가하고 있는 만큼 그렇게 크거나 많지 않다는 사실이다.
넷째, 어떤 형식이든지 북미간에 직접 대화할 수 있는 기회가 마련되지 않는 한, 북핵 문제는 장기화될 수밖에 없으며, 중국의 중재역할은 북핵 해결에 큰 실마리가 되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그럼 왜 미국은 계속해서 중국으로 하여금 대북 압력을 강화토록 요구하고 있는 것일까? 그것은 아마 북핵문제가 대화로 해결되지 않을 경우, 이를 유엔에 회부할 것을 일차적으로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중국을 6자회담 틀에 묶어 둘 계산이 아니었을까?
어느덧 북핵 상황은 미국이 짊어지고 가야할 문제로부터 중국으로 떠넘겨진 느낌이다. 그리고 중국은 핵문제의 중재국으로부터 중심국으로 변해가고 있고, 북미간의 핵문제가 조중간의 문제로 변해가기 시작했다. 이런 현실을 지금 중국은 어떻게 바라볼까?
어쩌면 북한은 지금 중국보다는 남한으로부터 '특사'가 오길 간절히 바라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 특사를 통해 비료 50만톤을 북한에 지원해 줄 수 있다는 메시지와 더불어, 6자회담틀 내에서라도 북미간 직접 담판을 짓도록 중개할 수 있는 그런 남측의 중재역할을 기대하고 있는 지도 모른다. 정부는 왕자루이 중국 공산당 대외연락부장의 방북 결과를 지켜본 후, 사정이 여의치 않을 경우 대통령의 강력한 신임을 받고 있는 인물을 대북 특사로 파견하여 '새로운 중재자' 역할을 공세적으로 자임하고 나서길 바란다.
북측이 새로운 6자회담의 복귀 명분과 출구를 모색하고 있는 이 시점이야말로, 남측이 이 문제에 좀 더 적극적으로 임한다면 판이 주변 강대국들 중심으로 가지 않고 새로운 6자회담 틀이 마련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기 때문이다.
***필자**
세계와 동북아 평화포럼 대표, 16대 국회의원(통일외교통상위원), 대통령비서실 국정상황실장, 저서 <부시행정부의 한반도리포트>(2001, 김영사), <9.11이후 부시행정부의 한반도정책>(2002, 김영사), <전환기 한반도의 딜레마와 선택>(2004, 나남)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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